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칭다오의 천사들>
“리프팅 보여줘요.”
“맞아요. 그거 신기하던데.”
“리프팅이 뭐야?”
“발로 볼을 쳐올리는 거야.”
“아! 통통 튀기는 거 말이야?”
“그래.”
“통통이! 좋아!”
아이 하나가 대한에게 리프팅을 해달라고 졸랐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까지 뭔지도 모르면서 해달라고 말했다.
“좋아! 잘 봐라!”
대한은 아이들의 요청을 그 자리에서 수용했다.
그는 양발로 축구공을 차올렸다.
통 통 통 통 통 통…….
리프팅은 그동안 꾸준히 연습해왔다.
그래서 사실 그에겐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지루하지 않았다면 아마 온종일 했을 것이다.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축구공에 쏠렸다.
그들은 볼에 홀린 듯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았다.
연신 위아래로 시선을 왔다 갔다 하는 아이들!
축구공이 땅에 떨어지지 않고 계속 통통 위로 튀는 것이 어지간히 신기했었나 보다.
하지만 대한은 100개쯤 하고 일부러 땅에 떨어뜨렸다.
“에고!”
“우와아! 떨어졌다.”
“그래도 엄청 많이 찼어.”
“리프팅 도사다.”
“혹시 발에 껌을 붙여놓은 게 아닐까?”
“스파이더맨처럼 공에 끈을 달아놓았을 수도 있어.”
“바보야! 축구선수들은 다 이렇게 해!”
“누가 그래? 저 형만 가능한 거야.”
“웃기지 마!”
“너나 웃기지 마.”
별거 아닌 일 가지고 아이들은 서로 자신의 말이 맞다고 우겨댔다.
대한은 재빨리 아이들의 관심을 자신에게 돌렸다.
“자! 이제 너희들도 한번 해봐! 제일 많이 한 사람은 형이 맛있는 거 사줄게. 선물도 주고.”
“정말이죠?”
“그럼. 난 거짓말 안 해.”
“알았어요. 내가 먼저 해야지”
“아니야. 내가 먼저 할 거야.”
아이들은 다시 서로 먼저 하겠다고 난리를 쳤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중재에 들어갔다.
“그러지 말고 우리 서로 사이좋게 줄 서서 하도록 하자.”
“네.”
다행히 아이들은 말을 참 잘 들었다.
그만큼 장연진 원장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것 같았다.
이맘때의 아이들은 아무리 사랑을 퍼부어도 모자라다.
그러니 혼자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애정 결핍은 피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대한의 관심과 애정을 갈구했다.
그리고 그의 눈에는 아이들이 그저 천사처럼 귀엽기만 했다.
‘에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으로 선물을 구해줘! 먹을 것도 잊지 말고 가져와!’
―네, 마스터.
대한의 명령에 에바는 다시 여기저기 동시에 전화를 걸었다.
중국은 돈만 있으면 뭐든지 가능하다.
그러니 간단하게 주문을 하고 돈을 냈다.
배달이야 몇 푼 더 얹어주면 좋다고 해 준다.
그가 아이들과 공터에서 놀고 있는 사이!
근처의 마트와 식당, 장난감 가게 등에서 하나둘 배달차가 왔다 갔다 했다.
그때마다 고아원 안의 식당에 각종 요리가 차고 교실에 선물이 쌓여갔다.
한동안 아이들과 열심히 놀아주고 있을 때!
장연진 원장과 리나가 다가왔다.
“얘들아! 밥 먹자. 오늘은 이대한 선수가 맛있는 것을 준비해주셨어.”
“고맙습니다.”
아이들은 대한을 향해 배꼽 인사를 했다.
그 모습에 그는 왠지 가슴이 뿌듯해졌다.
“이대한 선수도 같이 들어가서 먹어요.”
“네.”
대한도 좋다고 아이들과 식당으로 걸어 들어갔다.
리나가 어느새 옆으로 다가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나 오빠 옆에 앉을 거야.”
“안돼! 여긴 내 자리야.”
아까부터 그를 주목하고 있던 꼬마 숙녀 왕밍이 대한의 옆자리를 노렸다.
하지만 리나의 철통방어에 녀석의 시도는 무산됐다.
“크크크! 애하고 뭐 하는 거야?”
“어릴수록 위계질서가 있어야 해. 안되는 것은 처음부터 안된다고 말해야지.”
대한의 말에 그녀는 의외로 단호하게 말했다.
서슬 시퍼런 반응에 그는 ‘앗! 뜨거워라!’하고 바로 꼬랑지를 내렸다.
그때부터 아이들은 절대 대한의 왼쪽 자리는 앉지 않았다.
거긴 리나의 자리라고 이해한 것이다.
그는 아이들을 다룰 줄 몰랐다.
그저 가능한 아이들을 재미있게 해주고 같이 즐겁게 놀아주려고 애썼다.
하지만 리나는 달랐다.
집에 아이들이 많이 있었는지 애들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잘 먹겠습니다.”
아이들은 한목소리로 외치고 나서야 밥을 먹었다.
