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위기는 기회>
대한은 양치질을 마치고 욕실을 나왔다.
거실 소파로 가는 동안 쳐다보니 이미 식탁은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가사용 안드로이드 덕분이었다.
소리도 없이 일도 참 잘했다.
―마스터!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그게 뭐지?’
―부도 위기에 몰린 영국의 PMC ‘바이럴 시큐리티’를 인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PMC면 민간군사기업이잖아?’
―네, 그렇습니다.
‘규모는 어느 정도지?’
―중소기업입니다.
‘너무 작은 거 아냐?’
민간군사기업이 너무 작아서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됐을까 봐 걱정됐다.
―그래도 PMC 사업을 하는데 필요한 모든 장비와 라이선스는 다 가지고 있는 회사입니다.
‘얼마에 인수했는데?’
―백만 유로입니다.
‘거의 13억 원에 달하는 돈이군.’
―그래도 지분 100%를 깔끔하게 인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려고 그러지?’
민간군사기업도 장르가 무궁무진하다.
일반 경호부터 시작해서 시설보안, 해상보안, 자문 및 훈련 용역 제공, 용병업, 군사자문업, 군납 등 아주 다양했다.
그런데 에바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기본적으로 경호와 보안, 용병업은 당연히 해야 합니다. 다만 일단은 납치사건 해결 전문업체로 승부를 볼 생각입니다.
‘납치사건이라니? 갑자기 뜬금없이 납치는 왜?’
―다른 곳은 몰라도 우리는 납치사건을 좀 더 쉽고 빠르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에어볼에 납치된 사람의 체취만 입력시켜도 어지간한 중소도시 하나 훑는 데 1시간도 걸리지 않습니다. 납치사건이 빈번한 멕시코나 이라크의 경우 수요가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런 좋은 수가 있었구나.’
대한은 에어볼 활용의 신세계를 보는 느낌이었다.
―더구나 마스터는 사람을 함부로 해치는 것을 싫어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납치라면 살인, 강도, 강간보다 더한 중범죄입니다. 이런 나쁜 놈들의 안전을 굳이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죠.
‘아!’
대한은 에바의 섬세함에 감동했다.
자신이 상처받지 않게 하려는 따뜻한 배려가 느껴졌다.
물론 에바는 납치범들에게 있어 앞으로 무시무시한 ‘염산마’가 될 생각이었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내가 한가해질 날이 없겠는데.’
―그렇다고 너무 무리하지는 마십시오.
‘일단 인수한 PMC의 상태부터 확인해보자.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영업을 할 건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해!’
―며칠 안에 한눈에 볼 수 있게 잘 정리해서 보고드리겠습니다.
그는 에바의 대답에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본사가 영국인가?’
―그렇습니다.
‘한국으로 옮기는 게 좋지 않겠어?’
―당연하죠. 이미 안드로이드를 보내서 인수한 PMC ‘바이럴 시큐리티’를 정밀분석하고 있습니다. 본사 이전을 포함해 모든 문제를 전부 해부하듯 살펴보고 있습니다.
‘좋아.’
일 처리가 아주 만족스러웠다.
역시 로봇과 안드로이드가 있으니까 에바의 활동반경이 어마어마해졌다.
예전에는 온라인에서 무소불위의 권능을 행사했다.
하지만 이제는 오프라인에서도 막강한 힘과 능력을 쓸 수 있게 됐다.
물론 대한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만 말이다.
―한 가지 좋은 건수가 있습니다.
‘좋은 건수라니?’
―예멘의 후티 반군이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의 최대 석유 탈황·정제 시설인 아브카이크(Buqayq) 단지와 인근 쿠라이스 유전(Khurais oil field)을 자폭 무인기로 공격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걸 어떻게 알았어?’
―중동을 감시하는 모사드를 살펴보다가 우연히 알게 됐습니다.
모사드는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이다.
탁월한 정보수집능력을 자랑하는 곳이다.
특히 자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주적 시리아, 이란 등 중동국가에 관한 첩보 수집과 분석 능력은 발군이라 할 수 있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사우디아라비아에 알려주지 않았군.’
―모사드로서는 굳이 알려줄 필요가 없겠죠.
‘하긴 누가 싸워서 죽든 간에 이스라엘로서는 팝콘 각이겠군.’
―맞습니다.
‘그런데 이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지?’
―이번에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에서 영국의 PMC ‘이지스 디펜스’, 미국의 PMC ‘블루해클’등과 계약을 맺고 아브카이크 단지와 쿠라이스 유전의 방어를 맡겼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인수한 ‘바이럴 시큐리티’가 최근 ‘이지스 디펜스’의 협력회사로 선정됐습니다.
‘아!’
그제야 에바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갔다.
아람코가 운영하는 대규모 원유 채굴시설을 보호해야 하는 PMC가 되었으니 예멘 후티 반군의 자폭 무인기 공격을 막아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협력회사는 뭐지?’
