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아름다운 지구>
“으어! 좋다.”
아저씨 같은 대한의 목소리!
그런데 그 소리를 들은 L11과 L12는 아주 신이 났다.
어깨를 풀고 팔을 마사지하고 가슴을 꾹꾹 눌렀다.
아래쪽에서는 허벅지와 엉덩이 근육을 마사지했다.
손가락이 푹푹 들어가 깊은 곳까지 뭉친 근육을 샅샅이 풀어버렸다.
그러던 어느 순간!
둘의 손이 거의 동시에 허리 아래에서 만났다.
사타구니 주변을 만지던 손길이 여름 해변용 반바지의 지퍼를 내렸다.
복근을 마사지하던 손은 골반을 따라 원을 그리며 마사지했다.
그리고 마침내 네 개의 손은 사타구니 사이의 중심을 오롯이 점령했다.
대한은 순간 아찔한 자극에 숨이 막혀왔다.
밀물처럼 연신 짜릿하게 밀려오는 쾌감은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만들었다.
“으윽!”
신음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지만, 그것도 완전히 막지는 못했다.
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 아래를 내려다봤다.
“허억!”
대한은 아득한 기분과 함께 눈물이 찔끔 나왔다.
몸 일부가 쩌릿한 게 어디론가 쏙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아니, 이제는 영혼까지 통째로 뽑혀나가는 기분이었다.
어디를 어떻게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강한 자극에 두 다리가 파르르 떨리고 허리가 저절로 튕겼다.
대한은 뭔가 말을 하려다가 실패했다.
또다시 밀려오는 강렬한 자극에 그는 고개를 뒤로 젖혀버렸다. 그리곤 다급히 숨을 몰아쉬며 열락(悅樂)의 파고에 휩쓸렸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실눈을 떴다.
“으헉!”
대한은 전기에 감전된 개구리처럼 부들부들 떨어야 했다.
몸에 전혀 힘을 줄 수 없었다.
뭘 어떻게 했는지 격렬한 쾌감이 쉴 새 없이, 아니 폭풍처럼 밀려왔다.
“하아아!”
숨이 거칠어지고 두 다리가 덜덜 떨렸다.
태어나서 처음 받아보는 두 안드로이드의 마사지(?).
그저 감탄 밖에 나오지 않았다.
“마스터! 어떻습니까? 즐거우셨습니까?”
“얘들이 레저용 안드로이드야?”
“네, 맞습니다. 로봇이나 안드로이드는 번호가 낮을수록 더욱 뛰어난 능력을 발휘합니다.”
꿀꺽!
대한은 에바의 말에 침을 꿀꺽 삼켰다.
L11과 L12가 이 정도다.
그런데 L1이나 L2는 얼마나 대단한 할까?
그런 생각을 하니 저절로 머리가 쭈뼛해졌다.
‘자제해야겠다. 이러다가 여자와 연애 한 번 못해보고 죽을 수도 있겠어.’
그는 왠지 극한의 위기감이 느껴졌다.
사실 자신보다는 여자들에게 치명적이었다.
맘먹고 레저용 안드로이드를 양산해서 세상에 풀어버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 지구의 남성들에게는 큰 축복이 될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여자들은 피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대한은 즉시 머리를 흔들었다.
위험한 생각이 떠오르자 강제로 털어버린 것이다.
“북극 공동을 전처럼 돌려놓자.”
“네, 모든 통신을 봉쇄하겠습니다.”
“공동 안에 들어온 저들의 무기와 장비 일체를 수거해라!”
“네, 마스터.”
에바는 당장 전처럼 강력한 실드를 복구했다.
거기에다 광통신을 차단하는 간이 실드까지 중첩했다.
그것만으로 안의 상황이 완벽하게 통제됐다.
이제 공동의 안과 밖은 철저하게 분리됐다.
히릭스의 몸체 사방에서 수십 개의 문이 열렸다.
그곳을 통해 각종 로봇과 안드로이드들이 대거 쏟아지듯 빠져나갔다.
이들은 함장의 명령대로 눈에 보이는 모든 무기와 장비 일체를 수거해왔다.
“마스터! 이곳을 떠나기 전에 동굴 안에 설치한 시공간 결계 모듈을 회수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
에바의 조언을 그는 당장 받아들였다.
휴머로이드 로봇들이 동굴로 올라갔다.
