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처벌>
일이 잘되면 카사블랑카에서 모두 풀려날 것이다.
그렇다고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놓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한은 기본적으로 로마 아브라함비치를 믿을 수 없었다.
잠수함에 모두 태울 수 없다면 여자들이라도 태웠어야 한다.
그런데 이놈은 자신의 딸만 데리고 도망쳤다.
반대로 로마를 잡아 죽이려는 올가도 믿을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야콥이 말을 참 그럴싸하게 했지만, 이놈들은 기본적으로 마피아다.
그것도 악명이 자자한 레드 마피아인 러시아 마피아다.
차라리 길에 굴러가는 개똥벌레를 믿지 이놈들의 말은 신용할 수 없었다.
―마스터!
‘응?’
―수상한 행동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띄워봐!’
에바는 즉시 허공에 홀로그램 하나를 띄웠다.
“어!”
대한은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홀로그램에는 올리버가 묵고 있는 옆 객실의 상황이 보였다.
퍽퍽!
올리버가 마피아에게 구타를 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종합격투기 선수답게 두 팔로 주요부위는 철저히 보호하고 있었다.
“데려가!”
“네.”
그사이 다른 놈이 마리아나를 끌고 갔다.
엠마는 구석에서 잔뜩 웅크린 채 눈물을 흘리며 벌벌 떨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야콥에게는 네 명의 팀장이 있습니다. 드미트리, 안톤, 막심, 비탈리입니다.
‘그런데.’
―이중 안톤이란 놈이 마리아나 그란데에게 흑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설마 마리아나를 겁탈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대한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될 수 있으면 참견하지 않고 좋게 끝내려고 했다.
하지만 이놈들이 이렇게 나온다면 굳이 참을 이유가 없었다.
안 그래도 좀 찝찝했는데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범죄를 막는 것은 정당방위다.
마음이 가벼워진 그의 눈빛!
서서히 찐득한 살기로 물들어갔다.
‘이건 막아야겠다.’
―직접 움직이실 겁니까? 우주셔틀에 대기 중인 안드로이드를 투입하시는 게 더 안전합니다.
‘언제까지 뒤에서 숨어 있을 수는 없어. 그리고 이건 내가 움직여야겠어.’
대한은 에바의 조언을 거절했다.
그러자 그녀가 대안을 내놓았다.
―마스터께서 착용하고 계신 바이오풀아머를 활용하십시오.
‘응. 그래.’
―배틀모드로 바꾼 후에 스텔스 기능을 쓰시면 들키지 않고 침투할 수 있습니다.
‘알았어.’
에바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대한은 가슴에 손을 댔다.
스르륵!
입고 있던 옷이 빠르게 은빛 찬란한 금속성의 네온 슈트로 변해버렸다.
전신을 뒤덮은 바이오풀아머는 대한의 조각 같은 몸에 착 달라붙었다.
촤르르륵!
뒤이어 뒤쪽에서 머리를 덮는 헬멧이 올라왔다.
마지막으로 투명한 금속이 얼굴을 가렸다.
에바가 전신거울처럼 그의 모습을 비춰줬다.
대한의 입꼬리가 슬쩍 위로 올라갔다.
누구에게 보일 수는 없는 하지만 꼭 보여주며 자랑하고 싶은 멋진 미래형 슈트의 모습이었다.
―스텔스 모드라고 말을 하거나 마음으로 강하게 외치시면 됩니다.
‘오케이.’
대한은 강한 의지를 담아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스텔스 모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몸이 허공에 먹히듯 사라져갔다.
‘에바! 지지를 보호해줘!’
―걱정하지 마십시오. 올리버와 지지 양에게 에어볼을 3대씩 배치했습니다.
에바의 말을 한쪽 귀로 들으며 대한은 방을 나섰다.
아무도 없는데 객실 문이 열렸다가 닫혔다.
누가 보면 당연히 귀신의 존재를 떠올렸을 것이다.
허공에 대한만 볼 수 있는 반투명한 화살표가 생겼다.
그가 어디로 가야 할지 에바가 친절하게 가이드를 시작한 것이다.
대한은 빠르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전혀 발소리가 나지 않았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맨 구석에 붙은 객실로 끌려가는 마리아나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빠르게 달려가 마리아나의 뒤에 바짝 따라붙었다.
“팀장님, 데려왔습니다.”
“정중히 안으로 모셔!”
“네.”
두 놈이 마리아나를 끌고 침실로 데려갔다.
말은 정중히 모시라고 했지만, 그들은 마리아나를 아주 거칠게 대했다.
마리아나는 이미 공포에 잔뜩 질려있었다.
