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만재능(Feat. 대한 TV)-177화 (176/331)

177화 <일을 하자>

대한은 가만히 생각해봤다.

인공지능과 안드로이드로 가득한 세상!

전장에선 무기를 든 전투 로봇들이 난무하고 이들의 공격을 피해 지하로 파고드는 인류!

완벽한 인류멸망의 시나리오였다.

물론 자기 생각이 좀 앞서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긴 했다.

그래도 이게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에바! 이거 너무 위험한 거 아냐?’

―전투 로봇을 생산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탐사 로봇과 안드로이드, 다목적 휴머로이드 로봇을 주로 생산할 계획입니다.

‘그럼 로봇과 안드로이드는 얼마나 만들 생각이지?’

―1차로 중대 규모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 2차는? 대대 규모겠네.’

―그렇습니다.

‘3차는?’

―아직 계획이 없습니다. 현재까진 2차가 끝입니다.

대대 규모라면 300명에서 1000명 정도다.

그 정도는 달기지도 있고 하니 그럭저럭 감당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았어. 딱 거기까지만 허락하지.’

―감사합니다.

‘하지만 혹시라도 사고가 나지 않도록 확실하게 안전장치를 마련해둬!’

―예, 어떤 걱정을 하시는지 알 것 같습니다. 안전장치가 삼중으로 마련되어 있지만, 마스터께서 불안해하시니 더 확실한 안전장치를 추가해놓겠습니다.

‘그래. 고마워!’

에바의 말에 불안했던 마음이 좀 풀렸다.

그녀의 안내를 따라 대한은 달기지를 구경했다.

로봇 체임버, 안드로이드 인큐베이터, 지하광산, 핵융합로, 자동화공장, 멀티 랩(Lab), 에너지 저장장치, 창고 등

온갖 생산시설과 연구시설이 가득했다.

물론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일단 구획만 잡아놓고 하나씩 차츰 완성해나가려고 준비 중이었다.

하지만 전체계획도와 설계도만 봐도 이게 보통시설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스팟!

불이 꺼지듯 천장이 검게 변했다.

대한은 그제야 자신이 지금 어디에 와있는지 깨달았다.

마치 조금 전까지 4D 영화관에 들어가서 즐기다가 나온 기분이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크게 기지개를 켰다.

동시에 천장이 점차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강남 일대의 전경과 푸른 하늘이 시원하게 눈에 들어왔다.

‘최고다!’

대한은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대한타워 펜트하우스는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아니 환상적이었다.

그는 앞으로 이곳에서 지내기로 마음먹었다.

아직 청담동 펜트하우스를 보진 못했지만 절대 여기보다 낫지는 않을 것 같았다.

대한은 사무실로 발길을 돌렸다.

말이 사무실이지 코레 그룹의 회장실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가 다가가자 투명한 벽이 마치 홍해처럼 갈라졌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문이 아니라 그냥 벽이었다.

‘이거 다른 사람들이 보면 놀라겠는데.’

―그땐 이렇게 하면 됩니다.

스르륵!

뇌리에 울리는 에바의 목소리가 채 가시기도 전에.

30평 정도의 공간이 순식간에 모습을 바꿨다.

“와아!”

말 그대로, 여느 대기업 회장실에 못지않은 공간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호랑이의 얼굴이 그려진 널찍한 카펫!

큼직한 마호가니 책상과 가죽 회전의자!

세계적인 명화가 걸려있고 벽!

그리고 한쪽으로는 탁 트인 통짜 유리창이 보였다.

대한은 손으로 마호가니 책상을 쓰다듬었다.

촉감이 영락없는 나무라서 깜짝 놀랐다.

싱긋 미소를 지으며 그는 회전의자에 앉아봤다.

몸이 의자 안으로 푹 파묻히는 기분이었다.

다리를 들어 책상 위에 올렸다.

두 팔은 머리 뒤로 돌려 베개로 삼았다.

몸을 지긋이 눕혀 유리창을 통해 밖을 바라봤다.

정말 대기업의 회장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아니 그제야 자신이 코레 그룹의 회장이라는 자각이 생겼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더니 정말 그렇군.’

―감회가 새로우신 모양입니다.

‘왠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야.’

―그렇게 의욕이 불타오른다면 일을 하셔야죠.

‘일?’

―네, 일이요.

뜬금없는 일 얘기에 대한은 눈을 깜빡거렸다.

‘일은 에바가 잘하고 있잖아.’

―그건 제가 하는 거지, 마스터가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내가 할 일이 따로 있어?’

―물론이죠. 마스터께서는 빠르게 결정만 내려주시면 됩니다.

‘좋아. 그럼 한번 해보자.’

