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펜트하우스>
시청자들은 변호사가 나온 이유를 듣자 다들 환호성을 질렀다.
[티비: 그렇지. 이래야 대한이지.]
[내이름은이효리: 오! 개 사이다! 이렇게 시원할 수가.]
[나나나: 일을 아주 시원시원하게 푸네. ㅎㅎ]
[소녀갱: 역시 대한이다. 어린 남매의 돈을 강탈해간 놈들에게 정의의 심판이 있으라!]
[아일린: 뭐야 이거! ‘불우이웃돕기’에서 ‘복수는 나의 힘’이 됐어.]
[팅커벨하나: 정의사회구현! ㅋㅋ]
[깐돌이: 아오! 사이다네. 꼭 다시 찾기 바래요.]
[장장장: 유산과 사망보험금 다시 찾아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
[치과소녀: 대한을 국회로 보내자! ㅋㅋ]
[메롱롱: 지렸다. 이런 반전이.]
대한TV 스튜디오에 나온 정반석은 약간 긴장했다.
그래도 또박또박할 말은 다 하고 있었다.
그에 비하면 유화정은 오히려 즐기는 느낌이었다.
“정반석 변호사님이 나오신 이유를 들어봤습니다. 그런데 유화정 회계사님이 나온 이유를 잘 모르겠네요.”
“전 상담을 하러 나왔습니다. 그리고 법적보호자가 필요한 것 같아서요.”
“아! 그렇군요. 당장 한지혜 양과 한소망 군에게는 법적보호자가 필요하겠군요.”
“그렇습니다. 전에는 친척들이 그 역할을 했는데 오히려 어린 남매의 재산만 강탈해갔습니다. 그러니 저라도 도와주자는 취지로 이렇게 나선 거예요.”
“감사합니다. 정말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반석과 유화정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한지혜에게 상담을 해줬다.
법적 조언과 현실적인 조언이 섞이자 한지혜도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친척들을 많이 밉고 원망스러웠다.
그래도 복수를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저 모든 게 자신이 지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맞춤형 도움을 받게 되자 고마움에 절로 눈물이 흘렀다.
좋았던 분위기는 한지혜의 눈물을 시작으로 일변했다.
마치 스튜디오가 이산가족 상봉 장소라도 하는 듯!
눈물바다로 변해버렸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음 편은 한소망 군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후원해주신 귀한 후원금은 정반석 변호사님과 유화정 회계사님과 의논하고 코레재단의 도움을 받아서 한지혜 양에게 전달하겠습니다. 그냥 건네줬다간 다시 하이에나 떼가 몰려들 것 같아서 말이죠.”
대한은 급히 멘트를 치고 수습에 나섰다.
“고맙습니다.”
한지혜가 그를 쳐다보며 꾸벅 인사를 했다.
대한도 마주 보고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카메라를 향해 인사를 했다.
“소원을 말해봐 1탄 1편을 마칩니다. 저녁은 류연과 같이 돌아오겠습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나중에 봐요.”
류연이 재치있게 카메라를 보며 손을 마구 흔들었다.
시청자는 흔들리는 그녀의 손보다는 다른 곳을 홀린 듯이 더 주의 깊게 쳐다봤다.
그렇게 대한과 류연은 ‘소원을 말해봐’ 첫 방송을 무사히 마쳤다.
* * *
“우와! 여긴 뭐예요?”
“내가 사는 펜트하우스에요.”
류연은 아이처럼 놀라며 창가를 향해 달려갔다.
덕분에 본의 아니게 위아래로 질량이 몸부림을 쳐댔다.
벽 전체가 통짜 유리로 된 창문이었다.
그걸 깨닫자 절로 입을 딱 벌어졌다.
강남을 중심으로 일대의 정경이 한눈에 가득 들어왔다.
“전망이 참 좋네요.”
“전망은 다른 쪽이 더 좋은데.”
“설마 사면이 다 보이는 것은 아니겠죠?”
“정답입니다.”
대한이 한쪽 벽을 쓰다듬자 마치 색이 빠지듯 즉시 투명해졌다.
대리석 벽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창문이었다.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대한의 옆에 섰다.
확실히 이쪽의 전망이 더 좋았다.
류연이 활짝 웃자 대한은 다른 한쪽도 투명하게 만들었다.
“정말 사방이 확 트인 느낌이에요.”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네요.”
“마음에 드는 정도가 아니라 최고예요.”
그녀는 이곳을 아주 마음에 들어 했다.
확실히 게스트룸은 특급호텔 스위트룸 못지않게 멋진 공간이었다.
류연은 자신의 매니저와 코디를 따로 떼어놓고 오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류연! 배 안 고파요?”
