223화 <지혜와 소망>
“당연히 도와줘야지. 복잡하게 가지 말고 그냥 콘서베터십(conservatorship: 미국의 금치산자)을 신청할 수 있게 파울로와 안나의 사고(思考)를 잠시 막아버려. 그게 가장 빠르고 깔끔할 거야.”
“네, 알겠습니다.”
에바는 대한의 말에 즉각 움직였다.
먼저 모니카의 부모인 파울로 로렌과 안나 해서웨이의 소재를 파악했다.
가벼운 교통사고를 일으켜 두 사람을 병원 응급실로 보냈다.
그리고 에어볼을 보냈다.
둘의 목에 각각 나노셀을 주사하고 중추신경계에 간섭했다.
그러자 파울로와 안나는 당장 말이 어눌해지고 사고가 온전치 못하게 됐다.
당연히 파울로와 안나의 법적 보호자는 모니카가 됐다.
그들의 앞에 모니카는 나타나 빠르게 뒷일을 수습했다.
그녀는 법원에 콘서베터십을 신청해서 빠르게 받아냈다.
그런 후!
파울로와 안나가 평생을 피땀 흘려 애지중지 키워온 로시 그룹을 조각조각 찢어발겨 공중분해 시켜버렸다.
다행히 에바의 도움으로 로시 그룹은 제값을 받고 팔아치울 수 있었다.
덕분에 20억 유로에 가까운 거금을 손에 쥐게 됐다.
하지만 모니카는 그 돈에 전혀 욕심이 없었다.
그래서 전액을 에바에게 바로 송금하고 그 사실조차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마지막으로 모니카는 두 사람을 최고급 양로원에 집어넣었다.
그걸로 모니카는 부모와의 인연을 끊었다.
그녀가 양로원을 떠나자 에바는 파울로 로렌과 안나 해서웨이의 몸속에 들어있는 나노셀에 자가파괴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중추신경계에 간섭하고 있던 나노셀이 더운 여름 볕에 아이스크림 녹듯 순식간에 녹아 없어졌다.
며칠 지나지 않아 파울로와 안나는 정신이 온전해졌다.
몸도 금세 정상으로 회복했다.
두 사람은 기적과 같은 자신들의 회복에 크게 기뻐했다.
하지만 그들은 곧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평생을 바쳐 일궈온 자신들의 소중한 기업!
로시 그룹이 이미 물거품이 된 것처럼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즉시 마르첼로를 찾았다.
그들이 생각할 때!
이 문제를 해결해줄 사람은 마르첼로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됐다.
마르첼로가 이미 죽고 모니카가 그의 뒤를 이어 카모라 마피아의 최대조직인 카셀레시 패밀리의 보스가 됐다는 얘기였다.
파울로와 안나는 즉시 이탈리아 나폴리로 날아가 모니카를 찾아갔다.
하지만 그녀를 만날 수 없었다.
대신 누군가에게 납치를 당해 가진 것을 모조리 빼앗겼다.
그런 다음 화물선에 태워져 미국으로 보내졌다.
모니카의 소행을 의심한 두 사람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여기저기에서 돈을 빌려 이탈리아로 날아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마피아와 연관된 혐의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며 입국을 거절당했다.
눈물을 머금은 채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래도 이대로 모든 것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억울했다.
그래서 이 사실을 언론에 알리고 고소를 진행할 계획을 꾸몄다.
그때 그들에게 에바가 나타났다.
그녀는 두 사람에게 지금까지 모니카가 마르첼로에게 어떤 고통을 당했는지 동영상을 통해 자세히 보여줬다.
파울로와 안나가 자신들의 야망을 위해 얼마나 매몰차게 딸을 외면하고 팔아치웠는지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마지막으로 지금 모니카가 얼마나 무섭고 잔인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그제야 두 사람은 이 모든 일이 모니카의 계획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문제는 이걸 되돌릴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모니카가 일을 계획하긴 했다.
하지만 전체적인 진행과 법적인 문제 등
전 과정에 걸쳐 에바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일을 처리했다.
그래서 그 어떤 변호사나 회계사가 나타나도 공중분해 된 로시 그룹을 되살릴 수는 없었다.
아니 모니카가 로시 그룹을 팔아치웠다는 증거는 이미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완전범죄!
그렇다.
에바는 모니카를 위해 완전범죄를 만들어버렸다.
그래도 두 사람을 그냥 길거리에 내팽개치지는 않았다.
파울로와 안나의 여생을 위해 유타주에다 근사한 농장 하나를 남겨놓았다.
에바는 두 사람을 농장에 데려다주고 강력하게 경고했다.
