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진로>
―마스터, 그런데 이런 회사들을 세워서 어떻게 하려는 겁니까? 돈을 벌자고 한다면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닙니까?
‘맞아. 돈 버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아마 투자회사에 전력투구했을 거야. 하지만 난 꿈이 있어.’
―그게 뭔데요?
‘부국강병과 자주국방이지.’
―눼에?
에바는 갑자기 이게 뜬금없이 뭔 소리인가 했다.
―혹시 국회로 가시려는 겁니까?
‘하하하! 아니야. 농담이야. 그냥 말이 그렇다는 얘기지. 원래 방위산업이 돈이 되잖아.’
―아! 알겠어요. 이건 방위산업체를 만들기 위한 사전포석 같은 거로군요.
‘비슷해. 난 록키마운틴 같은 세계 최고의 글로벌 방산업체를 뛰어넘는 회사를 만들 거야.’
―꿈이 아주 거창하네요.
‘그 첫 시작으로 일단 군사용 드론부터 만들 거야. 지금으로선 그게 제일 만들기 쉽잖아.’
―솔직히 지구의 과학기술에 맞추면 우리에겐 어떤 무기나 장비를 만들어도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아마도 그렇겠지. 하지만 굳이 지구의 무기를 급속하게 발전시킬 필요는 없어. 딱 한 단계나 두 단계 진보된 무기와 장비를 만들어서 팔아먹는 게 적당해.’
―어떤 무기와 장비를 만드실 생각인데요? 이제 히릭스가 있으니 더 쉽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렇겠지. 일단 우리나라엔 고고도 정찰 드론이 많이 필요해. 미국에서 들여오는 글로벌호크급이면 좋을 것 같아.’
―그 정도는 전혀 문제없습니다.
‘다음은 스텔스 무인 전투기를 만들고 싶어.’
―어느 정도의 성능을 원하시는데요? F-22 랩터 정도면 만족하시겠습니까?
‘아무래도 그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전자전을 할 수 있는 드론도 필요해. EA-18G 그라울러를 살짝 능가할 수 있으면 좋겠어.’
―재밍과 안티재밍 기술을 업그레이드하면 되겠네요.
사실 에바를 이용하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이미 미국과 러시아, 중국과 유럽연합 등.
강대국의 군사비밀과 극비자료는 모조리 가지고 있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해적질을 해대고 있는 중국의 해커들!
놈들이 수십 년 동안 빼낸 각국의 첨단무기개발 자료와 설계도까지 이미 히릭스에 업로드되어 있었다.
―드론 다음은 뭡니까?
‘당장 급한 정찰위성부터 올려야지.’
―군 정찰위성은 정부가 투자하고 국내연구개발로 2022년부터 5개의 정찰위성을 해외 발사체를 통해 차례로 발사하기로 하지 않았나요?
자주국방의 눈인 독자적 감시능력 확보를 위해, 자체 위성을 갖추는 것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앞두고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였다.
‘그렇지. 하지만 미국의 군사 첩보위성인 KH(Key Hole: 열쇠구멍)시리즈에 비하면 많이 부족해. 현재 미국이 주력 군사 첩보위성으로 운용 중인 KH-12의 경우 해상도가 15cm급이야. 최대 해상도는 8cm고. 게다가 최근에 쏘아 올려 비밀리에 운용 중인 KH-14는 스텔스 기술이 적용됐고 1.5cm급 해상도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졌지.’
―그러고 보니 대한민국의 군 정찰위성은 최대 해상도가 30cm급이네요. 미국이 1980년에서 1990년대까지 운용했던 KH-11 급의 해상도 수준이에요.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야. 군 정찰위성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게 SAR(합성개구레이더)장비와 EO/IR(전자광학/적외선)이야. 그런데 유럽 위성 제작업체인 TASI에서 전천후 관측 영상 레이더인 SAR과 위성용 핵심 부분을 수입하기로 했어.’
대한의 말에 에바는 현실을 거론했다.
―그거야 국내기술로 개발할 수 없어서 그렇죠.
‘그래도 센서와 데이터링크가 SAR 위성의 전부인데, 기술이전은 물론이고 실질적인 기술협력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어. 거기에다 위성제작에 관한 지식재산권이 개발업체에 있어서 원천기술엔 손도 못 대고 있는 형편이야.’
―차라리 러시아와 합작해서 만드는 게 좋을 뻔했네요.
‘러시아도 쉽게 기술이전을 해주지는 않을 거야. 아니 어떤 선진국도 자신들이 어렵게 연구해서 개발해놓은 첨단기술을 쉽게 넘겨주려고 하지 않지.’
듣고 보니 참 딱한 사정이었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사정 속에도 대한민국의 방위산업은 매년 눈부신 성장을 하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마스터께서 직접 정찰위성을 만들려고 하시는 거군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미국이 현재 운용 중인 KH-14 급 성능이면 돼.’
