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철벽 방어>
“놈은 이미 무력해졌어. 화가 나면 화풀이를 해도 돼.”
“정말요?”
“응.”
소피아는 그의 말에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무척이나 귀여웠다.
시간이 좀 지나면 아마 남자들 눈물을 쏙 빼고 다닐 것이다.
소피아가 고개를 들고 대한을 올려다봤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용기를 냈다.
소피아는 조심스럽게 까를로스에게 다가가더니 냅다 등을 발로 걷어찼다.
툭!
까를로스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7살짜리 여자아이가 발로 차면 얼마나 아프다고 반응을 보이겠는가!
그저 툭 한번 건드린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소피아의 얼굴은 마치 인생의 중대 난제라도 해결한 사람처럼 속 시원한 표정이었다.
“이게 끝이야?”
“네, 나를 괴롭힌 벌로 때려줬어요.”
“그래. 잘했다.”
이거면 됐다.
사실 놈을 몇 대 때렸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름대로 자신이 정한 벌을 줬다는 인식이 중요하다.
이 정도라면 아마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데에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대한은 살짝 무릎을 꿇었다.
그 동작을 이용해 주먹으로 까를로스의 턱을 내리찍었다.
빡!
턱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까를로스는 그대로 기절해 축 늘어져 버렸다.
대한은 놈을 내버려 두고 소피아를 품에 안았다.
지하실을 나가기 전에 위를 한번 쳐다봤다.
이미 바깥은 코레실드의 대원들에 의해 진압된 상태였다.
처음부터 납치범들의 위치는 알고 있었다.
코레실드 대원들은 월등한 숫자를 이용해 납치범들을 끊임없이 압박했다.
사방에서 조여오는 막강한 화력에 납치범들은 꼼짝달싹도 하지 못했다.
결국, 마르코는 온몸이 벌집이 되어버렸다.
후안은 두 팔과 다리에 총상을 입고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그걸 보니 셋 중 까를로스의 상태가 가장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더는 손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소피아를 구출했다. 지금 지하실에서 위로 올라간다.”
―로져!
―로져!
대한은 대원들에게 신호를 보내고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그는 한 손으로 재빨리 소피아의 눈을 가렸다.
피비린내가 나는 끔찍한 참상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것이다.
폐공장 바깥으로 나오자 수십 명의 시선이 일제히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경찰은 물론이고 경찰특공대대원들까지…….
다들 묘한 눈빛으로 대한을 쳐다봤다.
하지만 그는 신경도 쓰지 않고 코레실드의 방탄 차량을 향해 걸어갔다.
“제가 맡겠습니다.”
“그래.”
코레실드 산타페지사의 홍일점 티아나가 소피아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대한은 미련 없이 소피아를 티아나에게 넘겼다.
처음에는 바둥거리며 그녀에게 가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티아라가 미소를 지으며 어르고 달래자 금세 태세전환을 했다.
티아나는 소피아를 데리고 방탄 차량으로 들어갔다.
푸타타타타!
한쪽 공터에 헬기 한 대가 착륙했다.
검은 정장을 입은 경호원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 사이로 주름이 자글자글한 에밀리오 회장의 모습이 보였다.
대한은 그가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에바를 불렀다.
‘에바! 여기까지만 하자.’
―네, 안드로이드 커피와 동기화를 종료합니다.
스팟!
에바의 말이 끝나는 순간!
대한의 시야가 확 바뀌었다.
어느새 그는 테헤란로에 있는 대한타워 펜트하우스 사무실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정말 마법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신기한 일이었다.
‘이걸 게임으로 만들면 아주 대박이 나겠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돈은 벌고 있습니다.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둘이 이러쿵저러쿵 대화하는 사이!
젤리 같은 투명한 액체가 아래로 빠져나갔다.
투명한 물방울 같은 커다란 구체도 그의 몸을 통과하듯 바닥으로 스며들었다.
―이제 곧 후티 반군의 자폭 무인기 공격이 시작됩니다.
‘어서 사우디아라비아로 가보자.’
―넵.
순간 사무실은 사막으로 변해버렸다.
대한은 아직도 모래바람이 용을 쓰고 있는 아브카이크(Buqayq) 단지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정말 석유가 없다면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은 장소로군.’
―동감입니다. 석유는 이들에게 검은 황금이자 알라의 축복이죠. 하지만 대한민국도 곧 산유국이 될 수 있습니다. 동티모르의 보보나로 유전에서 석유가 쏟아져나오기 시작하면 말이죠.
‘그렇게 되겠지.’
에바의 말에 그래도 조금은 위로가 됐다.
