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화 <이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치열한 볼 다툼이 벌어졌다.
그것도 페널티 에어리어 안이라서 함부로 반칙도 할 수 없었다.
그때, 대한이 중앙을 가로지르며 거칠게 달려들었다.
그는 정신을 집중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축구공의 향방을 예측했다.
툭!
그러다가 리버풀의 수비수 고메즈의 발에 맞고 튀어나온 볼에 자신의 발을 가져갔다.
순간 리버풀의 미드필더 헨더슨이 대한의 옆에서 어깨싸움을 걸어왔다.
볼을 가로채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헨더슨이 건 어설픈 몸싸움은 그에게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오히려 대한과 헨더슨의 어깨가 부딪치자마자 헨더슨은 반대 방향으로 공처럼 튀어 나갔다.
이게 그에게 결정적인 기회를 제공했다.
툭!
대한은 반다이크와 고메즈의 사이를 보고 볼을 앞으로 살짝 밀어놓았다.
반대편에서 리버풀의 미드필더인 밀너가 그를 방해하기 위해 어깨로 밀었다.
그래도 대한은 넘어지지 않았다.
아니 넘어질 듯 넘어지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중심을 잡았다.
그러더니 기어코 오른발로 볼을 찼다.
퉁!
아주 강하진 않았다.
그런 볼은 리버풀의 최종수비수 두 명의 사이로 절묘하게 날아갔다.
골키퍼 알리송은 갑자기 튀어나온 축구공을 향해 즉시 몸을 날렸다.
이탈리아 세리에A AS로마에서 뛰던 브라질 골키퍼 알리송!
리버풀이 956억 원의 이적료를 줘가면서 이적해온 보람이 있었다.
알리송은 한 손을 쭉 뻗어서 손으로 볼을 쳐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손날 아래쪽에 맞은 축구공은 바닥을 튕기며 골대를 향해 나아갔다.
골키퍼가 급히 고개를 뒤로 돌려 결과를 확인했다.
통 통 통!
너무나 야속하게도, 볼은 통통 튀면서 골대 안으로 그만 쏙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와아아아!”
“골이다.”
왓포드 원정 팬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터트렸다.
왓포드의 벤치도 흥분의 도가니로 변했다.
의자에 앉아있던 코치진과 대기하고 있던 선수들이 일제히 밖으로 튀어 나갔다.
그들은 미친 듯이 두 팔을 흔들며 괴성을 질러댔다.
카카 감독도 이들과 같이 소리를 지르며 꼭 쥔 주먹을 부들부들 떨어댔다.
흥분한 것은 왓포드 원정 팬과 벤치만이 아니었다.
장수원 아나운서와 남희진 해설위원도 미친 듯이 외쳤다.
“골!”
“골입니다.”
“이대한 선수의 슛이 들어갔습니다.”
“이대한 선수! 리그 9호 골을 넣었습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4경기 동안 9개의 골을 넣었습니다.”
“정말 무시무시한 골 결정력이네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집중력을 유지해 기어코 골을 만든 이대한 선수입니다.”
“이건 불굴의 의지로 집어넣은 멋진 골이라고 봐야겠네요.”
흥분을 감추지 못했던 장수원과 남희진!
시간이 흐르자 가출했던 정신이 급히 돌아왔다.
그들은 손가락 하나를 들고 뛰어가는 대한을 보며 멘트를 쳤다.
“대한민국의 이대한 선수! 손가락 하나를 들고 뛰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겨우 한 골이란 뜻이에요. 앞으로 더 골을 넣고 말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 것입니다.”
“전반 10분 만에 왓포드의 선제골이 터졌습니다. 남희진 해설위원! 어떻게 보십니까?”
“이변이 일어날 징조가 보입니다. 리버풀이 워낙 강팀이라서 1골 먹고 쉽게 지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마음이 급해지지 않을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다 보면 실수도 나오고 기회도 생기겠지요?”
“맞습니다. 왓포드는 바로 그 틈을 노려야 합니다.”
스포츠티비의 시청자들은 대놓고 하는 편파방송에 다들 좋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한의 골을 본 대한TV 시청자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채팅창은 순식간에 뜨겁게 달아올랐다.
[구찌: 개소름! 지렸다!]
[그냥그래: 레전드의 시작이다.]
[감Su트: 세계 최고의 수비수를 찢어버리는 골이군.]
[수염빨이다: 슛 같은 패스! 패스 같은 슛이었다.]
[아크마: 프리미어리그에 와서 제대로 포텐이 터져버렸다!]
[심지똥: 이대한 선수가 있어서 너무 좋다.]
[하하2: 대한이 강팀에 약할 거라는 입벌구들 다 어디 갔음?]
[얼짱간호원: 꺄악! 골이다. 리그 9호골!]
[손흥민: 미쳤다. 또 넣었어. 연속 4경기 골이다.]