결정만 하라는데 못할 것도 없어 보였다.

―일의 능률을 위해 주변 환경을 좀 바꾸겠습니다.

‘그래.’

스팟!

대한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무실의 환경이 바로 바뀌었다.

사방이 은은한 광택이 도는 대리석으로 변했다.

사무실의 모든 가구와 집기가 일거에 사라졌다.

남은 것은 오직 하나!

대한이 앉은 의자였다.

그런데 자신이 앉은 의자를 보니 가죽으로 된 회전의자가 아니었다.

얼마 전에 앉았던, 히릭스의 반투명한 의자였다.

―먼저 방송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방송?’

에바의 질문에 그가 반문했다.

그러자 한쪽 벽에 3차원 입체영상으로 대한이 게임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일하실 땐 이런 식으로 시간을 벌 수도 있습니다.

‘아! 나 대신 안드로이드가 게임을 하게 만든 것이군.’

―맞습니다. 하지만 그냥 가지고 있는 영상을 편집해놓은 것을 써도 됩니다. 이미 그 정도의 자료는 차고도 넘치니까요.

한쪽 옆에 또 하나의 3차원 입체영상이 떠올랐다.

대한은 눈을 부릅뜨고 쳐다봤다.

어느 쪽을 봐도 자신이 게임을 하는 영상이었다.

‘이거 도저히 구분을 못 하겠다.’

―다른 방송은 스튜디오에서 해야 하지만 게임방송은 집이나 모종의 장소에서 한다고 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해서 알리바이를 구축하고 시간을 번다는 말이군.’

―맞습니다. 앞으로 마스터께서 원하시면 이런 식으로 해서 시간을 벌고 몸을 빼내실 수 있습니다.

‘좋아. 그렇게 하지. 이렇게 분신을 하나 만들어 놓으면 내가 움직이는데 한결 여유가 있겠어.’

―그래도 들키지 않게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래야지.’

대한은 에바의 아이디어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럼 지금부터 게임방송을 할까요?

‘좋아. 시작해!’

―네, 마스터.

대한을 대신해 안드로이드가 게임방송을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다 손을 뻗어 옆으로 젖혔다.

두 개의 입체영상이 하나로 합쳐지더니 작게 변해 한쪽 구석으로 이동했다.

―다음은 나노셀 의료기기 임상시험계획 승인 신청에 관한 건입니다.

‘아직 신청 안 했어?’

―그냥 신청하면 똥파리들이 많이 꼬일 것 같아서 청와대와 국정원, 식품의약품안전처장 등 나노셀 의료기기 임상시험계획 승인 신청을 위해 꼭 필요한 핵심 인물들과 접촉하고 있습니다.

한쪽 벽면에 3개의 입체영상이 떠올랐다.

사방이 가로막힌 밀실!

왼쪽부터 나민영 대통령 비서실장, 정훈서 국정원장, 오경의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앞에는 중년의 꽃미남으로 분한 허준 코레메디컬 사장이 각각 앉아 있었다.

물론 허준 코레메디컬 사장은 당연히 안드로이드다.

대한은 일단 맨 왼쪽의 화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입체화면을 살짝 건드리자 둘이 하는 은밀한 대화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나노셀의 의료기기 임상시험을 비밀리에 하게 해달라는 소리군요.”

“그렇습니다. 저희가 개발한 나노셀은 의료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훼방꾼들이 끼어들기 전에 나라에서 철저히 보호를 해줘야 합니다.”

허준 코레메디컬 사장의 말은 듣는 나민영 대통령 비서실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차피 이런 비밀은 금세 퍼져 나갈 것 같은데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늦추는 게 대한민국의 국익에 이롭습니다.”

“나노셀의 성능은 확실합니까?”

“말기 암 환자의 경우, 완치율을 최대 90%까지 올릴 수 있습니다.”

“말기 암 환자의 완치율을 90%로 올린 다고요?”

그제야 나민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민영 비서실장님, 지금 저희가 말하고 있는 것은 나노셀입니다. 기적의 치료제라는 말입니다.”

“…….”

“인체에 투여하면 암세포에 달라붙어 정확히 암세포만 제거해버립니다. 현재는 암과 장기 재생에 특화해놓았습니다만 활용법이 제대로 정립되기만 하면 거의 만병통치약이나 다름없어집니다.”

“이거 생각보다 의료계에 미치는 파장이 크겠군요.”

“미래먹거리라는 4차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능가하는 파문이 일어날 겁니다. 그런데 이걸 지금 우리나라 기업이 주도할 수 있습니다.”

“음.”

나민영은 무거운 신음을 흘렸다.