톡 건들며 그냥 오줌을 질질 쌀 정도로 멘탈이 무너진 상태였다.
“팀장님,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그들은 안톤에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객실 문을 닫았다.
철컥!
탄탄한 몸에 험상궂은 얼굴의 안톤!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침실로 향했다.
마리아나는 침대 위에서 비 맞은 새처럼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
안톤은 맛있는 먹이를 보는 포식자의 눈빛으로 마리아나를 쳐다봤다.
“크하하! 진짜 마리아나 그란데군.”
앙천광소를 터트리는 그의 행동에 마리아나의 눈이 절망으로 물들어갔다.
안톤은 천천히 허리띠를 풀며 침대로 다가갔다.
음흉한 목소리로 그는 마리아나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오! 사랑하는 나의 마리아나! 안톤 님이 오늘 너에게 천국의 기쁨을 하사하겠다.”
러시아로 지껄인 닭살 돋는 대사였다.
그런데 마리아나는 용케 그 뜻을 알아들었나 보다.
그녀의 큰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에바! 마리아나 당장 재워!’
―네, 마스터.
파직!
순간 허공에 정전기 같은 파란 빛이 터졌다.
뒤통수에 그 빛이 닿자마자 마리아나는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그녀의 몸이 실 끊어진 인형처럼 침대 옆으로 쓰러졌다.
풀썩!
그 모습에 안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퍽!
그때 갑자기 아랫배에 강한 충격이 일었다.
안톤은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새우처럼 몸을 구부렸다.
빡!
이번에는 아래턱이 뭔가에 강타당했다.
엄청난 충격이 머리로 전해져 뇌가 크게 흔들렸다.
비틀!
안톤은 세상이 뱅글뱅글 또는 충격에 쓰러질 듯 비틀거렸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명치에 강한 충격이 들어왔다.
컥!
숨이 딱 막히고 호흡을 할 수 없었다.
고통에 휩싸인 안톤은 침실 바닥을 박박 기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퍽 퍼버벅 퍽퍽퍽 퍼버벅!
추수 때 곡식 타작하듯 매타작이 시작됐다.
안톤은 전신에 이는 참혹한 통증에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갔다.
어떻게 때리는 곳이 하나같이 급소를 피한 통점이었다.
고문을 하려고 해도 이렇게 아프게 때리진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은 그 무엇은 안톤을 정말 찰지게 잘도 패버렸다.
결국, 안톤은 더 견디지 못하고 축 늘어졌다.
기절해버린 것이다.
―마스터! 밖에서 두 놈이 다가옵니다.
‘안톤이란 놈과 똑같은 종자겠지?’
―아까 이들은 안톤 다음에 둘이 같이하기로 약속했습니다.
‘둘이 같이 마리아나를 겁탈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는 거야?’
―네, 정확합니다.
대한은 욕을 하려다가 참았다.
왜 때릴 것을 말로 굳이 해야 하는가!
그는 에바를 향해 즉각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안톤의 목소리로 저들을 안으로 불러!’
―네, 마스터.
에바는 곧장 안톤의 목소리로 외쳤다.
“유리! 사바! 들어와!”
그러자 바로 문이 열리면서 안톤의 부하 둘의 목소리가 들렸다.
“벌써 끝나셨어요?”
“오늘따라 좀 빠르시네요.”
그들은 너스레를 떨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다가 바닥에 쓰러진 안톤을 보자 소총을 들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유리가 사바에게 말했다.
“안으로 들어가 봐!”
“알았어. 엄호해!”
사바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심스럽게 침실로 들어갔다.
아무리 살펴봐도 기절한 마리아나 외에 사람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누가 침입한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럼 왜 안톤 팀장이 이렇게 개 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는데.”
“그러게 말이야.”
퍽! 빡!
그때 유리와 사바가 동시에 쓰러졌다.
턱과 머리에 각각 강한 충격을 받은 그들은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퍽! 퍽!
대한은 다시 사커킥으로 두 놈의 옆구리를 발로 걷어찼다.
내장이 끊어지는 고통에 유리와 사바는 손으로 배를 움켜잡았다.
그는 두 놈이 가지고 있는 소총을 빼앗아 한쪽으로 던져 놓았다.
옷 안에 권총도 아예 권총 집채 빼버렸다.
발목과 허리에 있는 대검도 대검 집채 풀렀다.
‘에바! 다른 무장 더 없지?’
―네, 그렇습니다. 에어볼로 소리를 차단합니다. 마음껏 조지세요.
‘고마워!’
안 그래도 조지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그런데 소리까지 차단해주니 아주 고마웠다.
