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만재능(Feat. 대한 TV)-185화 (184/331)

185화 <소원을 말해봐!>

대한은 류연에게 이어피스를 건넸다.

지금부터는 한국어로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제야 류연은 그가 자신에게 지금까지 유창한 중국어를 말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놀란 가슴이 콩닥거렸지만, 류연은 심호흡하며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잘 지냈어요?”

“네, 대한 오빠 덕분에 잘 지내고 있어요.”

가벼운 인사말에 한지혜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소원을 말해봐 이벤트에서 1위가 되셨어요. 소감을 물어봐도 될까요?”

“감사합니다.”

한지혜는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짧게 대답했다.

아직도 많이 긴장한 모양이었다.

그때 류연이 몸을 일으켜 한지혜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옆에서 꼭 안아주며 말했다.

“대한에게 얘기 들었어요. 힘내세요!”

중국어로 말하자 대한이 옆에서 바로 통역을 해줬다.

그래서 한지혜는 류연의 말을 알아들었다.

한지혜는 천천히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류연이 워낙 폭신(?)해서 그녀의 품에 안기자 절로 무장해제가 되어버렸다.

자신의 가슴을 슬쩍 쳐다보며 얼굴을 살짝 붉힌 것은 그녀만의 숨기고 싶은 비밀이 되었다.

류연의 몸을 방석처럼 등에 기댄 한지혜!

카메라의 구도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작고 귀여운 한지혜보다 류연에게 시선이 자꾸 쏠리는 분위기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옆에서 들어주는 류연의 진중한 모습에 시청자들도 점차 한지혜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다음은 어떻게 됐어요?”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자 친척들이 찾아왔어요.”

한지혜는 점차 편하게 자신의 과거이자 인생에 관해 얘기했다.

처음에는 부끄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한과 류연이 진지하게 들어주자 오히려 다 말해버리고 싶은 욕망이 솟구쳤다.

그래서 그런지 술술 얘기가 잘 나왔다.

부모님이 남겨주신 유산과 교통사고사망보험금은 친척들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 사라졌다.

어려웠을 때는 그렇게 도움을 많이 받아가 놓고서.

막상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다들 나 몰라라 했다.

아니 친척들은 오히려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어린 남매의 돈을 빼앗아갔다.

한지혜의 얘기를 들은 시청자들은 모두 눈시울을 붉혔다.

일부는 그녀의 친척들을 향해 마구 욕을 하고 화를 냈다.

[스타박스: 이게 실화냐!]

[파란하늘: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얘기네.]

[엘쥐네집: 세상에 저런 파렴치한 놈들이 있었네.]

[내마음의 향기: 개새끼들! 친척이 아니라 원수군.]

[너의하트: 경찰에 신고하면 못 돌려받냐?]

[짜장면자장면: 몽땅 때려잡아 죽여버리고 싶다.]

[독자어디갔어: 인간이냐? 은혜를 원수로 갚았네.]

[난알아요: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다.]

[까진발톱: 지혜야! 힘내자!]

[해바라기: 우리가 도와줄게!]

대한은 빠르게 민심을 살피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류연도 눈물을 글썽거리며 한숨을 쉬었다.

한지혜의 얘기는 계속됐다.

처음에 꺼내는 것이 어렵지 막상 얘기하고 나자 댐이 무너진 것처럼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

“고생고생하다가 겨우 월셋집을 구했어요. 하지만 그때는 이미 소망이 백혈병에 걸리고 난 후였어요. 할 수 없이 병원에 입원시키고 그때부터 병원비를 벌려고 새벽에 신문을 돌렸어요. 구청에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어요. 그래도 매달 나오는 병원비를 대는 것은 불가능했어요.”

“흐흑!”

결국, 류연이 한지혜의 말을 듣다 울음을 터트렸다.

계속 말을 하고 있던 한지혜의 눈에도 어느새 맑은 이슬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대한도 눈물을 참기 위해 자꾸 눈을 깜빡거렸다.

하지만 이미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었다.

스튜디오는 소리 없이 오열하는 사람들로 인해 숙연해졌다.

스태프는 물론이고 시청자들까지 모두 눈물과 한숨을 쉬었다.

“항암치료와 골수이식 비용으로 1억 원이 필요하다고 하셨어요. 건강보험공단에서 많이 감당해준다고 해도 당장 몇천만 원은 있어야 한대요. 거기에다 소망이는 백혈병 치료제인 항암제를 매일 먹고 있어요. 제가 부담해야 할 약값만 한 달에 280만 원이에요.”

“그럼 지금까지 그 돈을 전부 한지혜 양이 감당했다는 말인가요?”

“아니요. 건강보험공단과 구청 등에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하지만 병원비가 계속 밀리고 쌓여서 이제는 병원에서 쫓겨나게 될지도 몰라요.”