‘1cm급 해상도로 만들면 좋아하겠군요.’
‘우리가 그 정도 정찰위성을 만드는 걸 도와줄 수는 있겠지?’
―물론이죠. 저나 히릭스의 능력이 아니라도 그 정도는 중국 해커들이 미국과 유럽의 위성업체에서 빼낸 기밀자료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렇게만 만들어 준다면 아마 어떻게든 웃돈을 주고라도 원천기술을 얻으려고 것이다.
하지만 대한은 굳이 이런 기술을 통째로 넘겨줄 생각이 없었다.
대신 기술료를 받거나 임대해서 당장 쓸 수 있게 도와줄 생각이었다.
물론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한반도 주변에는 쓸만한 강대국들의 정찰위성이 많다.
몇 개 포획해서 업그레이드한 후 재활용하면 손해를 보지는 않을 것이다.
‘정찰위성 다음은 AESA 레이더(AN/APG-77v1급), 터보팬 엔진(F119-PW-100급, 추력편향), 미사일, 이지스시스템, 레이저무기 등을 개발할 거야.’
―혹시 한국형 전투기(KFX)사업을 염두에 두신 겁니까?
‘정확해. 우리가 먼저 각종 원천기술을 선점해서 팔던가 라이선스해주면 서로 좋은 일이지.’
―AESA 레이더와 터보팬 엔진을 개발할 수 있다면 한국형 전투기(KFX)사업이 순항하겠군요.
‘미사일을 만들면 더 빨라질 거야.’
―공대공 미사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꼭 그게 아니라도 만들 수 있는 미사일 종류는 많아. 초소형 미사일, 극초음속 미사일, 탄도탄 요격 미사일 등 종류도 다양하고 군사용 드론과 겹치는 부분도 있어서 시너지 효과가 날 거야.’
이미 국내에서도 다양한 미사일을 제작해 전략화해놓았다.
하지만 아직도 공대공 미사일 같은 것은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극초음속 미사일도 현재 개발 중이니 끼어들 여지가 많았다.
탄도탄 요격 미사일도 계속 업그레이들 하는 중이다.
적당한 선에서 개입해서 원천기술을 싸게 팔아주면 미국이나 이스라엘 못지않은 탄도탄 요격 미사일을 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탄도탄 요격 미사일은 효율이 극악입니다.
‘알고 있어. 그래서 레이저무기를 개발하려는 거야.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데는 그 보다 효과적인 게 없으니까.’
―하긴 빛보다 빠른 미사일은 없지요. 그럼 대충 정리가 됐네요.
‘아직 좀 더 남아있어.’
―그게 뭔데요?
대한은 에바를 쳐다보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부품·소재 산업이지.’
―대일의존도를 낮추려는 생각까지 하신 겁니까?
‘응, 단순히 다른 나라에서 대체재를 찾는 것보다는 근본적으로 일본의 부품 및 소재 기업을 인수·합병하는 게 빠르지. 아니면 국내로 아예 이전을 추진하거나.’
―싫다고 하면 어쩌시려고요?
‘그럼 당연히 국내의 중소기업에 투자하고 기술이전을 해줘야지.’
에바는 그의 말에 회의적인 눈빛을 보냈다.
―아무리 열심히 개발해놔도 정작 재벌과 대기업들은 관심도 두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기술개발에 노력했던 많은 중소기업이 일본의 부품과 소재를 쓰는 재벌과 대기업의 관행으로 인해 사장됐잖아요.
‘그래도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어. 부품과 소재를 국산화하려는 시도를 많이 하고 있다고. 그리고 비자금 뒀다가 뭐할 거야? 주식을 확보해서 사외이사를 꽂아 넣던가, 적대적 인수 합병으로 버르장머리를 고쳐줘야지.’
―그건 제가 잘할 자신이 있습니다.
‘하하하! 그래. 에바는 아마 잘 해낼 거야.’
당장은 비록 말뿐인 계획에 불과했다.
하지만 대한과 에바는 앞으로 모든 것이 하나씩 착착 이루어질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인지 모든 것을 이룰 것만 같은 좋은 기분이 들었다.
―이제 마스터의 진로에 관해서도 얘기해봐요.
‘내 진로?’
―예, 어디로 들어가실지 구단부터 정해주세요. 한쪽으로 투자와 사업을 병행하면서도 얼마든지 인지도와 명성을 높일 수 있지 않습니다.
‘흐음. 사실 그것도 문제네. 축구를 하는 것은 좋지만 구단에 얽매이는 것은 딱 질색이거든.’
―계약을 잘하시면 됩니다.
대한의 말에 그녀는 단순한 논리로 답했다.
하긴 돈에 구애받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계약하기 나름이었다.
최악의 경우, 그냥 단기 용병으로 뛰어도 된다.
