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만재능(Feat. 대한 TV)-157화 (156/331)

157화 <베이징으로>

그때, 장연진 원장이 밖으로 나왔다.

“가신다고요?”

“네, 잘 보고 갑니다. 다음에 시간 내서 또 오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세요. 무리는 하지 마시고요.”

“하하하! 알겠습니다. 원장님도 건강하세요.”

“네, 이대한 선수도 건강하세요.”

장연진은 대한의 손을 잡고 살갑게 작별인사를 했다.

고리나는 장연진 원장을 안고 한참 동안 서 있었다.

눈에는 눈물이 글썽이는 것을 보니 그간 정이 많이 들었나 보다.

아이들과는 따로 작별인사를 하지 않았다.

그래야 다음에 다시 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원장님 다음에 뵙겠습니다.”

“리나! 조심히 잘 가요. 그리고 원하던 것 꼭 성취하기 바래요!”

“네에.”

왠지 모르지만, 고리나는 장연진 원장의 말에 힐끔 대한을 쳐다봤다.

잠시 그렇게 작별인사를 하자 리슈잉이 하얀 럭셔리 밴을 몰고 왔다.

왕슈잉이 얼른 문을 열어줬다.

대한과 고리나가 밴에 타자 왕슈잉도 조수석에 올랐다.

둘은 창문을 내리고 장연진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부우우웅!

리슈잉은 천천히 사랑의 집을 빠져나갔다.

“칭다오 국제공항까지 40분쯤 걸릴 거예요.”

“네, 알았어요. 도착하면 말해줘요.”

고리나는 왕슈잉과 리슈잉의 대답도 듣지 않고 스위치를 눌렀다.

지이이잉!

운전석과 뒷좌석 사이를 막는 차단막이 올라왔다.

왕슈잉과 리슈잉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눈을 빛냈다.

벌써 반년 가까이 고리나와 함께 지냈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이동할 때 차단막을 올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

밴에서 옷을 갈아입거나 너무 피곤해서 쓰러져 잠을 잘 때뿐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잘생긴 남자라지만!

버젓이 앞 좌석에 여자가 둘이나 있는데 어떻게 차단막을 칠 생각을 했을까!

둘은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어! 음악이 들린다.”

“음악을 틀었네.”

왕슈잉과 리슈잉은 다시 한번 서로의 눈을 마주쳤다.

이제는 고리나의 의도가 확실히 느껴졌다.

“그냥 조용히 가자.”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뜻이겠지.”

둘은 입맛을 다시며 정면을 바라봤다.

하지만 자꾸 뒤로 신경이 가는 못된 본능은 억제하기 힘들었다.

부우웅!

럭셔리 밴은 빠르게 칭다오 국제공항을 향해 달려갔다.

성도(省道)를 타고 가다 고속도로로 넘어갔다.

그러자 40분도 되지 않아 그들은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끼익!

출국 터미널에 도착하자 기획사에서 보낸 로드매니저를 만날 수 있었다.

리슈잉은 로드매니저에게 차 키를 주고 인수인계를 했다.

왕슈잉은 밖으로 나와 문을 두드렸다.

“칭다오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나오세요.”

덜컹!

왕슈잉의 말이 끝나자마자 선글라스를 쓴 고리나가 밖으로 나왔다.

그녀의 뒤를 대한이 따르고 있었다.

리슈잉과 왕슈잉은 고리나의 전신을 매의 눈으로 매섭게 훑어봤다.

자신들이 생각했던 그런 부적절한 관계가 없었는지 보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고리나는 너무 멀쩡했다.

이번에는 대한을 살펴봤다.

특별히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없었다.

혹시나 해서 리슈잉은 냄새를 맡으러 밴 안으로 들어가 보려고 했다.

그러자 고리나에게 즉시 저지당했다.

“내 캐리어는 뒤에 실었잖아요.”

“아! 네.”

리슈잉은 아쉬운 마음을 접고 곧바로 밴의 트렁크를 열었다.

킁킁!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고개를 안으로 들이밀고 슬쩍 냄새를 맡아봤다.

하지만 고리나의 향수 냄새 외에는 아무 것도 맡을 수 없었다.

왕슈잉도 리슈잉과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녀는 고리나와 대한이 앉았던 의자를 세심히 살펴봤다.

역시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던 왕슈잉!

몸을 돌리자 느껴지는 고리나의 싸늘한 눈초리에 깜짝 놀랐다.

왕슈잉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죄송합니다.”

“흥!”

고리나는 팔짱을 끼고 서서 콧방귀를 꼈다.

어지간하면 화를 잘 내지 않는 고리나!

하지만 한번 화가 나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화끈한 성격이었다.

리슈잉과 왕슈잉은 괜히 고리나를 잘못 건드린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두 사람이 뭔짓을 하든 그게 뭐라고 자신들의 밥줄까지 걸었을까 살짝 후회가 됐다.

다행히 두 여자를 구해준 백마탄 기사가 옆에 있었다.

“리나! 짐은 내버려두고 우리 먼저 안으로 들어가자.”

“응.”

찬바람이 쌩하게 불던 고리나!

