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이적 제안>
“너 왜 그래?”
“아리나 친구들 말이야. 아직 생일 안 지났대.”
“그래서 뭐?”
“그냥 그렇다고.”
대한은 무슨 영문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문뜩 한 가지 사실이 뇌리를 훅 스쳐 지나갔다.
“이 새끼가 진짜!”
“왜? 난 지킬 것은 지키는 남자야.”
“헐!”
그는 당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올리버를 보자 괜히 속이 탔다.
테이블 위로 승무원이 가져다준 물잔이 보였다.
대한은 올리버를 한번 쳐다보고는 시원하게 원샷을 때려버렸다.
다행히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라 속이 좀 풀리는 것 같았다.
“올리버! 너 엉뚱한 짓 하지 말고, 차라리 마리아나 그란데나 카라 델레바인을 노려! 의외로 너 같은 스타일을 좋아할 수도 있어.”
“정말?”
“그래.”
올리버는 대한의 말에 용기를 얻었다.
곧바로 일어나 카라 델레비네가 앉아있는 테이블을 향해 걸어갔다.
대한이 너무나도 멋지게 노래를 부르자 마리아나 그란데가 마치 질 수 없다는 듯 마이크를 잡았다.
그녀는 아리나를 위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확실히 마리아나는 대단한 가수였다.
모두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아 버리는 카리스마!
그리고 매혹적인 목소리가 끝을 모르고 높이 솟구쳤다.
마리아나가 홀로 경쟁심을 불태우며 열심히 노래를 부르는 사이!
지지가 대한이 앉아있는 테이블을 향해 걸어왔다.
179cm의 늘씬한 키와 그녀의 미친 몸매는 가히 압권이었다.
그의 옆자리에 허락도 받지 않고 앉은 지지는 조심스럽게 그를 쳐다봤다.
“하이! 대한!”
“하이! 지지!”
“우리가 인연은 인연인가 봐!”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대한의 호의적인 반응에 그녀는 눈을 빛냈다.
하지만 겉으로는 새초롬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응, 확인해보고 싶어?”
“무지하게.”
“크크, 알았어. 오늘 확인시켜줄게.”
“이따 내 방으로 와! 대한에게 꼭 줄 게 있어!”
“알았어. 갈게.”
그의 대답에 지지는 배시시 미소를 지으며 몸을 살짝 꼬았다.
그 모습에 대한은 실소를 흘렸다.
“푸훗!”
“왜?”
“아니야. 그냥 넌 한결같다는 생각이 들어.”
“혹시 그거 욕이야?”
“노노! 칭찬이야. 나 이랬다저랬다 하는 여자 딱 질색이야.”
“헤헤! 그렇지!”
단순한 그녀의 반응이 맘에 들었다.
지지는 쿨한 스타일이다.
그래서 전혀 부담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서로에게 호감이 있었다.
그건 진즉에 확인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생일케이크 자르기가 있겠습니다.”
짝짝짝짝짝!
연회장의 손님들은 모두 아리나를 위해 힘차게 손뼉을 쳤다.
자신의 키보다 더 큰 거대한 케이크!
아리나는 커다란 칼로 낑낑대며 겨우 한 조각을 잘랐다.
승무원들이 재빠르게 다가가 그녀에게 칼을 받았다.
그리고는 사정없이 조각을 내기 시작했다.
그 덕에 대한도 생일케이크 한 조각을 얻어먹었다.
자꾸 지지가 옆에서 포크로 떠먹여 주려고 해서 좀 곤란했다.
그러나 지지는 사람들의 눈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솔직히 조금 부럽기도 했다.
스트레스를 전혀 안 받는 편리한 성격과 머리구조이니 말이다.
“로마 아브라함비치가 왔다.”
“아리나의 아버지가 왔어.”
그때 밖에서 헬리콥터 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연회장의 입구에 한 사내가 나타났다.
그는 아리나를 향해 다가가 꼭 껴안았다.
대한은 뉴스에서나 봤던 로마 아브라함비치의 실물을 보며 격세지감을 느꼈다.
‘내가 확실히 유명해지긴 했나 보다. 이렇게 유명인사들도 만나고.’
대한은 스스로가 참 대견스러웠다.
어느새 자신은 이런 파티에 초청되는 유명인사가 되어있었다.
“반갑습니다! 로마 아브라함비치입니다. 이렇게 제 딸 아리나의 생일을 축하하러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로마는 귀빈들을 향해서 정중한 인사를 했다.
당당한 자세에서 그의 강한 기백이 느껴졌다.
그러자 사람들이 일제히 다가가 그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대한은 굳이 그 대열에 동참하지 않았다.
그냥 테이블에 앉아서 가만히 그들이 하는 양을 지켜봤다.