땅속 깊이 박아둔 시공간 결계 모듈을 회수해왔다.
더불어 특수제작된 중국제 드론까지, 잊지 않고 가져왔다.
“우주탐사선의 연료는 얼마나 되지?”
“1달간 비행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 정도면 충분한 거야?”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원래는 100년간 비행할 수 있는 연료를 풀로 채우고 있었습니다. 물론 중간에 워프사용을 병행한다면 10년 정도 쓸 수 있는 양입니다.”
“그럼 남은 연료가 원래의 0.1%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잖아!”
“그렇습니다.”
에바의 말을 듣자 당장 히릭스의 연료부터 보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히릭스의 연료가 떨어지면 어떻게 보충하지?”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반물질 리액터를 써도 좋고 핵융합 발전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게 정말 가능한 일이야?”
SF영화에서나 듣던 단어들이 튀어나오자 그는 깜짝 놀랐다.
“물론입니다. 태양에 가까이 다가가 충전을 해도 되고,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이용해 원시적인 원자력발전을 돌릴 수도 있습니다.”
“혹시 방사능을 제거하는 것도 가능해?”
“물론이죠.”
“오마이갓!”
“그건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공짜로는 해줄 수는 없는 거 아닌가요?”
“하하하! 당연하지. 만약 방사능 청소를 한다면 당연히 제값을 받고 해야 할 거야.”
에바의 재치있는 말에 대한은 기분이 좋아졌다.
안 그래도 제정신이 아닌 일본 정치인들 때문에 피곤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을 제거해준다고 고맙다고 할 놈들도 아니었다.
오히려 방사능 제거기술을 빼앗으려고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었다.
차라리 방사능 청소회사를 차려서 일본 정부와 계약을 한다면!
아마 막대한 현금을 챙길 수도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체르노빌 발전소라는 고객이 하나 더 있었다.
“마스터! 북극 공동을 빠져나가면 어디로 갈 생각입니까?”
“어디가 좋을까?”
“역시 우주로 나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좋아. 일단 우리 우주로 나가보자.”
“네, 마스터.”
에바의 의견을 그는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우주탐사선 히릭스의 함장은 대한이다.
하지만 히릭스를 조정하는 것은 에바와 히릭스의 각 모듈의 일이었다.
“마스터! 히릭스를 가동하겠습니다. 허락하시겠습니까?”
“허락한다.”
대한의 허락이 떨어지자 에바는 본격적으로 히릭스를 움직였다.
“히릭스를 가동합니다.”
“플라스마 엔진을 가속합니다.”
“반중력 장치를 가동합니다.”
“스텔스 모드로 들어갑니다.”
“실드를 해제합니다.”
“간이 실드를 해제합니다.”
“교란 장치를 가동합니다.”
에바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히릭스에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가벼운 진동이 느껴지는 순간!
어느새 히릭스는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우주탐사선의 동체가 색을 잃듯 투명해지다가 감쪽같이 사라져갔다.
실드와 간이 실드가 해제되자 공동 위로 올라갔다.
“속도를 높입니다.”
“북극 공동을 막고 있는 장애물에 플라스마포를 발사합니다. 허락하시겠습니까?”
“허락한다.”
대한이 허가하자 에바는 플라스마포를 한 발 발사했다.
푸슝!
어두운 공동을 뚫고 허공으로 푸른 빛 덩어리가 번개처럼 날아갔다.
그 빛에 닿은 수십 미터의 두꺼운 얼음덩어리가 그대로 증발해버렸다.
함교 삼면의 입체화면을 통해…….
대한은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생생히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이제 히릭스를 가속합니다.”
슝!
우주탐사선은 순식간에 엄청난 속도로 가속됐다.
번개처럼 북극 공동을 빠져나와 대기를 가르며 위로 솟구쳤다.
그 충격에 미국, 러시아, 중국, 유럽연합의 베이스캠프가 무너질 듯 흔들렸다.
히릭스는 눈보라를 뚫고 직선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단 몇십 초 만에 대기권을 돌파해버렸다.
우주탐사선은 대기권 밖에서 철저하게 그 모습을 감췄다.
히릭스의 동체가 천천히 앞으로 기울었다.
함교의 전면이 소리 없이 좌우로 활짝 열렸다.
그곳을 통해 대한은 아름다운 지구의 모습을 두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일대 장관이었다.