“아! 조금 고프네요.”
그제야 그녀는 비행기에서 내린 후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한은 류연을 향해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뭐 먹고 싶어요?”
“한식이요.”
“알았어요. 준비해놓을 테니 가서 씻고 와요. 옷도 편한 것으로 갈아입고요.”
“네, 알겠어요.”
그녀는 말 잘 듣는 아이처럼 순순히 대답했다.
그는 류연에게 다가가 뺨에 가볍게 키스를 했다.
그리고는 몸을 돌렸다.
턱!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대한의 손을 잡았다.
고개를 돌리자 류연은 냉큼 다가와 그에게 입을 맞췄다.
대한은 잠시 가만히 서 있었다.
그녀는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빈틈없이 채웠다.
대한은 류연을 부드럽게 안았다.
긴장했던 몸이 천천히 이완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 분위기를 확 깨는 소리가 들려왔다.
꼬르륵!
류연은 얼굴이 새빨개져 슬그머니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대한은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잡고는 입술을 꾹 눌러줬다.
“일단 우리 밥부터 먹어요. 사실 나도 배가 아주 고프거든요.”
“아! 네.”
시선을 살짝 피하는 류연의 뺨이 발갛게 물들어있었다.
긴장으로 인해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과 합쳐지니 매우 고혹적이었다.
대한은 그녀를 향해 싱그러운 미소를 한 방 날려주며 몸을 돌렸다.
그가 밖으로 나가자 그녀는 무너지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휴! 내가 미쳤어. 넌 왜 이렇게 분위기 파악을 못 하니!”
류연은 손으로 자신의 배를 때렸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혼내준 곳은 배가 아니라 가슴이었다.
그 현실에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벌떡 일어나 자신의 여행용 가방을 찾았다.
바로 문 앞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류연은 꽃무늬가 달린 여행용 가방을 끌고 욕실 앞으로 갔다.
일단 옷부터 모두 벗어버렸다.
그리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이 되어 안으로 들어갔다.
쏴아아아!
샤워기에선 뜨거운 물이 콸콸 쏟아졌다.
전신을 때리는 시원한 느낌!
온몸의 피로가 쓸려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한편, 대한은 바로 옆 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부엌에서 요리하는 안드로이드들을 감독하고 있었다.
가사용 안드로이드인 H1 제니, H2 야엘!
레저용 안드로이드인 L1 리사, L2 틸란!
넷은 류연이 좋아하는 각종 요리를 능숙하고 빠르게 만들어내고 있었다.
갈비, 불고기, 비빔밥, 순두부찌개, 김밥, 잡채, 양념치킨 등
보기만 해도 입에 군침이 도는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들이었다.
‘이거 요리도 좀 배워야겠네.’
―요리 재능을 가진 사람을 물색해보겠습니다.
에바의 말은 높은 등급의 요리 재능을 가진 사람을 찾아보겠다는 뜻이다.
대한도 레시피 대로만 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요리를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기왕이면 최고의 요리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은 좀 참기로 했다.
‘요리도 종류가 여러 가지잖아.’
―그렇습니다. 한식, 양식, 중식, 일식, 프랑스식, 이탈리아식 등 다양합니다.
‘기본적으로 몇 가지는 꼭 배워놓아야겠군.’
―잘 고려해서 물색해놓겠습니다.
대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멍하니 안드로이드들이 요리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그러다 몸을 돌려 자신의 욕실로 들어갔다.
옷을 벗고 시원하게 찬물로 샤워를 했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찬 기운이 정신을 번쩍 나게 했다.
그는 수건으로 몸의 물기를 닦고 머리를 말렸다.
욕실을 나와 드레스룸으로 갔다.
새 속옷과 하얀 티셔츠 그리고 베이지색 반바지를 차례로 입었다.
밖으로 나가려는데 L1 리사와 L2 틸란이 드레스룸으로 들어왔다.
“뭐야?”
“드라이해드리려고 들어왔습니다.”
“저는 마스터에게 알맞은 코디를 해드릴게요.”
대한은 이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리사와 틸란은 일단 그가 입고 있는 옷을 모두 벗겼다.
“이걸로 갈아입으세요.”
“팬티는 이게 좋겠네요.”
둘이 내놓은 것은 몸에 딱 맞는 하얀색 박스티와 찢어진 엷은 데님 반바지였다.
그리고 팬티는 몸에 찰싹 달라붙는, 비단처럼 매끄러운 하얀 삼각이었다.
“나보고 왜 이걸 입으라는 거지?”
“그거야 당연히 상대에게 맞춰야 하기 때문이죠.”
리사가 요염한 얼굴로 한쪽 벽을 만졌다.
