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만재능(Feat. 대한 TV)-155화 (154/331)

155화 <돌아왔어>

휘이잉!

차가운 바람이 분다.

산둥반도를 휩쓴 북풍이 그 어느 때보다 매서웠다.

하늘은 회색이라 금방이라도 눈이 올 것만 같았다.

그 모습이 마치 현재 자신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했다.

“하아!”

고운 아미를 찡그리는 푸른 눈의 미녀!

손길이 허공의 뭔가를 잡을 듯 아른거린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려도 그려지지 않는 허상!

그녀는 절로 속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쁜 자식!”

귀에 속삭이는 듯한 작은 독백이 어쩐지 처량하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다 이내 몸을 돌려버린 그녀!

보라색 스웨터를 손으로 탁탁 털고 걸어갔다.

안에는 자신을 기다리는 보육원 아이들이 있다.

그걸 생각하자 조금은 힘이 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점점 걷는 속도가 느려졌다.

문뜩 그녀의 발이 멈추고, 고개가 옆으로 스르륵 돌아갔다.

“대…한?”

자신이 말해놓고도 믿기지 않는 소리다.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실소를 흘렸다.

이제는 하다 하다 헛것까지 보이는 모양이다.

그래도 혹시 몰라 두 손으로 눈을 비벼봤다.

신기하게도 이놈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동시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설마! 진짜 대한이야?”

“응, 리나!”

묵직하고 낮은 저음!

그렇게 듣고 싶었던 대한의 목소리였다.

귓전에 메아리치듯 머무는 그의 음성!

그녀는 갑자기 목이 메어왔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에서 이슬 한 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흥! 왜 왔어?”

그녀는 깜짝 놀랐다.

너무나 보고 싶고, 너무나 만나고 싶었던 대한이다.

그런데 입에선 쌀쌀하기 그지없는 말이 튀어 나갔다.

이건 자신이 전혀 의도하지 않은 사고 같은 것이다.

당장 아니라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여자의 자존심이 뭐라고

그렇게 말을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새초롬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옆으로 돌려버렸다.

아니,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심장만큼은 솔직했다.

주인의 본심을 알고 있는지 아주 방정맞게 뛰어대고 있었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가슴이 찡해졌다.

그런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제야 리나는 덜컥 겁이 났다.

‘혹시 화가 나서 그냥 가버렸나? 아니면 내 말에 기분이 상한 건가?’

고개를 돌려 한시라도 빨리 그를 보고 싶었다.

이러다 대한이 그냥 가버리기라도 하면 천추의 한이 될 것 같았다.

그렇지만 왠지 불안해서 감히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서 움직이라고, 용기를 내라고 스스로 채찍질을 했다.

하지만 마치 얼어붙기라도 하듯 몸은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심장은 터질 듯이 뛰고 있었다.

소리라도 지를까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부드럽게 감싸는 게 느껴졌다.

느닷없이 백허그를 당한 리나!

그녀는 순간 감전이라도 된 듯 몸이 경직됐다.

그러나 다행히도 귓가를 간지럽히는 한없이 부드러운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나! 미안해! 나 지금 소원권 하나 쓸게! 날 용서해줘!”

대한은 그렇게 말하면서 리나의 몸을 꽉 껴안았다.

뜨거운 그의 숨결이 귀를 간지럽히자 그만 맥이 탁 풀리고 말았다.

포근하고 듬직한 품에 쏙 들어가 버린 리나!

그녀는 단박에 긴장이 풀리고 두 다리에 힘이 풀려나갔다.

휘청!

하지만 대한이 그녀의 몸을 떠 받히고 있어서 넘어지지는 않았다.

전신에 힘이란 힘이 일제히 빠져나갔다.

대한의 달콤한 말에 정신은 찰나에 무장해제됐다.

“날 용서해줄 거지?”

“바보!”

그의 말에 리나는 갑자기 화를 냈다.

그녀는 격정을 이기지 못하고 이윽고 몸을 돌렸다.

눈앞에 그토록 보고 싶고 만나고 싶었던 사내가 있었다.

그래도 뭔가 안심이 되지 않았다.

리나는 불면 날아갈까 봐 급히 손을 뻗어 대한의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 그의 뽀얀 얼굴을 어루만졌다.

“굶고 다니지는 않았나 봐!”

“리나가 걱정할까 봐 잘 먹고 다녔어.”

“흥! 그동안 혀에 기름칠만 하고 다녔군.”

“기름기 있는 음식 별로 안 좋아하는 거 몰랐어?”

“이제 돌아오는 거야?”