―말이 좋아서 협력회사지 사실은 그냥 하청을 받은 겁니다.
‘음, 그럴 줄 알았어.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당연히 우리가 담당할 지역에 ‘K-30 비호’의 개량형인 ‘K-30 SAM 비호복합’을 가져가야죠.
비호복합은 한국 육군이 개발한 단거리 자주대공포 K-30 비호에다 신궁 지대공미사일(사거리 5km) 2연장 발사대 2개를 결합한 것이다. 30mm × 170mm 기관포 2문과 수색 레이더 및 대공 센서를 장비해 최대 탐지거리가 17km, 유효 사거리는 3km다.
‘가격이 얼마나 되는데?’
―대당 50억 원 정도면 살 수 있습니다. 비호복합 2대가 1개 소대를 이루니까 100억 원 정도 들어가겠네요.
‘그거면 돼?’
―당연히 안 되죠. 한화디펜스에서 만든 미래형 궤도 장갑차 ‘레드백’ 2대도 가져갈 겁니다.
레드백은 한화디펜스에서 만든 미래형 궤도 장갑차다. 30mm 주포(기관포)와 함께 움직이는 5.56㎜ 동축 기관총, 12.7mm 원격조정 기관총(RCWS), 대전차미사일, 각종 탐지추적 기능과 방어시스템을 갖췄다. 길이 7.77m, 폭 3.64m, 높이 3.72m로 항속거리는 520km에 달한다. 최대속도는 도로 65km/h, 야지 43km/h다. 총중량 45t, 승조원 3명 외에 전투원 8명을 수송할 수 있다.
‘레드백 가격이 꽤 될 텐데.’
―대당 125억 원 정도 합니다.
‘그걸 몇 대나 가져가려고?’
―2대만 가져가려고 합니다. 250억 원만 투자하면 됩니다.
‘설마 우리가 대신 가서 실전 테스트라도 해줘야 한다는 거야?’
―반만 맞추셨습니다.
‘그러면 뭐야?’
―당연히 한 대씩 개조해서 레이저무기를 달아야지요.
‘아! 레이저무기!’
이제 에바의 말이 100% 이해가 됐다.
―비호복합의 우수한 능력도 보여주고, 레드백과 레이저무기라는 신상품도 띄우고, 사람 한 명 죽이지 않고 PMC 업계의 신성이 될 ‘코레실드’도 띄우고요.
‘그야말로 일석삼조네. 그런데 코레실드는 뭐지? 코레디펜스 아래에 둘 자회사인가?’
―네, 지주회사 코레의 입장에선 손자회사라고 봐야죠. 이번에 인수한 영국의 PMC ‘바이럴 시큐리티’도 코레실드로 흡수할 겁니다.
‘재미있겠네.’
진짜 재미있을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이건 정말 꿀을 빠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한 가지 단점이 있습니다.
‘무슨 단점?’
―아브카이크 단지의 방어를 맡은 PMC ‘이지스 디펜스’가 ‘바이럴 시큐리티’에게 대가로 쥐꼬리만 돈을 줬다는 겁니다.
‘그럼 뭐야? 350억 원이나 되는 장비구매비용을 우리가 자체조달해야 하는 거야?’
―그렇습니다. 하지만 결과를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미리 결론이 어떻게 날지 알고 있으니 이건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나폴레옹 전쟁의 워털루 전쟁 결과를 알고서 정보 교란을 이용해 국채로 떼돈을 벌었다는 로스차일드의 일화도 있지 않습니까?
‘그거 루머라고 알려진 얘기잖아.’
―제 말뜻은 같은 방식으로 마스터께서 투자하시면 된다는 말이었습니다.
‘아아! 그렇군.’
예멘의 반군이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유전과 정유시설을 자폭 무인기로 다시 공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반드시 주가가 출렁거릴 것이다.
그러다 아람코의 최대 석유 탈황·정제 시설인 아브카이크 단지가 자폭 무인기를 안전하게 처리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다시 주가는 반등할 것이 분명했다.
소량이지만 기업공개를 한 아람코를 시작으로 석유 및 정유 관련 기업은 전부 투자대상이 된다.
정 안되면 단타로 치고 빠지는 전략도 가능하다.
―어떻습니까?
‘대박이겠는데.’
―마스터의 자금 4천억 원뿐만 아니라 비자금 76억 달러를 투자해도 2배는 먹을 수 있을 겁니다.
‘그게 가능할까?’
―정보는 가공하기 나름입니다.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좀 빠르게 알리고 부풀리는 정도라면 충분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에바라면 아마 가능할 것이다.
비자금이 워낙 커져서 어떻게 불리나 했더니 이런 호재가 생길지 누가 알았겠는가!
‘그건 그렇다고 치고. 왜 내 자금이 4천억이야? 그동안 이것저것 사느라 돈을 썼는데.’
