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보보나로 자치주>
다른 것은 몰라도 KFX 사업만큼은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
그래야 자체적으로 4.5세대 전투기를 양산하고 유지·보수를 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KFX 사업의 완성은 5세대 스텔스 전투기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니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당연히 KFX의 성공을 기원해야 마땅할 것이다.
에바가 손가락을 튕겼다.
사무실 환경이 즉시 변했다.
“동티모르군.”
“맞습니다. 코레에너지 사장 서희가 동티모르와 최종협상을 타결했습니다.”
그녀는 설명을 하면서 동티모르의 지도를 한쪽 위에 띄웠다.
대한은 그것을 받아 잡아당겨 지도를 확대했다.
“역시 보보나로(Bobonaro)겠지?”
“맞습니다. 보보나로는 물론이고 인근 해양까지 독점으로 개발할 수 있는 권리와 자치권을 받았습니다.”
“기간은?”
“100년입니다.”
100년이란 말에 대한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아주 뿌리째 뽑아먹으려고 작정을 했군. 그럼 조건은?”
“당연히 보보나로에 대한 투자죠.”
“그래서 얼마나 투자를 해야 하는데?”
“10년간 1억 달러를 의무적으로 투자해야 하는 것으로 합의 봤습니다.”
“그럼 매년 1천만 달러라는 얘기네.”
“그렇습니다.”
보보나로 개발권 100년을 받은 것 치곤 비싼 게 아니었다.
물론 그건 보보나로에서 유전을 개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대한에 한해서다.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땐, 이건 그냥 호구 잡힌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섬에 매년 1천만 달러씩 투자해야 한다니!
그것도 10년 동안이나 돈을 퍼부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좋은 계약은 아니었다.
하지만 남들이 뭐라고 하든 간에 그에겐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보보나로에는 곧 석유가 펑펑 터져 나올 테니까.
“어! 저건 뭐야?”
“조립식 건물과 주택 말씀입니까?”
에바는 대한이 언급한, 보보나루 북서쪽 해안가에 세워지는 건물들을 확대했다.
“응.”
“당연히 나노셀 병원과 숙소죠.”
대한은 그제야 왜 동티모르와 투자 협상을 시작했는지 그 이유가 생각났다.
나노셀을 의료기기로 인정해달라고 요청하다가 이렇게 일이 커진 것이다.
“나노셀은 어떻게 됐어?”
“당연히 정식 의료기기로 허가받았습니다.”
“그럼 이제 나노셀을 쓸 수 있겠구나.”
“네, 동티모르에서 나노셀은 이제 합법입니다.”
대한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굳이 엄청난 투자를 하지 않아도 될 상황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보보나로는 곧 눈부신 발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나노셀의 성능이 소문나면 오지 말라고 해도 사람들이 밀려들 테니까.
“에바! 보보나로의 전 지역을 폐쇄해야겠어.”
“이미 조치해뒀습니다. 동티모르와 계약을 하자마자 용병모집도 같이 시작했습니다.”
“무인 국경감시시스템은?”
“그것도 조만간 설치할 겁니다. 국내에 이미 시스템이 개발된 게 있습니다. 철조망과 함께 설치하면 금방입니다. 그리고 조금만 시스템을 손보면 효율도 많이 올라갑니다.”
“정찰드론과 전투드론도 투입해야겠다.”
“코레디펜스의 자회사 코레드론에서 시제품을 몇 대 만들어놓아서 일단 그것부터 가져가서 실전 테스트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녀의 설명에 대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보보나로 주(州) 인구가 얼마나 되지?”
“93,000명입니다.”
“보보나로를 개발하려면 턱없이 부족한 인구네.”
“석유와 나노셀이면 곧 동티모르의 인구가 죄다 보보나로로 몰릴 겁니다.”
“일단 보보나로 주민들 현황 좀 파악해봐! 쓸만한 사람들이 있으면 먼저 고용하자고. 아픈 사람들이 있으면 먼저 치료해주고. 물론 나노셀을 투입해서 임상시험을 대체할 수 있도록 조치해!”
“네, 마스터.”
대한은 보보나로에서 한꺼번에 여러 가지 목적을 동시다발적으로 이루길 원했다.
석유채굴, 천연가스 생산, 나노셀 임상, 나노셀 병원, 보보나로 개발 등
직접적인 이득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나노셀 임상 및 의료기기 인정, 무인 국경감시시스템 실전 테스트, 동남아시아 시장의 코레 그룹 거점 및 제2의 근거지 확보 등
파생되는 사업과 부대적인 이익의 환수까지 전부 고려했다.
