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만재능(Feat. 대한 TV)-160화 (159/331)

160화 <비자금>

“여보세요?”

“…….”

뚝!

전화를 받자마자 뚝 끊어버렸다.

다시 전화했다.

“여보세요?”

“…….”

뚝!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대한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지은 죄가 있으니 한 번만 더 참기로 했다.

“…….”

“…….”

상대가 전화를 받자 그는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끊으려는 기미가 없자 대한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올리버! 나 대한이야.”

“…….”

“미안하긴 한데, 그래도 말도 없이 끊으면 어떻게 해. 한 번만 더 끊으면 다시는 전화 안 한다.”

뚝!

결국, 올리버는 전화를 또 끊고 말았다.

세 번이나 노력했지만 통화에 실패해버렸다.

녀석이 이렇게 나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 1개월의 시간이 올리버에게는 1년이었을테니 말이다.

어쨌든 입맛이 씁쓸해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에바!’

―네, 마스터.

‘보조 모듈이 왜 올리버에게는 전화하지 않았어?’

―남자들끼리 전화 자주 하고 그러는 거 아니라고 하셨잖아요.

‘커억! 할 말 없게 만드네.’

에바의 뼈를 때리는 소리에 대한은 적지 않은 내상을 입었다.

괜히 상남자 코스프레를 해서 이런 사단을 키운 것 같다.

‘하이스는 지금 뭐 해?’

―하이스 올리베이라 양은 뉴욕에서 봄 패션 촬영 중입니다. 그동안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맹활약한 덕분에 이제는 슈퍼모델로 단단히 입지를 굳혔습니다.

‘앞으로는 연락하기도 쉽지 않겠다.’

―가끔 연락을 하긴 했습니다.

공백기를 만든 것은 사실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

물론 다들 대한의 잘못이라고 인식하고 있겠지만.

그래도 가끔 연락했다는 말에 살짝 서운한 감정이 생겼다.

‘혹시 남자친구라도 생긴 거야?’

―몇 명 만나보긴 했지만 깊은 관계로 발전하지는 못했습니다. 아직은 일하는 게 재미있나 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왠지 그녀의 말이 크게 위로가 됐다.

‘시간 나면 연락 달라고 메시지 하나 넣어줘!’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일단 하이스는 나중에 따로 만나보기로 했다.

그런데 베이징에 있어서 그런지 자꾸 류연 생각이 났다.

여기가 그녀의 고향이라고 했던 말 때문인 모양이었다.

‘류연은 지금 어디 있어?’

―현재 프랑스 남부에서 첩보영화를 찍고 있습니다. 거액의 자금이 투입된 대작이라 영화계에서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베이징에 와서야 류연이 얼마나 잘 나가는 여배우가 됐는지 알게 됐다.

그녀는 뷰티 아나운서에서 단번에 영화배우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류연이 주연급으로 나온 영화 ‘당인가탐안 3’이 1편과 2편을 뛰어넘는 공전의 히트를 하는 바람에 류연은 일약 스타가 되어버렸다.

그녀도 중국의 차세대 사대 여신에서 ‘차세대’란 타이틀을 떼어버렸다.

그리고 당당히 사대 여신의 반열에 이름을 올려놓았다.

슬랩스틱 코미디와 콩트에다 추리물을 버무려 넣은 것만 같은 영화!

류연의 허당기 가득한 여주의 매력은 그대로 흥행으로 이어졌다.

에바가 띄워준 자료화면을 보며 보충설명을 들었다.

그러고 나자 왠지 어깨에 힘이 좀 빠졌다.

‘연락은 좀 했어?’

―물론이죠. 종종 연락했습니다. 그런데 류연도 마스터에게 자주 연락해왔어요.

‘그으래?’

‘전화는 그 누구보다도 자주 걸었습니다.’

―그렇구나.

류연이 자주 연락을 했다는 말에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어째 오늘 대한의 기분은 에바의 말 한마디에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만 같았다.

‘촬영 끝나면 보자고 연락해줘!’

―메시지를 보내겠습니다.

에바는 곧바로 SNS를 통해 류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대한의 생각은 이제 모니카에게 닿았다.

‘에바! 모니카에게는 연락 없었어?’

―전혀 없었어요. 약혼한다는 소식이 있긴 한데 한번 알아볼까요?

‘약혼?’

―모니카의 개인사에 관해 알아보는 건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예 정보를 얻으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우연히 그녀가 약혼한다는 소식을 접하긴 했습니다.

그는 모니카가 약혼한다는 말에 가슴이 시큰거렸다.

그래도 첫 키스를 한 여자였다.

남자는 첫 키스를 한 여자를 평생 못 잊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일까?

