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다리만 놔줘>
“미안해!”
“뭐가 미안해. 우리 사이에 그런 말도 못 해?”
“대한!”
따뜻한 대한의 말에 리나는 그만 울컥했다.
솔직히 두렵고 떨렸다.
우루무치의 무장경찰은 아주 잔혹했다.
그들이 어떤 짓을 벌이고 다녔는지, 어렸을 때부터 눈으로 쭉 보고 자랐다.
그게 트라우마가 되어 당에서 왔다는 말에 주눅이 들고 크게 긴장했었다.
오늘 나눈 대화를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말라는 소리에 무척 답답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에게 고민을 털어놓자 속이 시원했다.
그런데 일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대한이 대뜸 자신을 위해 나서더니 덜컥 총대까지 메어버렸다.
이러니 어떻게 감동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걱정하지마. 다 잘 될 거야.”
“알았어. 대한을 믿을게.”
사실 리나로서는 딱히 대한밖에 대안이 없었다.
그리고 정말 믿고 싶었다.
이번 일을 잘 해결해낼 것을 말이다.
리나는 대한의 입술에 살짝 입을 맞췄다.
쪽!
그는 그게 마치 무슨 신호라도 되는 양!
그녀를 번쩍 들더니 욕실로 데려갔다.
하얀 리나의 다리가 대한의 허리를 꽉 감쌌다.
둘은 그 자세로 거울을 보고 양치질을 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애정과 신뢰가 가득했다.
뭐가 그리도 재미있는지 시종일관 둘은 웃음과 미소를 잃지 않았다.
수건으로 입가에 물기를 닦고 나자 둘은 서로의 입술을 격렬히 탐했다.
아무리 과일이 달아도 이처럼 달지는 않을 것이다.
핥고 건들고 물고 씹고 밀고 빨고!
두 사람은 뜨겁고도 진한 프렌치 키스를 나눴다.
어제 밴에서 처음 사랑을 나눴다.
오늘 이른 새벽에도 뜨겁게 몸을 섞었다.
그런데 또다시 이렇게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태우고 또 태워도 태워지지 않는 욕망의 불꽃!
확실히 이건 젊은 청춘들의 특권 같은 것이다.
그녀는 밤새도록 대한의 열정에 녹아 하얗게 불타버렸다.
한번 터진 둑은 멈출 줄을 몰랐다.
결국, 감당하지 못할 쾌락의 해일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끼며 리나는 눈을 감았다.
얼핏 창가에 햇살이 비치는 것을 본 것만 같았다.
* * *
아침이 밝았다.
“짐승!”
욕일까 칭찬일까?
리나는 그를 향해 알 수 없는 소리를 하고 일어났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는 그녀의 흔들리는 뒤태!
여전히 치명적이고 유혹적이었다.
대한은 입맛을 다시며 욕실로 들어갔다.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드라이어로 머리카락을 말렸다.
그런 다음 옷을 입고 소파로 가서 편하게 앉았다.
눈을 감고 배틀푸르나(SSS)를 운용했다.
서서히 전신으로 은은하게 마력이 퍼져나갔다.
피로가 싹 풀리고 온몸이 개운해졌다.
주먹을 쥐자 힘과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마치 무엇이라도 박살 내버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똑똑똑!
“들어와!”
대한은 조용히 대답했다.
자동으로 문이 열리고, 안으로 두 명의 사내가 들어왔다.
전투 로봇 최강철과 다용도 휴머로이드 로봇 김철수였다.
“마스터!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마스터! 편히 주무셨습니까?”
둘의 인사에도 대한은 눈을 뜨지 않았다.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
“네.”
“예.”
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배틀푸르나(SSS)를 운용하는 게 더 중요했다.
온전히 연공을 끝내고 흘러넘치는 마력을 잘 갈무리했다.
눈을 뜨자 시퍼런 안광이 찌르듯 앞으로 쏘아졌다.
몇 번 눈을 깜빡거리자 그의 눈빛이 원래대로 차분히 가라앉았다.
‘에바! 상태 창 좀 열어줘!’