[도레미파하: 4경기 9골이 더 미쳤다.]
[대한충신: 진짜 잘한다. 우리 대한이!]
잠시 후!
주심이 서둘러 경기를 재개했다.
삐익!
휘슬을 불자 리버풀 선수들이 천천히 왓포드 진형으로 전진했다.
사실 너무 일찍 골이 터졌다.
그것도 왓포드의 선제골.
그래서인지 리버풀 선수들은 실망하기보단 전의에 불타올랐다.
그런데 생각보다 왓포드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아직 다들 힘이 넘치는 초반이라 승리의 열망이 대단했다.
더구나 전진 압박을 하는 건지, 미쳐서 날뛰고 있는 건지 모를 대한의 헌신적인 노력!
점차 리버풀 선수들에게 피로감을 가중시키고 있었다.
‘아니 저놈은 지치지도 않나?’
‘뭔 놈의 몸이 저렇게 단단해!’
‘공격수면 공격수답게 뛰지 왜 수비를 하고 지랄이야.’
‘이 미친 새끼! 혹시 심장이 두 개 아니야?’
리버풀 선수들은 하나 같이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거센 압박에 혀를 내둘렀다.
그러다가 리버풀의 측면수비수 아놀드에게 볼이 갔다.
아놀드는 순간적으로 오버래핑을 시도했다.
살라는 즉시 왓포드의 진형을 향해 달려갔다.
전형적인 리버풀의 역동적이고 빠른 공격패턴이었다.
그때 무서운 속도로 중원을 가로지르는 선수가 있었다.
바로 대한이었다.
그는 아무것도 보지 않고 그저 살라만 보고 달렸다.
왓포드 수비진은 급히 뒤로 물러났다.
순간 아놀드의 반 박자 빠른 패스가 날아갔다.
리버풀의 최전방 공격수 살라가 기가 막힌 퍼스트 터치로 볼을 잡았다.
그리고는 곧바로 슛을 때렸다.
뻥! 퉁!
그런데 갑자기 볼이 누군가의 다리에 맞고 튕겨 나갔다.
“우우우우!”
안필드는 야유의 함성으로 들끓었다.
살라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느새 그의 앞에 이대한 선수가 서 있는 것이다.
‘이게 뭐냐? 왓포드의 센터백은 어딜 가고 공격수가 여기 있어?’
살라는 오른발로 그라운드를 한번 세게 밟고는 몸을 돌렸다.
발등에 제대로 걸린 볼은 방해만 받지 않았다면 분명히 골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살라는 이미 실패한 공격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안필드의 콥들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인지 미련과 아쉬움에 대한에게 더욱 심한 야유를 쏟아냈다.
그때, 살라의 앞에 서 있던 대한이 사라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중앙선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속도가 장난 아니게 빨랐다.
사실 살라도 속도라면 누구에게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대한의 달리는 속도는 그 차원이 달랐다.
살라는 도저히 그를 따라잡을 자신이 없었다.
‘이거 괴물이 하나 나왔네.’
살라는 내심 고개를 휘저으며 빠르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왓포드의 역습은 골키퍼 포스터로부터 시작됐다.
빠르게 도슨에게 볼을 넘기자 미드필더 두쿠레에게 이어졌다.
미드필더 휴즈를 거쳐 그레이에게 넘어간 볼은 데울로페우에게 넘어갔다.
이 패스가 단 한 번도 끊이지 않고 바로 연결됐다.
그러자 눈앞에 보이는 것은 리버풀의 최종수비수 반다이크였다.
고메즈는 달려오는 그레이를 경계하며 물러서고 있었다.
데울로페우는 정면에서 슛을 선택했다.
페널티 에어리어 바깥이었지만 얼마든지 넣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반다이크가 워낙 단단하게 붙자 아무래도 막힐 것 같았다.
그래서 슛 동작을 취했다가 바로 돌파해 들어갔다.
반다이크는 급히 데울로페우의 옷을 잡아당겼다.
살짝 중심을 잃은 데울로페우가 비틀거렸다.
하지만 데울로페우는 억지로 힘을 줘서 중심을 잡고 앞으로 달렸다.
그 사이 측면수비수 로버트슨이 다가와 어깨싸움을 걸었다.
데울로페우는 간신히 중심을 잡은 몸의 균형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삐익!
그때 주심의 휘슬이 불었다.
로버트슨과 반다이크가 각각 팔을 써서 데울로페우의 돌파를 막았다는 것이다.
“우우우우!”
안필드는 곧장 거대한 야유의 물결로 휩싸였다.
하지만 VAR을 봐도 반칙이 맞았다.
물론 주심의 성향에 따라서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반칙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페널티 에어리어 안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도 프리킥 위치가 너무 좋았다.
왓포드에는 다 알다시피 ‘프리킥의 마법사’가 존재했다.
