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만재능(Feat. 대한 TV)-214화 (213/331)

214화 <나나의 방문>

이제는 직접 포크를 잡고 먹고 싶은 것은 집어 먹었다.

에바는 음료수를 한쪽에 따라놓고 차를 끓였다.

식탁의 좌우에 미녀 네 명이 나란히 서 있었다.

H1 제니, H2 야엘, L1 리사, L2 틸란!

그들은 대한이 먹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식사가 끝내자 그는 차를 한잔 마셨다.

산책하러 밖으로 나갔다가 바로 돌아왔다.

멀리 망원렌즈가 달린 파파라치들이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양치질을 마치고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마침 메가요트 이클립스에 관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어떤 셀럽과 귀빈들이 탔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름 심층분석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코레실드가 납치범을 급습하는 영상이 나왔다.

편집했다더니 이건 정말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대한은 괜히 몰입해서 화면에 집중했다.

뭔가 전율이 일 정도로 박진감이 넘치는 화려한 영상이었다.

‘꽤 볼만하네.’

점수를 주자면, 10점 만점에 10점인 멋진 영상이었다.

이걸 본 사람들은 코레실드에 대한 인식이 좋아질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어떤 납치범도 무찌를 수 있는 어떤 상황에서도 대처할 수 있다는 환상!

아마도 그게 이 영상의 핵심이 아닌가 싶었다.

에바가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었다.

“영상 어때요?”

“잘 만들었다.”

“고맙습니다. 마스터!”

대한은 고개를 옆으로 돌려 그녀를 쳐다봤다.

확실히 몸을 가지고 있을 때의 에바는 얌전했다.

다시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돌려 채널을 바꿨다.

스포츠뉴스에서 왓포드와 대한을 주제로 피 튀기는 토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 명은 대머리 한 명은 키다리였다.

재미있겠다 싶어 채널을 고정했다.

―이대한 선수는 확실히 월드클래스입니다.

대머리가 선빵을 날렸다.

―그건 리버풀 전을 본 다음에 얘기하죠. 지금까지는 전부 강등권과 중하위권과 맞붙지 않았습니까! 상위권 팀과 싸워보면 그의 실력이 드러날 겁니다.

키다리가 여유 있게 응수했다.

그러자 대머리가 파안대소했다.

―하하하! 그럼 프리미어리그의 하위권과 싸워서 진 상위권 팀은 뭡니까? 그런 논리라면 하위권이나 강등권의 팀은 절대 상위권 팀과 싸워서 이기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런 뜻이 아니잖아요. 이대한 선수의 실력이 상위권 팀에도 충분히 통하는지 본 다음에 월드클래스인지 아닌지 얘기해도 충분하다는 겁니다.

나름 논리를 가지고 말하는 키다리였다.

하지만 대머리의 화력이 만만치 않았다.

―그 역시 말도 안 되는 논리입니다. 지금까지 상위권 팀 중 그 누가 하위권과 강등권의 팀과 싸우면서 이런 성적을 냈습니까? 지금 그건 프리미어리그의 하위권과 강등권의 팀을 무시하는 발언입니다.

―아니, 왜 생사람을 잡습니까?

―그러니까 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서 이대한 선수를 깎아내리려고 하냐는 말입니다. 아무리 그가 영국인이 아니라고 해도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얘기는 갑자기 이대한이 영국인이 아니라 안타깝다는 식으로 전개됐다.

당연히 그가 한국인이라는 게 소개됐고 손흥만과 박진성 선수까지 이름이 나왔다.

대한은 두 사람의 말다툼을 지켜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상대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자신의 말은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그는 진지한 눈으로 이 싸움의 승자가 누가 될지 지켜봤다.

에바는 가만히 옆에 앉아있다가 어느새 소파 뒤로 돌아갔다.

그리곤 대한의 어깨를 마사지했다.

그녀의 손길은 부드럽고 친절했다.

사랑과 애정이 한가득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대한은 자신도 모르게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소파에 기대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쪽!

누군가 자신의 입술에 키스했다.

에바인가 싶어서 가만히 눈을 떴다.

그런데 아주 반가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나나!”

“대한!”

대한이 일어나려 하자 나나는 급히 손으로 막았다.

대신 그의 허벅지 위로 올라와 안겼다.

부드럽고 따뜻한 여체가 그의 품속으로 조금씩 깊이 파고들었다.

“보고 싶었어요.”

“나도.”

둘은 정말 오랜만에 만났다.