그런데 어느 순간!
신기하게도 로마가 먼저 대한을 발견하고 테이블로 다가왔다.
“이대한 선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로마 아브라함비치입니다.”
둘은 굳게 악수를 하며 눈을 마주쳤다.
그제야 로마가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깨달았다.
프리미어리그 빅식스 중 하나인 첼시의 구단주!
돈도 많지만, 인재 욕심도 많은 자라는 게 생각났다.
“이쪽으로 앉으시죠.”
“네.”
일단 로마는 대한과 한자리에 앉았다.
그의 옆에는 오늘 파티의 주인공!
아리나 아브라함비치가 얌전히 앉아있었다.
로마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이대한 선수의 플레이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왓포드에 계실 겁니까?”
“글쎄요.”
로마는 깜빡이도 켜지 않고 훅 들어왔다.
그러더니 아주 대놓고 왓포드를 저격하기 시작했다.
“오늘 기사를 보니 왓포드 팬클럽들이 하나같이 추태를 부리더군요.”
“그랬습니까?”
“겨우 주급 1만 파운드를 주면서 뭔 말이 그렇게도 많은지 참 답답했습니다.”
“아!.”
“왓포드를 위해 열심히 뛰어준 것에 감사할 생각은 하지 않고, 남의 취미생활을 보고 왈가왈부하는 게 말이나 됩니까?”
로마는 대한이 종합격투기를 취미생활로 하는 줄 알고 있었다.
아니 100% 확신하는 모양이었다.
“전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게 바로 팀에 애정이 없어서 그런 겁니다. 슬슬 좀 더 큰물로 터전을 옮길 생각을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래도 일단 계약 기간을 채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당장 첼시로 오십시오. 제가 최고 대우를 해드리겠습니다.”
“이적시장이 열리면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일단 대한은 한 발 뺐다.
하지만 로마는 계속 돌직구였다.
“저는 솔직히 화가 났습니다. 주급 1만 파운드라니요. 이게 말이나 됩니까? 세상에 데뷔전과 그다음 경기에 연속으로 해트트릭을 해버린 천재 선수입니다. 두 경기에서만 무려 6점을 뽑았어요. 아무리 상대한 팀이 강등권과 최하위권의 팀이라도 엄연히 프리미어리그에 속한 구단입니다.”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당연한 겁니다. 프리미어리그의 선수들은 정당한 대가를 받고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쳐야 한다는 게 제 지론입니다. 제가 이대한 선수를 돕고 싶습니다. 첼시로 와서 날개를 활짝 펴세요.”
구단에 대한 사랑이 아주 대단하다고 들었다.
그런데 역시나 이런 돌직구는 자신의 구단을 위한 것이었다.
물론 결코 박하게 주급을 줄 사람으론 보이지 않았다.
돈이 부족한 사람도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두 경기를 치르고 바로 다른 구단으로 이적하는 것은 오히려 대한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 원하는 만큼 충분히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는 적당히 로마의 제안을 받아치고 넘겨버렸다.
로마도 어느 순간!
더는 압박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나보다.
은근슬쩍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러자 아리나가 대한이 자신의 생일을 위한 곡을 작사·작곡했고 직접 노래까지 불러줬다는 얘기를 꺼냈다.
‘아리나를 위하여!’
노래 제목까지 까발리자 로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제 딸의 생일을 위해 그렇게 놀라운 일을 하셨군요! 이거 도저히 제가 그냥 넘어갈 수가 없겠습니다.”
“하하하! 아닙니다. 아리나 양을 보니 영감이 저절로 떠올라서 무척 쉽게 곡을 쓸 수 있었습니다. 이번 곡만큼은 아리나가 제 뮤즈였습니다.”
“뮤즈! 하하하!”
로마는 파안대소했다.
아리나도 자신이 뮤즈라는 말에 즉시 몽상에 빠져들었다.
어쨌든 둘 다 대한에게 큰 호감을 느꼈다.
그로서는 절대 손해 보는 일이 아니었다.
“나중에 제가 따로 인사하겠습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대한은 전혀 괜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그리고 이클립스에서 좋은 시간 보내다 가세요.”
로마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리나는 대놓고 가기 싫은 눈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버지를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초청한 셀럽들과 귀빈들에게 친근하게 인사하는 로마!
오늘 파티의 주인공인 자신이 같이하지 않는 것은 누가 봐도 이상했다.
대한의 손을 세게 한번 잡은 아리나!
그녀는 결국 어렵게 발걸음을 옮겼다.
‘어째 느낌이 쌔 하다.’
―꼬맹이가 당장 오늘 밤에 사고라고 칠 분위기네요.
‘아무래도 미리 피하는 게 좋겠어.’