―예, 마스터!
에바가 허공에 상태창을 띄웠다.
대한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 이대한
등급: 나이트(S)
칭호: 크러쉬(공격력↑200%), 가호(보호막·방어력↑300%), 워크라이(스탯 증폭↑40%), 투지의 신병(재능 부스터↑40%)
나이: 만 19세
업: 종합격투기 선수(UFC/벨라코어 FC)
재능 ▶ SSS급: 탄탈러스, 크루세이더, 배틀푸르나 / SS급: 반사신경, 동체시력, 공간지각, 유연성, 감각, 회복, 사격, 궁술, 잠수, 정력, 수영, 지구력 / S급: 화술
정신 ▶ S급: 매혹, 투지, 의지, 열정, 침착, 집중, 끈기, 인내
연예 ▶ SS급: 연기, 노래, 춤, 매력, 끼, 미모
언어 ▶ S급: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 아랍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포르투갈어, 이탈리아어, 영어
축구 ▶ SS급: 몸싸움, 순간돌파, 넓은시야, 축구지능, 축구재능, 프리킥, 주력, 스프린트 / S급: 전술이해도, 양발잡이, 축구기본기, 드리블, 개인기, 패스, 골 결정력, 수비
격투 ▶ SS급: 특공무술, 킥복싱, 레슬링, 무에타이, 복싱, 주짓수, 태권도, 격술, 검술, 종합격투기
스탯: 근력 114, 민첩 102, 체력 104, 지력 102, 마력 122
스탯: 근력 113, 민첩 100, 체력 103, 지력 101, 마력 120
신장 187cm, 몸무게 84kg
가장 먼저 나이가 보였다.
만 19세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니 확실히 1년이 흘러가긴 한 모양이었다.
시선을 아래로 조금 내렸다.
베이징 친청교도소에서 장민에게 획득한 재능!
화술(S)과 매혹(S)이 보였다.
앞으로 자주 쓰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재능들이었다.
그리고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새로운 재능이 자연 발아된 것이다.
그것도 하나같이 SS급의 재능들이었다.
과연 배틀푸르나(SSS)를 꾸준히 연공 한 보람이 있었다.
반사신경, 동체시력, 공간지각, 유연성, 감각, 회복!
최근에 몸의 반응이 빨라지고 감각이 아주 예민해진 걸 느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새로 획득한 재능들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낸 모양이다.
스탯을 확인했다.
근력 하나, 민첩 둘, 체력 하나, 지력 하나 그리고 마력 둘!
숫자는 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몸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확실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었다.
대한은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상태창을 옆으로 치웠다.
투명한 상태창이 살짝 반항하듯 흔들리더니 모래처럼 스러졌다.
그때, 에바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마스터! EPL 빅식스와 연락했습니다.
‘뭐라고 그래?’
―우리가 에이젠트를 세운다고 하니까 다들 좋아하네요.
‘내가 협상할 의도가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로군.’
―그렇습니다. 라리가의 2강에서도 답변이 왔습니다.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샤에서?’
―네, 에이젠트가 정해지면 바로 만나자고 합니다.
에바의 말을 듣고도 대한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계속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다.
―UFC와 벨라코어 FC에도 운을 뗐습니다.
‘좋은 소식이 있나 보군.’
―양쪽 다 최고 대우를 해줄 테니 빨리 시합을 잡자고 하네요.
‘후후! 아주 몸이 달았군.’
―마스터께서 말씀하신 대로 시합은 한 달 정도 텀을 두고 잡도록 하겠습니다.
‘누가 먼저 시합을 성사시킬까?’
―아무래도 UFC가 유리하겠지요.
‘그건 뭐 앞으로 두고 봐야겠지.’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다.
현실이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세상이다.
얼마든지 현실에서 소설 같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사람들은 현실이 아닌 소설이나 드라마 또는 영화에서 오히려 더 리얼리티를 찾는다는 것이다.
마치 그렇게라도 현실감을 보충하지 못하면 견딜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마스터, 왕다오 비서가 도착했습니다.
