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만재능(Feat. 대한 TV)-208화 (207/331)

208화 <인질>

대한의 말에 지지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몸을 꼭 끌어안았다.

살짝 공포가 밀려오는 모양이었다.

“지지! 내 말 잘 들어.”

“응.”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내 옆에서 떨어지지 마!”

“알았어.”

지지는 착한 아이처럼 말을 잘 듣겠다고 다짐했다.

두 사람이 이러고 있는 사이!

AK-12 칼라시니코프 소총을 든 일단의 무리가 이클립스에 난입했다.

그들은 요트 안을 샅샅이 뒤지며 로마 아브라함비치를 찾았다.

하지만 이미 잠수함을 타고 탈출했다는 말에 분통을 터트렸다.

쿵쿵쿵!

누군가 객실의 문을 부숴버릴 듯 두드렸다.

대한과 지지가 있는 객실까지 저들이 당도한 것이다.

그는 지지를 자신의 몸 뒤로 숨기고 문을 열었다.

안 열고 버티다가 괜히 벌집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뒤로 물러나!”

소총을 든 젊은 사내가 어눌한 영어로 소리쳤다.

그러자 대한과 지지는 순순히 뒤로 물러났다.

험상궂게 생긴 사내 두 명이 객실 안으로 들어왔다.

한 놈은 그에게 총구를 들이대고 남은 한 놈은 객실 안을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자를 찾을 수는 없었다.

“없어.”

“아까 못 들었어. 로마는 잠수함 타고 먼저 튀었다니까.”

“제기랄!”

“인제 어쩌지?”

“나도 몰라. 일단 이들을 연회장으로 데려가자.”

대한은 그들이 러시아로 떠들어 대는 소리를 전부 알아들었다.

그렇다고 굳이 그들에게 러시아어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줄 이유는 없었다.

“따라와!”

“움직여!”

두 놈은 다시 어눌한 영어로 소리치며 대한과 지지에게 총구를 겨눴다.

그는 지지의 손을 잡고 객실 밖으로 나갔다.

걸어가면서 빠르게 주위를 살펴봤다.

이클립스에 초대된 셀럽과 귀빈들!

그들이 전부 연회장으로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올리버가 대한을 발견하자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조심스럽게 눈짓을 했다.

둘은 서로 모르는 척 일단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모두 조용히 연회장으로 들어가 각자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람들은 전혀 반항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디로 끌려가던지 일단 육지로 가야 한다.

배에서 사고를 쳐봐야 도망칠 곳도 없다.

망망대해를 수영할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승무원들은 전부 어디 갔지?”

지지의 말에 대한은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정말 이클립스의 승무원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엠마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래쪽으로 끌려가는 것 같았어요.”

“일부러 따로 격리하려고 하는 모양이로구나.”

올리버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쳐다봤다.

재미있는 것은 올리버의 옆에 엠마 말고도 마리아나가 있다는 것이다.

둘 중 한 명만 데이트한다고 해도 난리가 날 판이다.

그런데 올리버라는 놈은 왼쪽에 엠마, 오른쪽에 마리아나를 끼고 있었다.

나중에 어떻게 하려고 저러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솔직히 좀 부럽긴 했다.

‘다시는 누군가를 부러워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설마 그 대상이 올리버일 줄이야. 정말 요지경 세상이군.’

대한은 기가 막힌다는 눈빛으로 올리버를 쳐다봤다.

그런데 그걸 본 올리버는 자신이 부러워서 그런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올리버가 징그러운 미소를 짓자 그 모습에 그는 슬슬 두통이 생길 것만 같았다.

이 상황에 저런 짓을 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신경이 무딘 녀석이다.

그러다가 지지를 쳐다봤다.

이제야 배가 나포됐다는 게 실감이 나는지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

대한은 두 팔로 그녀를 꼭 안아줬다.

넓고 따뜻한 그의 품에 안기자 지지는 한결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았다.

‘에바! 이놈들 우리를 어떻게 하려는 거야?’

―일단 모로코로 데려가려고 합니다.

‘모로코?’

모로코는 아프리카 대륙의 북서부에 있는 나라다.

스페인의 최남단,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클립스가 워낙 눈에 띄니 요트 여행을 가는 것으로 가장하려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아프리카로 가서 이클립스를 처분하겠다는 말이네.’