―예멘 후티 반군의 자폭 무인기들이 몰려옵니다.
‘어디 보자.’
벌써 시간이 3시간 가까이 지났다.
대한은 그녀의 말에 두 손을 앞으로 쭉 내뻗었다.
하늘을 유영하고 있는 에어볼 하나를 아래로 잡아당겼다.
그러자 시점이 확 변했다.
마치 아브카이크 단지 상공의 에어볼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일명 전지적 작가 시점이 된 것이다.
―현재 후티 반군의 콰세프(Qasef) 개량 무인기 153대가 접근하고 있습니다.
‘코레실드의 대원들에게 전해줘!’
―이미 15분 전에 경고해놓았습니다. 지금은 자폭 무인기를 타격할 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입니다.
‘잘했어. 그런데 ‘이지스 디펜스’나 다른 PMC들은 뭐 하고 있는 거야?‘
―자폭 무인기들이 접근하고 있는 것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대한은 속으로 혀를 찼다.
전 세계 군사비 지출 3위에 오른 사우디아라비아다.
그런데 한 대에 겨우 만오천 달러밖에 하지 않는 후티 반군의 저렴한 무인기조차 발견하지 못해 이렇게 또 허를 찔리다니 정말 안타까움이 눈 앞을 가렸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건 전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잘못이다.
이런 공격이 올 수 있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미리 대비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사이!
치명적인 위협은 예고 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모르긴 해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우디아라비아는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교훈을 깨닫게 해준 코레실드와 대한민국 방산 업체들엔 젖과 꿀이 흐르는 포상과 대가가 떨어지게 될 것이다.
콰하아아아!
모래바람이 더욱 기승을 부렸다.
그래서인지 반경 5km에 다다른 자폭 무인기들을 코레실드를 제외하곤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
번쩍번쩍! 번쩍번쩍!
드디어 레이저건들이 빛을 번쩍거렸다.
코레실드가 운용하고 있는 비호복합과 레드백 장갑차에 장착해 업그레이드한 신무기다.
동시에 또 다른 비호복합 한대의 30mm 기관포 2문에서도 불이 뿜어졌다.
푸르르르륵 푸르르르륵!
좌우로 탄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럴 때마다 모래바람 속에서 공중폭발이 일어났다.
펑 퍼펑 퍼퍼펑 펑펑!
쾅 콰쾅 쾅쾅쾅 쾅쾅!
그런데 모래바람이 불자 순식간에 폭발의 흔적이 쓸어가 버렸다.
눈으로 보면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폭발성을 들은 ‘이지스 디펜스’와 기타 PMC는 난리가 났다.
다들 허겁지겁 밖으로 나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미국에서 들여온 스트라이커 장갑차가 즉시 가동에 들어갔다.
기관포, 미사일과 함께 레이저(5kW)무기까지 장착한 복합 대공체계였다.
거기에다 미국 최고의 방산 업체에서 들여온 60kW급 레이저무기를 장착한 중형트럭도 급가동을 시작했다.
‘이지스 디펜스’의 관계자들은 서둘러 장비들을 가동해 자폭 무인기의 타격에 나섰다.
그런데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일대를 덮은 모래바람 때문에 탐색 및 추적 레이더가 먹통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어떻게든 하나라도 맞춰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번쩍 번쩍 번쩍 번쩍!
트르르르륵 트르르르륵!
미국의 레이저무기에서 빛이 난무했다.
복합 대공체계의 기관포도 불을 뿜었다.
나중에는 미사일까지 마구 쏴댔다.
그런데도 명중률은 정말 형편없었다.
그에 비하면 코레실드가 운영하는 비호복합의 활약은 놀라웠다.
대응도 빠르고 명중률도 매우 높았다.
더불어 코레실드의 레이저건들이 일대를 철벽처럼 방어했다.
명중률은 말할 필요도 없이 그냥 백발백중이었다.
푸르르르륵! 푸르르르륵!
번쩍번쩍! 번쩍번쩍!
비호복합의 대공포가 화망을 형성하기도 전에!
자폭 무인기는 재까닥 폭발해버렸다.
레이저건의 불빛이 일정 범위에 들어온 자폭 무인기들을 마구 떨어뜨렸다.
펑 퍼펑 퍼퍼펑 펑펑!
쾅 콰쾅 쾅쾅쾅!
하늘에서 폭죽이 터지듯 연속적으로 불꽃이 환하게 일었다.
날개를 잃고 우수수 땅으로 떨어지며 폭발하는 무인기들!
옆에서 보면, 마치 하늘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보호막이라도 쳐놓은 것 같았다.