‘정중하게 모셔와!’
―네, 마스터.
최강철과 김철수가 대한의 명령을 에바를 통해 듣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 사이, 대한은 리나에게 연락했다.
“리나! 손님이 도착했어. 내 방으로 와!”
―알았어. 바로 갈게.
잠시 후, 산뜻한 정장을 입은 리나가 그의 스위트룸으로 들어왔다.
“나 어때?”
“커리어우먼 같아.”
대한의 말에 그녀는 만족한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똑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대한과 리나는 즉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왕다오와 그의 경호원들을 보자 둘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여기까지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대한과 리나의 깍듯한 인사에 왕다오는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30대 후반의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얼굴!
그게 특징이라면 특징인 사내였다.
왕다오의 뒤로 양측의 경호원들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대치하고 있었다.
대한은 속으로 이게 뭔 일인가 했다.
“너희들은 여기서 기다려!”
“네, 알겠습니다.”
왕다오의 명령에 그의 경호원들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대한도 최강철과 김철수를 보며 밖에서 기다리라고 눈짓을 했다.
그들은 그제야 눈에 힘을 풀고 뒤로 한발 물러섰다.
그 사이, 세 사람은 스위트룸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왕다오는 당연하다는 듯 소파의 상석을 차지하고 앉았다.
대한과 리나는 맞은편 소파로 가서 얌전히 앉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대한입니다.”
“왕다오라고 하오.”
대한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그러자 왕다오도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그런데 말투가 하오체였다.
똥개도 자기 동네에서는 50% 먹고 들어간다고 하더니 지금이 딱 그 짝이었다.
하지만 대한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자신의 가치가 증명되면 대접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이들이 보유한 주식을 받고 해외에서 달러로 비자금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벌써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대한TV는 재미있게 잘 보았소.”
“감사합니다. ‘구독’과 ‘좋아요’를 꼭 눌러주십시오.”
“뭐라고? 푸하하하!”
대한의 말에 왕다오는 파안대소를 했다.
“아주 재미있는 젊은이로구먼.”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왕다오는 웃는 낯을 했지만 먼저 용건을 꺼내지는 않았다.
그는 엉뚱하게도 대한과 고리나에게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시작했다.
아마 30분은 족히 흘려보냈을 것이다.
눈에 뻔히 보이는 왕다오의 통수!
그는 속으로 비웃음을 흘렸다.
리나는 여전히 긴장하고 있었다.
그나마 대한이 옆에서 버티고 앉아 있는 것만으로 힘이 나고 의지가 됐다.
거기에다 그는 시간이 아주 많다는 듯 여유만만했다.
그러다 보니 애초에 왕다오의 수는 전혀 통하지 않고 있었다.
“이럴 게 아니라 우리 밖에 나가서 식사라도 같이할까요?”
“음. 아니요. 먼저 일 얘기부터 합시다.”
대한의 식사 제안에 왕다오는 어쩔 수 없이 먼저 용건을 꺼내야만 했다.
“고리나를 통해 말은 들었소.”
“그럼 얘기가 쉬워지겠군요.”
자신만만한 태도로 그는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정말 주식을 구매해줄 수 있소?”
“물론이죠. 제가 가진 게 사실 돈밖에 없습니다.”
“풋! 정말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 젊은이군. 한국 청년들은 전부 그대 같소?”
“뭐 비슷합니다. 사실 우리나라 남자들은 자신감 빼면 시체거든요.”
중국인이 얼마나 허풍을 잘 치는지 아주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대한도 그것을 의식한 듯 마음껏 큰소리를 쳐댔다.
사실 이런 얘기는 증명하기도 어려운 것이니 뒤탈이 날 일도 없었다.
“좋소. 거래해봅시다. 얼마나 소화할 수 있겠소?”
“어떤 주식을 얼마나 가지고 계시는지 알아야 답변할 수 있습니다.”
“텐센츠, 알라바마, 바이투, 제인디닷컴, 핀도도, 바이츠댄스 등이 있소.”
“양은 얼마나 됩니까?”
“시가로 100억 위안이요.”
