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프리미어리그 데뷔전>
왓포드는 3―5―2 포메이션!
에버튼은 4―4―2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다.
선축은 에버튼으로 공격수 히샬리송이 미드필더인 고메스를 향해 볼을 찼다.
그러자 왓포드의 공격수와 미드필더들이 일제히 달려가 압박을 시작했다.
에버튼은 갑작스러운 왓포드의 강력한 압박에 크게 당황했다.
하지만 왓포드가 괜히 강등권에서 헤매고 있는 게 아니었다.
기회가 왔는데도 불과하고, 투 톱으로 나선 데울로페우와 그레이는 계속 헛방만 날리고 있었다.
킬패스를 통해 좀 더 좋은 기회를 노리던지.
아니면 더 과감히 치고 나가 상대의 진형을 흔들든지 해야 했다.
그러나 괜히 애먼 파울을 하거나 패스를 잘못해서 기껏 잡아놓은 기세를 계속 이어가지 못했다.
솔직히 대한은 기가 막혔다.
프리미어리그라고 엄청나게 기대하고 왔다.
그래서 사실 주급 따위는 별로 쓰지 않았다.
당장 대한TV를 통해서 벌어들이는 돈만 해도 장난이 아니다.
그에게는 프리미어리그로 입성해 최고가 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런데 막상 프리미어리그 구단 안으로 들어와 보니 하나같이 어정쩡했다.
같이 뛰고 땀을 흘리면서 연습을 해보니 더욱 분명해졌다.
정말 괜찮은 재능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아마 바로 흡수했을 것이다.
그러나 말 그대로 다들 나름 준수한 자원일 뿐이었다.
재능을 얻는 것은 빅식스와의 경기에서나 가능할 것 같았다.
재미있는 것은 프리미어리그 하위권에 머무는 에버튼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하위권과 강등권이 사이좋게 삽질을 하고 있었다.
대한의 눈과 실력이 높아져서 그런지도 모른다.
어쨌든 최소한 공격진은 그의 기대에는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강한 압박을 하고 있는데도 골이 나오지 않자 분위기가 뒤집혔다.
이제는 에버튼이 공격의 고삐를 잡고 흔들었다.
처음 몇 번은 나름 날카로웠다.
그러나 이내 이해할 수 없는 플레이들을 하면서 흐름을 뚝 끊어먹었다.
역시 어디를 가나 트롤은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수비는 나름 괜찮네.’
왓포드는 사실 공격자원보다는 수비자원이 훨씬 안정적이었다.
하위권 팀과 비교해도 실점이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것만 봐도 왓포드 수비진이 얼마나 열심히 뛰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문제는 하나 더 있었다.
고질적인 부상 병동인 미드필더진!
이거야말로 새로운 자원을 영입하기 전까지는 딱히 방법이 없었다.
삐이익!
전반전이 끝났다.
대한은 선수들과 함께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주전선수들은 바나나를 먹고 물을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그들의 앞에는 카카 감독이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데울로페우와 그레이는 가만히 있지 말고 계속 스위치를 하거나 움직여야지.”
“네.”
“오프 더 무브먼트가 없으니까 기회가 나오지 않는 거야. 그레이는 수비에 좀 더 가담해주고.”
“알겠습니다.”
“수비진은 잘하고 있어. 후반전에도 그렇게만 하면 좋겠어.”
역시 수비진에게는 딱히 뭐라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드필더들을 보는 카카의 눈은 서늘하기만 했다.
“압박하려면 미리 달려가야지. 중앙선을 넘어오기를 기다렸다가 압박을 하면 제대로 압박이 되겠어?”
“…….”
“다들 머리로 생각하면서 축구를 해. 서로 긴밀히 소통하면서 라인을 조절하라고! 두쿠레와 카프는 중앙에서 좀 더 직선적인 패스를 해줘!”
“예!”
“홀레바스와 얀마트는 양쪽 측면에서 오버래핑을 해주도록 해! 기회가 있으면 얼리크로스도 좀 날려주고.”
“네.”
카카는 목이 타는 듯 물을 한잔 마시더니 대한을 쳐다봤다.
“대한! 몸 풀어!”
“오케이.”
아무래도 후반전에 잠깐이라도 내보내 줄 모양이었다.
물론 이러다가도 마음이 바뀌어서 안 내보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대한은 자신을 믿고 있었다.
한 번도 쓰지 않는 감독은 있을지언정…….
한 번만 쓰는 감독은 절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삐익!
후반전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다들 감독의 말대로 움직였다.
그러자 놀랍게도 에버튼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골이 나오지 않았다.
왓포드 팬이나 에버튼 팬이나 할 것 없이 모두 답답한 표정들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대한은 열심히 몸을 풀었다.
