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화 <아리나를 위하여>
“여기서 혼자 뭐 하고 있어?”
“그냥 쉬고 있지.”
“나가자. 연회장에서 생일파티를 한다고 빨리 너를 데리고 오래.”
“알았어.”
대한은 거울을 한번 보고는 객실 밖으로 나갔다.
올리버 말대로 연회장으로 가보니 벌써 파티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놀라운 건 심심치 않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셀럽들의 모습이 보인다는 것이다.
마리아나 그란데.
엠마 왓손.
지지 하이디.
카라 델레비네.
JK Apa.
Ten Holland.
션 먼데이스.
그리고 디제잉을 하는 미국의 체인스모킹스 까지…….
확실히 돈 많은 아버지를 둬서 그런지, 선상파티의 클래스가 달랐다.
대한과 올리버가 도착하자 장내의 시선이 일제히 그들에게 쏠렸다.
그중에서도 마리아나 그란데와 지지 하이디가 압권이었다.
눈빛이 무슨 레이저라도 쏠 기세였다.
그는 그래도 안면이 있는 마리아나 그란데와 지지 하이디를 향해 가볍게 눈인사를 했다.
그런 다음 여유 있게 오늘의 주인공을 쳐다봤다.
살짝 반항기 있어 보이는 눈매!
어머니의 유전자를 받아 예쁘장한 얼굴!
앳된 미모와는 달리 성숙한 몸매!
아리나 아브라함비치는 생일을 맞아 한껏 들뜬 표정이었다.
마침 그녀도 고개를 돌려 대한을 쳐다봤다.
눈빛을 보아하니 이미 자신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대한과 올리버는 아리나를 향해 똑바로 걸어갔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건장한 사내 둘!
정장을 입고 당당히 걸어오자 포스가 남달랐다.
얼굴이 잘생기고 몸매가 탄탄해서 모델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대한!
매우 남자답게(?) 생긴 거한의 올리버!
특히 올리버의 포스가 아주 쩔었다.
어째 시간이 갈수록 근육이 점점 더 커지는 것 같았다.
“생일 축하해요.”
“고마워요.”
“전 이대한입니다.”
“반가워요. 아리나 아브라함비치에요. 그냥 아리나라고 불러주세요.”
“네, 그렇게 하죠. 대신 아리나도 날 대한이라고 불러줘요.”
아리나는 올리버를 보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녀의 시선은 오직 대한의 얼굴에 꽂혀있었다.
“올리버 올리베이라입니다.”
“반가워요.”
올리버의 인사에도 아리나의 눈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저 사실은 대한의 경기를 봤어요.”
그는 고개를 살짝 옆으로 틀면서 되물었다.
“어떤 경기를 말하는 거죠?”
“프리미어리그 경기도 봤고 오늘 치른 UFC 경기도 봤어요.”
“이런! 내 팬이시구나.”
“헤헤! 사실은 대한TV도 구독했어요.”
“그냥 팬이 아니라 아주 열렬한 팬이시네요.”
대한이 웃으면서 말하자 아리나도 같이 따라 웃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옅은 그늘이 보였다.
왠지 모르지만 사랑을 충분히 못 받고 자란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래서 눈매에 반항기가 엿보였는지도 몰랐다.
“이렇게 제 생일파티에 참석해주셔서 고마워요.”
“천만에요. 이렇게 멋진 요트에서 선상 파티를 열어줘서 내가 더 고맙죠.”
“저도 영광입니다.”
대한과 아리나가 너무 둘만 대화하자 올리버는 중간에 틈새를 뚫고 들어와 기어코 한마디를 하고 말았다.
그제야 올리버를 옆에 있는 것을 깨달았다는 듯.
그녀는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걸 본 올리버는 근육만큼 두꺼운 얼굴 가죽으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준비한 선물을 내밀었다.
“생일선물입니다.”
“어머! 고마워요.”
그래도 생일선물을 챙겨주니 예쁘게 미소로 화답했다.
아리나는 그걸 들고 한쪽 선반으로 갔다.
거기에는 온갖 생일선물이 가득 쌓여 있었다.
그녀는 올리버가 준 선물을 빈 귀퉁이에 올려놓았다.
가만히 살펴보니 쇼핑백이나 선물상자에 전부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품로고들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그걸 발견한 올리버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대한은 그사이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지지 하이디가 얼른 자신과 눈을 마주치며 뜨거운 눈빛을 보냈다.
아무래도 오늘은 쉽게 놔줄 것 같지가 않았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마리아나 그란데와 캐나다의 가수 션 먼데이스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리나의 생일파티를 위해 왔지만 그렇다고 노래까지 할 것 같지는 않았다.
“대한!”
“아! 네.”
그때 아리나가 옆으로 바짝 다가왔다.
