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황금알을 낳는 거위>
단군 이래 최대의 금융사기 사건으로 불리는 ‘장영자 사건’.
수감생활만 29년에 이르는 이 희대의 사기꾼 장영자(74)가 해먹은 어음 사기가 7,111억이다.
물론 그 뒤로도 자잘하게(?) 더 사기를 치다가 다시 잡혀 들어갔다.
일단 가장 큰 덩어리는 이 정도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장민이 해먹은 어음·수표 사기는 그 열 배에 달하는 무려 429억 위안이었다.
우리 돈으로 7조가 훨씬 넘는다.
확실히 뭐를 하던 남다른 대륙의 어마어마한 스케일이었다.
“네가 해먹은 돈이 429억 위안인데 벌금으로 29억 위안을 냈어. 그럼 나머지 400억 위안은 어디로 갔을까?”
장민은 마치 책을 읽는 듯한 그의 목소리에 몸을 벌벌 떨기 시작했다.
털썩!
그녀는 소파에서 내려와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살려주십시오. 뭐든지 하라는 대로 하겠습니다.”
“내가 언제 너보고 말을 하라고 했지?”
대한의 협박에도 장민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이번 기회를 놓치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한 번도 국안부에서 온 사람이 없었다.
아니 왔어도 전부 장민과 내연의 관계이거나 돈 관계가 있는 사람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자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버젓이 국안부에서 왔다고 말을 한다.
이건 지금 그녀를 어떻게 처리할지 어느 정도 내부정리가 끝났다는 말과 같았다.
겁에 질린 장민은 이제 살기 위해 뭐라도 해야 했다.
“저를 살려주시면 거액의 돈을 나라에 헌납하겠습니다.”
“그냥 조용히 여기서 살지 왜 자꾸 나오겠다고 기를 쓰고 있어?”
“제 나이 이제 38살입니다. 10년이 지나면 48살이 됩니다. 그때는 아마 그 누구도 저를 거들떠보지도 않을 겁니다.”
“그래서 네가 밖에 나와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는데?”
대한의 냉정한 말에 그녀는 중대한 결심을 한 얼굴로 말했다.
“저를 살려주시면 50억 위안을 헌납하겠습니다. 밖으로 내보내 주시면 다시 50억 위안을 내겠습니다.”
“오오! 100억 위안을 내겠다고? 그럼 진즉에 그렇게 하지 왜 지금까지 버텼어? 어지간한 고문과 자백제를 맞고도 악착같이 쥐고 있던 것을 왜 이제야 내놓으려 하는 거야?”
대한은 재능을 얻기 위해 시간을 보내려고 대충하고 있는 말이다.
하지만 듣는 개구리는 날아오는 그의 돌멩이 같은 말에 당장이라도 맞아 죽을 것만 같았다.
“두 가지를 해주시면 따로 10억 위안을 수수료로 드리겠습니다.”
“이제 110억 위안이네. 그럼 나머지 290억 위안 가지고 한번 잘살아 보려고 그래?”
“제발 도와주십시오.”
“내가 왜?”
도와달라는 말에 그는 무뚝뚝한 얼굴로 대답했다.
“10억 위안을 드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에게! 겨우 그거로 누구 코에 붙여?”
“50억 위안을 드리겠습니다.”
“하하하! 상당히 세게 나오네. 내가 그 돈 먹으면 무사하지 못할 것 같은데.”
“아닙니다. 스위스 은행에 넣어 둬서 전혀 뒤탈이 없습니다.”
“거절하겠어. 원하는 데로 밖으로 내보내 줄 테니 지금 나가자.”
돈을 거절하고 데리고 나가겠다는 것은 죽인다는 뜻이다.
장민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대로 죽을 수 없었다.
400억 위안을 숨겨뒀는데 한 푼도 쓰지 못하고 죽으면 너무 억울했다.
“그, 그럼 100억 위안을 수수료로 드리겠습니다.”
“하긴 200억 위안 내고, 남은 200억 위안으로 살면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감사합니다.”
장민은 대한의 발에 머리를 대고 조아렸다.
하지만 그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먼저 확실히 돈이 있는지부터 확인해보자. 계좌번호 불러봐!”
“네에?”
“스위스 은행에 조회를 해보게 계좌번호를 불러보라고.”
“네.”
그녀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스위스에 은행이 한두 개가 있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달랑 계좌번호만 가지고 있다고 조회를 할 수는 없었다.
이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자신의 목숨을 결정할 수 있는 자가 왔으니 일단을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그래도 혹시 몰라 돈이 가장 적게 들어있는 계좌번호를 선택했다.
“011988807593입니다.”
장민이 계좌번호를 얘기하자 그는 잠시 뜸을 들였다.
그러다가 이내 눈빛을 빛냈다.