“아!”

불행은 절대 혼자 오지 않는다고 했다.

한지혜와 남동생 한소망은 교통사고로 인한 부모님의 사망과 가난 그리고 불치병이라는 종합불행선물 세트를 악마로부터 선물 받았다.

당장 눈앞에 지옥이 펼쳐졌다.

도와줘야 할 친척들은 오히려 어린 남매를 윽박지르고 속여서 재산을 강탈해갔다.

거기에다 병원비가 가장 많이 나오는 불치병인 백혈병까지 걸려버렸다.

이제는 그 어떤 노력으로도 현실을 타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얘기 잘 들었습니다. 잠시 광고를 보고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대한은 일단 한 타임 끊어서 갔다.

류연과 한지혜뿐만 아니라 스튜디오에 있는 스태프들까지 전부 울고 있으니 이대로는 방송을 진행하기가 힘들었다.

광고가 나가자 류연은 한지혜를 다시 꼭 안아줬다.

한지혜도 류연이 마치 엄마라도 되는 양 꼭 끌어안았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서로 느껴지는 따스한 정이 흘러갔다.

그도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그제야 코디들이 정신을 차리고 우르르 달려들었다.

대한과 류연 그리고 한지혜는 코디들에게 둘러싸였다.

덕분에 간신히 감정을 억누르고 이성을 챙길 수 있었다.

광고가 끝나자 여지없이 카메라가 돌아갔다.

멀쩡해진 모습이 된 셋은 본격적으로 방송을 시작했다.

“여러분! 모두 들으셨죠?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는 일은 분명히 있습니다. 가난은 죄가 아닙니다. 좀 불편할 따름이죠. 그렇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 법입니다. 전 한지혜 양과 한소망 군을 돕고 싶습니다.”

“저도 돕고 싶어요.”

대한은 중간에 톡 끼어든 류연을 보며 활짝 웃었다.

“류연! 고마워요.”

“천만에요.”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카메라를 봤다.

“저와 류연은 이렇게 한지혜 양과 한소망 군을 돕기로 했어요. 여러분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있으신 분은 달풍선을 쏴주세요. 아메리카TV에선 지금부터 들어온 달풍선은 수수료를 떼지 않고 100% 전부 지급하기로 했어요. 그러니 안심하시고 쏘셔도 됩니다. 동시송출을 하는 유티비와 트워치도 마찬가지로 중간에 수수료를 떼지 않고 전액을 보내주기로 약속했어요. 그러니까 마음 놓고 비트와 후원금을 보내주세요.”

대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달풍선과 비트 그리고 후원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메리카TV, 유티비, 트워치 등 동시 송출된 대한TV는 전 세계로 중계됐다.

“혹시 달풍선과 비트, 후원금을 올릴 수 없는 분들은 아래 자막으로 나가는 계좌로 후원금을 보내주셔도 됩니다.”

에바는 대한이 안내하는 동안 자막으로 세계 각국의 은행 계좌번호를 보냈다.

국가와 언어에 따라 나눠서 보낸 아주 합리적인 방법이었다.

모니터를 보는 대한과 류연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우와! 벌써 후원금이 1억 원을 돌파했어요.”

“달풍선과 비트도 엄청나게 들어오고 있어요.”

한지혜는 모니터를 봐도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의 그녀도 일단 대한과 류연이 크게 기뻐하자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눈만 껌뻑거렸다.

“고맙습니다. 대한TV의 구독자님들과 시청자분들의 귀한 후원금은 단 한 푼도 흘리지 않고 100% 한지혜 양에게 전달하겠습니다. 이제 한지혜 양이 사는 월세방으로 한번 가보도록 하죠.”

대한은 한 손을 살짝 위로 들었다.

그의 머리 위 모퉁이에 화면이 떠올랐다.

거기엔 한지혜가 지금 사는 집이 보였다.

미리 찍어놓은 자료화면이었다.

대한과 류연이 보고 있는 모니터에도 같은 화면이 나왔다.

한지혜는 남모르게 한숨을 지었다.

좁고 음습한 반 지하실 방.

들어가고 싶지도 않았고 살고 싶지도 않았다.

저기에서 잘 때마다 부모님과 행복하게 지냈던 옛날 집이 생각났다.

[내이마루: 저건 다 뭐냐?]

[NO재팬: 실화냐? 저기서 어떻게 살아?]

[자주국방: 아직도 저런 지하 방이 있네.]

[핵무장: 저건 반지하도 아니잖아.]

[욜로욜로: 저런 곳은 사람이 살지 않도록 폐쇄하는 게 정답이다.]

[강남기자: 신고하자.]

[구청장님: 그럼 우리 지혜는 어디 가서 살고.]

