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피아노(SSS), 기타(SS)>
“요새는 작곡 안 하시나요?”
“영감이 떨어졌는지 팍팍 안 떠오르네요. 하지만 조만간 음원 등록을 할 예정입니다.”
“뭔가 좋은 곡을 써놓으신 모양이군요.”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음원 등록을 끝내시면 저한테도 좀 보내주세요.”
“그러죠.”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에바가 들었으니 알아서 할 것이다.
“우리 이럴 게 아니라 나가서 밥이라도 먹을까요?”
“아! 죄송합니다. 제가 약속이 있어서.”
“그럼 할 수 없죠. 나중에 시간 만들어서 따로 한번 보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한은 양동철과 짧은 시간이나마 친분을 다졌다.
호의로 뭉친 그들은 금세 친해져서 곧 다시 뭉치기로 했다.
처음으로 연예기획사 쪽으로 인맥을 넓히는 순간이었다.
우웅!
때마침 반가운 공명음이 느껴졌다.
―양동철의 재능 작곡(SS)과 프로듀싱(SS)을 흡수했습니다.
―양동철의 재능 작곡(SS)과 프로듀싱(SS)을 획득했습니다.
이제는 흡수와 획득을 거의 동시에 해버렸다.
확실히 등급이 나이트(S)가 된 후부터는 재능에 대한 흡수와 획득이 편해졌다.
특히 연예 재능은 패시브재능에 가까운지 별로 큰 어려움 없이 잘 얻을 수 있었다.
양동철의 회사인 브레이브브라더스 엔터테인먼트!
그곳을 나서는 그의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벼웠다.
―마스터! 축하합니다.
‘고마워.’
―시간도 넉넉하니 한 곳 더 가시죠.
‘어딜 가라고?’
―같은 역삼동에 미녀 재즈 피아니스트로 유명했던 윤보라가 불우이웃 돕기 자선 연주회를 하고 있습니다.
‘오! 참 좋은 일을 하네. 그럼 가봐야지.’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에바는 허공에 화살표를 차례로 띄웠다.
차를 가지고 오긴 했다.
하지만 지금 가려는 곳은 걸어가도 될 만큼 가까웠다.
대한은 빠른 보폭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B2 강성한과 M2 이영수가 적당히 떨어진 거리에서 그를 따라왔다.
끊임없이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며 주변을 살리고 위험요소가 있는지 확인했다.
자선 연주회가 열리는 콘서트 살롱에 도착했다.
안은 입추의 여지도 없이 사람들로 가득했다.
경쾌한 피아노 소리가 한창 클라이맥스에 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피아노 소리는 나무랄 데 없었다.
그런데도 뭔가 2% 부족한 느낌이었다.
대한은 자신이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와아아아!
짝짝짝짝짝!
연주가 끝나자 열화같은 환호성이 터졌다.
관중들은 이제 갓 성인이 된 피아니스트를 향해 아낌없이 박수와 갈채를 보내고 있었다.
대한도 열심히 손뼉을 쳤다.
그러다 틈이 생기자 얼른 다가가서 악수를 청했다.
백지처럼 하얀 원피스를 입은 윤보라는 가냘픈 손을 내밀며 고개를 숙였다.
얼굴을 보니 참 맑고 순수하고 깨끗한 이미지의 미녀였다.
그런데 도통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정말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멋진 연주였습니다.”
그녀는 대한의 칭찬에 부끄럽다는 듯 살짝 얼굴을 붉혔다.
그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며 옆으로 밀려났다.
뒤에서 학생들이 몰려와 대한을 밀어낸 것이다.
그들은 모두 윤보라와 웃고 떠들며 사진을 찍었다.
‘에바!’
―피코셀을 주입했습니다. 재능흡수 대상자 윤보라의 DNA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최대 재능이 뭐야?’
―쓸만한 재능이 두 개나 있습니다.
‘피아노만 잘 치는 게 아니었어?’
―재능 피아노(SSS)를 보면 확실히 천재적인 피아니스트의 재능입니다. 그래도 또 다른 재능 기타(SS)를 가지고 있네요.
나쁘지 않았다.
재능 피아노(SSS)를 흡수하려고 했는데 보너스로 재능 기타(SS)까지 흡수할 수 있었다.
―어떤 재능을 흡수할까요?
‘당연히 둘 다 흡수해야지.’
―알겠습니다. 재능 피아노(SSS)와 기타(SS)를 흡수합니다.
대한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윤보라를 쳐다봤다.
그러다가 뒤쪽에 있는 휠체어를 발견했다.
‘에바, 혹시 윤보라 씨 어디 다쳤어?’
―작년에 교통사고를 당해 척수손상을 입었습니다.
‘척수손상이라면 하반신 마비라는 거야?’
―그렇습니다. 척수 중 가장 아래쪽의 천수인 요수를 다쳐서 하반신 마비가 와서 소변, 대변, 성 기능에 장애가 왔습니다.