“응, 돌아왔어.”

“방황은 끝났어?”

“미안! 앞으로 이런 일은 없을 거야.”

“약속하는 거지.”

“물론이지.”

대한의 단호한 대답이 너무나 고마웠다.

그녀의 입가에 점차 환한 미소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리나는 까치발을 세우고 그에게 입맞춤했다.

“와아아아!”

그때, 천지가 떠나갈 것 같은 환호성이 터졌다.

그녀는 깜짝 놀라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어느새 건물 밖으로 나온 수십 명의 아이!

개구쟁이 같은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제야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깨달은 리나!

순식간에 얼굴이 홍당무처럼 변해버렸다.

“우와! 리나 누나 뽀뽀했다.”

“뽀뽀가 아니라 키스잖아.”

“그게 그거지.”

“언니가 저 아저씨 좋아하나 보다.”

“그럼 좋지도 않은데 뽀뽀하겠냐?”

“얼레꼴레리 뽀뽀했대요!”

“저 아저씨 정말 잘생겼다.”

“리나 누나가 더 예뻐!”

“이제 리나 언니 결혼하는 거야?”

“조만간 아이가 나올지도 몰라.”

두서없이 떠들어 대는 아이들의 말에는 브레이크가 없었다.

리나는 부끄러움에 그만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그 모습에 대한은 파안대소를 터트렸다.

하지만 그의 손에는 리나의 손이 잡혀있었다.

아니 어느새 둘은 서로 깍지를 낀 상태였다.

마치 다시는 놓지 않겠다는 그런 다짐 같아 보였다.

칭다오(靑島) 지모시(即墨市)에 갑자기 훈풍이 불고 있었다.

* * *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갑자기 들려오는 한국말에 대한은 반색했다.

“이리 좀 앉으세요.”

“네, 고맙습니다.”

원장실 소파에 앉자 대한은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여자를 살폈다.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고희의 여인은 분명히 한국 사람이었다.

“혹시 이곳을 운영하고 계신 분인가요?”

“네, 제가 이곳 사랑의 집의 원장 장연진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 네. 저도 반갑습니다. 이대한입니다.”

“알고 있어요. 우리 애들도 대한TV를 즐겨보거든요.”

그녀의 말에 대한은 슬쩍 옆자리를 쳐다봤다.

고리나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둘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리나를 위해서 중국어로 대화를 해야겠네요.”

“중국어를 하시는군요. 잘됐습니다. 저는 통역을 해야 하나 고민했었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이제부터 중국어로 대화를 나누죠.”

대한과 장연진은 그때부터 중국어로 대화를 했다.

덕분에 고리나도 대화에 끼어들 수 있게 됐다.

“한국 사람도 중국에서 보육원을 운영할 수 있나 보군요.”

“17년 전에 일 때문에 방문했다가 너무나 열악한 보육원시설을 보고는 좀 도와줘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여태까지 이렇게 손을 못 놓고 있네요.”

그녀의 말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대한은 대번에 장연진의 희생과 봉사의 그릇을 가름할 수가 있었다.

한국도 아니고 누가 중국의 이런 외진 시골까지 와서 봉사하겠는가!

게다가 여기는 고아들만 있는 게 아니라 장애인들도 많았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누가 도와주는 것도 아닌데…….

그는 장연진을 보는 순간!

이분이야말로 테레사 수녀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바! 이곳을 조사해봐!’

―벌써 조사를 마쳤습니다. 장연진은 고아와 장애인를 먹이기 위해 자비로 손수 농사를 짓고 각종 시설물의 보수와 점검을 했습니다.

‘정말 보기 드물게 훌륭한 분이시구나.’

장연진의 얼굴을 보는 대한의 눈빛에 정감이 가득해졌다.

가만히 살펴보니 리나도 그녀를 많이 좋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참! 리나는 어떻게 알게 되셨어요?”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됐어요. 반년 전에 지인을 통해서 이곳에 한번 오더니 이제는 매달 꼬박꼬박 찾아와서 봉사도 하고 물질적으로 많이 도와주고 있어요.”

그녀의 말에 리나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대한은 손을 뻗어 리나의 머리를 쓰담쓰담 해주었다.

그러자 리나의 얼굴이 더욱 발갛게 달아올랐다.

“리나가 참 착해요. 이대한 선수도 리나의 마음을 알게 되면 좋겠네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래요?”

손수 녹차를 타주던 장연진이 의외란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리나까지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대한은 속으로 뜨끔했다.

하지만 그동안 단련된 철면피신공을 발휘해 뻔뻔하게 버텼다.

