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그녀의 첫 남자>
‘에바!’
―네, 마스터.
‘나나가 배우 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
―예, 방향을 설정해주세요.
‘찾아보면 분명히 포레스트와 야쿠자 사이에 뭔가 유착이 있을 거야. 그걸 쳐내야겠어!’
―야쿠자는 어떻게 할까요?
‘쓰레기는 치워야지. 가만히 내버려 두면 썩어서 냄새가 풀풀 날 거야.’
―네, 알겠습니다.
대한의 말에 뭔가 묘하게 들뜬 목소리로 대답하는 에바였다.
염산마가 소리 없이 일본에 상륙하는 순간이었다.
일단 에바에게 일을 맡기자 그는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 우리 그런 얘기 그만하자.”
“네, 좋아요.”
대한의 제안에 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순 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흘렀다.
그들의 눈에 뜨거운 열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용감하게도 먼저 움직인 것은 나나였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눈을 감았다.
그는 다가오는 나나의 입술에 입맞춤했다.
쪽!
잠깐 떨어졌다가 다시 붙었다.
이번에는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쪽! 쪽! 쪽!
세 번의 입맞춤이 끝나자 두 사람의 입술은 더 이상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잡아먹을 듯 서로의 입술을 탐닉했다.
설왕설래는 기본이고 표현할 수 있는 모든 행위가 그 안에서 다 이루어졌다.
그렇게 그들은 깊은 프렌치 키스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그녀의 거칠었던 호흡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나나는 대한의 몸을 으스러지도록 꼭 껴안았다.
그리고 세상을 다 가진 여자처럼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아직도 창밖에는 비가 흠뻑 내리고 있었다.
* * *
쏴아아아!
밤이 되자 빗방울이 더욱 굵어졌다.
창가를 때리는 빗소리가 음악처럼 들려왔다.
품에는 만족한 표정을 짓는 고양이 같은 미녀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안겨있었다.
부드럽고 따뜻한 나신을 쓰다듬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창가를 바라보던 대한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나나는 자신의 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나자 피곤하다면 그의 침대를 차지한 그녀.
그는 도저히 나나를 말릴 수 없었다.
그래서 잠이 오지 않는데도 같이 옆에 누워있었다.
‘에바! 나나를 깊이 재워!’
―네, 마스터.
대한은 다시 한번 나나에게 깊은 잠을 선물했다.
몸을 일으켰다.
잠도 오지 않는 밤이다.
굳이 침대에 누워있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는 문을 닫고 조용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팬티 바람으로 소파에 앉자 에바가 다가와 담요를 덮어줬다.
“차 한잔 드릴까요?”
“응.”
에바는 손수 차를 타왔다.
그녀가 옆에 앉자 대한은 차를 마셨다.
“텔레비전 보실 거예요?”
“아니. 그보다 지구환경보존을 위한 프로젝트는 어떻게 됐지?”
“보고하겠습니다.”
에바는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살짝 튕겼다.
허공에 여러 개의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제일 왼쪽부터 그녀의 설명이 시작됐다.
“이 선박은 한반도 7배 크기의 북태평양의 거대한 쓰레기, 아니 플라스틱 섬을 치우기 위해 개발된 ‘리사이클 호’입니다.”
“목적에 맞게 선박의 이름이 아주 직관적이군.”
“배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언제든지 바꾸실 수 있습니다.”
“그럴 리가. 이름 좋은데 뭘. 계속 리사이클 호라고 부르자.”
“고맙습니다. 마스터.”
에바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때 대한이 그녀에게 몸을 기울였다.
그리곤 에바의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녀가 얼어붙듯 동작을 딱 멈췄다.
그는 에바의 풍만한 가슴을 만지작거렸다.
아니 마음껏 주무르고 있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대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손으로 에바의 턱을 잡아끌었다.
그녀는 힘없이 딸려갔다.
그는 에바에게 키스했다.
그러자 그녀도 적극적으로 호응해왔다.
한동안 진하고 끈적한 프렌치 키스가 이어졌다.
그러다가 대한이 서서히 뒤로 물러갔다.
그는 손등으로 입가에 침을 닦으며 에바를 가만히 쳐다봤다.
침묵이 이어지자 그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마스터! 왜 그러세요?”
“사람과 안드로이드의 차이가 뭔지 알고 싶었을 뿐이야.”
“아!”
에바는 작게 감탄사를 발했다.