그러자 벽이 투명해지면 욕실 앞 전면 거울 앞에 서 있는 류연의 모습이 보였다.
꿀꺽!
절로 침이 삼켜졌다.
그녀는 지금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이었다.
덕분에 류연의 폭발적인 몸매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정말 가공할만한 몸매로구나.’
신체의 다른 부분도 정말 예쁘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비교 불가의 절대적인 포스를 자랑하는 미드 앞에는 다 소용없었다.
거울을 보며 이리저리 옷을 대보고 있는 그녀!
모습이 무척 행복해 보였다.
류연은 레이스 달린 투명한 살구빛 망사 팬티와 브래지어를 골랐다.
그리고 고민 끝에 처음에 골랐던 핫팬츠를 집었다.
그런데 이게 아주 섹시했다.
양쪽 옆이 다 터져있고 그사이를 신발 끈처럼 묶어버린 데님 반바지였다.
이건 개방적인 서양 미녀들조차 쉽게 입고 돌아다닐 수 있는 반바지가 아니었다.
아마 바닷가 해변에서나 입을 수 있을 듯싶었다.
문제는 티셔츠였다.
몸에 딱 달라붙는 반투명한 하얀색 브이넥!
그걸로 끝이었다.
더는 말이 필요 없었다.
대한은 바로 고개를 옆으로 돌려버렸다.
더 봤다간 괜히 무슨 사고라도 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 아래쪽에서 짜릿한 쾌감이 몰려왔다.
고개를 숙여보니 어느새 리사와 틸란이 자신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너희들 거기서 뭐 하니?”
“마스터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어요.”
“아잉, 아시면서 뭘 물으세요.”
둘은 말똥말똥 그를 올려다보며 번갈아 주거니 받거니 했다.
“그, 그만!”
대한은 급히 둘의 행위를 멈추게 했다.
리사와 틸란은 이해가 안 가는 표정으로 그를 올려봤다.
“후우우!”
대한은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손가락으로 둘의 머리를 밀었다.
“시키지도 않은 짓 하지 말고 옷이나 가져와!”
“네.”
“예.”
리사와 틸란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사는 물수건을 가져와 몸을 깨끗이 닦아줬다.
틸란은 명령대로 옷을 가져왔다.
대한은 둘의 시중을 받으며 팬티를 걸쳐야 했다.
아직은 편한 것보다 귀찮다는 느낌이 더 많았다.
티셔츠와 반바지도 입었다.
그런 후 틸란의 안내로 의자에 앉았다.
틸란은 빗으로 머리카락을 살살 말아 드라이어로 멋을 내줬다.
그 사이 리사는 심플한 디자인의 엔조 플래티넘 목걸이와 팔찌 세트를 가져왔다.
마지막으로 은은한 CK 향수를 손목에 살짝 뿌리고 목에 발랐다.
“다 됐습니다.”
“어머! 마스터! 정말 멋져요.”
모르긴 해도 리사와 틸란은 대한이 넝마를 주워입어도 멋있다고 했을 것이다.
―잘 어울리시네요.
‘고마워.’
에바까지 나서서 칭찬하자 그제야 대한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식사 준비는 다 끝난 거야?’
―물론입니다.
‘류연은?’
―준비가 다 된 것 같아요.
그는 알아들었다는 뜻으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드레스룸을 나가 게스트룸을 향했다.
똑똑똑!
문 앞에서 노크하자 바로 문이 열렸다.
아무래도 류연이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
대한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멀리서 봤을 때와는 전혀 달랐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그녀를 보게 되자 그냥 숨이 턱 막혔다.
하얀 브이넥 티셔츠가 찢어지는 것은 아닐까?
괜히 걱정될 정도로 폭발적인 볼륨감!
데님 반바지의 양쪽 측면이 터져서 그사이를 X자로 마구 누비고 다니는 끈!
이건 야릇한 정도가 아니라 그냥 아예 작정하고 입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들어오세요.”
“고마워요.”
류연은 대한의 모습을 훔쳐보며 얼굴을 붉혔다.
잘생긴 얼굴에 야성이 풀풀 묻어나는 매력적인 몸!
완벽한 핏(fit)을 자랑하는 맵시와 잘 어울리는 액세서리!
정말 몇 번을 봐도 멋진 사내가 아닐 수 없었다.
“류연! 준비됐으면 우리 식사하러 갈까요?”
“네.”
대한이 손을 내밀었다.
류연도 얼른 자신의 손을 내밀어 그 위에 포갰다.
그는 대번에 깍지를 꼈다.
그리고는 벽을 향해 걸어갔다.
문으로 가지 않고 벽으로 향하는 대한!
류연은 고개를 살짝 갸우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