오늘따라 배달음식이 많아서 다들 좋아했다.
그동안 먹고 싶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먹지 못했던 요리들이었다.
장연진 원장과 리나까지 열심히 요리를 먹었다.
그러자 대한도 없던 식욕이 생기는지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했다.
“카메라는?”
“오늘은 방송 안 하고 그냥 리나와 같이 있을 거야.”
“아!”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살짝 볼을 붉혔다.
“매니저는 어디 갔어?”
“웨이양은 시집갔어.”
“뭐야?”
리나의 매니저가 시집갔다는 말에 대한은 벙 찐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시공간 결계 안에서 흐른 세월의 무게는 무시할 수가 없었다.
“지난번에 내가 까톡으로 얘기하지 않았나?”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에바가 즉시 허공에 보조 모듈이 리나와 대화했던 내용을 보여줬다.
뭔가 좀 건조한 느낌의 대화였다.
하지만 확실히 리나가 웨이양에 관해 언급한 내용이 있었다.
“로드매니저와 바람이 났다고 하지 않았었나?”
“아 참! 그랬구나. 회사 그만두고 결국 둘이 결혼했어.”
“그럼 지금은 매니저 없이 하는 거야?”
“그럴 리가 있나. 당연히 새 매니저를 구했지. 일이 있어서 잠깐 밖에 나갔어. 이따가 나 데리러 올 거야. 그때 소개해줄게.”
둘은 밥을 먹으면서 계속 작게 속삭였다.
그 모습을 꼬맹이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쳐다봤다.
대한은 그런 아이들의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우리 합작회사는 잘 돌아가고 있는 거야?”
“그건 웨이양이 앞으로도 계속 관리해줄 거야. 거기에 들어가는 돈은 내가 내고 있어.”
“왜? 비용처리를 하지.”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인데 뭘! 대한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대한TV의 동영상을 중국 플랫폼에 올리는 일은 전적으로 고리나의 영역이었다.
자신이 중간에서 뭐라고 해봐야 혼선만 줄 뿐이다.
그는 이 정도 선에서 합작회사의 일은 넘어가기로 했다.
아직 특별히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니다.
그저 웨이양이 시집가서도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하니 허락해준 모양이었다.
‘에바!’
―네, 마스터!
‘지금 대한TV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지?’
―구독자와 팔로워 수를 말씀드릴까요? 아니면 사무실 운영에 관해 말씀드릴까요?
‘구독자와 팔로워 수부터 듣자.’
―네, 현재 아메리카TV의 평균시청자 수는 10만입니다. 구독자는 125만입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어때?’
―전혀 변화가 없습니다. 솔직히 떨어지지 않은 게 다행입니다.
에바의 말에 대한도 심정적으로 동의했다.
―그러나 유티비를 비롯한 다른 플랫폼은 조금씩이나마 지속해서 늘어났습니다.
‘보조 모듈이 선방해준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마스터에게는 워낙 충성도 높은 큰손들이 버티고 있어서 수익이 줄지 않았습니다.
‘그것참 고마운 일이군.’
그는 자신의 구독자와 팔로워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유티비 구독자 3519만, 페이스노트 팔로워 3022만, 트워치 팔로워 1789만, 원스타그램 팔로워 2745만입니다.
‘내가 없는데도 꽤 늘었네.’
―그렇습니다. 천만다행입니다. 그런데 중국 플랫폼의 약진이 대단합니다. 아무래도 마스터께서 중국을 1년이나 여행하신 게 큰 영향을 끼친 것 같습니다.
대한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인데 시청자들은 했다고 믿고 있다.
확실히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그래서 팔로워가 얼마나 늘었는데?’
―또위 2,546만, 롱주 2,397만, 판다TV 2,387만, 유쿠 2,007만, 후야 2,103만입니다.
‘우와! 다 합치면 이게 얼마야?’
―1억1,440만입니다.
중국 플랫폼 전체의 팔로워 숫자가 무려 1억 1440만 명이나 됐다.
물론 이 중에는 복수로 팔로워가 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제외한다고 해도 1억이 넘는 팔로워는 정말 엄청난 영향력이 아닐 수 없었다.
‘이거 중국에서 광고가 엄청나게 들어왔겠는데.’
―맞습니다. 그동안 중국에서 광고를 찍자고 아주 많은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여행 중이라는 것을 핑계로 전부 자체 사진과 동영상을 편집해서 대응했습니다. 그런데도 광고비로 수백억을 벌어들였습니다.
대한은 밥을 먹다 말고 입을 딱 벌렸다.
하지만 아이들의 눈초리에 금방 정신을 차렸다.
‘그동안 내가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 묻기가 두려워진다.’
―얼마를 생각하시던 아마 그 이상일 겁니다.
에바는 그가 확실하게 묻지 않자 굳이 알려주지 않았다.
대한도 나중에 느긋하게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당장 물어보지 않았다.
식사가 끝나자 아이들을 불러모아 교실로 갔다.
안에는 대한이 주문해놓은 장난감과 학용품이 쌓여있었다.
아이들은 그걸 보자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아아!”
“선물이다.
