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화 <연속 해트트릭>
툭!
축구공은 그의 발등에 정확히 안착했다.
힘이 팍 죽은 볼이 전방으로 떨어져 내렸다.
대한은 그걸 다시 반대편 발등으로 툭툭 치며 빠르게 올라갔다.
“와아아아!”
대한의 질풍노도 같은 움직임!
왓포드 팬들은 일제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데뷔전에만 3골을 터트린 선수였다.
그가 기습적인 드리블을 치고 나가자 절로 기대가 폭발해버렸다.
사우샘프턴의 군 골키퍼는 즉시 앞으로 달려 나왔다.
대한은 그 모습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안 그래도 뒤에서 사우샘프턴 수비수 3명이 그를 잡아먹을 듯, 탱크처럼 돌진해오고 있었다.
그래서 거리가 좀 먼데도 바로 중거리 슛을 때려버릴까 고민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저렇게 알아서 틈을 내주다니…….
그는 그저 골키퍼의 행동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군 골키퍼가 각도를 좁히며 몸을 날리는 순간!
대한은 가볍게 볼 아래쪽을 콕 찍어 찼다.
툭!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붕 떠오르는 축구공!
군 골키퍼는 놀라서 힘껏 한 손을 위로 치켜들었다.
그러나 이미 볼은 그의 손끝을 넘어 허공을 날아가고 있었다.
비커리지 로드 경기장의 모든 시선이 일제히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뱅글뱅글 회전하며 날아가는 축구공에 집중된 것이다.
퉁 퉁 퉁! 데구루루!
볼은 바닥을 세 번 치고 데굴데굴 굴러서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와아아아!”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거센 함성!
비커리지 로드 경기장은 지진이 난 듯 들썩였다.
왓포드 팬들은 두 손을 하늘로 번쩍 치켜들며 마구 흔들었다.
노랗고 검은 물결이 팔팔 끓어오르는 물처럼 흔들렸다.
그런 그들의 앞으로 대한이 손가락 하나를 위로 펴고 달려가고 있었다.
[리버플팬: 골이다. 대박!]
[프리메라리거: 야호! 4호 골이다.]
[감아차기: 정말 미쳤다고밖에는 ㅎㄷㄷ]
[MOON1: 개 소름! 이게 실화냐!]
[777편: 당황하지도 않고 우아하게 칩샷 하는 클래스 좀 보소!]
[난자유다: 저 대한이 내가 아는 바로 그 대한이냐?]
[필드마법사: 세상에 벌써 몇 골째야!]
[후니: 프리미어리그를 씹어먹네! 아! 개 시원.]
[남조선폐차맨: 대한밖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아요.]
[해피제니: 대한 만세! 대한민국 만세!]
[난사랑꾼: 아싸! 골이다. 잘한다. 우리 대한이!]
대한TV의 시청자들도 다들 좋다고 난리를 쳐댔다.
왓포드 벤치도 펄펄 끓어올랐다.
경기를 시작한 지 이제 겨우 1분 30초.
골 가뭄으로 시즌 내내 시달리던 왓포드다.
그런데 이건 너무나도 고마운 봄비 같은 골이었다.
카카 감독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부르르 떨었다.
마치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손짓이었다.
사실 코치진과 구단주까지 모두 대한의 선발 기용을 만류했었다.
그런데 지금 보라!
자신의 전격적인 그의 선발 기용은 기가 막히게 적중했다.
그것도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바로 입증되어 버린 것이다.
그는 차오르는 기쁨과 자신감에 도저히 표정 관리를 할 수 없었다.
비슷한 상황에 부닥친 표정 관리 안 되는 두 사람이 더 있었다.
스포츠티비의 장수원 아나운서와 남희진 해설위원이다.
“보셨죠?”
“네, 정확히 봤습니다.”
“대단한 골이 나왔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골이네요.”
남희진은 신이 나서 입에 개 거품을 물면서 말했다.
“얼핏 보면 이게 별거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렇게 빠르게 날아가는 축구공을 따라가서 잡을 수 있는 축구선수는 프리미어리그에도 아마 몇 없을 겁니다.”
“손흥만 선수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죠. 그 정도는 돼야 가능할 겁니다.”
“이대한 선수가 빠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만 그 정도였는지는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거기에다 퍼스트 터치를 한 번 보세요. 정말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발등으로 볼을 받아서 정확히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돌려놓았어요.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월드클래스라는 말을 하셨군요.”
장수원은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그 뒤에 이어진 드리블을 보면 정말 환상적입니다. 난 메시가 와서 드리블하는 줄 알았습니다.”
“드리블하면서도 조금도 속도가 떨어지지 않는군요.”
“바로 그겁니다. 마지막에 군 골키퍼가 각도를 줄이기 위해서 달려들자 차분하게 칩샷으로 가볍게 골을 넣었습니다.”