[개소주한잔: 그거야 대한이 알아서 해주겠지.]

[한편의시: 그렇다. 저런 곳은 사람이 살 수 없다. 아니 살아서는 안 된다.]

[바람의나라: 너무하네.]

[트럼프방빼: 에휴! 그동안 지혜가 저런 곳에서 살았구나.]

시청자들도 매우 놀랐다.

아무리 봐도 저건 사람이 살집이 아니었다.

무슨 토굴도 아니고, 대한민국에 저런 데가 있다는 게 다들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한지혜 양!”

“네?”

“나도 반지하 방에 살아봐서 알아요.”

“아! 그랬었죠!”

“알고 있었어요?”

“당연하죠. 제가 얼마나 오빠 방송을 자주 봤는데요.”

한지혜의 말에 대한은 속으로 울컥했다.

가난하게 살아봤던 사람만이 가난이 어떻다는 것을 안다.

마치 굶주려본 사람이 빵의 참맛을 아는 것처럼 말이다.

지혜는 일부러 밝게 웃으며 말했다.

“아하! 내 열성 팬이셨구나.”

“지금 오빠의 얼굴을 보면 모든 것이 거짓말 같아요. 그땐 상당히 뚱뚱했었는데 이젠 얼짱에다 몸짱에다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여행도 많이 가시잖아요.”

“그게 부러워요?”

“당연하죠.”

“저런 곳에서 오래 살면 몸 버려요.”

“…….”

한지혜는 눈을 깜빡거리며 대한을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정말 전에 대한이 살던 집이 반지하 방이었다.

류연도 대한의 동영상을 다 봐서 그런지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는 이런 곳에서 사세요.”

대한의 말이 끝나자마자 화면이 확 바뀌었다.

방 두 개짜리 연립주택이었다.

하나는 방이 파랗고 다른 하나는 방이 분홍색이었다.

입구부터 대한이 모습이 나오더니 그동안 준비했던 선물을 소개했다.

그 모습에 한지혜가 깜짝 놀란 모습을 보였다.

카메라가 한지혜의 얼굴을 풀샷으로 잡았다.

눈동자가 흔들리고 볼이 상기된 얼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제가 정말 저기서 살아도 돼요?”

“물론이죠. 이건 제가 드리는 선물이에요. 앞으로 소망과 같이 저기서 사세요.”

한지혜가 잠시 대한을 쳐다보다가 다시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마치 뭔가에 홀린 듯 쳐다봤다.

넓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아담하고 깨끗했다.

사는데 필요한 가전제품과 가구도 다 있었다.

위치도 나쁘지 않았고 교통도 편리했다.

“저! 그런데 저기 월세가 얼마예요?”

그때 한지혜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아무래도 월세가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그냥 살면 돼요. 제가 전세로 얻어놓은 곳이거든요. 그래도 전기세와 물세는 지혜 양이 내줘야 해요.”

“아!”

대한은 개구쟁이처럼 말하며 윙크를 했다.

그제야 한지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에 그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집을 하나 사주고 싶었다.

하지만 미성년자에게 집을 사줬다간 친척들이 다시 나타나 하이에나처럼 물어뜯을 게 분명했다.

성년이 될 때까지는 차라리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것이 낫다.

전세금 1억 원이 잠기게 되는 부작용이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얼마든지 쉽게 감당할 수 있는 범위였다.

시청자들도 아주 좋아했다.

그들이 봐도 이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대한은 댓글 창을 보면서 다시 말을 이어갔다.

“한지혜 양을 위해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누군데요?”

“한번 모셔보겠습니다.”

그가 손짓하자 스튜디오에 문이 열리면서 일남일녀가 들어왔다.

둘 다 깔끔하게 정장을 입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이쪽으로 앉으세요.”

두 사람은 대한과 류연의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한지혜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라서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까요?”

“네, 저는 법무법인 율율의 정반석 변호사입니다.”

“유화정 회계사입니다.”

그들의 정체는 정반석과 유화정이었다.

“정반석 변호사님과 유화정 회계사님이셨군요. 그런데 두 분은 어떻게 나오게 되셨죠?”

“대한TV와 코레재단의 의뢰를 받고 나왔습니다.”

“대한TV는 알겠는데 코레재단이라니요?”

대한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3인칭 화법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번에 새롭게 새워진 재단입니다. 모기업은 코레 그룹입니다.”

“아! 그러니까 그 그룹에서 좋은 일을 하겠다고 세운 재단이군요.”

“그렇습니다.”

“혹시 한지혜 양을 도와주겠다는 건가요?”

“네, 단순히 도와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억울한 일을 풀어주고 해결해주려고 나왔습니다.”

“한지혜 양과 한소망 군의 강탈당했던 재산을 찾아주겠다는 말처럼 들리네요.”

“정확히 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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