그녀를 생각하는 대한의 마음은 왠지 애틋하기만 했다.

‘정말 약혼을 하는 거라면 잘살라고 축하해줘야지.’

―그럼 모니카의 약혼에 대해 알아볼까요?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알겠어요. 즉시 알아보겠습니다.

올리버, 하이스, 류연, 모니카에 이어 이번에는 나나 히로세를 떠올렸다.

‘나나는 어떻게 지내?’

―절정의 연기력으로 일본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와우! 역시 그녀의 재능이 화려하게 꽃을 피웠군.’

―마스터에게 자주 연락을 했습니다. 선물도 여러 번 보냈습니다. 최근에는 킥복싱에 푹 빠져서 연락이 좀 뜸하긴 했지만 그래도 SNS를 통해 이모티콘을 꾸준히 보내오고 있습니다.

나나는 대한과 관계가 끊어지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다들 1년의 공백 기간에 승승장구했다.

어떻게 보면 자신만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된 모습이었다.

‘이거 앞으로 분발해야겠다.’

―열심히 하셔야 할 겁니다.

에바의 목소리에 장난기가 가득했다.

그를 놀리려고 하는 말이 분명했다.

대한은 냉장고를 열어 오렌지주스를 꺼내 마셨다.

창가에 놓인 소파에 앉아 베이징 시내를 쳐다봤다.

밤과는 달리 스모그와 미세먼지에 찌든 도시의 모습은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더구나 이놈의 미세먼지가 바람을 타고 한반도로 온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그런데 리나는 왜 안 오는 거야?’

―광고 촬영이 늦어져서 시간에 맞춰 돌아오기는 힘들 것 같네요.

대한은 리나가 보고 싶었다.

자신의 동정을 바친 여자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녀가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럼 막간에 우리 앞으로 어떻게 할지 작전을 좀 짜보자.’

―네, 마스터.

대한은 리나가 돌아올 때까지 자신의 미래를 설계해보기로 했다.

‘먼저 내가 가진 돈이 얼마나 되지?’

―대한TV 계좌에 30억 원의 잔액이 있습니다.

‘그 정도면 대한TV를 운영하기에는 충분한 돈이지.’

―맞습니다.

그동안 대한TV가 뭘 했고 얼마나 성장했는지는 나중에 따로 보고받기로 했다.

에바의 설명이 빠르게 이어졌다.

―그동안 대한TV를 통해 들어온 수익 대부분을 그레이트원 투자회사로 넣고 투자를 했습니다. 보조 모듈이라서 다소 보수적으로 투자를 한 탓에 많이 벌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되는데?’

―현재 마스터의 투자계좌에 들어있는 돈은 4천억 원입니다.

‘4천억 원이라.’

예전 같으면 엄청 많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간이 엄청나게 부어버려서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돈이군.’

―혼자 잘 먹고 살기에는 차고 넘치는 돈입니다. 그러나 비즈니스를 한다면 중소기업이라면 모를까 대기업을 하기에는 많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이것과는 달리 눈에 드러나지 않게 불어난 비자금이 많이 있습니다.

‘비자금이라면?’

대한의 말에 에바는 허공에 자료화면과 도표까지 띄워서 쉽게 설명했다.

―전 세계의 휴면계좌를 통해 빼돌린 주인 없는 돈과 검은돈을 세탁해서 모아둔 비자금이 1억 달러입니다.

‘그게 시작이었지.’

에바의 말에 하나씩 기어나기 시작했다.

―다음은 로티 부회장 노동규를 기억하실 겁니다.

‘물론이지.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어.’

―노동규가 스위스 은행과 조세회피처(Tax heaven) 등에 숨겨둔 비자금과 개인계좌의 돈을 합쳐 1,200억 원을 털었습니다. 거기에다 로티 그룹의 주식을 팔아서 2,400억 원을 받았습니다.

―노동규한테만 3,600억 원을 챙겼군.

지금은 병상에서 해롱대고 있지만, 한때는 세상 두려운 것 모르고 날뛰던 자였다.

그녀는 다음으로 넘어갔다.

―마스터의 어머니이신 김혜영 여사가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했던 것도 있습니다.

‘아! 맞다. 그래서 내가 보이스피싱 조직을 일망타진해버렸지.’

―당시 보이스피싱 조직의 자금과 그들이 주식과 채권 등에 투자한 돈, 그리고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의 개인계좌에 들어있던 돈을 전부 털어버렸습니다. 다 합치니 그것도 1억 달러에 육박하더군요.

‘새끼들 많이도 해 처먹었네.’

―보이스피싱 조직에 의해 한국에서 참 많이도 당했습니다. 하지만 중국 본토에서 사기 친 것에 비하면 그것도 새 발의 피입니다.