―그렇게라도 해야 본전이라도 건지지 않겠습니까?

‘그럼 우리는?’

―아직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한 상태입니다.

‘하긴 워낙 거물들이 많아서 잘못하면 미국의 특수부대를 불러들일 수도 있을 거야.’

―그 정도가 아니라 미국의 압력에 의해 러시아에서 아예 존립 기반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푸틴의 노여움을 살수도 있고요.

지지나 엠마, 마리아나만 하더라도 당장 미국이 개입할 여지가 컸다.

이번 공격을 주도한 올가들이 당장 머리를 감싸고 고민을 하는 이유였다.

그냥 풀어주자니 폼이 안 났다.

그렇다고 인질극을 벌이자니 미국, 러시아, 영국 등 세계 최강대국들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컸다.

제일 좋은 것은 적당한 대가를 받고 풀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그 대가를 받아야 할 놈이 튀었다.

기껏 큰맘 먹고 러시아 마피아를 움직였는데 인건비조차 건지지 못할 상황이었다.

‘놈들이 누군지는 확인됐지?’

―네, 마스터. 글랩 벨조븐스키를 시작으로 스타니슬라프, 야로슬라프, 띠모페이, 쁘로호르, 마트베이, 예브게니, 뱌체슬라프 총 8명의 전(前) 오르가리히입니다.

‘전부 푸틴과 로마에 의해 축출된 놈들인가?’

―그렇습니다. 특히 이들은 로마 아브라함비치에게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본 자들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러시아 마피아를 움직일 힘이 남아있어?’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들 중에는 러시아 마피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자들이 많습니다. 어떤 놈은 아예 러시아 마피아의 실질적인 보스이기도 합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팔다리가 다 잘렸다고 해서 완전히 끝장난 상태가 아니었다.

푸틴과 로마에게 다 털리긴 했다.

그래도 각자 나름대로 최후의 보루 하나쯤은 남겨놓았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런 사태가 아예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걸 깨닫자 대한은 오히려 마음이 느긋해졌다.

대한을 비롯한 셀럽과 귀빈들은 이들의 원수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어깨를 짓누를 무거운 짐이었다.

그것도 함부로 대하거나 죽일 수도 없는, 처치 곤란한 계륵인 셈이다.

덜컹!

연회장의 문이 열렸다.

소총을 든 건장한 사내들이 안으로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그들의 뒤로 이클립스를 습격해 나포한 공격대 대장의 모습이 보였다.

“난 야콥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놀라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시작은 아주 예의 바른 모습이었다.

건장한 체격에 각진 얼굴의 중년 사내!

그는 자신의 이름까지 공개해버렸다.

어차피 숨기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로만 아브라함비치에게 받을 빚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여러분에게 불편을 끼쳐드리게 됐습니다. 이점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우릴 어떻게 하려는 겁니까?”

그때, 참을성 없는 초로의 신사가 야콥에게 물었다.

“아직 여러분의 처분은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죽이거나 상해를 입힐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모르긴 해도 적당한 대가를 받고 풀어드릴 예정입니다.”

“얼마를 원하든 몸값을 내겠소.”

“아! 뭔가 오해하신 모양이군요. 우린 해적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돈을 뜯어내려고 이러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대가는 로마 아브라함비치에게 받을 생각입니다. 그러니 며칠만 이곳에서 편히 지내도록 하세요.”

야콥의 말에 초로의 신사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여러분은 평상시처럼 이클립스에서 자유롭게 먹고 마시고 즐기시면 됩니다. 단 저희가 통제하는 구역은 출입하실 수 없습니다. 또한, 모든 통신기기는 지금 즉시 저희에게 맡겨주십시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외부로 연락이 나가서는 안 됩니다. 이것만 지켜주신다면 저희는 여러분의 안전을 최대한 보장하겠습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래듯 말하는 야콥이었다.

사실 그가 요구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특히 공포에 떨고 있는 여자들이 반색했다.

다행히 자신들을 해치지 않겠다고 하자 안심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대한은 저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아직 올가의 결정이 나지 않아서 그렇지.

모두 없애라는 명령이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저들은 당장 안면을 몰수하고 총구를 들이댈 것이다.

야콥의 말에 부하들이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스마트폰과 워치폰을 수거했다.

혹시 몰라서 태블릿과 노트북 컴퓨터까지 꼼꼼히 챙겨서 가져갔다.