부상을 당하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몸을 예열해 놓아야 한다.
물론 피코셀과 나노셀이 있으니 다친다고 해도 금방 나을 수 있다.
하지만 다쳐서 받는 고통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고개를 슬쩍 들자 VIP 좌석에 앉아있는 에바가 보였다.
선글라스를 쓴 그녀는 일체의 미동도 하지 않고 오직 그만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자신은 이 경기와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 말이다.
그래도 대한이 쳐다보자 싱긋 미소를 지어줬다.
삑!
그때 주심의 날카로운 휘슬이 울렸다.
데울로페우가 카카의 말대로 페널티 에어리어를 향해 과감히 치고 들어가다가 상대 수비수로부터 반칙을 얻어낸 것이었다.
프리킥을 통해 직접 골을 노려볼 수도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카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즉각 선수교체를 단행했다.
이 절호의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고 반드시 골을 넣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대한! 들어가!”
“옛설!”
그는 장난스럽게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선수교체 대상은 오늘 투명인간 신공을 보여준 공격수 그레이였다.
대한은 인상을 잔뜩 쓰면서 나오는 그레이를 꽉 안아줬다.
“수고했다.”
그레이는 그의 행동에 당황했다.
살짝 황당한 표정을 짓다가 얼른 표정 관리를 했다.
사방에 넘쳐나는 게 카메라였다.
방송용 카메라는 둘째치고 관중이 들고 있는 스마트폰의 카메라가 언제 어디서 자신의 얼굴을 찍고 있을지 아무도 몰랐다.
그는 괜히 어설픈 감정을 드러냈다가 팬들에게 찍혀서 까이고 싶지 않았다.
카카는 수고했다고 가볍게 그레이의 어깨를 한번 두드려줬다.
대한은 느긋하게 필드를 향해 걸어 나갔다.
데울로페우가 다가와 그를 향해 손뼉을 쳤다.
짝짝짝짝…….
그러자 동료들이 그의 프리미어리그 데뷔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손뼉을 쳐줬다.
잠시 왓포드의 홈구장인 비커리지 로드는 팬들의 힘찬 박수로 가득 찼다.
대한민국에서 날아온 어린 축구선수의 데뷔를 축하해주는 것이다.
에버튼 선수들도 괜히 덩달아 대한에게 박수를 보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순간만큼은 대한도 속에서 울컥했다.
그는 관중석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한국식으로 인사를 했다.
주심도 시계를 쳐다보며 잠시 기다려줬다.
그러나 그가 볼 앞에 서자 분위기가 싹 달라졌다.
에버튼은 튼튼하게 벽을 쌓았다.
왓포드는 어떻게든 틈을 만들려고 신경전을 벌였다.
하지만 대한은 오직 골문 만을 노려봤다.
거리는 페널티 에어리어 라인에서 2m쯤 떨어져 있다.
위치는 약간 오른쪽으로 치우쳐져 있었다.
대한은 뜸 들이지 않고 달려가 왼발로 강하게 볼을 감아 찼다.
뻥!
볼은 높이 떠서 크로스바를 넘어갈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대각선으로 뚝 떨어지더니 좌측 모서리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정말 기가 막힌 프리킥이었다.
“와아아아!”
“골!”
왓포드의 홈구장 비커리지 로드는 순간 격렬한 환호성에 휩싸였다.
그렇게 간절히 원하던 골이 터졌다.
그것도 전혀 기대하지 않고 있던 동양의 어린 선수!
이대한이 필드로 들어온 지 1분도 되지 않아 만들어낸 데뷔골이었다.
왓포드 팬들은 광란의 함성을 질러댔다.
그렇게 골이 안 나와 답답하던 가슴이 일거에 풀리듯 시원해졌다.
단 한 번의 프리킥!
그리고 단 하나의 골!
이것은 대한이 프리미어리그에 보내는 신호탄이었다.
자신의 존재를 널리 알리게 된 계기가 된 셈이다.
삐익!
경기가 다시 시작됐다.
대한은 그레이를 대신한 공격수였다.
하지만 공격수라고 해서 공격만 하라는 법은 없다.
그가 가지고 있는 최대의 장점 중 하나!
바로 피지컬을 충분히 활용하여 에버튼을 압박했다.
그런데 이 작전이 기가 막히게 적중했다.
“앗!”
대한은 에버튼의 미드필더인 슈네이더린을 압박해 볼을 빼앗았다.
그런 다음 바로 데울로페우에게 킬 패스를 보냈다.
대지를 가르는 패스!
에버튼 수비들의 발 사이를 딱 손바닥만큼 비껴갔다.