특히 나나는 대한 보다 1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인지 쉽게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안 되겠다 싶어서 그는 마음속으로 에바를 불렀다.

‘에바! 일단 재워!’

―네, 마스터.

에바는 나나 히로세를 깊은 잠에 빠뜨렸다.

몸이 축 늘어지자 에바가 다가와 나나의 몸을 번쩍 들었다.

“손님방 침대에다 재우고 오겠습니다.”

“그렇게 해!”

대한의 허락이 떨어지자 에바는 곧장 나나를 게스트룸으로 안고 갔다.

그는 나나의 뒷모습을 잠시 쳐다봤다.

그리곤 다시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했다.

오랜만에 바보상자를 보니 참 재미있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없었다.

스포츠뉴스를 보다가 영화로 넘어갔다.

영화가 끝나자 쇼프로그램으로 채널을 돌렸다.

그다음은 드라마 미니시리즈였다.

그러다 문득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대한은 시선을 창문으로 돌렸다.

쏴아아아!

시원하게 비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니 집안에서도 비슷한 소리가 났다.

나나가 들어간 게스트룸에서 나는 소리였다.

‘에바! 나나 일어났어?’

―네, 지금 샤워 중입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마스터께서는 5시간 동안 텔레비전을 시청하셨습니다.

‘헐!’

대한은 어이가 없었다.

별로 본 것도 없는데 5시간이 홀라당 날아가 버렸다.

정말 바보상자라는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그는 리모컨을 잡고 바로 TV를 꺼버렸다.

그리곤 속으로 다짐했다.

다시는 텔레비전을 보지 않기로 말이다.

“으아아아!”

소파에서 일어나 힘껏 기지개를 켰다.

우드득 우드드득!

전신의 뼈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어깨를 휘돌리며 그는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 대한은 곧장 욕실로 향했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렸다.

깨끗하게 면도를 하고 양치질을 했다.

새 옷으로 갈아입고 팔목에 향수를 뿌린 후 목에 살짝 묻혔다.

거울을 보고 빗으로 머리카락을 정돈했다.

그러자 자신이 봐도 근사한 사내가 되어있었다.

거울 속의 대한은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Very Good!”

* * *

쏴아아아!

다락방에 비가 내렸다.

유리창을 때리는 빗소리!

비처럼 음악처럼 귓전을 간지럽혔다.

“대한!”

“나나!”

두 사람은 다락방에 누워 서로를 꼭 껴안았다.

살짝 추운듯해서 담요를 가져와 같이 덮고 있었다.

서로의 온기로 따뜻해질 때쯤.

집의 보일러가 돌아가는지 다락방이 금세 훈훈해졌다.

대한과 나나는 누워서 다락방 천장에 달린 유리창을 봤다.

비만 오지 않았다면 아마 은하수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다.

비 내리는 다락방에 미녀와 함께 있는 것도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나나!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대한이 보고 싶어서 많이 힘들었어요.”

쪽!

말도 참 이쁘게 한다.

그래서 그는 그녀에게 바로 상을 줬다.

“정말인데.”

나나는 대한이 믿지 않는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마지막 말은 들릴 듯 말 듯 했다.

“그럼 찾아오지 그랬어?”

“그래서 이렇게 찾아왔잖아요.”

“아니. 그 전에 말이야.”

“드라마를 찍고 있어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었어요. 광고 촬영도 있었고요.”

“아! 그랬구나.”

하긴 일본 최고의 여배우가 됐으니 그럴 만도 했다.

“대한은 나 안 보고 싶었어요?”

“보고 싶었어.”

“그런데 왜 안 찾아왔어요?”

이번에는 나나가 같은 질문을 했다.

대한은 잠시 생각해봤다.

‘왜 나나를 찾아가지 않았을까?’

부시럭!

대답이 없자 나나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그의 가슴에 엎드려 대한의 얼굴을 쳐다봤다.

“내가 대한TV의 구독자이자 열렬한 시청자라는 거 모르죠?”

“구독자라는 건 알았지만 열렬한 시청자라는 건 몰랐네.”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아서 참 좋겠어요.”

나나는 입을 삐쭉거리며 말했다.

살짝 심통이 난 듯했다.

화장기 하나 없는 청순한 나나의 얼굴!

흔들리는 호롱불에 비친 그녀는 요정처럼 귀여웠다.

“지금 질투하는 거야?”

“솔직히 조금 질투가 나요.”