―차라리 그냥 헬기 타고 런던으로 가시는 게 어떨까요?
‘지지하고 만나기로 약속을 했잖아.’
―아! 그렇군요.
에바는 대한을 향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는 하도 봐서 내성이 생겼는지 그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래도 내일은 런던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알고 있어. 헬기로 원하는 곳까지 직접 데려다준다고 했으니까 오히려 더 낫잖아.’
―그렇게 따진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우주셔틀을 타시면 됩니다.
‘그건 곤란해. 갑자기 내가 없어지면 난리가 날 거야. 그러니까 보채지 말고 내일 아침까지 기다려!’
―눼에에.
에바는 심통 난 동생처럼 굴었다.
그녀의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보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안드로이드 에바는 참 얌전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가분수의 에바는 감정의 기복이 심했다.
쿵 쿵 쿠쿵 쿵쿵 쿠쿠쿵!
생일파티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댄스였다.
미국의 유명 DJ인 체인스모킹스가 신나는 댄스음악을 틀어댔다.
개방적인 서양인들답게, 다들 격의 없이 스테이지로 나와 춤을 췄다.
그중에서도 제일 방방 뜨고 있는 것은 생일을 맞은 아리나였다.
그녀의 표정은 마치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다.
아버지 로마 아브라함비치에게 뭔가 큰 선물을 받은 모양이었다.
게다가 오늘부터는 성인이라 아예 대놓고 술도 마셨다.
그래서 그런지 아리나의 눈빛은 이미 살짝 맛이 가 있었다.
“대한! 춤춰요.”
그때 지지가 다가와 그의 손을 잡아당겼다.
대한도 굳이 뺄 이유가 없었다.
그는 지지와 함께 스테이지로 걸어갔다.
신나는 테크노음악과 함께 둘은 거침없이 몸을 흔들었다.
그동안 어디에 써먹을까 고민 중이었던 재능 춤(SS)을 마음껏 터트렸다.
거기에다 자연스럽게 묻어 나오는 그의 재능 매력(SS)과 끼(SS)가 합쳐지자!
스테이지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야호!”
그 모습에 지지는 오히려 흥이 났다.
대한에게 몸을 바짝 붙이며 부비부비 춤을 췄다.
한 손으로 지지의 가는 허리를 잡은 그도 즉각 호응했다.
야릇한 자세의 두 사람은 아주 격정적으로 몸을 부딪쳤다.
얼핏 옆을 보니 올리버가 보였다.
그런데 무슨 수를 썼는지 녀석의 앞에는 마리아나가 신나게 몸을 흔들고 있었다.
정말 친화력 하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올리버였다.
올리버는 대한을 쳐다보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시선이 마리아나를 향했다가 올리버에게 돌아갔다.
그러자 올리버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살짝 윙크했다.
그 모습에 절로 닭살이 돋아서 바로 고개를 돌렸다.
지지가 거침없이 안겨 왔다.
그녀는 춤을 추는 건지 몸을 비비는 건지 알 수 없는 춤을 췄다.
하지만 그게 또 묘하게 멋있고 섹시했다.
‘이크!’
대한은 스테이지에서 아리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살짝 미소를 지어주고는 바로 시선을 돌렸다.
“대한!”
“왜?”
“너무 좋아!”
“뭐가?”
“음악과 대한이!”
“나도.”
“예스!”
지지는 음악에 완전히 취해있었다.
입가에는 미소를 지어졌다.
늘씬한 몸은 리드미컬하게 움직였다.
그녀의 매력이 절로 사방으로 풀풀 뿜어져 나왔다.
괜히 지지가 세계 최고의 셀럽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별거 아닌 그녀의 빨간 탱크톱과 노란 반바지는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아니 지지 입고 걸치는 모든 것이 멋있고 근사하게 보였다.
가히 맵시의 여왕이라고 할 만했다.
“하이!”
“하이!”
춤을 추는데 카라 델레비네가 다가왔다.
그녀는 지지와 눈인사를 하고 대한의 뒤에서 몸을 흔들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지지가 워낙 신나게 춤을 추자 그냥 와서 한번 체크를 한 것 같았다.
아니면 뭔가 다른 의도가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래도 지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대한의 멱살을 잡아당기더니 귓가에 대고 한마디 했다.
“대한! 나가자.”
“지금?”
“응, 이 정도 놀아줬으면 됐어.”
지지는 누군가의 생일파티에 초청을 받은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들어가야 할 때와 빠져야 할 때를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그것과는 별개로 대한이 고팠다.
눈앞에서 순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내!
그는 너무나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였다.
가만히 쳐다보기만 해도 막 가지고 싶었다.
그런데 이렇게 가까이 몸을 부비부비하게 되자 참을 수 없는 갈증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