뒤에는 어느새 그녀의 친구들이 포진해있었다.
“저 실례하지만 팔 한번 만져봐도 돼요?”
“그러세요.”
아리나는 호기심이 동했는지 조심스럽게 대한의 팔을 잡았다.
그가 슬쩍 힘을 주자 부드러운 근육이 순간 강철같이 단단해졌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그녀의 모습이 꽤 귀여웠다.
그런데 자꾸 대한의 눈치를 살피는 것을 보니 뭔가 선물을 바라는 것 같았다.
“저 선물을 준비했는데…….”
“아이! 뭐 그런 것을 준비하셨어요.”
말은 아닌 척했지만, 은근히 기대했던 모양이다.
벌써 당연하다는 듯, 한 손이 앞으로 나올락 말락 하고 있었다.
“내 선물은 눈에 보이는 게 아닙니다.”
“네에? 그럼 뭐에요?”
“선물을 받고 싶으세요?”
“물론이죠. 내 생일이잖아요. 그렇죠? 내 생일선물을 준비한 거 맞죠?”
B22
“하하하! 맞아요. 그럼 잠시만 기다려줘요.”
“네, 얼마든지.”
아리나는 기대 만발한 표정을 지으며 친구들과 머리를 맞댔다.
도대체 대한이 준비한 선물이 뭔지 서로 맞춰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대한은 스테이지를 가로질러 디제잉을 하는 체인스모킹스 앞에 갔다.
“안녕하세요. 이대한입니다.”
“반갑습니다. 이대한 선수! 시합은 잘 봤습니다.”
“어느 쪽 팬이시죠?”
“축구는 아니고, MMA 격투기 팬입니다.”
“아! 그러시구나.”
체인스모킹스는 그의 팬이라서 그런지 아주 호의적이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사적인 얘기를 나누기는 곤란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일단 대한은 자신의 목적부터 말했다.
“노래 한 곡 하려고 하는데 이것 틀어줄 수 있나요?”
“생일 축하곡인 모양이군요.”
“그렇습니다.”
“문제없습니다. 이쪽으로 다운로드해주세요.”
“감사합니다.”
그는 아까 자신의 객실에서 편곡한 곡을 디제이 부스에 다운로드했다.
“그냥 이것만 틀어드리면 되나요?”
“마이크가 필요합니다.”
“그럼 이걸 쓰세요.”
대한은 체인스모킹스가 건넨 마이크를 받았다.
한눈에 봐도 아주 비싸고 좋은 최고급 마이크였다.
그 사이 올리버는 아리나의 친구들과 신나게 떠들어 대고 있었다.
정말 친화력 하나는 킹왕짱이었다.
그는 마이크를 뒷주머니에 넣고 정장 상의를 벗었다.
그런 후 넥타이를 빼고 단추를 두 개 풀었다.
서빙을 담당하는 승무원 하나가 재빠르게 다가왔다.
그녀는 그의 상의와 넥타이를 받아 한쪽에 잘 챙겨뒀다.
대한은 고맙다는 인사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
뒤를 돌아보자 서서히 연회장을 울리던 음악의 볼륨이 줄어들었다.
아리나의 생일파티에 참가한 사람은 대략 서른 명쯤.
하나같이 돈이 많거나, 유명하거나, 어느 한 분야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대한은 마이크를 잡고 그들을 향해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안녕하세요! 이대한입니다. 저는 아리나 아브라함비치 양의 생일을 맞아 노래 한 곡을 작사·작곡했습니다. 듣고 마음에 드신다면 디지털 싱글이라도 한번 내 볼 생각입니다. 편하게 들어주세요. 제목은 ‘아리나를 위하여!’입니다.”
“꺄악!”
아리나의 친구들이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생일을 위해 친히 노래를 작사·작곡했다니…….
감동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그녀들의 반응에 그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딱!
손가락을 튕기자 디제이 체인스모킹스가 바로 MR을 틀었다.
연회장의 최고급 스피커를 통해 경쾌한 멜로디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리나는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눈을 반짝거렸다.
대한을 쳐다보는 그녀의 시선은 따가울 정도였다.
옆에는 친구들이 바짝 몸을 붙이고 앉아서 침을 삼키고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마리아나 그렌데와 지지 하이디까지 아리나와 비슷한 표정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은 살짝 눈을 감고 감정을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노래를 불렀다.
♬ In your eyes I am alive, Inside you’re pretty ♪
♭ Something so grateful In your eyes I know It’s home ♩
낮고 속이 꽉 차면서도 달착지근한 대한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몽환적인 발성과 경쾌한 멜로디!
둘이 만나 하나가 되면서 묘한 매력의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그는 원곡이 가지고 있는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목소리로 잘 살렸다.