만약 또다시 이탈리아로 가거나 모니카와 연락을 하려고 한다면 그때는 농장이 아닌 양로원에서 온전치 못한 정신으로 여생을 보내게 될 거라고 말이다.
파울로와 안나는 에바의 말을 듣자 벌벌 떨기 시작했다.
그제야 이 모든 일의 배후가 에바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녀는 싸늘한 미소를 한번 지어주고 그 자리에서 꺼지듯 사라졌다.
그 놀라운 모습에 둘은 그만 기절할 듯 놀라 주저앉고 말았다.
도저히 어찌해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절망했다.
하지만 그건 모니카가 느끼고 경험한 절망과 비탄에 비교하면!
1,000분의 1도 되지 않는 미미한 것이었다.
파울로와 안나는 그렇게 세상에서 조용히 잊혀져 갔다.
* * *
대한타워 1층 대한TV 제1 스튜디오.
“안녕하세요? 대한TV 시청자 여러분! 한새롬이에요.”
새롬은 카메라를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V자로 파인 시원한 주홍색 원피스!
덕분에 그녀의 풍만하고 뽀얀 가슴골이 여실히 드러났다.
하지만 새롬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방송을 진행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전 매일 대한TV를 보고 싶어서 힘들었어요. 그런데 우리 이대한 선수가 요즘 너무 바쁜 것 같아서 제가 대신 나섰어요. 여러분 괜찮죠?”
깜찍한 표정으로 애교를 떠는 그녀.
시청자들은 새롬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새롬은 손을 위로 살짝 치켜들었다.
“대한TV의 스튜디오와 이대한 선수가 있는 영국을 연결해서 생방송으로 진행할 생각이에요. 채널 꼭 고정해주세요!”
총을 쏘듯 검지를 앞으로 내민 그녀의 모습에 뭍 남성들은 심쿵했다.
최근 드라마와 광고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는 한새롬!
그녀의 유명세도 이제는 무시 못 할 수준이었다.
“정말 저희 채널에 많은 분이 와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참고로 제가 이번에 ‘질투의 법칙’이라는 미니시리즈에 주연급 조연으로 캐스팅됐어요. 젊은 커리어우먼들의 사랑과 질투를 다룬 멜로코미디에요. 안 물어보셨다고요? 이대한 선수 보고 싶다고요. 눼에에! 이제 헛소리 그만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어디서 배웠는지 그새 얼굴이 뻔뻔해지고 입담이 늘었다.
“오늘 스튜디오에 귀한 손님을 모셨습니다. 여러분도 아주 잘 아는 친구들이에요. 소원을 말해봐 코너의 첫 번째 손님! 한지혜, 한소망 남매를 소개합니다.”
새롬이 손을 옆으로 펼치자 한지혜와 한소망이 나란히 앞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정말 반가워요. 우리 대한TV 시청자들에게도 인사해주세요.”
“안녕하세요. 한지혜입니다.”
“안녕하세요. 한소망입니다.”
한지혜와 한소망은 카메라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이미 한새롬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생소한 스튜디오의 분위기에도 다행히 많이 떨지 않을 수 있었다.
“우리 이쪽으로 앉아서 얘기해요.”
“네.”
“예.”
새롬은 남매를 스튜디오 중앙에 놓인 소파로 인도했다.
모두 각자 자리를 잡고 앉자 그녀가 먼저 한지혜를 쳐다봤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덕분에 잘 지냈어요.”
“오늘 동생과 함께 스튜디오로 나왔는데……. 혹시 무리하는 거 아니죠?”
“아니에요. 절대 무리하는 거 아니에요.”
한지혜가 예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새롬은 시선을 한소망에게 돌렸다.
“몸은 좀 어떠세요?”
“좋아요. 덕분에 병도 다 나았어요.”
“정말인가요?”
“네, 의사 선생님이 100% 완치됐다고 말씀하셨어요.”
“와! 여러분 들으셨죠? 백혈병이 다 나았답니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치 처음 듣는다는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지혜와 한소망은 그 모습을 보고는 정말 오늘 처음 듣는 게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짝짝짝짝짝!
그때 박수가 터지기 시작했다.
시작은 새롬이었다.
하지만 스튜디오의 스텝들이 동참해 열렬하게 손뼉을 쳤다.
그러자 대한TV 시청자들도 일제히 박수 이모티콘을 올려댔다.
한지혜와 한소망 남매는 금세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런데 오히려 그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심금을 울리게 했다.
“크흠, 여러분 그동안 우리 한지혜 양과 한소망 군이 얼마나 힘들고 어렵게 살아왔는지 잘 아시죠? 그동안의 과정을 하이라이트 형식으로 묶어서 짧게 보실게요.”