자폭 무인기는 그 보호막에 부딪혀 자폭하는 듯한 착시현상을 불러일으켰다.
각 PMC 관계자들은 그 모습에 입을 떡 벌리고 놀라워했다.
그들의 입안으로 모래가 들어가는 것도 느끼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정말 대단하군요.”
“기가 막히네요. 이런 악천후에 저런 가공할 성능을 보이다니.”
“우리 레이더가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저희 대공체계도 저렇게까지 정교하지는 않았습니다.”
“업그레이드한다더니 확실히 뭔가 손을 본 모양입니다.”
“이거 잘만 활용하면 세계의 대공체계시장을 휩쓸 수도 있겠어요.”
한화디펜스와 LIG넥스원의 기술진들!
옹기종기 모여서 연신 감탄해 마지않고 있었다.
성질 급한 기술자는 미래의 틈새시장을 선점하는 꿈을 꾸고 있었다.
그들의 뒤로 사우디아라비아 국방부에서 나온 장교들이 보였다.
이들은 앞으로 코레실드가 선보인 대활약에 관해 증언을 해주실 귀한 몸들이었다.
결국, 153기나 되는 후티 반군의 자폭 무인기 공격은 완전히 실패했다.
아니 PMC 코레실드는 대량의 자폭 무인기의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내는 엄청난 위업을 달성했다.
대한은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에바를 불렀다.
‘에바! 쿠라이스 유전(Khurais oil field)의 상황 좀 살펴보자.’
―네, 마스터!
에바가 즉시 홀로그램 하나를 띄웠다.
덕분에 인근 쿠라이스 유전의 상황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쪽은 이곳과는 달리 모래바람이 심하게 불지 않았다.
그런데도 예멘의 후티 반군 자폭 무인기에 의해 극심한 피해를 보고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유폭이 일어났다.
새까만 연기가 높이 치솟으며 하늘을 온통 검은 구름으로 뒤덮어버렸다.
‘저곳은 미국의 PMC ‘블루해클’과 계약을 맺었다고 했지?‘
―네, 맞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피해를 많이 입은 거야? 저들도 비호복합 같은 대공체계를 도입한 것으로 아는데.‘
―각국에서 개발된 대공체계는 대부분 중고도와 고도도 방어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저고도로 날아오는 작은 무인기를 방어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지요. 그것에 비하면 비호복합은 북한의 무인기와 저공 침투용 비행기인 AN―2를 방어하기 적합하게 개발되었습니다.
’무조건 비싼 무기가 좋은 것만은 아니군. 하긴 만오천 달러밖에 하지 않는 무인기를 격추하기 위해 수백만 달러나 하는 대공미사일을 쏘는 것도 효율적인 방식은 아니지.‘
―맞습니다. 어쨌거나 이제 저들은 계약을 유지하기가 힘들 겁니다.
’거액의 피해배상금이나 물지 않으면 다행이겠다.‘
‘이지스 디펜스’도 아마 ‘블루해클’과 별 차이가 없게 될 것이다.
후티 반군의 자폭 무인기를 막은 것은 코레실드지 그들이 아니었다.
코레실드에 하청을 줬으니 자기들이 지킨 거나 마찬가지라고 우겨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코레실드에게 정해준 방어범위는 엄연히 지상으로부터의 위협을 막는 것에 국한되어 있었다.
일대의 방공망을 책임지는 것은 기본적으로 이지스 디펜스의 일이라는 것이다.
―저들이 가져온 레이저무기가 참 답답하네요. 명중률이 형편없어요.
‘그거야 날씨가 좋지 않아서 그런 거지.’
―적들이 날씨 봐가면서 공격해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번에 확실히 보여줬잖아요.
‘맞는 말이야. 저런 성능으로는 앞으로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내밀 거야.’
―그래도 워낙 미국의 무기 시장이 커서 묻혀버리지는 않을 거예요.
‘조금 더 연구하고 업그레이드한다면 말이지. 그것보다 앞으로 코레실드가 바빠지겠어. 접근해올 사람도 많아질 거고.’
―코레실드 보다는 레이저건을 만든 코레디펜스에 더 많이 접촉해올 것입니다.
대한은 에바의 예상이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아마 제일 먼저 미국이 접근해올 것이다.
온갖 사탕발림을 해가며 공동개발을 추진하자고 유혹할 것이다.
하지만 대한은 조금도 그렇게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미국의 무기 시장이 크기는 하지만 팔아먹을 곳이 미국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늘 선보인 레이저건의 성능이 소문나면 당장 팔아먹을 곳은 널리고 널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