나나는 솔직히 자신의 감정을 드러냈다.

하지만 금세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난 그럴 자격이 없겠죠.”

“무슨 자격?”

“질투할 수 있는 자격이요.”

“그걸 원해?”

“아니요. 그것보다는 대한이 날 바라봐주는 것을 원해요.”

그녀의 말은 마치 고백 같았다.

직접적이진 않지만, 괜히 가슴을 설레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말해줘!”

“네.”

나나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대한이 자신에게 관심을 주자 활력이 솟는 것 같았다.

“대한TV에 출현하고 나서 일본으로 넘어갔어요. 그런데 방송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가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녀는 자신의 얘기를 한 올 한 올 정성껏 풀어냈다.

생각보다 나나는 말을 아주 맛깔스럽게 잘했다.

덕분에 같이 웃고 같이 슬퍼하고 같이 화내고 같이 즐거워할 수 있었다.

나름 긴 나나의 사연이 끝을 맺었다.

물론 결론은 하나였다.

고생 끝에 낙이 왔다고.

나나는 현재 일본 최고의 인기 여배우가 됐다는 말이다.

“그 정도면 나보다 인기가 더 많은 거 아니야?”

“물론 일본에서는 그렇죠.”

“호오! 이 패기 봐라!”

“푸훗! 그래도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대한만 하겠어요?”

“그거야 그렇지만.”

쪽!

말이 잠시 멈추면 둘은 이렇게 뽀뽀를 했다.

“난 처음부터 나나가 이렇게 성공할 줄 알았어.”

“나도 대한이 한 말을 잊지 않고 있었어요. 그래서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다시 용기를 낼 수 있었어요.”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면 어떤 것을 말하는 거야?”

대한의 물음에 나나의 안색이 급히 어두워졌다.

“아니 그냥 그랬다고요.”

“괜찮아! 말해봐! 혹시 알아 내가 도움이 될지.”

그녀는 쉽게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걱정을, 아니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그런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가 계속 말해달라고 보채자 어렵게 입을 열었다.

“일본 연예계는 야쿠자의 입김이 아주 세요.”

“아!”

야쿠자라는 말에 대한은 대충 어떤 일이 있는지 알 것 같았다.

“혹시 소속사가 야쿠자와 관련이 있어?”

“아니요. 하지만 야쿠자가 포레스트를 노리고 있어요.”

“그러니까 야쿠자가 나나를 노린다는 거야 아니면 나나의 소속사인 포레스트라는 회사를 노린다는 거야?”

“둘 다예요.”

“음.”

이건 좀 심각했다.

대한은 즉시 에바를 불렀다.

‘에바! 나나의 소속사에 대해 말해봐!’

―포레스트는 1992년에 설립된 배우 전문 연예기획사에요. 규모가 아주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상장한 주식회사에요.

‘주식회사라면 아주 작은 회사도 아니네. 그런데 야쿠자가 노려?’

―나나 양과 포레스트를 노리고 있다는 야쿠자를 한번 조사해보겠습니다.

‘기왕 하는 김에 포레스트도 샅샅이 뒤져봐! 뭔가 이유가 있으니까 그런 사달이 벌어졌겠지.’

그는 표정 관리를 하면서 나나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내가 한번 알아봐 줄게.”

“대한! 아니에요. 내가 알아서 할게요.”

“혹시 ‘메이와쿠’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 그건.”

대한의 날카로운 질문에 그녀는 그만 고개를 푹 숙였다.

“일본에 들어간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일본의 메이와쿠 문화에 젖었어!”

“…….”

나나는 그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메이와쿠(迷惑)는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걸 극도로 꺼리고 혐오하는 일본 문화의 특색이다.

他人に迷惑を掛けるな(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지 말라.)

일본의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하는 잔소리다.

일본과 프랑스 혼혈인 나나는 무척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일본에서 지내다 보니 어느새 일본의 문화와 생활방식에 길들어지고 있었다.

“혹시 나를 찾아온 것도 야쿠자를 피해서 온 거야?”

대한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번 찔러 봤다.

아니나 다를까!

나나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입술을 꼭 깨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상황이 매우 급하게 돌아가서 일단 자리를 피했어요. 그런데 막상 일본을 뜨려고 하니까 대한밖에는 생각나는 사람이 없었어요.”

“잘 왔어. 내가 도와줄게.”

“고마워요.”

나나는 대한을 꼭 끌어안으며 고마워했다.

물론 큰 기대를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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