새롬의 말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한지혜와 한소망 남매의 하이라이트 화면이 방송됐다.
셋은 카메라 옆에 놓인 대형 LED 모니터를 통해 같이 시청했다.
화면 오른쪽 아래쪽.
새롬과 남매가 같이 보는 모습이 나왔다.
새롬은 눈물이 나오는 것을 참으려고 자꾸 눈을 깜빡거렸다.
한지혜는 벌써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옆에 앉아있는 한소망도 눈을 깜빡이며 감개무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이라이트 방송이 끝나자 새롬이 먼저 말문을 텄다.
“100% 완치된 게 맞군요. 한지혜 양 소감 한마디 물어도 될까요?”
“네, 정말 감사합니다. 특히 저희의 이런 사정을 아시고 도와주신 대한 오빠와 대한TV 시청자 여러분!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한지혜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당차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옆에서 보고 있던 한소망도 누나가 고개를 숙이자 급히 같이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새롬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대한TV의 시청자들도 함께 미소 아이콘을 띄우며 좋아했다.
[사랑약국: 이런 콘텐츠 좋다. ‘소원을 말해봐!’ 앞으로도 계속 가자.]
[로또꽝: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방송! 멋있다.]
[한라열쇠: 광주에서 열쇠업하고 있어요. 손잡이 달린 도어락 무료로 설치해드리고 싶어요. 쪽지로 연락 한번 주세요.]
[여기저기: 대한이 좋은 일 하네. 적극 지지한다.]
[공돌이그만갈아: 반성했다. 나도 조금 도와야겠다. 그런데 후원 어떻게 함?]
[보라색구름: 아오! 왜 이렇게 눈물이 나냐. ㅠㅠ]
[이사왕: 이삿짐센터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도 동참하고 싶습니다. 연락 바랍니다.]
[방사능싫어: 가슴이 찡해진다.]
[똥개: 사람인: 애들 엄청 예뻐졌네. 전에는 다 죽어가더니.]
[아름다운나라: 이게 방송이지. 기레기들이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네.]
[집착하지말자: 정말 완치돼서 참 다행이다.]
[새로운시작: 우와! 심금을 울리네. 콘텐트 대박이다.]
[캐드1004: 그런데 대한이 왜 안 나오냐?]
“우리 한소망 군의 소감도 한번 듣고 싶네요.”
“아! 예. 먼저 절 도와주셔서, 아니 살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솔직히 전 죽을 줄로만 알았어요. 모든 걸 포기하려고 할 때 형(대한)이 저보고 반드시 나을 거라고 했어요. 그래서 용기를 얻을 수 있었어요. 골수 이식수술을 하고 나서 중간에 위기가 한 번 있었는데 다행히 잘 넘겨서 이렇게 완치됐어요. 감사합니다.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고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한소망은 어린 나이와는 어울리지 않게 진중하게 말했다.
하지만 듣는 사람들로서는 너무나 감동적이고 짠한 사연이었다.
사실 중간에 큰 위기가 한 번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식한 골수의 거부반응이 일어나 응급상황이 되자 대한이 에바에게 즉시 나노셀 투입을 지시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에어볼로 지켜보고 있었던 상황이라 참 다행이었다.
결국, 한소망은 나노셀 때문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한소망이 오늘 이 스튜디오 나올 일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물론 이런 뒷이야기는 대한과 에바만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집은 좀 어때요?”
“아주 깨끗하고 좋아요.”
“저도 마음에 들어요.”
집 얘기가 나오자 한지혜와 한소망 남매의 얼굴이 모처럼 환해졌다.
새로운 보금자리는 그들이 꿈꾸던 편안하고 깨끗하고 안전한 집이었다.
“많은 시청자분께서 한지혜 양과 한소망 군에게 이런 질문을 해주셨어요. 앞으로 뭐가 되고 싶은지? 또 꿈은 뭔지? 물어봐달라고 하시네요.”
“전 방송작가가 되고 싶어요.”
“저는 의사가 될 거예요. 그래서 저처럼 아픈 사람들을 고쳐주고 싶어요.”
“아! 우리 한지혜 양은 작가, 한소망 군은 의사가 되고 싶답니다. 두 분 꼭 꿈을 이루시기를 바랄게요.”
새롬은 친절하고 따뜻한 미소로 남매를 쳐다봤다.
“혹시 바라는 소원 같은 거 있어요?”
“네.”
“저도요.”
그녀의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매는 손을 번쩍 들었다.
그 반응에 새롬은 귀여워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