‘진짜 보이스피싱은 세상에 백해무익한 놈들이야.’

대한은 보이스피싱이라면 아주 이가 갈렸다.

어머니가 직접 당해서 피해를 봤으니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약 섞인 콜라를 마셨던 사건도 있습니다.

‘어휴! 내가 미쳤지. 그때 괜히 꼬맹이가 준 콜라를 마셔가지고 사단이 났어.’

―하지만 그 덕분에 큰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스포츠 베팅으로 놈들의 돈을 많이 털어먹었잖아.’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중국의 삼합회 미국지부 자금 5천만 달러, 일본 야쿠자의 미국지부 자금 1억 달러, 러시아 마피아의 미국지부 5천만 달러, LA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난 히스패닉 갱단 ‘아미고스’의 조직자금 5천만 달러를 가로챘습니다.

‘우와! 그것만 해도 2억5천만 달러가 넘어가네.’

그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에바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니 엄청난 비자금이 모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이라이트는 그게 아닙니다. 이 과정에서 가용할 수 있는 비자금과 급전까지 전부 동원해 배팅한 게 3억 달러에 달합니다. 덕분에 원금의 두 배인 6억 달러를 배당금으로 벌었습니다.

‘그럼 이게 다 얼마야?’

―13억5천만 달러입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뭐가 또 있어?’

―당연하죠. 13억5천만 달러를 보조 모듈이 보수적으로 투자해서 수익을 낸 게 5억5천만 달러에 달합니다. 그러니 전부 합치면 19억 달러가 됩니다.

‘19억 달러라면 원으로는 2조 2800억 원($1=\1,200)이나 되네.’

정말 엄청난 비자금이었다.

―거기다 이번에 운 좋게 얻어걸려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셨죠.

‘맞아. 희대의 사기꾼인 장민이 스위스 은행에 숨겨놓은 돈을 우리가 털었지.’

―그게 400억 위안인데 대략 56.83억 달러가 됩니다. 그동안 불려놓은 비자금까지 전부 합치면 총액이 75.83억 달러입니다.

‘원화로 환산하면 헉! 8조9300억 원이네.’

그동안 대한이 개인방송으로 벌고 에바가 투자해서 불린 돈이 4천억 원이다.

그런데 드러나지 않게 보유한 비자금은 8조9300억 원이나 됐다.

‘앞으로 비자금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서 4천억이 4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무슨 뜻인지 잘 알았어.

대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어떻게 비자금을 쓸지 대충 기준을 잡았다.

‘일단 비자금은 세상에 떳떳하게 내놓을 수 없는 돈이니까 에바가 미국과 유럽 등지의 조세회피처를 통해 투자회사의 투자금으로 만들어놔!’

―이미 깔끔하게 세탁해서 투자금으로 만들었습니다.

‘잘했어. 앞으로 지주회사를 하나를 세우고 그 아래 투자회사를 비롯한 여러 회사를 두는 거야.’

―지주회사를 중심으로 세워진 여러 회사에 비자금을 투자하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지.’

역시 에바는 이해가 빨랐다.

한마디를 하니까 바로 다음 단계를 알아먹었다.

―일종의 금선탈각 계책이네요.

금선탈각(金蟬脫殼)이란 손자병법에 나오는 제21계다.

매미가 허물을 벗듯 감쪽같이 몸을 빼서 도망치는 것을 말한다.

에바는 약간 반대의 개념으로, 비자금을 이용해 대한의 주머니를 채우는 것을 빗대어서 언급한 것이다.

‘그렇게 볼 수도 있지.’

―지주회사 아래에는 어떤 회사를 세우고 싶으세요.

‘아무래도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빅데이터,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혼합현실(MR), 3D 프린팅, 자율 주행, 배터리 등 앞으로 뜨게 될 종목들이 좋겠지.’

―많은 자본이 들어가지 않는, 주로 기술력으로 승부를 볼 수 있는 분야로군요.

‘맞아. 이것 말고도 기술융합, 기술구매 및 기술판매 대행을 하는 벤처기업을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아.’

―네, 훌륭한 생각이십니다.

에바는 대한의 아이디어에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이런 종목의 회사를 일일이 하나씩 세우려면 시간과 노력은 물론 인재도 많이 필요하겠는데요.

‘그렇지. 그래서 기존에 있는 적당한 회사를 골라 인수·합병하려고 해. 경영권을 인수하고 나면 자본 및 기술투자와 함께 전문경영인을 들이고 꼭 필요한 인재들을 충원해서 빠르게 안정시킬 수 있어.’

―알겠습니다. 쉬운 길이 있는데 굳이 어려운 길로 갈 필요는 없지요.

기본적인 계획이 세워지자 에바는 그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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