다들 목숨이 아까운지라 반항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모두 순순히 달라는 대로 다 줘버렸다.

‘에바! 놈들의 무슨 결정을 내리는지 지켜봐 줘!’

―네.

‘그리고 최대한 셀럽들과 귀빈들을 안전하게 보살피도록 해!’

―알겠습니다. 마스터.

대한은 조금 오지랖을 부리기로 했다.

어차피 올리버나 지지도 있고 하니 그들을 지키는 김에 다른 사람들까지 같이 지켜주기로 했다.

이런 그의 결정에 에바는 전혀 토를 달지 않았다.

“이제 여러분은 각자의 객실로 돌아가실 수 있습니다. 아침이 되면 뵙도록 하겠습니다. 승무원들에게 말해서 맛있는 아침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야콥은 아주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하지만 그의 부하들은 전혀 친절하지 않았다.

눈에 힘을 잔뜩 주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사람들을 노려봤다.

일부는 여자들의 몸을 묘한 눈빛으로 훑어보기도 했다.

대한은 일단 지지와 같이 자신의 객실로 들어갔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 그런지, 시큼한 냄새는 이미 다 사라지고 없었다.

오히려 뽀송뽀송한 새 침대보를 이중으로 덮어놓았다.

그래서 마치 특급호텔 스위트룸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어휴! 살았다.”

“그나마 다행이야.”

“대한,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을 가지고 고민을 해봐야 머리만 아파. 지지는 그냥 잠이나 자. 그게 피부미용에 좋아.”

“그건 맞아. 대한의 말대로 난 좀 자야겠어. 너무 피곤해.”

지지는 침대 위로 올라가 잠을 청했다.

하지만 대한은 이미 잠을 자고 난 상태라 전혀 졸리지 않았다.

그래도 칭얼거리는 그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불을 끄고 같이 한 침대에 누워야 했다.

지지는 대한의 품속에서 자꾸 파고들었다.

본능적인 두려움을 떨칠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는 그녀의 몸을 꼭 끌어안고 등을 토닥거렸다.

그러자 안정이 됐는지 금세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에바! 지지 좀 깊이 재워줘!’

―네, 마스터.

에바가 지지를 더 깊은 잠의 세계로 인도했다.

대한은 잠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그리고는 몸을 일으켜 침실을 빠져나왔다.

거실 소파에 앉은 대한은 어두운 허공을 바라봤다.

‘에바! 주변을 살펴보자!’

―네, 마스터.

에바는 허공에 홀로그램과 3차원 지도를 띄우기 시작했다.

‘화물선과 무장한 헬기 그리고 모터보트는 죄다 사라졌군.’

―이미 추적장치를 붙여놓았습니다.

‘잘했어. 현재 이클립스의 상황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지?’

―선장과 일등항해사 등 일부 핵심 승무원을 제외하고 나머지 승무원들은 풀려났습니다.

‘일단 이클립스를 정상적으로 돌리겠다는 생각이군.’

―예, 그렇습니다. 야콥을 포함한 러시아 마피아 공격대의 숫자는 33명입니다.

‘숫자가 적지 않군.’

―그들 중 반은 함교와 엔진룸 같은 이클립스의 주요시설을 점거하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2인 1조로 곳곳에 배치되어 인질들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에바의 인질이라는 단어에 대한은 자신도 모르게 썩소를 지었다.

그제야 자신이 인질이 됐다는 자각이 들었던 것이다.

―무장은 대부분 러시아군의 제식소총인 AK-12 칼라시니코프입니다. 일부는 권총과 수류탄 및 대검으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이클립스가 정확히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입니다.

사실 모로코 하면 ‘하얀 집’이란 듯의 ‘카사블랑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열연한 1942년도의 그 영화로 카사블랑카에 대한 향수를 느낄 수 있다.

카사블랑카는 인구 330만 명이 사는…….

모로코의 주요한 항구일 뿐만 아니라 가장 규모가 큰 상업 도시다.

‘거기서 뭔가를 준비하고 있군.’

―어쨌든 올가는 로마에게 최대한 돈을 뜯어낼 생각인 모양입니다.

‘로마가 어떻게 하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코레실드를 불러들여!’

―네, 은밀하게 카사블랑카에 기동타격대를 준비해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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