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화 <납치사건>
날카로운 서희의 질문!
프란시스 쿠텐 대통령은 헛기침하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뻔한 수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보보나로는 동티모르의 지방 자치주다.
동서가 54km, 남북이 55km 정도다.
남서쪽으로 인도네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그런데 공처럼 움푹 파인 모양이라 국경선이 안쪽으로 깊이 들어와 있었다.
만약 처음과 달리 일부가 아닌 보보나로 전체의 개발권을 받게 된다면 국경선 방어에 엄청난 지출을 떠안게 되는 것이다.
‘자기 나라의 국토를 찢어주지 못해서 안달이 났군.’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라서 저들도 딱히 방법이 없을 겁니다.
‘비유가 좀! 크흠! 어쨌든 그래도 석유와 천연가스 같은 지하자원을 이용하면 살림이 좀 나아질 텐데.’
―앞으로는 그렇게 되겠죠.
대한은 그녀와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저번에 동티모르 일대를 스캔할 거라고 했지?’
―네, 그랬죠.
‘결과가 나왔어?’
―직접 지도를 보시죠.
에바는 벽 한쪽에 동티모르의 지도를 활짝 펼쳤다.
그런 다음 지금 서희가 극구 주는 것을 안 받겠다고 버티고 있는 보보나로 지역을 크게 확대했다.
그녀는 보보나루 북쪽 끝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곳 바다와 인접한 지역 아래에 유전이 존재합니다.
‘혹시 해저유전이야?’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굳이 바다에다 유정을 뚫지 않아도 됩니다. 바닷가에다 파이프만 박아넣어도 석유가 펑펑 잘 쏟아질 것입니다. 거기에다 530억 달러(약 57조 원) 규모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된 것으로 알려진 티모르해의 여러 광구까지 길게 연결되어 있어서 잘만하면 천연가스 대박이 터질 수도 있습니다.
에바의 발언에 대한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티모르해는 동티모르와 호주 사이의 바다를 말한다.
동티모르 동남쪽 인근 해저로 길게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된 것으로 알려진 광구들이 존재했다.
그중 제일 유명한 것이 292억 달러(약 34조 원)에 육박하는 천연가스와 석유가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 그레이트 선라이즈 광구다.
보보나로에서 동티모르를 가로질러 동동남쪽 370km 밖에 있는 그레이트 선라이즈 광구가 어떡하다 보보나로 유정(가칭)과 연결되었는지 참 신기했다.
‘다른 지하자원은?’
―지도에 표시한 곳곳에 여러 가지 지하자원이 묻혀있습니다. 물론 양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럼 굳이 거절하지 않아도 되는 거 아냐?’
대한은 그녀를 향해 합리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유전이 있는 보보나로 북서부 지역만 받는 게 제일 좋습니다. 보보나로 전체를 받으면 정말 국경수비대라도 만들어야 하거든요.
‘동티모르에는 유엔군이 들어와서 평화유지를 담당하고 있잖아.’
―그들도 인도네시아군과 직접적인 분쟁은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보보나로 북서쪽만 받아 챙기는 게 좋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그는 한 손으로 자신의 턱을 만지작거렸다.
머리로는 이해가 갔다.
하지만 동티모르의 사정을 생각하니 아주 안쓰러웠다.
제주도만 한 면적의 보보나로의 개발권을 받는다면 득도 있겠지만 실도 클 것이다.
그래도 다른 나라처럼 동티모르에 와서 단물만 쏙 빼먹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만약 내가 보보나로 지역 전체를 맡아서 개발하겠다고 하면 에바는 어떻게 할 거야?’
―당연히 마스터의 뜻대로 따라야지요.
에바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하지만 마스터플랜을 조금 바꿔야만 합니다.
‘어떻게 바꾸자는 말이야?’
사무실의 환경이 다시 바뀌었다.
이제는 바닥에 거대한 동티모르의 지도가 깔렸다.
그리고 보보나로의 지형이 천천히 크게 확대되어가고 있었다.
―먼저 이곳에서 석유와 천연가스를 채굴합니다.
‘전량 대한민국으로 가져가면 참 좋을 것 같은데.’
―그렇게 하면 나라 살림에 큰 보탬이 되겠죠.
‘계속 말해봐!’
―네.
에바는 인도네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지역을 붉은 색깔로 물들였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국경에 무인 방어시스템을 세웁니다.
‘아! 그게 있었구나.’
―물론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모병해서 병력을 확충해야 합니다.
‘모병은 동티모르 정부나 국방부에서 해야 하는 거 아냐?’