“이대한 선수의 나이가 이제 겨우 20살입니다. 그런데 저렇게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경기를 해낸다는 게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정확히 만으로 19살입니다. 지금이 이 정도인데 앞으로 성장하면 어떤 실력을 보여줄지 도저히 가늠조차 되질 않습니다.”
장수원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늘 남희진 해설위원은 이대한을 너무 띄워주고 있었다.
아니 완전히 쪽쪽 빨아주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조금 걱정이 됐다.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수원 아나운서의 고민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삐익!
주심의 휘슬로 다시 경기가 시작됐다.
일격을 당한 사우샘프턴이 공세를 시작했다.
그들은 어떻게든 한 골을 넣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볼을 빼앗기면 바로 강한 압박을 해서 빌드업을 방해했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은 단 한 사람으로 인해 수포가 되어버렸다.
“대한!”
두쿠레가 대한을 부르며 볼을 패스했다.
그는 패스를 받자마자 곧바로 데울로페우에게 밀어줬다.
그리고는 바로 사우샘프턴 수비들의 뒤로 파고들었다.
데울로페우는 볼을 받자마자 그대로 전방으로 방향만 바꿔서 툭 찼다.
그러자 대한이 쏜살같이 나타나 볼의 방향만 바꿔서 슛했다.
툭!
군 골키퍼는 역동작에 걸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의 너무나도 어이없는 상황에 그만 입을 떡 벌렸다.
“와아아아!”
“골!”
비커리지 로드 경기장은 불같은 함성으로 타올랐다.
대한은 2대1 패스를 통해 상대의 수비진을 가볍게 돌파했다.
그리고 너무도 쉽게 골을 집어넣자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좋아서 방방 뛰거나 벌써 목이 다 쉬어서 꽥꽥거리는 팬까지 있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시간을 확인해보니 이제 경기 시작한 지 5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대한TV의 시청자와 스포츠티비의 시청자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터트렸다.
그들은 밤잠을 마다하고 TV와 모니터 앞에 앉은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장수원 아나운서는 대한이 골을 넣자 크게 흥분했다.
남희진 해설위원은 거의 폭주 상태였다.
“골! 골입니다.”
“대한민국의 건아! 이대한 선수가 멀티 골을 넣었습니다.”
“제가 그랬죠? 이대한 선수는 월드클래스라고.”
“아까는 긴가민가했는데 이제는 저도 월드클래스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정말 대단합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단 2경기를 뛰고 있는데 벌써 5골째에요.”
“우와! 엄청나군요. 이것만 봐도 정말 클래스가 다른 선수입니다.”
장수원은 이미 태세전환에 들어갔다.
이렇게 골을 욱여넣는데 월드클래스라고 좀 빨아주면 어떠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남희진 해설위원은 오히려 냉정하게 골을 분석했다.
“첫 경기에 해트트릭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영국의 일부 언론에서는 단지 ‘비기너스 럭(Beginner’s luck)’이라고 깎아내리기 바빴습니다.”
“제가 봐도 이건 초심자의 행운 따위는 아닙니다. 저런 교과서적인 1대1 패스는 정말 몇 번을 봐도 눈이 다 시원하네요.”
“더욱 중요한 것은 혼자 원맨쇼를 한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두쿠레 선수의 패스를 받은 이대한 선수가 데울로페우 선수를 이용해 패스했습니다. 이 1대1 패스 한 방에 사우샘프턴 수비수들이 짜놓은 오프사이드 트랙이 무너져버렸어요.”
“이미 팀에 녹아 들어가기 시작한 건가요?”
“그렇게 봐도 될 겁니다. 정말 뛰어난 감각과 실력을 갖추고 있는 선수입니다.”
정수원 아나운서와 남희진 해설위원이 이렇게 신나게 떠들어 댈 때!
사우샘프턴 선수들은 멘붕 상태에 빠져들었다.
이건 정말 황당하다 못해 허탈할 지경이었다.
무슨 골을 경기 시작한 지 5분 만에 2골이나 먹는가!
솔직히 경기를 뛸 의욕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달려!”
경기가 재개되자 왓포드에서 총공세에 들어갔다.
분명 지고 있는 것은 사우샘프턴인데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것은 왓포드였다.
뻥!
대한의 패스를 받은 데울로페우가 강슛을 날렸다.
하지만 아깝게도 크로스바를 넘고 말았다.
퉁!
이번에는 코너킥 상황에서 날아온 볼을 두쿠레가 헤더로 밀어 넣었다.
하지만 군 골키퍼의 선방에 튀어 나갔다.
이번에는 코너킥을 짧게 끊어서 데울로페우에게 연결해줬다.
데울로페우는 회심의 발리슛을 날렸다.