‘내가 지금 이런 사고를 당한 장애인의 재능을 흡수하러 온 거야?’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놀리러 온 것도 아니고 그저 재능만 흡수하러 왔는데요.
에바의 뻔뻔스러운 말에 그는 할 말을 잃었다.
분명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행동을 잘했다고 손뼉을 쳐줄 수는 없었다.
‘멘탈이 아주 강하네.’
―어떤 점을 말씀하고 계시는 겁니까?
‘사고가 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텐데 불우이웃을 돕겠다고 저렇게 자선 연주회를 열다니.’
대한은 활짝 웃으며 사람들과 얘기를 하는 윤보라를 쳐다봤다.
그녀의 얼굴 뒤에서 마치 후광이 비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는 윤보라의 구김살 없는 모습에 적이 감탄해 마지않았다.
아마 자신이라면 세상을 비관해 자살하느니 마느니 하면서 어지간히 부모님 속을 썩여드렸을 것이다.
대한은 윤보라의 어머니로 보이는 중년의 여인을 향해 다가갔다.
정장을 입고 있는 여인은 완숙한 중년의 미를 한껏 뽐내고 있었다.
“불우이웃 돕기 자선 연주회 맞죠?”
“네, 그렇습니다.”
“기부하고 싶은데 어디로 가면 되나요?”
“저쪽 입구로 가시면 모금함이 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웃으며 고개를 숙이자 상대방도 같이 고개를 숙였다.
말하는 목소리도 곱고 하는 행동에 품위가 느껴졌다.
옆에 있으면 교양이라는 게 뭔지 거저 알 수 있을 것 같은 여인이었다.
대한은 모금함을 향해 다가갔다.
지갑을 열고 수표 한 장을 꺼냈다.
100만 원짜리 자기앞수표였다.
그러나 도로 집어넣었다.
대신 1000만 원짜리 자기앞수표를 꺼내 모금함에 집어넣었다.
좋은 일을 한다는데 돕고 싶었다.
그리고 윤보라가 계속 용기를 잃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대한은 밖으로 나가 건물 입구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그때, 에바가 조심스럽게 말을 붙였다.
―마스터! 도와주고 싶으세요?
‘응, 좋은 일을 하고 있으니 도와주고 싶어.’
―불우이웃 돕기입니까? 아니면 윤보라입니까?
‘둘 다 도와주면 안 돼?’
―그럼 그렇게 하시면 되잖아요.
‘아!’
에바의 말을 듣자 자신이 얼마나 바보 같은 놈인지 깨달았다.
옆에 에바가 있고 이제는 우주탐사선 히릭스까지 손에 넣었다.
피코셀은 물론이고 나노셀까지 양산하고 있으면서 멍청하게 넋 놓고 쳐다만 보고 있었다.
‘에고! 늙으면 죽어야 한다는 말이 이래서 나오는구나. 난 그렇게 늙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렇게 치매기가 있네. 아니면 멍청한 건가!’
대한은 크게 자책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에바를 불렀다.
‘에바!’
―네, 마스터.
‘나노셀을 이용하면 척추손상을 치료할 수 있을까?’
―물론입니다. 나노셀은 표적 치료와 재생에 탁월한 효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암 환자나 장기가 손상된 환자들에게 아주 좋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합법적으로 쓸 수 없잖아.’
―그렇습니다. 의료기기 임상신청을 하고 승인받기까지 평균 1년, 임상하고 최종 사용허가를 받는 데 다시 1년이 걸립니다.
짜증이 오토매틱으로 솟구치는 얘기였다.
‘더럽게 오래 걸리네.’
―이런 문제를 고치려고 법을 개정하려고 하는데 그게 국회에 들어가서 아주 깜깜무소식입니다.
‘국회의원들은 도대체 다 뭐 하고 있는 거야?’
―그러게 말입니다.
‘이러다가 우리 나노셀도 그냥 묻히는 거 아니야?’
극한 집단 이기주의가 얼마나 무서운지는 대한과 에바 모두 잘 알고 있었다.
―제 생각은 의료기기 임상신청을 하면 곧바로 정치권과 재벌 등 기득권자들에게 곧바로 정보가 들어갈 것입니다. 그런 다음 일어날 일은 뻔합니다.
‘기술을 빼가거나 회사를 통째로 집어삼키려고 하겠지. 그게 아니라면 아예 허가를 내주지 않고 압박을 하면서 협상을 시도할 거야.’
―맞습니다. 황금알을 낳을 수 있는 거위니 당장 배를 가르려고 할 겁니다.
‘이거 골치 아픈데.’
생각보다 나노셀을 세상에 내놓는 것은 파장이 컸다.
그렇다고 혼자 남몰래 나노셀을 계속 풀어서 사람을 도와주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대안을 마련했습니다.