―지금도 예산이 부족하다고 병력을 늘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느니 차라리 우리가 용병을 모병하고 대신 용병고용에 대한 대가를 석유나 천연가스로 받는 게 낫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당연히 국경을 대신 지켜주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이다.
그게 싫다면 자주국방을 하면 된다.
‘나중에 훈련된 용병들을 내놓으라고 하면 어떻게 해?’
―그럼 그냥 줘버리면 됩니다. 우리가 주는 임금을 동티모르 국방부가 대신 줄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죠.
생각해보니 자신이 모병과 징병의 의미를 착각한 것 같다.
대한은 머리를 흔들고 다시 에바의 말에 집중했다.
―용병을 모병해서 해병대 겸 국경수비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럼 훈련 빡세게 시켜야겠네.’
―고속정도 사서 해안수비대를 조직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먼저 고속정을 정박시킬 항구부터 세워야지.’
―부두가 생기면 수산업 발전을 위해 어선과 원양어선을 들여오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가장 큰 문제를 대한이 풀어버리자 나머지는 술술 풀려나갔다.
‘이제 다음은 뭐야? 육군과 해군 다음이면 공군이겠구나.’
―공군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국방비, 아니 자금이 필요합니다. 당연히 전투기는 비싸서 안 됩니다.
‘아쉽네. 전투기를 꼭 한번 조종해보고 싶었는데.’
―그냥 중고도 무인기 띄워서 정찰이나 자주 하죠.
‘하다못해 수리온 헬기라도 가져와야 하는 거 아냐?’
―차라리 무장 드론을 운영하시죠.
그녀는 어떻게든 돈을 아끼려고 노력했다.
물론 이건 전부 쓸데없는 소리에 불과했다.
적도 정지궤도에 스텔스 모드로 대기 중인 히릭스!
아니 우주셔틀이라도 하나 상공에 띄워놓으면 끝이다.
인도네시아가 마음먹고 동티모르를 병합하려 들지 않는 이상!
양국 간에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친 인도네시아 반군은 경계해야 한다.
보보나로에 용병훈련장이 생기면 아마 그 자체로 분쟁억지력이 생길 것이다.
그런데도 반군이 보보나로를 공격해온다면 답이 없다.
그땐 지옥을 보여주는 수밖에!
‘사실 보보나로에 석유만 터지면 용병을 모병하거나 지역을 개발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잖아.’
―그 말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동티모르 정부와 계약을 잘못 맺으면 나중에 골치 아파질 수 있습니다.
‘그건 앞으로 서희가 잘해야지.’
―알겠습니다. 협상을 잘해서 최대한 유리하게 계약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대한과 에바는 한동안 동티모르의 보보나로를 어떻게 개발하고 운영할지 머리를 맞댔다.
그러다 무대를 멕시코로 옮겼다.
‘우와! 여긴 진짜 사람 많구나.’
―여기가 이번에 코레실드에서 세운 멕시코시티의 산타페 지사입니다.
산타페는 폴랑코, 로마스와 함께 멕시코시티의 대표적인 부촌이었다.
그만큼 안전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납치범들이 노리는 주요 타깃들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여긴 유럽풍으로 아주 멋진 곳이네.’
―반대로 이런 곳도 있습니다.
주변의 모습이 순간 북동부의 우범지대로 바뀌었다.
허름한 집과 사람의 그림자도 거의 보이지 않는 거리.
간간이 보이는 마약쟁이들과 갱들이 멕시코시티의 극과 극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대통령이 있고 군대가 있는 멕시코시티에는 마약 카르텔이 적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편이라고 한다.
여기서 ‘상대적’이라는 게 함정이다.
우범지대가 따로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유동적이다.
특히 멕시코시티의 몇몇 위성도시는 치안이 최악이라서 강도와 살인이 빈번하다.
어쨌든 지금 코레실드 산타페 지사에서는 막 하나의 작전을 진행하고 있었다.
―우리가 시간 맞춰서 잘 왔네요.
‘혹시 이게 첫 번째 작전인가?’
―네, 그렇습니다. 텔레비사(Televisa)의 에밀리오 회장의 손녀 소피아가 최근 납치범들에 의해 납치를 당했습니다.
‘에밀리오 회장이 꽤 부자인가 보군.’
―멕시코에서 아주 유명한 거부입니다. 재산이 29억 달러나 된다고 하네요.
대한은 반사적으로 자신의 재산을 생각해봤다.
이리저리 돈을 쓰고 있었지만, 얼추 4천억 원대다.