―그동안 벌어들이신 것은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리고 부동산은 얼마든지 담보대출이 가능합니다. 해외증시의 선물시장은 레버리지를 이용해 훨씬 규모를 키울 수도 있습니다.
‘내가 선물시장을 생각 못 했네. 풋옵션과 콜옵션을 적절하게 조합하면 생각 외로 큰돈을 벌겠어.’
―맞습니다. 그러니 아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최대한 이득을 볼 수 있도록 포트폴리오를 짜보겠습니다.
‘알았어. 한번 진행해보자.’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스터!
에바는 좋다고 허공에서 춤을 췄다.
아직은 가분수의 귀여운 모습이다.
하지만 그녀가 몸을 가지게 되면 이런 모습은 아마 볼 수 없을 것이다.
대한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소파에 앉아 창밖을 내다봤다.
화창하게 맑은 날씨가 자꾸 밖으로 나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었다.
* * *
에바는 정신없이 바빴다.
대한의 꿈을 이루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사람이었다면 아마 힘들다고 진즉 파업에 돌입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에바는 초자아 슈퍼 인공지능 모듈이었다.
그것도 우주탐사선 히릭스를 장악해 메인 컨트롤 모듈을 통해 업그레이드했다.
거기다 이제는 우주탐사선 히릭스의 메인 컨트롤 모듈 베인까지 부하로 삼아서 잘 활용하고 있다.
―지주회사 코레(Coré) 설립. 자본금 3000억 원.
―코레 자회사 코레디펜스 설립. 자본금 1200억 원.
―중소 드론회사 열 개 인수·합병. 코레드론으로 사명 변경.
―코레드론, 코레디펜스 자회사 편입.
―코레드론 구조조정 시작.
―유럽 중소위성업체 EUS 인수·합병. 코레위성으로 사명 변경.
―코레위성, 코레디펜스 자회사 편입.
―코레디펜스 자회사 코레레이저 설립.
―PMC 바이럴 시큐리티 인수·합병. 코레실드로 사명 변경.
―코레실드, 코레디펜스 자회사 편입.
―코레실드, 사우디아라비아 국방부 테스트 종료 비호복합 2대 현지 인수.
―코레실드, 사우디아라비아 국방부 테스트 종료 레드백 2대 현지 인수.
―비호복합 1대, 레드백 1대, 이테르비움 증폭 광섬유 레이저포 및 연료전지 파워팩 장착.
―비호복합 레이더 업그레이드.
―스탠챠트 투자회사(미), 트러스트투자증권(한), 인수·합병 후 코레투자로 사명변경. 자본금 1000억, 1조 원 투자금 유치.
―오리엔탈시스템 인수. 코레시스템으로 사명 변경.
―코레시스템, 코레 자회사로 편입. 자본금 100억 원.
―그라비아테크놀로지 인수. 코레테크로 사명 변경.
―코레테크, 코레 자회사로 편입. 자본금 100억 원.
―삼정석유화학 인수. 코레에너지로 사명 변경.
―코레에너지, 코레 자회사 편입. 자본금 100억 원.
―제일병원 이사장 교체. 병원이름을 코레메디컬로 변경.
―코레메디컬, 코레 자회사로 대우. 자본금 100억 원.
―코레 자회사 코레재단 설립. 자본금 100억 원.
―코레 자회사 코레엔터 설립. 자본금 100억 원.
―대한TV, 지분 100% 코레에 매각. 코레 자회사 편입, 자본금 100억 원.
에바는 끊임없이 움직였다.
그에 따라 로그에는 쉴 새 없이 그녀가 한 일들이 정리되어 올라왔다.
대한도 언제든지 그녀의 보고서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에바가 직접 보고하면서 설명해주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도 중요한 내용은 빠짐없이 보고되고 있었다.
―달기지 건설 보고: 현재 공정률 1.02%.
―달기지 건설 투입자원: 탐사용 로봇 12대, 기타 로봇 36대, 탐사용 안드로이드 12대.
―우주탐사선 히릭스 보고. 적도 36,000km 상공의 정지궤도에서 스텔스 모드로 대기 중. 이상 없음.
―우주셔틀 1호기 보고. 청담동 상공에서 스텔스 모드로 대기 중. 이상 없음.
―펜트하우스 보강공사 및 개보수 보고. 공정률 85%.
―대한타워 보강공사 및 개보수 보고. 공정률 97%.
조금만 있으면 펜트하우스와 대한타워의 보강공사 및 개보수 공사가 끝난다.
달기지와 정지궤도를 거쳐 청담동 상공을 돌아본 에바!
빛의 속도로 들어오는 보고 중 히릭스 의무실에서 온 것을 뽑아냈다.
―히릭스 의무실 보고. 레저용 안드로이드 업그레이드 성공. 인수 요망.
그녀의 관심이 즉시 히릭스 의무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