골만 잘 넣으면 어떻게든 유리하게 계약을 끌어낼 수 있었다.
‘전에 들어온 스카우트 제안은 어떻게 됐지?’
―EPL의 빅식스와 라리가의 2강으로부터 들어온 스카우트 제안 말씀입니까?
‘응, 한동안 아주 뜨겁지 않았어?’
―그랬죠. 하지만 마스터의 여행이 길어지자 지금은 많이 식었습니다. 그렇다고 아예 마음을 접은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럼 슬슬 협상을 진행해보자!’
―전문 에이전트를 고용해서 계약을 진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수수료는 좀 들어가겠지만 아무래도 마스터가 원하는 게 있다 보니 그게 수월할 겁니다.
‘좋아, 그렇게 해봐!’
그는 에바의 의견을 전격 수용했다.
이제는 돈보다는 시간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그냥 돈을 써서 해결하기로 했다.
‘UFC와 벨라코어 FC는 어때?’
―양쪽 다 언제든지 원하면 바로 시합을 주선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양반들이 참 돈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아.’
―그만큼 마스터의 흥행성적이 좋아서 그러는 겁니다.
맞는 말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1년이라는 공백 기간을 참고 있을 위인들이 아니었다.
‘나야 시합을 한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지.’
―두 단체에서는 마스터가 돌아오길 학수고대할 겁니다.
‘그럼 에바가 연락해서 일을 추진해봐!’
―UFC와 벨라코어 FC 모두요?
‘당연하지. 대신 시합 사이의 간격은 최소 한 달 이상으로 하는 게 좋겠어. 전처럼 너무 단기간에 많은 시합을 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바로 추진해보겠습니다.
대한의 상태창에 적힌 직업이 종합격투기 선수다.
그러니 그것에 맞게 종합격투기 시합을 하기로 했다.
평상시에 꾸준히 배틀푸르나(SSS)를 연공하고, 탄탈러스(SSS)와 크루세이더(SSS)도 열심히 연마하면 된다.
축구를 하든, 종합격투기를 하든, 아니면 다른 새로운 종목을 선택하든!
몸을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 놓기만 하면 뭘 하든 문제없었다.
―마스터의 계획대로 일을 진행하려면 필드에서 믿고 맡길 존재들이 필요합니다.
‘혹시 로봇과 안드로이드를 말하는 거야?’
―네, 그렇습니다.
‘설마 전부 데려와서 쓰겠다는 거는 아니겠지?’
―히릭스를 달 후면으로 보내 달기지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니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는 사용했으면 좋겠습니다.
‘얼마나 필요한데?’
―달기지를 세울 로봇과 안드로이드는 탐사로봇 12대와 기타 36대의 로봇 그리고 탐사용 안드로이드 12대입니다.
대한은 로봇과 안드로이드의 숫자를 세어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도 너무 많이 남는데. 전투 로봇 12대와 다용도 휴머로이드 로봇 12대로 충분하지 않아?’
―마스터가 여기 계시는데 가사용 안드로이드와 레저용 안드로이드가 달기지에 가서 뭘 하겠습니까? 차라리 인공지능을 조금 업그레이드하고 방어력을 올려서 마스터를 경호하거나 시중들게 하는 게 낫지요.
‘그렇게 해도 되겠군. 그럼 가사용 안드로이드가 12대, 레저용 안드로이드 12대이니 합계 24대로군.’
대한과 에바가 부릴 수 있는 로봇이 24대, 안드로이드가 24대란 뜻이다.
‘얘네들을 어디다 투입할 거야?’
―앞으로 만들어질 회사와 연구소를 각각 맡길 생각입니다.
‘그럼 벤처기업과 연구소를 48개는 만들어야겠군.’
―계산을 잘못하셨습니다. 마스터와 마스터의 부모님을 지킬 경호원과 시중을 들 숫자는 빼야지요.
‘아차! 그렇구나.’
아무리 전문경호원이 지킨다고 해도 로봇과 안드로이드보다 잘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스터의 부모님께 전투 로봇 2대와 휴머로이드 로봇 2대를 보내겠습니다. 그리고 가사용 안드로이드 2대를 따로 보내 집안일을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생각이야.’
―마스터의 경호는 전투 로봇 2대와 휴머로이드 로봇 2대가 맡고 시중과 잡일을 할 가사용 안드로이드 2대, 레저용 안드로이드 2대를 추가하겠습니다.
‘수행원이 여덟 명이면 움직이기가 좀 불편할 것 같은데.’
―당장은 차를 빌려서 쓰면 됩니다. 앞으로 타고 다니실 방탄 차량은 이미 몇 대 주문해놓았습니다. 미국 대통령이 타고 다닌다는 ‘비스트’나 ‘캐딜락 원’급의 성능입니다. 물론 출고되면 히릭스로 가져가서 업그레이드와 강화를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