“흐음. 아주 특이한 계좌로군. 들어있는 돈은 39,570달러밖에 안 되는데 최대 1억 달러까지 찾을 수 있다니. 그런데 전부 돈을 빼내 가기 전까지는 항상 잔액을 39,570달러로 유지하는군. 스위스 은행들이 아주 제대로 꼼수를 써놓았어.”
“허억! 그, 그걸 어떻게.”
대한의 말에 장민은 깜짝 놀랐다.
그냥 계좌번호만 불러줬는데, 그는 자신의 스위스 계좌의 실체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거기에다 정확히 잔액을 얼마나 유지하고 있는지까지 파악해버렸다.
그녀는 팔에 소름이 돋았다.
이건 절대 그가 혼자 움직이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최소한 국안부의 암호, 통신공작을 담당하는 제14국 ‘미마·통신국’이나 내부 전산망 관리, 전산망의 외부 침입 방지 및 사이버 정보분석을 주 업무로 하는 제16국의 ‘계산기관리국’이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호, 혹시 14국이나 16국에서 오셨습니까?”
“흥!”
이럴 때는 그냥 콧방귀만 한번 끼여주면 된다.
굳이 말을 해서 틈을 보여줄 필요가 없다.
―마스터! 찾았습니다. 스위스에 있는 제너럴뱅크라는 곳에 10개의 계좌가 같은 날 개설됐습니다. 계좌의 돈을 모두 합치니 56.83억 달러, 정확히 400억 위안입니다.
‘암호는 알아냈어?’
―피코셀을 대뇌로 보내서 기억의 편린을 스캔하고 있습니다.
대한은 에바의 말을 들으며 조용히 윽박질렀다.
“헛소리 집어치우고 당장 암호나 말해!”
“먼저 저를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해주십시오. 그럼 말하겠습니다.”
“내가 언제 너를 죽인다고 말한 적이 있었나?”
그녀를 바라보며 그는 능글맞게 말했다.
“절 살려주십시오. 그리고 이곳에서 내보내 주세요. 그럼 100억 위안을 헌납하고 100억 위안을 수수료로 내겠습니다.”
“그게 네 돈이야? 전부 남의 돈이잖아!”
“그렇다고 따로 주인이 있는 돈도 아니지 않습니까! 어차피 기업들을 협박해서 모금한 돈인데.”
장민은 말을 하면서도 연신 그의 눈치를 살폈다.
말하기가 영 껄끄러운 얘기였기 때문이다.
그제야 대한은 그녀가 어떤 돈을 해 처먹었는지 알 수 있었다.
공산당 간부들이 자국의 기업을 협박해서 반자발적으로 거액을 모금했다.
물론 기업들도 아무런 대가 없이 돈을 내놓진 않았을 것이다.
각종 이권은 물론이고 뭔가 이득을 볼 수 있는 유무형의 혜택을 받았을 것이다.
중국에서 기업을 경영하는 것은 공산당과 유착하지 않고는 절대 불가능하니까 말이다.
어쨌든 이런 돈을 장민은 자신의 몸과 남편의 직위를 이용해, 어음과 수표 및 채권을 발행해 가로챘다.
당연히 나중에 사기라는 것이 밝혀졌다.
하지만 오히려 아무도 나서려고 하지 않고 꼬리를 말았다.
돈을 돌려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설사 돌려받는다고 해도 그렇게 되면 부정부패로 걸려서 사형을 당할 수도 있다.
덕분에 장민을 조사하는 공안도 열심을 내지 않았다.
하루가 멀다고 위에서 압력이 내려오니 대충 조사를 하고 넘겨버렸다.
그러나 아쉽게도 워낙 거액의 사기 사건이라 그녀는 무죄로 풀려나지 않았다.
공산당 간부를 능멸했다는 괘씸죄까지 적용해 무기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장민도 아니었다.
당 고위층에 선을 대고 거액의 벌금을 내는 것으로 곶감 빼먹듯이 자신의 형량을 줄여나갔다.
이제 한두 번만 더 하면 형기를 1년쯤 단축할 수 있었다.
자유의 몸이 된다면 바로 스위스로 달려가서 돈을 찾아 유럽을 여행하며 떵떵거리고 잘 살 수 있었을 뻔했다.
그런데 재수 없게도 국안부에서 해결사를 보냈다.
이제 장민은 더 이상 앞뒤를 재고 자시고 할 게 없었다.
무조건 그에게 매달려야 한다.
대한에게 있어서, 이런 장민의 뇌피셜과 오해는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마스터! 찾았습니다. 그녀가 떠올린 기억의 편린들을 분석한 결과 계좌 3개의 암호를 찾아냈습니다.
‘좋았어. 그럼 나머지도 한번 찾아봐!’
―장민이 암호를 떠올리면 더 빨리 찾을 수 있습니다.
―올! 그 정도야 일도 아니지.
그는 목소리를 최대한 깔고 말했다.