그러면서도 거침없이 리듬을 타고 주도해나갔다.
마이크를 타고 나오는 달콤한 대한의 보이스는 매혹적이었다.
여린 감성을 소유한 자들의 심장을 하나씩 폭격하고 있었다.
♪ Every tear, every fear Gone with wind through you ♩
♬ Changing what I like I know I’ll be yours forever ♭
아리나의 눈빛이 몽롱해졌다.
아니 노래를 듣는 연회장의 모든 여자의 눈빛이 서서히 풀려갔다.
그들은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이미 노래의 주인공은 자신이라고 확신했다.
♭ I been waiting for you I been waiting for you♪
♬ Shattered for a lifetime for love till I found you♩
후렴구로 들어오자 그런 현상은 더욱 짙어졌다.
재능 끼(SS)와 매력(SS)!
음정을 타고 자연스럽게 시너지 효과를 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아직 아무도 모르는 결정적인 비밀이 한 가지 있었다.
그건 바로 대한이 지닌 마력이었다.
매일 같이 연공 하는 배틀푸르나(SSS)!
그로 인해 그의 몸에는 항상 마력이 유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감정이 실린 목소리가 의지를 만나자 바로 마력이 반응했다.
음파를 타고 분무기처럼 마력은 연회장 전체로 퍼져나갔다.
대한의 의지가 서려 있는 마력은 바로 자연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감정에 따라 신비한 파문을 그려냈다.
기이한 파동이 만들어졌다.
마력의 기하학적인 움직임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히 노래를 듣는 이들의 감정에 강한 영향을 주고 있었다.
♩ Skin to skin, kiss to kiss, breath to breath in your heart ♭
♬ The lips are like an ecstasy I will be yours forever ♪
노래의 하이라이트가 이어졌다.
폭발적인 클라이맥스가 이루지며 감동의 물결이 휘몰아쳤다.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호소력 짙은 목소리!
진한 감정의 파도는 사랑이라는 이미지를 마음속에 형상화했다.
달콤하고 애절하며 진심이 어린 고백!
언제까지나 너와 함께 하겠다는 약속이 현실처럼 느껴졌다.
감성이 남아있는 여자라면!
좋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절대적인 멜로디였다.
“와아아아!”
짝짝짝짝짝!
노래가 끝나자 연회장은 큰 함성으로 뒤덮였다.
천둥 같은 박수 소리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러나 충격과 감동의 무대는 아쉽게도 너무나 빨리 끝나버렸다.
아리나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마구 두근거리는 가슴을 손으로 꾹 눌렀다.
하지만 수그러들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부풀어 올랐다.
볼은 발갛게 익어서 터질 듯했다.
눈은 별빛처럼 빛나며 참을 수 없는 격정에 휩싸여갔다.
결국, 아리나는 견디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대한을 향해 똑바로 달려갔다.
살짝 놀랐지만 그렇다고 그는 피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두 팔을 벌려서 아리나를 꼭 안아줬다.
“레이디! 생일 축하해요.”
“대한! 고마워요. 내 생애 최고의 생일선물이었어요.”
“좋게 들렸다니 다행이네요.”
“아! 대한!”
아리나는 감동에 물든 얼굴과 행복한 표정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입술을 바짝 들이대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사랑해요.”
쿵!
갑작스러운 고백이 귓전을 폭격했다.
그런데 그보다 더한 충격이 몰려왔다.
쪼옥!
눈 뜨고 있는데 코 베간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눈 뜨고 키스 도둑질을 해가는 녀……. 크흠! 어린 여자가 있었다.
그렇다고 뭐라고 따질 수도 없는 게, 오늘이 그녀의 생일이란다.
대한은 꼼짝도 하지 못하고 그냥 일방적으로 당해버렸다.
덕분에 아리나는 멋지게 그의 입술을 훔치고 의기양양한 기세로 되돌아갔다.
이어지는 것은 마리아나와 지지의 질투 서린 눈빛이었다.
지지는 이해가 간다.
그런데 마리아나는 또 왜 저러는 거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대한! 멋진 노래였어요.”
“고마워요.”
그는 디제이 체인스모킹의 엄지 척을 선물 받고 마이크를 돌려줬다.
스테이지를 가로질렀다.
연회장에 있던 사람들이 몰려와 대한에게 인사를 하고 아는 척을 했다.
간혹 하이파이브하기도 했다.
안면이 있는 사람도 있었고 전혀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아리나의 생일파티라는 명제 아래 대동단결하는 분위기가 됐다.
“음료수 가져다드릴까요?”
“네, 시원한 물 한 잔만 주세요.”
“알겠어요. 그리고 참 멋진 공연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예쁜 승무원까지 슬쩍 다가와 엄지 척을 선물해주고 갔다.
그러나 올리버는 유일하게 불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