뻥!
아깝게도 이번에도 군 골키퍼의 선방에 다시 막히고 말았다.
“와아아아!”
경기장을 찾은 왓포드 팬들은 이 상황에 신이 났다.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며 공격을 하는 모습을 본 게 과연 얼마 만인가!
그동안 패배에 익숙해지고 실망에 습관이 되어버린 그들이었다.
다시 돌아온 왓포드의 선전은 그들에게 신세계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대한은 만족할 줄 몰랐다.
계속되는 기회에도 불구하고 골을 못 넣는데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안 되겠다. 내가 직접 해결하자.’
그는 마음을 고쳐먹고 볼을 받자마자 페널티 에어리어 안을 향해 돌파를 시도했다.
뚫리면 좋고 뚫리지 않아도 반칙을 얻어낼 수 있으면 더 좋았다.
수비수 앞에서 헛다리 짚기를 한번 하고는 바로 우측으로 치고 들어갔다.
데울로페우가 빠르게 골대를 향해 돌진하는 게 보였다.
대한은 컷백을 하려고 생각했다.
그때 수비수의 다리가 앞으로 휙 뻗어 나왔다.
대한은 재빨리 공을 앞으로 툭 밀어냈다.
그리고 우당탕 쿵탕 넘어져 버렸다.
삐익!
주심이 사정없이 휘슬을 불었다.
페널티골을 선언한 것이다.
최종 수비수의 발이 볼에 닿지 않았다.
오히려 공격하는 대한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이건 빼도 박도 못하는 명백한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의 반칙이었다.
“와아아아!”
비커리지 로드 경기장은 다시 한번 광란의 도가니가 되어버렸다.
사우샘프턴의 수비수 발레리의 다리에 걸려 넘어진 대한!
그는 데울로페우가 내민 손을 잡고 느긋하게 일어났다.
“대한! 잘했어.”
“내가 찰까?”
“당연하지. 프리킥과 페널티골은 전부 네가 차기로 했잖아.”
“그렇지.”
대한은 데울로페우의 말에 싱긋 미소를 지었다.
다들 그에게 다가와서 하이파이브를 하고 어깨를 부딪쳤다.
삐익!
주심이 신호를 하자마자 대한은 그대로 달려가 힘껏 볼을 찼다.
뻥!
축구공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볼이 빨랫줄처럼 쭉 뻗어 나갔다.
군 골키퍼는 몸을 날리다가 그냥 털썩 주저앉았다.
세상에 누가 페널티 킥을 이렇게 무식하게 차는가!
아예 맞고 죽으라고 오른쪽 코너를 향해 차버린 대한의 볼!
군 골키퍼는 그저 고개만 설레설레 저었다.
이건 어지간한 자신감이 없으면 절대 시도하지 않는 슛이다.
그걸 생각하자 정말 자신감 하나는 에펠탑 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와아아아!”
일제히 터져 나온 채운 함성이 경기장을 꽉 채웠다.
열광의 흥분이 바닷물 안에 몰린 멸치 떼처럼 파닥거렸다.
대한은 손가락 3개를 꼽으며 경기장을 돌았다.
손가락으로 하트를 만들고 나자 뒤따라온 왓포드 선수들이 차례로 그를 안았다.
새벽의 한반도는 활활 불타올랐다.
특히 대한TV 시청자들은 아주 신이 나서 방방 뛰었다.
[또또야: 오늘도 해트트릭! 진짜 국뽕이 아니라 개잘하넼ㅋㅋㅋ]
[Why: 첫 번째 골은 진짜 속이 뻥 뚫림.]
[멋진대한: 두 번째 골은 어떻고! 패스하고 초스피드로 뛰어가서 받는 거 봤냐? ㄷㄷㄷ 미쳤다.]
[JJJ: 이니에스타급 대지를 가르는 킬패스 ㄷㄷ]
[우리엄마가왕자래: 페널티 킥 차는 클래스 보소! 맞으면 뒈지겠다.]
[애플힙: 아까 달리는 속도 봤지. 미친. ㅋㅋ 혼자 피파 게임을 하는 줄 알았다.]
[가짜: 전성기 토레스급 원터치 ㄷㄷ]
[푸른염소: 대한은 레알급이다. 한국 역대급 공격수야!]
[꿈꾸는돌: 골 결정력 진짜 끝내준다.]
[소영: 대한은 실력도 월클 인성도 월클 외모도 월클!]
[대한만세: 이대한 선수 나오는 경기 보는 재미는 최고!]
[어차피우승은대한: 우리 가족은 벌써 다음 노르위치 전을 기다림.]
대한은 또다시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이제 초심자의 행운 같은 소리는 쏙 들어갔다.
두 경기 연속 해트트릭을 한 선수에게 그딴 헛소리는 어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