이렇게 되자 처음과는 달리!
동티모르의 진출은 신의 한 수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베트남의 총수출액 중 3분의 1을 한국의 기업이 책임지고 있는 것처럼!
동티모르 GDP의 큰 몫을 조만간 코레 그룹이 책임지게 될 것이다.
“당분간 코레에너지 사장과 동티모르의 대통령 프란시스 쿠텐, 총리 타울 마탄 그리고 외교장관 디오 수아레스의 밀월관계가 지속되겠군.”
“보보나로에 나노셀 병원이 생기면 제일 먼저 그들과 가족들이 혜택을 보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이들이 오래 살아야 우리에게도 이익이야.”
돈을 주고라도 이들을 치료해주는 것이 좋다.
비록 동티모르에서 나노셀을 의료기기로 전격 허락해줬지만.
임상도 거치지 않은 의료기기를 믿어줄 사람은 없다.
하지만 동티모르의 대통령, 총리, 외교장관 및 그들의 가족이 치료를 받았다고 하면 훨씬 더 믿음이 갈 것이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나노셀 병원에서 임상 테스트와 자료가 축척된다.
그렇지만 이런 일은 하루라도 빨리 해치워야 한다.
괜히 엉뚱한 놈들이 돈 냄새를 맡기 시작하면 보보나로는 진흙탕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당장 나노셀 병원이 세워지면 누가 지킬 거야?”
“일단 코레 실드에서 맡기로 했습니다.”
“병원에서 일할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직원들은?”
“전부 한국에서 데려오기로 했습니다.”
“괜찮겠어?”
“안드로이드로 대체할까요?”
대한의 질문에 에바는 바로 한 발 물러섰다.
“아니다. 그냥 계획대로 해. 대신 나노셀 병원 일대를 벗어나면 나노셀의 효능이 사라지는 것으로 하면 되겠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세팅해놓겠습니다.”
일단 이것으로 나노셀의 비밀을 잘 지킬 수 있게 됐다.
물론 가져가서 연구한다고 해서 쉽게 복제할 수 있는 물건도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개념과 메커니즘은 뽑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대한민국과 동티모르 외에는 나노셀 공급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동서가 54km, 남북이 55km인 보보나로.
이 작은 동티모르의 한 지방 자치주가 천천히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고 있었다.
* * *
“그러니까 백혈병은 항암 화학요법과 방사선치료 그리고 조혈모세포 이식을 통해 완치시킬 수 있다는 말이죠?”
“네, 그렇습니다. 급성백혈병의 경우 치료하지 않으면 1년 이내에 90%가 사장하는 치명적인 질환입니다. 하지만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수명연장은 물론 완치도 가능합니다.”
대한은 한소망의 담당 의사인 온양심과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대한TV의 카메라맨은 두 사람의 얼굴이 잘 나오게 촬영을 하고 있었다.
온양심 의사는 생방송 촬영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참 침착하게 대답했다.
“저는 지금까지 백혈병을 불치병으로만 알았습니다.”
“백혈병이 처음으로 발견됐을 당시에는 치료제가 없어서 손도 못 써보고 환자들이 사망하는 경우가 많아서 불치병이라 불렸지요. 그러나 요즘은 좋은 치료제가 많이 나와서 만성 골수 백혈병 환자의 생존율은 90%에 육박할 정도로 높아졌습니다.”
‘소원을 말해봐’ 1탄의 주인공인 한지혜의 남동생 한소망이 바로 만성 골수 백혈병 환자였다.
온양심은 차분하게 설명하며 백혈병도 완치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앞으로 한소망 군을 어떻게 치료하실 계획입니까?”
“한소망 환자는 관해유도치료 이후 완전관해에 도달한 경우라 조혈모세포 이식을 할 예정입니다.”
“이게 일명 골수이식이라는 거군요.”
“맞습니다.”
“그럼 골수 공여자는 찾았나요?”
“그렇습니다. 누나인 한지혜 양의 골수로 동종 골수이식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형제지간이라도 골수가 맞지 않아 공여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럴 경우, 보통 골수정보은행에서 적합한 골수 공여자를 찾는다.
하지만 맞는 골수가 없다면 찾을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만 한다.
천만다행으로 한지혜와 한소망은 골수가 서로 맞는 모양이었다.
정말 한지혜는 한소망에게 아낌없이 주는 누나(나무)다.
“참 다행이네요. 그럼 언제 수술을 할 예정입니까?”
“조혈모세포 이식을 위한 사전준비와 검사가 필요해서 일단 1주일 뒤로 잡았습니다.”