대한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봄날의 햇살이 되어 버렸다.

고리나는 그에게 팔짱을 끼고 기분 좋게 터미널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 모습에 리슈잉과 왕슈잉은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서둘러 포터를 부르고 베이징으로 부칠 짐을 날랐다.

* * *

“고맙습니다.”

“천만에요.”

대한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왕슈잉과 리슈잉이 싱글벙글한 얼굴로 깍듯하게 인사를 해왔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이코노믹 클래스에서 비즈니스 클래스로 업그레이드를 해줬다.

이걸 누가 싫어하겠는가!

물론 칭다오 국제공항에서 베이징 수도국제공항까지는 1시간 4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비즈니스 클래스는 비즈니스 클래스다.

업그레이드에 들어간 돈이 결코 적지 않았다.

“대한! 뭐 이런 거에다 돈을 쓰고 그래?”

“에이, 별거 아니야.”

고리나가 한마디 하긴 했다.

그러나 진짜 나무라는 표정도 아니었다.

어쨌든 그녀도 자신의 매니저와 경호원에게 잘해주는 대한이 싫을 리 없었다.

덕분에 네 명은 모두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고 즐겁고 편하게 베이징까지 올 수 있었다.

“신기하다.”

“뭐가?”

“아까는 정말 죽을 것처럼 힘들었는데 대한에게 잠깐 마사지를 받고 나자 온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어.”

“그게 다 내가 태산의 숨은 고수에게 배운 기공 때문이야.”

“정말 내공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어?”

“물론이지.”

대한의 과하게 자신만만한 말에 고리나는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의 마사지가 진짜라는 것이다.

앞으로 피곤할 때 종종 받아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가시죠!”

리슈잉과 왕슈잉이 짐을 찾고 나자 손짓을 했다.

대한과 리나는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밖으로 나가자 칭다오에서 탄 것과 똑같은 럭셔리 밴이 대기하고 있었다.

리슈잉은 기획사에서 보낸 로드매니저에게 차 키를 받고 시동을 켰다.

왕슈잉이 문을 열어주자 대한과 리나는 곧바로 차에 타고 문을 닫았다.

그 사이 포터들이 트렁크에 짐을 차곡차곡 실었다.

“그러고 보니 대한은 짐이 아예 없네.”

“다 버리고 왔어. 1년 가까이 썼더니 너덜너덜해졌어.”

“그렇기도 하겠구나. 그럼 내가 다 사줄게.”

“원한다면 그렇게 해.”

대한은 굳이 그녀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리나는 1년 전의 고리나가 아니었다.

중국의 차세대 사대 여신에서 지금은 앞에 ‘차세대’라는 글자를 떼어내고 명실상부한 사대 여신의 한자리를 꿰찬 상태였다.

그러기에 전혀 돈에 구애받지 않고 뭐든지 사고 싶은 것을 살 수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대한과 합작회사를 차려 대박을 터트린 상태다.

아직 소문이 나지 않은 알부자란 뜻이다.

“포시즌스 호텔로 출발하겠습니다. 30분쯤 걸릴 예정입니다.”

“알았어요.”

지이이잉!

이번에도 고리나는 리슈잉의 말이 끝나자마자 차단막을 올렸다.

그러나 두 여자는 이미 대한이 주는 단물을 맛봤다.

그래서인지 리슈잉과 왕슈잉은 별생각 없이 그냥 그러려니 했다.

둘이 밴 안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는 오직 두 사람만이 알 것이다.

30분이 지나자 밴은 포시즌스 호텔의 정문 입구에 도착했다.

싼리툰(三里屯)에 있는 포시즌스 호텔은 한자로 북경사계주점(北京四界酒店)이라고 표기한다.

재미있게도 ‘주점’이 결국 ‘호텔’과 동격이 되어버렸다.

이곳은 세계 각국의 대사관이 자리 잡은 곳이다.

이태원과 여의도를 합쳐놓은 것 같은 이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인 감성이 느껴졌다.

밤에 도착한 탓에 대한과 리나는 서둘러 호텔 체크인을 했다.

그런 후 짐은 왕슈잉이 알아서 하라고 놔뒀다.

대신 둘은 ‘하이딜라오 훠궈(海底捞火锅)’를 먹으러 갔다.

거의 만석에 가까웠지만, 지배인이 고리나를 알아보고는 안쪽의 귀빈실을 내줬다.

덕분에 두 사람은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음식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을 수 있었다.

처음 하이딜라오 훠궈를 본 느낌은 그냥 중국식 샤부샤부였다.

사실 그게 맞을지도 몰랐다.

다만 냄비가 반으로 나뉘어 있어 하얀 국물 반, 붉은 국물 반이었다.

소스는 본인의 취향대로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대한처럼 처음 온 사람에게는 멘붕이 올 수 있다.

다행히 리나의 도움을 받아 기가 막히게 맛있는 소스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다음부터는 쉬웠다.

훠궈에 싱싱한 고기와 신선한 채소를 넣고 끓여 먹었다.

핏기만 없애면 고기를 먹는 대한과 다 익혀 먹는 리나의 한판 대결이 시작됐다.