“저게 지구구나.”
“참 아름다운 별이네요.”
대한의 말에 에바의 감탄사가 양념처럼 뿌려졌다.
시선을 위쪽으로 돌렸다.
우주가 보였다.
검은 장막에 수많은 보석이 뿌려진 것처럼!
무수한 별이 반짝이는 우주의 모습은 신비롭고 경이로웠다.
세상에 저렇게 많은 별이 존재한다는 게 쉽게 믿기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갈까요?”
“그래야지.”
“그 전에 달과 화성에 기지를 세우는 것은 어떨까요? 히릭스에 연료도 공급하고 무기들도 복구하려면 자원이 많이 필요합니다. ”
그는 잠시 생각해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내가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이잖아.”
“물론 그렇습니다.”
“나 지구에 내려주고 달과 화성에 기지를 세우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
“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한은 하루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달기지나 화성기지 같은 것은 아예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이제 마스터의 얼굴을 원상태로 돌려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에바는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즉각 원상복구를 시도했다.
피코셀에 의해 마법처럼 바뀌어 가는 대한의 얼굴!
얼굴과 피부색까지 빠르게 변하는 모습은 정말 그로테스크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채 1분도 되지 않았다.
마침내 관우의 모습에서 잘생긴 대한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는 자신의 원래 얼굴을 보자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다시는 관우가 되고 싶지 않아.”
“저도 그 얼굴은 별로였어요. 역시 마스터의 얼굴이 제일 멋있어요.”
진심인지 아부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대한은 에바의 말을 진심이라 믿고 싶었다.
“그런데 그동안 어디서 뭘 하고 지냈다고 얘기하지? 실종신고를 한 것은 아니겠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그동안 보조 모듈을 작동시켜 알리바이를 확보해놓았어요.”
에바는 대한에게 그동안 자신의 보조 모듈이 무슨 일을 했는지 보여줬다.
“우와! 저게 그동안 내가 한 일이란 말이야?”
“그렇습니다. 실제로 사람을 만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꾸준히 중국 곳곳을 여행하고 방송도 하고 노래도 부르며 게임을 했습니다. 덕분에 지금 그레이트원 투자회사의 마스터 투자계좌에는 거액이 들어있습니다.”
“오케이. 좋았어. 그럼 이제 난 중국으로 가야겠다.”
“산둥성 칭다오(청도)에 고리나가 있습니다. 원하시면 당장이라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고리나라는 말에 대한은 반색했다.
사실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에겐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만나봐야지. 하지만 그 전에 나 좀 씻고 머리카락 좀 정돈하자.”
“걱정하지 마십시오. 레저용 안드로이드가 마스터의 목욕시중을 할 겁니다. 그리고 가사용 안드로이드에게 지구의 최신 유행 스타일을 올려놓았습니다. 강남의 헤어디자이너 못지않게 아마 잘 뽑아낼 것입니다.”
“하하하! 좋아.”
대한은 에바의 빠른 조치에 만족한 웃음을 터트렸다.
짧은 머리를 손으로 만지고 있자 곧 함교의 문이 열렸다.
레저용 안드로이드와 가사용 안드로이드가 우르르 그에게 몰려왔다.
대한은 안드로이드에게 자신의 몸을 맡겼다.
그리고 마치 중세의 왕처럼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 사이!
에바는 그동안 지구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확인했다.
빠르게 일을 처리하기 위해 히릭스까지 총동원했다.
당연히 히릭스에 존재하는 베인을 비롯한 각종 모듈이 활용됐다.
지구 전역의 광범위한 정보가 히릭스로 빠르게 모여들었다.
에바는 중요한 정보를 빗자루로 쓸 듯이 쓸어 담고 철저히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대한이 목욕을 마치고 날렵하게 커트까지 하고 돌아오자 히릭스를 움직였다.
“이제 내려가자!”
“예, 마스터! 목적지를 설정해주세요.”
“당연히 중국 산둥성 칭다오(청도)다.”
“히릭스를 고리나가 있는 칭다오 상공으로 이동합니다.”
대한의 명령에 에바는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고오오오!
진주처럼 아름다운 매끈한 자태의 우주탐사선 히릭스!
안타깝게도 그 멋진 모습을 스텔스 모드로 완벽하게 감추고 있었다.
히릭스는 지구 대기권을 순식간에 돌파하고 산둥반도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