“혹시 암호를 잃어버린 것은 아니겠지?”
“네에! 지금 농담하시는 겁니까? 절대 그럴 리 없습니다.”
“아무래도 시간을 끌려는 수작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약속만 해주신다면 틀림없이 돈을 내어드리겠습니다.”
대한은 장민의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마스터! 나머지 7개 계좌의 암호를 모두 찾아냈습니다. 현재 스위스의 제너럴뱅크에 접속해 확인하고 있습니다.
‘잘했어.’
―확인이 끝났습니다. 10개의 암호는 10개의 계좌에 모두 정확히 들어맞는 암호입니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뭘 어떻게 해? 당연히 감사히 받아야지. 이건 손을 대도 절대 뒤탈이 없는 돈이잖아.’
―알겠습니다. 흔적을 남기지 않고 모두 빼내겠습니다.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한두 푼도 아니고 무려 400억 위안이다.
원화로 6,651,072,000,000원.
달러로 $5,682,867,200.
유로로 €5,100,373,312.
이런 거액을 몇 마디 말로 챙길 수가 있다니!
슈퍼로또를 몇 번 맞아도 만들 수 없는 천문학적인 돈이었다.
우웅! 우웅!
그때 반가운 공명음이 뇌리를 스쳤다.
이어 에바의 목소리가 뒤를 따랐다.
―재능 흡수 대상자 장민의 재능 화술(SS)과 유혹(SS)을 흡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화술(S)과 유혹(S)을 획득했습니다.
―유혹(S)이 매혹(S)으로 바뀌었습니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유혹이 매혹으로 바뀌었다.
대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유혹보다는 매혹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대한은 장민을 통해 400억 위안을 날로 먹고, 재능 화술(S)과 매혹(S)까지 얻었다.
당장은 S급 재능으로 획득했지만 앞으로 쓰기에 따라서 등급이 변할 것이다.
그에게 있어 그녀는 정말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줬다.
“오늘은 더 이상 진척이 없군.”
“아!”
대한은 시계를 보면서 소파에서 일어났다.
장민은 그가 일어서자 안타까운 탄성을 발했다.
그녀의 예감은 이 사람을 절대 놓치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제발! 저를 좀 데리고 나가주시면 안 될까요?”
“아직 얘기도 마무리 짓지 않았는데 먼저 내보내 달라는 거야?”
“그, 그게.”
자신이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다.
하지만 장민은 자꾸만 그의 다리를 붙잡고 싶었다.
대한도 비 맞은 고양이처럼 자신을 쳐다보는 그녀의 눈을 보자 왠지 불쌍해졌다.
‘에바! 돈도 많이 벌었는데 장민을 빼내 줄까?’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그녀의 재능인 화술(SS)과 유혹(SS)에 넘어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에바의 말에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대한은 즉시 배틀푸르나(SSS)를 운용했다.
그러자 마음이 편안해지고 정신이 맑아졌다.
‘장민도 결국은 한통속이나 마찬가지야.’
―맞습니다. 그녀의 남편이 국안부 국장입니다. 같이 모의를 했다지만 여러 남자들과 바람을 피우고 다녔고 남의 돈을 갈취한 죄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정말 동정할 가치도 없는 여자네.’
―그래도 뒤탈을 없애려면 개평을 주는 것도 괜찮을 겁니다.
‘개평이라!’
대한은 에바의 말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도박판에서 판돈을 다 잃고 나서 죽거나 사고 치지 말라고 주는 게 개평이다.
그런데 에바가 이런 소리를 하고 있다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좋아. 나에게 좋은 재능도 기부했으니 1억은 돌려주자.’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에바는 그의 말에 순응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여기서 대한과 에바 사이에 약간의 오해가 발생했다.
그가 1억이라고 한 것은 1억 위안을 말한 것이다.
그런데 에바는 딱 1억 원만 장민에게 남겨놓았다.
1억 위안이라면 166억 원이 넘는 돈이다.
하지만 서로 다른 단위로 계산해버리는 바람에.
그녀는 1억 위안 대신 1억 원.
즉 60만 1400위안만 개평으로 받았다.
장민에겐 참으로 야속하고 모진 에바였다.
“언제 다시 오실 겁니까?”
“…….”
대한은 장민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문을 열고 그의 수행원들이 즉시 사방을 점했다.
“말씀 잘 나누셨습니까?”
“…….”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바오슝 소장.
대한을 향해 90도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하지만 역시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스쳐 지나갔다.
바오슝은 장민에게 달려가 혹시 무슨 실수를 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그런데 그녀도 역시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영문을 모르는 바오슝만 이걸 받아들여야 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했다.
부웅 부우웅!
대한과 수행원은 두 대의 SUV를 타고 정문을 통해 빠져나갔다.
백미러로 보이는 베이징 친청교도소!
어쩐지 그의 눈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