“대충 14억2천만 달러 정도 되는군요.”
담담한 대한의 말에 왕다오는 묘한 눈빛을 지었다.
마치 네가 정말 이 정도 양을 처분할 수 있겠냐고 눈으로 묻는 것만 같았다.
“제가 당장 살 수 있는 양은 2억 달러 정도입니다.”
“2억 달러나?”
왕다오는 깜짝 놀랐다.
그가 돈을 많이 벌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현금으로 2억 달러를 당장 동원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만약 제가 거래하고 있는 투자회사를 이용하신다면 아마 나머지도 바로 해결하실 수 있을 겁니다.”
“투자회사라니? 그게 무슨 말이요?”
“제가 거래하고 있는 휴즈원이라는 투자회사입니다. 수익률이 무척 뛰어난 곳이지요. 특히 해외에 뒤탈 없는 비자금을 만드는데 일가견이 있지요.”
“해외에 비자금을 말이요?”
왕다오의 눈에 기광이 흘렀다.
표정만 봐도 관심이 아주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돌아가서 당장 휴즈원이 어떤 회사인지 알아보고 싶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물론 휴즈원에 대한 정보는 쉽게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에바가 만들어놓은 수십 개의 페이퍼컴퍼니와 투자회사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아마 원하신다면 스위스 은행에다 달러로 비자금을 꽉꽉 채워줄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수수료가 좀 세긴 합니다.”
“수수료가 얼마나 됩니까?”
갑자기 왕다오의 말투가 정중해졌다.
대한이 생각보다 거물이라고 느낀 모양이었다.
“스위스 은행 같은 곳은 20%의 수수료를 받습니다. 하지만 조세회피처에 계좌를 트는 정도라면 10% 선에서도 해줍니다.”
“그게 정말이요?”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다만 이 얘기는 우리끼리만 아는 것으로 하시죠. 나도 다리만 놔주는 것뿐이니까요.”
“좋소. 그럼 먼저 1억 달러만 거래해봅시다.”
“할인율을 말해주시죠.”
“할인율이라니요?”
“설마 현금을 내고 사가는 주식을 제값 받고 팔겠다는 말씀은 아니시겠죠?”
대한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리나는 옆에서 그의 강한 톤의 말을 듣자 가슴이 조마조마해졌다.
그러나 그녀가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왕다오는 깜빡 잊었다는 듯 자신의 머리를 치며 음흉을 떨었다.
“아! 난 또 무슨 말인가 했소. 당연히 할인을 해드려야지요.”
“아까 말씀하셨던 텐센츠, 알라바마, 바이투, 제인디닷컴, 핀도도, 바이츠댄스 등의 주식부터 말씀해주시죠.”
그의 말에 왕다오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할인율은 시세의 10%에서 최대 20%까지요.”
“설마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는 바이투까지 제값을 받고 파시려는 겁니까?”
“음! 바이투는 30%까지 해주겠소.”
모르긴 해도 원래 그게 적정 할인율이었을 것이다.
왕다오는 그걸 마치 자신이 결정할 수 있다는 듯 말하고 있었다.
주인의 위세를 빌려 개가 어깨에 잔뜩 힘을 주는 형국이었다.
‘에바! 어때?’
―나쁘지 않네요. 돈을 주고 주식을 사서 바로 그날 팔아버려도 10%에서 최대 20%까지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바이투는 제때 팔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요.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고 있는 주식이니 빨리 팔아치우고 싶은 게 저들의 본심이겠지.’
대한은 잠시 고민하는 척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겠습니다.”
“잘 생각했소. 그런데 난 휴즈원이라는 투자회사와도 얘기를 나누고 싶소.”
“당연히 연결해드려야죠. 물론 저에게도 소개비는 주셔야 합니다.”
“소개비라니?”
“제가 다리를 놔줬는데 문제가 생기면 저를 찾아오실 생각 아니셨습니까?”
문제가 생기면 당연히 그들은 대한에게 찾아와 따질 것이다.
그런 위험을 안고 있으니 소개비를 내라는 역설적인 표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