퍽 퍼버벅 퍽퍽퍽 퍼버벅!
대한은 유리와 사바를 사정없이 쥐어팼다.
아니 자근자근 밟아버렸다.
오랜만에 하는 매타작이라서 그런지 아주 손에 착착 붙었다.
그래서 더욱 신나게 묵사발을 내버렸다.
이런 쓰레기들은 매가 약이다.
물론 약이 듣지 않는다면 그냥 분리수거를 해버릴 생각이었다.
‘에바! 이놈들을 바다에 던져버려!’
―차가운 바다에 들어가면 이들은 100% 죽습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에바가 혹시나 하고 물어봤다.
아니나 다를까!
세 놈이 100% 죽는다는 말에 대한은 멈칫했다.
그녀는 즉시 대안을 제시했다.
―죽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응징할 방법이 있습니다.
‘그게 뭔데?’
―지구의 인신매매범들이 쓰는 전통적인 방법도 있고 아니면 이를 응용한 방법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대한이 살짝 짜증을 냈다.
그러자 에바는 즉시 그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자세히 설명했다.
―북한은 아오지탄광에 집어넣고 죽을 때까지 중노동을 시키더군요. 동남아시아의 인신매매범들은 어선에 가둬놓고 수십 년 동안 부려먹습니다.
‘그게 지구의 전통적인 방법이라는 거야?’
―이게 마음에 안 드시면 달기지나 화성기지로 데려가 기지를 개척하는 일을 시켜도 됩니다.
‘그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겠다.’
놈들이 흡입해야 할 공기, 마실 물과 먹을 음식을 생각하면 차라리 그냥 무인도에 버리느니만 못했다.
대한의 말에 에바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남태평양 무인도 아래에 해저광맥이 있습니다. 거기에 가둬놓고 채광을 시킬까요?
‘좀 더 참신한 방법 없어? 이를테면 다시는 강간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던가 세상의 악을 뿌리 뽑는 전사로 활용한다거나 하는 방법 말이야.’
―가능합니다. 화학적 거세도 가능하고 성적인 쾌감을 느끼는 신경세포를 비활성화시키거나 악한 자를 죽이면 쾌감을 느끼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세뇌나 암시를 이용하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전사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지금 에바가 말한 거 다 해봐! 다시는 강간 따위는 생각도 하지 못하게 만들고 대신 이놈들을 마약카르텔 두목이나 아프리카의 악명높은 반군 지도자들을 암살하는 데 사용해봐!’
―알겠습니다. 마스터!
그가 최종결정을 내리자 에바는 신속하게 움직였다.
똑똑똑!
누군가 문을 노크했다.
대한이 에바를 쳐다봤다.
그녀는 즉시 문을 투명하게 처리했다.
밖에는 안드로이드 셋이 서 있었다.
‘안드로이드?’
―네. 당장 이놈들이 없어지면 문제가 생깁니다. 잠시 대역으로 안드로이드를 투입하겠습니다. 물론 이들은 만약의 사태에 마스터를 지키고 손과 발처럼 도울 것입니다.
‘무슨 뜻인지 알겠어.’
대한이 문을 열자 안드로이드 셋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곧바로 스텔스 모드를 해제하고 그를 향해 인사했다.
잘생긴 안드로이드 셋!
둘은 안톤과 그의 두 부하인 유리, 사바를 들고 객실 바깥으로 나갔다.
나머지 하나는 대한에게 얇은 망토 같은 것을 내밀었다.
‘이게 뭐야?’
―스텔스 망토입니다. 필요하실 것 같아서 준비해봤습니다.
‘고마워!’
대한이 망토를 받자 안드로이드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난간 밖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바다로 빠졌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은 이클립스 바로 옆으로 스텔스 모드로 모습을 감춘 우주셔틀을 향해 뛰어든 것이다.
―일단 세 놈을 우주셔틀에 가둬놓고 화학적거세를 진행하겠습니다. 안드로이드 셋을 이들로 변장시켜놓겠습니다. 뒤는 저희에게 맡기고 마스터는 마리아나를 데리고 객실로 돌아가는 게 좋겠어요.
‘알았어.’
에바의 제안에 대한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침실로 들어가니 마리아나가 쿨쿨 잠을 자고 있었다.
기절한 건지 아니면 잠에 빠진 것인지 도무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험한 꼴을 당하지 않아서 참 다행이었다.
대한은 마리아나를 안고 자신에 가슴에 손을 댔다.
바이오풀아머를 스텔스 모드로 만들자 그의 모습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런데 마리아나는 같이 사라지지 않고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