달러로 하면 아직 4억 달러도 안 된다.
물론 비자금을 합치면 그보다 훨씬 많다.
하지만 비자금은 말 그대로 비자금일 뿐이다.
세상에 드러나서는 안 되는 돈이란 말이다.
그러니 공식적인 자신의 재산은 에밀리오 회장과 감히 비교가 안 된다.
대한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코레실드의 산타페 지사 대원들은 빠르게 검은색 방탄 차량에 오르고 있었다.
방탄복과 방탄모를 장비하고 얼굴에는 검은색 복면을 쓴 모습!
마치 대테러부대나 경찰특공대 같은 포스가 풍겼다.
부우웅! 부우웅!
방탄 차량이 빠른 속도로 도로 위를 질주했다.
그 뒤로 멕시코시티의 경찰차들이 줄줄이 따라붙고 있었다.
―아직은 의뢰인을 믿을 수 없다며 범인의 추적만 의뢰했습니다.
‘에밀리오 회장이 추적만 의뢰했다면 추적만 해주면 되지. 왜 대원들을 중무장시켜 출동시키는 거지?’
―일종의 보여주기 위한 쇼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정도 장비에 이런 무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목적이라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그리고 납치범들이 있는 곳이 우범지대로 유명한 이스타팔라파(Iztapalapa)입니다. 무장하지 않고 가기에는 너무 위험한 곳이죠.
일단 하나의 의문은 해소됐다.
대한이 에바에게 다음 질문을 했다.
‘납치범은 어떻게 찾았지?’
―그때 한번 언급했다시피 소피아의 체취를 에어볼에 입력시켰습니다. 직접 보시죠.
에바의 말이 끝나자 주변 환경이 온통 새까맣게 변했다.
대신 허공에 뜬 수십 개의 에어볼이 뭔가를 찾아 빠르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산타페에서 출발한 에어볼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가 이내 한곳을 향해 우르르 몰려가기 시작했다.
‘지금 저게 냄새에 반응하고 있는 모습인가?’
―네, 그렇습니다. 사람의 후각에 1만 배에 달한다는 개보다 훨씬 민감한 후각을 구현해 놓은 에어볼입니다. 이것에 도움을 받는다면 특정한 대상을 찾는 게 불가능한 것만은 아닙니다. 더구나 에어볼은 말이 통하지 않는 개와는 달리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습니다.
에바의 그럴듯한 설명에 그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개보다 민감한 후각이라면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는 말이었다.
문제는 이 냄새와 체취라는 게 빠르게 섞이고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초기대응이 중요했다.
코레실드 산타페 지사는 의뢰가 들어오자마자 바로 에어볼을 가동했다.
물론 에어볼의 존재는 코레실드 산타페지사장인 안드로이드 커피만이 알고 있었다.
―위치가 특정됐습니다. 우리 먼저 가볼까요?
‘좋지.’
에바는 납치범들이 있는 장소로 순간 이동하듯 장소를 옮겼다.
수십 개의 에어볼이 실시간으로 폐공장 안팎의 상황을 비춰주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소피아가 저기 있네요.
‘나이가 7, 8세밖에 안 되는 어린 여자아이를 납치했군.’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공포에 질려 오돌오돌 떨고 있는 소피아!
대한은 그녀의 모습에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당장 납치범들을 일망타진하는 게 낫지 않을까?’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이들이 경찰에 의해 진압되는 것을 보는 게 정신건강에 더 이로울 수도 있어요.
‘그러다가 불상사라도 생기면 어떻게 해?’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에어볼을 이용해 즉각 납치범들을 진압하겠습니다.
공중을 둥둥 떠다니는 에어볼!
납치범 3명의 머리 위에서 그들을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의 인상이 참 더러웠다.
덩치는 산 만 하고 온몸에 문신이 가득했다.
누가 봐도 한눈에 마약 카르텔 조직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었다.
“까를로스! 이 개새끼가 아직도 돈을 안 보냈어!”
“후안! 진정해!”
“야! 마르코! 돈 안 들어왔어?”
“조금만 기다려! 천만 달러가 뉘 집 개 이름인 줄 알아?”
“수십억 달러의 재산을 가진 놈이야. 손녀가 납치됐는데 겨우 천만 달러를 못 구한다는 게 말이 돼?”
“분명히 놈은 돈을 보낼 거야. 그럼 우린 조용히 여길 떠나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거야.”
“아! 생각만 해도 벌써 짜릿하다.”
세 놈은 확실히 정상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