“저도 돕고 싶네요. 어떤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자주 놀러오세요. 그게 제일 큰 도움이에요.”

“알겠습니다. 앞으로 노력해보겠습니다.”

그는 당장이라도 억단위로 후원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장연진 원장의 말을 듣자 곧바로 생각을 고쳐먹었다.

돈을 후원하는 것은 가장 쉬운 일이다.

오히려 리나처럼 이렇게 일부러 시간을 내서 찾아오는 것이 더 어려웠다.

대한은 쉽게 가기보다는 일단 좀 두고 보기로 했다.

“하하하!”

“호호호!”

그때 원장실의 창문 밖으로 통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가만히 보니 아이들이 까치발을 하고 원장실을 쳐다보고 있었다.

대한은 아이들의 순진무구한 눈빛이 마음에 들었다.

“아이들이 축구 좋아하나요?”

“왜 안좋아하겠어요. 당연히 이대한 선수와 함께라면 하루종일 뛰어다닐 겁니다.”

“그럼 일단 나가서 축구 한판 하고 오겠습니다.”

“네, 그러세요.”

그의 말에 리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야.”

“같이 안 나갈래?”

“아니야. 난 원장님과 나눠야할 얘기가 있어.”

“그래.”

대한은 일어나서 장연진 원장에게 고개 숙여인사했다.

그리고는 원장실 밖으로 나갔다.

“얘들아!”

“와아아아!”

아이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왔다.

“이대한 선수다.”

“프리킥의 마법사다.”

“축구 천재다.”

대한은 아이들이 하는 말을 듣자 입가에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그래. 나 이대한이야. 형이 축구 가르쳐줄까?”

“좋아요.”

“와! 신난다.”

아이들은 그가 축구선수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리나의 영향 때문인 모양이었다.

어쨌든 대한은 아이들이 가져온 축구공을 들고 공터로 나갔다.

아름다운 정원과 잘 가꿔진 농지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제대로 된 잔디나 운동장은 없었다.

아니 골대조차 보이지 않았다.

‘에바! 지금 즉시 골대 두 개와 아이들을 위한 축구 장비 일체를 주문해서 가져와!’

―네, 마스터. 최대한 빨리 배달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명령에 에바는 즉시 축구용품 전문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아이들을 위한 축구 장비와 축구화를 주문하고 축구공과 골대를 즉시 가져올 것을 요청했다.

당장은 곤란하다는 말에 웃돈을 준다고 말했다.

그러자 축구용품 전문회사의 직원은 바로 태세전환을 해 보였다.

그 사이!

대한은 아이들과 편을 나누고 축구교실을 열었다.

가지고 있는 게 다 떨어진 축구공 3개라 그것으로 최대한 재미있게 놀 수 있도록 머리를 썼다.

“와아아아!”

“야호!”

“하하하!”

“호호호!”

“꺄아악!”

“받아랏!”

아이들은 정말 신나게 뛰어다녔다.

시설과는 전혀 상관없이 같이 노는 게 좋았던 것이다.

그는 아이들의 이런 순수한 모습에 왠지 가슴 속이 간질거렸다.

‘쓰벌! 인생 헛살았네. 나 혼자 잘 먹고 잘살겠다고 그동안 돈을 쌓아놓고도 전혀 쓸 줄을 몰랐어.’

대한은 그동안 미친 듯이 돈만 모으고 줄곧 방송만 했던 자신의 행동을 반성했다.

사실 그는 돈을 벌줄 만 알았지 쓸 줄은 몰랐다.

언제 돈이 있어 봤어야 쓰는 것도 배울 것 아닌가!

에바를 만나기 전까지!

그는 부모님의 골수를 뽑아먹는 등골 브레이커였다.

하지만 에바를 만난 후에도 대한은 자신과 가족밖에는 몰랐다.

옆을 볼 줄 몰랐고 주변을 챙길 마음조차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고아나 장애인 같은 사회에서 소외된 약자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형! 이쪽으로 공 차주세요.”

“어! 그래!”

퉁!

대한은 자신에게 굴러오는 축구공을 살짝 앞으로 차 줬다.

볼은 데굴데굴 굴러서 정확히 소리친 아이에게 갔다.

그게 신기했는지 이번에는 다른 아이가 대한에게 공을 찼다.

뻥 뻥 뻥 뻥!

그때부터 아이들은 마치 대한이 무슨 과녁이라도 되는 양!

계속해서 볼을 찼다.

그는 화를 내기는커녕 날아오는 축구공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잡아서 상대에게 돌려줬다.

그 모습에 다들 혀를 내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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