데울로페우는 수비의 숲을 가로질러 자신의 바로 앞으로 데굴데굴 굴러오는 볼을 보자 반색을 하며 좋아했다.
세상에 무슨 이런 택배 서비스가 다 있는지…….
그는 속으로 혀를 내두르며 축구공을 잡았다.
눈앞에는 텅 빈 골대가 보였다.
에버튼의 픽포드 골키퍼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데울로페우는 툭 한번 볼을 앞으로 차 놓고는 골대의 왼쪽을 향해 시원하게 갈겨버렸다.
뻥
빨랫줄처럼 뻗어간 볼!
골대의 왼쪽 중앙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픽포드 골키퍼가 힘껏 몸을 날리면서 간신히 손끝으로 볼을 톡 건드렸다.
데울로페우가 워낙 강하게 찬 볼이라 밖으로 나가진 않았다.
다만 아쉽게도 왼쪽 골대를 강타해버리고 말았다.
텅!
골대가 흔들리며 볼은 대각선으로 튕겨 나왔다.
데울로페우는 두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감싸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때 페널티 에어리어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달려가는 그림자가 있었다.
바로 대한이었다.
그는 데울로페우가 자신이 넣어준 킬패스를 슛으로 연결하자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어째 날아가는 방향이 아리송했다.
그래서 얼른 앞으로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대한의 예상대로 볼은 골대를 맞고 튀어나왔다.
옆에서 볼을 걷어내려고 에버튼의 수비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간발의 차이로 대한의 발이 먼저 볼을 툭 건드렸다.
데굴데굴!
픽포드 골키퍼는 골대를 향해 굴러가는 축구공을 보고는 기겁을 했다.
급히 몸을 날려보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미 축구공은 골라인을 살짝 넘은 상태였다.
“골!”
“와아아아!”
또다시 비커리지 로드 경기장이 환호성에 휩싸였다.
드디어 골 가뭄이 끝났다.
오늘만 벌써 두 골이나 들어갔다.
왓포드 팬들은 신이 나서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목이 쉬라고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다.
이런 현상은 비단 비커리지 로드 경기장만의 일은 아니었다.
대한TV를 시청하는 전 세계의 시청자와 팬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조까치: 우와! 이게 실화냐!]
[세봄이형: 미쳤다. 개 멋있다.]
[JS: 우악! 개 소름! 프리미어리그 데뷔전에서 벌써 두 골이야!]
[오늘하루쉼: C발! 이게 말이 되냐고. ㅋㅋ]
[노란우산: 주모! 여기 국뽕 한 사발 더 주오!]
[서생옆집: 오늘은 정말 국뽕에 취할 수밖에 없다. 나도 주모를 부른다. 주모!]
[댕댕이: 죽였다. 우리의 대한이 드디어 대형사고를 쳐버렸어.]
[이기자: 꺄악! 나 어떻게 쌌어.]
[WOW: 난 벌써 두 번째 갈아입는다.]
[진지충: 대한 만세! 대한민국 만세!]
[하루를일년같이: 대한이 축구 개 잘함!]
[네버다이: ㅇㅈ 장래희망 대한이!]
다들 대한의 활약에 크게 고무된 분위기였다.
왓포드의 벤치도 난리가 났다.
제일 먼저 카카 감독이 이성을 잃고 늑대처럼 포효했다.
그러자 코치진과 선수들까지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고 난리 블루스를 췄다.
반대로 에버튼의 벤치는 초상집 분위기였다.
어디서 듣보잡이 하나 나오더니 덜컥 골을 넣어버렸다.
그것도 벌써 두 골이었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나이도 어린 선수가 오늘 데뷔를 한 것이다.
이 무슨 개같은 상황이 다 있는지.
전생에 나라를 구한 걸까?
어째 오늘 행운은 전부 저 동양인 선수가 다 쓸어가는 것 같았다.
“잘했어!”
“너도 잘 찼어.”
대한과 데울로페우가 서로를 껴안으며 칭찬과 격려를 했다.
데울로페우는 의외로 쿨했다.
아니 오히려 대한에게 감사했다.
아까처럼 계속 킬패스를 해준다면 앞으로 얼마든지 골을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쏜 슛이 골대를 맞춘 것을 이미 잊어버렸다.
대신 진심으로 대한의 골을 축하했다.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를 시기하고 자시고 할 겨를도 없는 강등권의 위기에 빠진 왓포드다.
팀은 현재 무조건 이기면 최고라는 분위기가 팽배해져 있었다.
삐익!
시합이 재개됐다.
남은 시간은 10여 분.
에버튼은 총공세로 나왔다.
물론 왓포드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수비에 전념했다.
당연히 대한도 수비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