“장난감이다.”
“학용품이다.”
“내가 좋아하는 뽀로로다.”
“타요 버스다.”
“루비도 있어.”
그는 먼저 리프팅을 제일 많이 한 아이에게, 상품으로 커다란 뽀로로 인형을 선물로 줬다.
그런 후 아이들에게 좋아하는 장난감과 학용품을 하나씩 나눠줬다.
아이들은 배도 부르고 선물도 받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각자 자기 방으로 가져가 뜯어보고 만져보고 놀았다.
그 사이 축구용품 전문회사에서 배달이 왔다.
커다란 트럭과 함께 온 직원들은 먼저 짐을 내리고 공터로 가서 골대를 조립했다.
아이들은 무슨 일인가 하고 모두 밖으로 나왔다.
그러다가 산처럼 쌓여있는 축구공과 축구화 그리고 각종 장비를 보자 다시 한번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아아!”
대한은 아이들의 열정적인 도움으로 모든 짐을 전부 교실로 들여놓았다.
이제 남은 것은 나눠주는 일이다.
하지만 그건 장연진 원장에게 맡기기로 했다.
리나가 떠나야 할 시간이 다 됐기 때문이다.
“리나! 어디로 가는 거야?”
“베이징에서 3박 4일 동안 촬영이 있어. 대한은 어떻게 할 거야?”
“나도 베이징에서 볼 일이 있어.”
“정말! 그럼 우리 같이 가자.”
“그래.”
대한은 리나의 제안에 흔쾌히 승낙했다.
그때 고리나의 새로운 매니저인 왕슈잉이 나타났다.
“어머! 안녕하세요. 왕슈잉입니다.”
“반갑습니다. 이대한입니다.”
“말씀 많이 들었어요.”
그녀는 손뼉을 치며 놀라워했다.
그동안 고리나가 얼마나 가슴을 졸여왔는지 옆에서 봐왔다.
그래서 대한을 본 왕슈잉의 놀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리슈잉입니다.”
“네, 이대한입니다.”
이번에는 로드매니저가 나타났다.
귀엽고 가냘픈 외모의 왕슈잉!
하지만 리슈잉은 왕슈잉과는 달리, 운동이라도 했는지 제법 몸이 탄탄했다.
“두 분 이름이 비슷하네요.”
“그거야 중국에서 가장 흔한 이름들이라서 그래요.”
“그렇군요. 그런데 리슈잉 로드매니저는 운동을 하셨나 봐요.”
“네, 전 고리나 양의 경호원도 겸하고 있습니다.”
대한은 그제야 리슈잉의 존재가 이해가 갔다.
그동안 고리나는 남자 경호원을 썼다.
그런데 그녀에게 자꾸 반해서 문제를 일으켰다.
어쩔 수 없이 고리나의 기획사에서는 여자경호원을 쓰기로 했다.
확실히 고리나를 보면 남자들이 환장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라도 할 수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런데 베이징에 같이 가신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리슈잉이 대한을 묘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너도 혹시 똑같은 변태가 아니냐는 기분 나쁜 눈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도발은 곧 리나에게 제지당했다.
대한에게 팔짱을 낀 고리나는 확실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다.
“리슈잉! 대한에게 무례하게 굴지 말아요. 그는 내 손님이에요.”
“아! 죄송합니다.”
리슈잉은 바로 고개를 숙이고 사과를 했다.
그러나 눈빛을 보니 아직도 이해를 못 하는 눈치였다.
“참! 베이징에서 묵는 장소와 비행기 시간 좀 알 수 있을까요?”
“여기 있어요.”
왕슈잉 매니저가 얼른 대한에게 쪽지 한 장을 건네줬다.
대한은 주머니에서 이어피스를 꺼내더니 귀에 꽂았다.
그리곤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시늉을 했다.
물론 진짜 대화는 에바와 하고 있었다.
‘에바!’
―네, 마스터.
‘베이징 포시즌스 호텔에 방 하나 예약해줘.’
―고리나가 묵는 베이징 스위트룸으로 할까요?
‘응. 그렇게 해줘!’
―바로 예약해놓겠습니다.
‘베이징으로 가는 비행기도 같은 것으로 하고.’
―고리나는 비즈니스 클래스를 끊었습니다. 왕슈잉과 리슈잉은 이코노믹 클래스입니다.
‘나도 비즈니스 클래스로 해줘! 왕슈잉과 리슈잉은 비즈니스 클래스로 업그레이드 해주고.’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에바는 대한의 의도를 바로 눈치챘다.
그래서 굳이 따로 물어보지 않고 바로 일 처리를 했다.
장수를 잡으려면 말부터 잡으라는 말이 있다.
리나와 편하게 지내려면 먼저 그녀의 손과 발인 왕슈잉과 리슈잉의 마음을 잡아야 한다.
돈이야 좀 깨지겠지만, 그동안 지은 죄(?)를 생각하면 이 정도는 약과였다.
대한은 왕슈잉과 리슈잉을 한 번씩 쳐다봤다.
왕슈잉은 모르지만 리슈잉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 무척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