하지만 좋아하는 당면이 나오자 그것만 열심히 골라 먹었다.

대한은 수타로 면을 뽑은 것을 끓여서 먹었다.

배부르게 잘 먹고 나와 둘은 싼리툰 거리를 걸어 다녔다.

혹시 사람들이 알아볼까 싶어 리나는 마스크를 끼고 다녔다.

그런데도 우월한 미모를 가리기는 절대 쉽지 않았다.

대한은 당장 갈아입을 옷가지와 신발 그리고 배낭을 샀다.

그런 후 곧바로 호텔로 돌아왔다.

물론 물건값은 약속대로 리나가 냈다.

리슈잉도 그제야 호텔로 들어와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대한과 리나가 식사하고 쇼핑을 하는 와중에도 계속 따라다녔던 모양이다.

그에게 가공할 화력의 친위대(?)가 있는 줄 알았다면 아마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다.

그래도 대한은 책임감 있는 리슈잉의 태도가 참 보기 좋았다.

승강기를 타고 25층에 내렸다.

“어! 인제 보니 바로 앞방이네.”

“리나가 베이징 스위트룸으로 예약했다고 해서 나도 같은 것으로 예약했어.”

“그럼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같이 있을 수 있겠다.”

“리나만 좋다면 언제든지!”

“나야 당연히 좋지.”

리나는 상큼하고 발랄한 미소를 지었다.

대한은 자신의 스위트룸 키 하나를 그녀에게 건넸다.

“내가 리나에게 가는 것보다 리나가 내 방으로 오는 게 좋을 거야.”

“무슨 뜻인지 알았어. 고마워! 그렇게 할게. 나 잠깐 샤워 좀 하고 올게.”

둘은 각자 자신의 스위트룸으로 들어갔다.

베이징 스위트룸은 96m²(1,033 sq.ft.)로 넉넉하고 호화로웠다.

창문을 통해 보는 도심 전망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대한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욕실부터 향했다.

옷을 홀딱 벗고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양치질을 했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나서 벽에 걸려있는 가운을 걸쳤다.

물론 안에는 바이오풀아머를 투명하게 만들어서 입는 것을 잊지 않았다.

모양과 색상은 물론이고 크기와 두께까지 조절이 가능한 녀석이다.

그에게는 아주 유용한 완소 아이템이었다.

대한은 조명을 낮추고 창문의 커튼을 활짝 열었다.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꺼내 다이닝 테이블로 가서 앉았다.

탁 치익!

캔맥주를 따자 거품이 솟구쳤다.

그는 입에 대고 한 모금 쭉 마셨다.

시원한 맥주가 목구멍을 타고 위장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짜릿한 느낌과 함께 맥아의 향이 느껴졌다.

대한은 그렇게 맥주를 마시며 베이징 시내의 야경을 멍하니 구경했다.

캔맥주 하나를 비우자 누군가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스르릉!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대한! 나왔어.”

“이쪽이야.”

리나는 대한의 목소리가 들리자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대담하게도 달랑 가운만 걸치고 있었다.

머리는 수건으로 감싸고 있었는데 막 샤워를 끝내 향긋한 샴푸 냄새가 났다.

그는 그녀를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렸다.

그러자 리나는 폴짝 뛰어서 대한의 품에 안겼다.

그는 얼른 두 손으로 그녀의 엉덩이를 받쳤다.

매끈한 허벅지가 빠져나와 대한의 허리를 감쌌다.

쪽!

그녀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상큼하게 키스를 했다.

그는 몸을 돌려 침대로 향해 걸어갔다.

“맥주 마실래?”

“좋아. 오늘은 같이 베이징 야경을 구경하면서 얘기를 나누자.”

“밤새도록?”

“응, 밤이 새도록!”

대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몸을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곤 냉장고에서 캔맥주 두 개를 꺼내왔다.

탁 치이익! 탁 치이익!

캔맥주 둘을 따서 하나를 건네자 그녀는 건배를 제의했다.

가볍게 그녀의 캔맥주를 툭 치고 말했다.

“치얼스!”

“아이! 건배라고 해야지.”

“알았어. 건배!”

둘은 서로를 쳐다보며 캔맥주를 시원하게 마셨다.

그러고 나자 리나는 대한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는 순순히 그녀의 손에 이끌려 침대로 올라갔다.

리나는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가운을 벗었다.

놀랍게도 안에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았다.

그 모습에 대한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가운을 벗었다.

역시 그도 안에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았다.

아니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대한과 리나는 서로를 향해 다가갔다.

한 치의 틈도 없이 두 사람의 몸이 딱 달라붙었다.

그녀는 슬쩍 몸을 돌려 그의 품에 쏙 안겨 들어갔다.

대한은 한쪽 팔로 리나에게 팔베개를 해줬다.

그리고 나머지 한쪽은 그녀의 부드럽고 굴곡진 몸을 쓰다듬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편하게 침대에 누워 베이징 시내의 야경을 구경했다.

그러면서 정말로 이 밤이 다 새도록 다정하게 얘기를 나눴다.

둘 사이에 따듯한 온기가 감돌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