현재까지 프리킥 성공률 100%!
이 말도 안 되는 기록을 가지고 있는 프리킥 귀신이 한 명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 사실에 리버풀 주장 헨더슨이 다시 한번 주심에게 강하게 어필했다.
당연히 주심은 헨더슨을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우우우우!”
또다시 야유가 터져 나왔다.
대한은 프리킥을 준비하며 골대를 바라봤다.
이건 넣지 못하는 게 더 어려울 것 같았다.
아무리 리버풀이 벽을 쌓아봐야 소용없었다.
오히려 저들이 쌓아놓은 벽 때문에 골키퍼의 시야가 가려졌다.
그게 아니더라도 왓포드의 선수들이 골키퍼의 시야를 이중으로 잘 가리고 있었다.
“대한! 꼭 집어넣어.”
“아싸! 이제 2골 리드다.”
왓포드 선수 중 그 누구도 대한이 프리킥에 실패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만큼 그들에게 그의 프리킥 실력은 절대적이었다.
도도도도! 뻥!
대한은 오른발로 축구공을 감아 찼다.
공중으로 떠오른 볼은 뛰어오른 리버풀 선수들의 머리를 살짝 넘어갔다.
그리곤 급격히 휘면서 골대의 왼쪽 위 모서리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와아아아!”
“골이다.”
이건 야신이 와도 절대 막을 수 없는 절묘한 프리킥이었다.
안필드 구장 한쪽에서 거센 함성이 터져 나왔다.
대한은 한 손을 높이 들고 왓포드 원정 팬들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다가 손가락 2개를 활짝 폈다.
그 모습에 그를 뒤따라가던 왓포드 선수들이 일제히 대한을 따라 했다.
왓포드 원정 팬들은 좋다고 미친 듯이 아우성을 쳐댔다.
새로운 타입의 골 세레모니가 이렇게 우연히 탄생했다.
이 모습을 본 장수원 아나운서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목청을 높였다.
“벌써 2골째입니다. 이대한 선수! 오늘 해트트릭을 달성하겠다는 선언인가요?”
그러자 남희진 해설위원이 맞장구를 쳤다.
“도발입니다. 이대한 선수의 저 패기를 좀 보십시오. 마치 안필드가 자신의 전용구장이나 되는 것 같은 표정입니다.”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이대한 선수가 프리미어리그 최강의 팀인 리버풀 전에서 2골을 넣었습니다. 그는 이제 명실상부한 월드클래스입니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월드클래스를 넘어 이제는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공격수입니다.”
“맞습니다. 이대한 선수는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우뚝 올라섰습니다.”
스포츠티비의 시청자들은 장수원과 남희진의 편파방송에 웃음을 터트렸다.
대한TV의 시청자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깊은샅: 저 패기 보소!]
[아수라: ㅎㄷㄷ 지린다. 벌써 2골이다.]
[마감임박: ㅋㅋ 리버풀 오늘 박살 나다.]
[앤드류: 솔직히 2번째 프리킥 골은 거저 주워 먹었네.]
[IIIII: ㅎㅎ 우리 대한이에게 저런 프리킥을 주는 것은 거저 골을 먹으라는 것과 같지.]
[빅토리: 골 세레모니 멋져! 메시가 울고 가겠다.]
[대한바라기: C발! 너무 좋아서 욕이 나온다. 대한이 최고다.]
[N0재팬: 골대까지 직선으로 달려가서 살라의 골을 막은 것도 골로 쳐줘라!]
[자주국방: 그럼 대한이 3골을 넣은 셈이네.]
[자덕야덕: 감아차기 죽였다.]
[신토끼: 대한의 발은 크레이지!]
[도람통방빼: 프리킥 정확도가 너무 높아서 소름이 돋는다.]
그의 프리킥에 하나같이 감탄을 하며 채팅창에 불을 지폈다.
왓포드의 벤치도 다들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카카 감독은 기쁨을 이기지 못해 눈물까지 찔끔거렸다.
대한이 잘할 줄 알았지만 이렇게 잘 해낼 줄은 몰랐다.
그러다 문뜩 대한이 없는 왓포드를 생각해봤다.
카카는 갑자기 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대한을 잡아야 한다. 지금 그가 없으면 왓포드는 끝장이야. 이렇게 리버풀의 공세를 잘 막아내고 있는 것도 전부 대한이 있어서 가능한 거야.’
카카 감독은 바보가 아니다.
리버풀과 왓포드의 전력 차이를 잘 알고 있었다.
리버풀이 괜히 막대한 이적료를 내고 살라나 마네, 피르미누와 알리송 같은 선수를 영입한 게 아니다.
주급을 따져봐도 왓포드 선수는 리버풀 선수가 받는 주급에 상대도 되지 않는다.
특히 대한이 받는 주급 1만 파운드는 사실 장난에 불과했다.
정말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계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