“알겠습니다. 온양심 의사 선생님! 한소망 군이 꼭 나을 수 있게 조혈모세포 이식을 잘 좀 해주세요.”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온양심은 대한과 카메라에 한 번씩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대한은 천천히 병원 밖으로 이동했다.
“원래는 한소망 군을 만나러 병실로 가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수술 때문에 무균실로 들어가야 한다는군요.”
그의 말에 시청자들도 안타깝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제가 누구입니까? 한소망 군에게 양해를 얻어서 셀프 동영상을 준비했습니다. 일단 한번 보시죠.”
대한은 카메라를 향해 손을 뻗었다.
동시에 에바가 한소망 군이 보내온 감사 인사 동영상을 내보냈다.
살이 좀 빠졌지만, 꽤 귀여운 얼굴을 한 중학생이었다.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찍는데 하는 행동이 무척 어리바리했다.
그래서 그런지 시청자들의 미소를 자아내게 했다.
누나와 자신을 도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아주 정중하게 했다.
그런데 왠지 보기에 짠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든 많은 시청자가 울컥하고 말았다.
대한은 이미 몇 번이나 본 영상이었다.
그는 병원 밖에 있는 벤치로 이동했다.
거기에는 한새롬이 예쁜 투피스를 입고 미리 대기 중이었다.
카메라맨이 그를 따라서 빠르게 종종걸음을 걸었다.
숨도 돌리기 전에 자리를 잡고 카메라부터 세팅했다.
그러자 한소망 군의 감사를 전하는 셀프 영상이 끝났다.
에바는 즉시 카메라의 영상을 메인으로 띄웠다.
“잘 보셨죠?”
“자꾸 눈물이 날 것 같아서 혼났어요.”
“저도 처음 봤을 때는 눈물이 나더군요.”
“의외로 감성이 풍부하신 가봐요?”
“뭐 그런 편이죠.”
대한은 한새롬과 대화를 나누다 카메라를 쳐다봤다.
“그런데 여러분 아무래도 소원을 말해봐 1탄은 3편까지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소망 군이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고 건강해진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그러죠?”
“맞습니다. 아무래도 그걸 많이 궁금해하실 것 같아서요.”
“전 찬성이에요.”
한새롬은 대한의 옆에 바짝 붙어서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한지혜 양과 한소망 군을 위해 그동안 참 많은 분이 후원금을 보내주셨습니다.”
“모인 후원금의 총액은 화면 상단에 띄워놓았어요.”
“달풍선, 비트, 후원금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보내주신 후원금은 전부 코레재단에서 맡아서 운용해주실 겁니다.”
“정반석 변호사님과 유화정 회계사님 그리고 코레재단의 담당 직원들이 모두 지혜를 모았답니다.”
대한의 말이 끝날 때마다 한새롬이 생글거리며 맞장구를 치고 멘트를 이어갔다.
그녀의 이런 행동이 대한TV의 분위기를 생동감 있게 만들고 있었다.
“한지혜 양이 성인이 되는 날!”
“전부 자동으로 인수할 수 있게 됩니다.”
“참 다행이에요.”
“정말 잘 됐어요.”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젠 하이에나 같은 친척들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요. 앙!”
그녀는 두 손을 들고 짐짓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게 무서울 리가 없었다.
오히려 귀엽고 깜찍하다고 시청자들이 좋아했다.
대한은 어이가 없기도 하고 한편으론 귀엽기도 해서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한새롬의 손가락이 바로 옆구리를 쑤시고 들어왔다.
아프진 않았지만, 감정이 많이 담긴 손가락이었다.
그는 ‘이크’ 하며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다음 편에는 한지혜 양과 한소망 군의 부모님께서 남겨주신 유산과 교통사고사망보험금의 행방에 대해서 소식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꼭 도로 찾았으면 좋겠어요.”
“아마 그렇게 될 겁니다.”
“정말 꼭 이에요.”
“네. 꼭 말입니다.”
한새롬은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애교를 떨었다.
대한도 새끼손가락을 걸고 카메라를 쳐다봤다.
“오늘 대한TV는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안녕!”
“안녕!”
두 사람은 다정히 어깨를 붙이고 카메라를 향해 마구 손을 흔들었다.
“컷!”
카메라맨은 영화도 아닌데 ‘컷’을 했다.
그 모습에 대한이 웃음을 흘렸다.
그러자 카메라맨도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는 얼굴이 시뻘게졌다.
그러자 또 한 번 한새롬의 손가락이 그의 옆구리로 파고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