“에바의 몸은 언제 완성되지? 꽤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제 몸보다는 모니카의 몸을 재생시키는 게 먼저입니다. 저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진행하겠습니다.”
대한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할까요?”
“응.”
그가 허락하자 에바는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둘 사이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왠지 에바의 눈빛이 크게 흔들리는 듯했다.
“처음에는 자체적으로 필요한 선박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조선소에 직접 발주도 했고요. 하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서 기존의 선박을 개조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개조는 조선소에 맡겼어?”
“일단 큰 덩어리는 조선소에서 해결했습니다. 나머지는 이동하면서 로봇과 안드로이드를 투입해 해결했습니다.”
“그래서 리사이클 호는 플라스틱 섬을 치우러 가고 있는 거야?”
“네, 그렇습니다. 며칠 뒤에 현장에 도착하면 곧바로 플라스틱 쓰레기를 빨아들여서 재생하거나 태워서 없애버릴 예정입니다.”
“잘했어.”
검은색의 커다란 리사이클 호는 늠름해 보였다.
지구환경보존을 위한 첫걸음이 시작됐다.
앞으로 성능을 확인하고 이런 선박을 얼마나 더 만들지 결정하게 될 것이다.
“자금은 코레재단에서 집행했지?”
“네, 그렇습니다. 혹시 몰라서 리사이클 호에서 진행되는 모든 일을 에어볼로 촬영해놓았습니다.”
“잘했어. 나중에 대한TV에서 한번 다뤄도 좋을 거야.”
“알겠습니다. 그렇게 준비해놓겠습니다.”
에바는 첫 번째 홀로그램을 옆으로 치웠다.
그리고 두 번째 홀로그램에 관해 설명했다.
“지구환경보존을 위해 매일 수천만 톤씩 나오는 쓰레기 해결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인류의 관점에서 봤을 때 가장 급히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는 방사능과 오존층입니다.”
“방사능과 오존층!”
“사실 지구의 인류에게 오존층 문제는 답이 없습니다. 해결할 기술도 없고 의지도 없습니다. 그래서 오존층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히릭스를 이용해 복구작업을 진행하셔야 합니다.”
“큰 어려움이 없다면 복구하자! 단 지구의 환경에 큰 무리를 주거나 충격을 줘서는 안 돼!”
“알겠습니다.”
일단 오존층 문제는 대한이 히릭스를 이용해 해결하기로 했다.
“남은 건 방사능인가?”
“다른 문제도 많지만 일단 방사능이 인류에게 지속해서 치명적인 문제를 주고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봐!”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5년 7월 16일 미국 뉴멕시코주의 로스앨러모스 사막에서 실시한 최초의 핵실험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지구에서 일어난 핵실험과 핵 투하는 모두 2121번입니다.”
“그렇게 많아?”
“이중 미국이 1032회로 제일 많고, 구소련과 러시아가 715회, 프랑스가 210회, 영국과 중국이 각각 45회, 인도와 파키스탄 그리고 북한이 각각 6회입니다. 그밖에도 이스라엘이 최소 1회 이상 핵실험을 했습니다.”
그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홀로그램을 쳐다봤다.
공중 핵실험, 지하 핵실험, 수중 핵실험, 대기권 밖 핵실험 등
다양한 방법과 장소에서 실험된 핵실험은 지구를 방사능으로 오염시켰다.
주로 강대국들에 의해 자행된 핵실험의 폐해!
지구의 대기를 방사능으로 조용히 물들였다.
하지만 지구가 방사능에 오염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이걸 강대국들에 추궁하지 못했다.
말을 해봤자 아마 소용도 없었을 것이다.
괜히 강대국들을 자극하면 자국만 손해라는 이기적인 생각도 컸다.
결국, 그 누구도 지구가 방사능에 오염되고 있고, 대기 중에 방사능의 농도가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에 관해 책임지지 않았다.
“개판이로군.”
“더욱 큰 문제는 일본입니다.”
“후쿠시마?”
“네, 바로 이웃 나라여서 그 여파가 직접 대한민국에 미치고 있다. 결정적으로 일본 총리가 한 ‘The situation(후쿠시마 방사능) is under control.’이라는 말은 명백한 거짓말입니다.”
“그건 언론이나 인터넷에서도 많이 알려진 사실 아니야?”
“맞습니다. 하지만 아직 여론을 뒤바꿀 만큼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미국이 이런 뻔한 사실에 침묵하고 있습니다.”
“정치적인 이유겠지?”
“일본에 투자한 미국의 자본가들을 보호하려는 목적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