‘보고서를 보니까 동티모르와 접촉하고 있다며?’
―맞습니다. 동티모르의 총리를 은밀하게 만나서 우리 나노셀을 의료기기로 인정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공짜로는 절대 안 해줄 텐데.’
―그래봤자. 푼돈입니다.
‘그래서 돈을 주기로 했어?’
―돈도 돈이지만 다른 제안을 하더군요.
‘무슨 제안?’
―동티모르에 투자해달라고 합니다.
‘투자?’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주제였다.
―네. 관광, 어업, 제조업, 유전개발 등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동티모르에 투자해주길 원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해달라는 거야?’
―최소한 백만 달러입니다.
‘난 또!’
대한은 에바의 말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몇억 달러, 아니 최소한 몇천만 달러는 투자해달라고 할 줄 알았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동티모르로서는 그것도 적은 돈이 아니었다.
‘동티모르는 어떤 나라야?’
그의 질문에 에바는 허공에 동티모르의 지도를 띄웠다.
―정식국명은 ‘동티모르민주공화국’입니다. 위치는 보시다시피 자카르타 동방 2,000㎞ 지점에 있는 티모르섬의 동부입니다. 수도인 딜리(Dili)로 약 30만 명이 살고 있습니다.
‘지도를 보니까 나라가 아주 작구나.’
―동티모르의 면적은 15,007km²(경기도의 1.5배)입니다. 인구는 약 132만 명으로 테툼족(약 40%), 말레이족 및 파푸안족 계통, 기타 32개 종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어! 브라질처럼 여기도 포르투갈어를 쓰네?’
대한이 반가운 얼굴로 말했다.
지금까지 찾은 유일한 좋은 점이었다.
―테툼어와 혼용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지배의 영향으로 인도네시아어도 일부 사용합니다.
‘기후는 열대성 몬순기후고 정치는 이원집정부제를 쓰는군.’
―대통령이 외교, 국방을 맡아 외치를 하고, 총리가 내치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대통령보다는 총리와 협상을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국방력은 형편없습니다. 경보병 2개 대대 600명과 1개 해상대 그리고 지원대가 전부입니다.
‘해상대면 구축함이 있을 거 아냐.’
―중국에서 건보트 2척을 인수했고, 한국군에서 퇴역한 참수리급 고속정 3척을 공여받았습니다.
‘참담하군.’
―GDP가 31.5억 달러, 1인당 GDP도 2,486달러에 불과합니다. 화폐도 미국 달러를 쓰는 형편이라서 문제가 아주 많습니다.
‘섬나라에 땅도 작고, 인구 별로 없고, 인프라는 있나?’
―산업 인프라는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어휴! 그럼 뭐에다 투자하라는 말이야?’
대한은 동티모르에 투자하는 것에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이익보다는 근거지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접근해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근거지라면? 땅이라도 주겠대?’
―네, 원한다면 땅도 주고 일부 자치권도 주겠다고 합니다.
‘설마 인도네시아의 영토인 서티모르 안에 따로 동떨어진 지역은 아니겠지?’
―그곳이 아니라 인도네시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서쪽의 바투가데(Batugade)와 바리보(Balibo) 이남의 지역을 주겠다고 합니다.
그는 동티모르의 지도를 확대해서 살펴봤다.
북서쪽 해안을 약간 빼고는 전부 그냥 산이었다.
대한은 어이가 없었다.
이런 땅을 받아서 무엇에 쓰라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우리보고 인도네시아군이 쳐들어오면 몸빵하라는 거 맞지?’
―그런 의도가 전혀 없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는 원수 사이다.
하지만 워낙 국력의 차이가 커서 감히 싸워볼 생각도 못 했다.
더구나 친 인도네시아 반군들이 설쳐대는 곳이라서 항상 치안이 불안했다.
그래서 외국인인 자신들보고 개발도 하고 국경도 지키라고 나름 머리를 쓴 모양이었다.
‘그래도 뭔가 돈을 투자할만한 곳이 하나라도 있어야 투자할 거 아니야.’
―바닷가에 항구를 세우고 어선을 들여와 어업을 활성화합니다. 해변에는 호텔과 병원을 세우고 나노셀 치료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과 관광객을 유치하면 좋지 않습니까?
대한은 에바의 말에 눈을 깜빡거렸다.
―‘시 에바는 동티모르 투자에 긍정적인 거야?’
―땅도 공짜로 준다고 하니 코레실드의 훈련장으로 쓰면 되잖아요. 적당한 투자만 선행된다면 크게 손해 보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그 땅에 뭐가 묻혀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거야 그렇지.’
―만약 석유나 천연가스가 묻혀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진짜 석유나 천연가스가 묻혀있어?’
그는 기대 만발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직은 모릅니다. 하지만 그걸 알아낼 수단이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까?
‘히릭스?’
―그렇습니다.
‘오오! 잘하면 대박이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