“나노셀을 양산하고 그걸 전국에 있는 지방병원에 공급하면 아마 볼만할 겁니다. 전 세계의 환자들이 돈을 싸 들고 우리나라에 들어올 겁니다. 의료비로 벌어들이는 돈은 제외하더라도 먹고, 마시고, 자고, 관광하고 돌아다니는 모든 비용이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고, 살찌우게 될 것입니다.”

“아무래도 이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대통령님께 직접 보고해야겠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하셔야지요. 저희는 대통령님의 의료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그러니 국정원을 동원해서 기술유출과 타국의 훼방을 막아주십시오.”

“하긴 강대국들이 알면 어떻게든 기술을 빼내거나 방해를 하려고 들겠군요.”

이제야 나민영은 허준 코레메디컬 사장의 의도를 이해했다.

“시간이 없습니다. 최대한 빠르고 은밀하게 일을 처리해나가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들어가서 보고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나민영과 허준은 서로 굳게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대한은 화면을 잡아 옆으로 밀고 가운데 화면을 당겨와 펼쳤다.

그러자 정훈서 국정원장과 허준 코레메디컬 사장의 대화가 들렸다.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비밀리에 나노셀의 의료기기 임상시험을 무사히 끝마칠 수 있게 도와달라는 말이었다.

그는 보고 있던 입체화면을 옆으로 치우고 오른쪽 끝에 있는 입체화면을 끌어왔다.

오경의 식품의약품안전처장과 허준 코레메디컬 사장의 대화를 확인하는 것이다.

대한은 마지막 대화를 통해 의료기기 임상시험계획승인 신청서 민원처리 절차를 알게 됐다.

신청인이 신청서를 작성하고 담당 부서자 처리기관인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제출한다.

의료기기정책과에 접수 및 검토의뢰가 들어가고 의료기기심사부 해당 과에서 검토 및 검토 결과를 회신한다.

승인되면 의료기기정책과에서 승인서를 작성해서 신청인에게 통보한다.

그런데 이 과정만 1년이 넘어갈 때가 많다는 게 함정이었다.

그러니 그 과정에서 온갖 불만과 잡음이 터져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일단은 다들 긍정적인 반응이군.’

―나노셀에 관한 정보를 일부 보여줬더니 다들 깜짝 놀라는 반응이었습니다.

‘다행히 아직 고춧가루가 끼어들진 않았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임상시험에 들어가면 곧 소문이 퍼지기 시작할 겁니다.

‘그걸 막을 방법은 없을까?’

―막기는 힘들지만, 보안을 철저히 해서 최대한 늦출 방법은 있습니다.

‘그게 뭐지?’

―국군병원입니다.

‘아!’

국군병원은 국군의무사령부 산하에 있는 병원으로 군 장병에 대한 치료 및 예방이 이루어지는 종합병원이다.

나노셀 의료기기 임상시험을 비밀리에 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깃털처럼 가벼운 사람의 입을 완전히 막지는 못할 것이다.

‘가능할까? 국방부는 미국의 입김이 강하고 CIA에 포섭당한 스파이가 하나둘이 아닐 텐데.’

―마스터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한의 회의적인 반응에 에바가 거꾸로 질문을 던졌다.

‘무슨 뜻이지?’

―대한민국 국방부의 장성이나 장교들이 미국에 포섭당해 나라의 기밀을 넘겨주고 미국산 무기도입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일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묻는 겁니다.

‘음.’

에바의 질문은 아주 무거웠다.

원칙대로 한다면 이건 이적죄로 최고 사형까지 가능하다.

형법 제98조에 규정한 기밀누설죄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방산 비리를 저지른 자들의 처벌을 보면 참 한심할 지경이었다.

잡혀도 미국의 압력과 법의 틈새를 이용해 요리조리 미꾸라지처럼 다 빠져나갔다.

걸려도 몸통이 아닌 깃털에 해당하는 자가 다 뒤집어쓰고 그것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다.

그러니 명예를 먹고 산다고 자랑하는 군인들이 나라의 돈은 먼저 먹는 게 임자라면 서슴없이 방산 비리를 저지르는 것이다.

도덕적 해이가 만연한 국방부와 방사청!

대한은 도저히 이들의 이런 행태가 용납되지 않았다.

그는 장고 끝에 마음을 굳혔다.

‘미국이 우방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라의 비밀을 이들에게 팔아먹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죄야. 특히 방산 비리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절대불변의 진리를 훼손시키는 이적행위야. 당연히 엄중한 처벌을 받게 해야만 해!’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에바의 말에 대한은 눈을 빛냈다.

―그동안 흐지부지됐던 방산 비리를 하나씩 터트려볼까 합니다.

‘아! 그래서 사람들의 시선을 그쪽으로 쏠리게 하려는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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