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득템>
하지만 대한은 아직 그 말의 이면에 존재하는 깊은 의미까지는 완전히 깨우치지 못했다.
에바는 화살표를 움직여 함장의 유니폼을 가리켰다.
―마스터! 이것도 입어보세요.
‘내가 이걸 왜 입어?’
시체가 입었던 옷을 입으라니 절로 반감이 들었다.
―시공간 결계 안에서도 멀쩡한 옷입니다. 그러니 이 옷은 당연히 마스터가 입으셔야지요.
‘그렇구나.’
에바의 말을 듣고보니 정말 대단한 옷이었다.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대검은 이미 녹이 잔뜩 슬어있었다.
그런데 함장이 입고 있던 옷은 새것처럼 깨끗하기만 했다.
대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함장의 유니폼을 집어 들었다.
뭐로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정말 새털처럼 가벼웠다.
그는 허공에 탁탁 먼지를 털었다.
오랫동안 쌓여왔던 먼지가 허공에 풀풀 날렸다.
대한은 잠시 뒤로 피했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리고는 함장의 유니폼을 걸쳐 입었다.
‘우와! 이거 너무 가볍고 부드럽다. 전혀 옷을 입은 것 같지가 않아.’
―이건 스파이럴 대제국 황실 공방에서 제작한 바이오풀아머, 트랜스폼 Ver 7.3이에요.
‘바이오풀아머라고?’
―네, 손을 가슴에다 대고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제복을 그리시면 단번에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거예요.
에바의 말대로 대한은 시범 삼아 스타트렉에 나오는 함장의 유니폼을 생각했다.
스르륵!
그러자 유니폼이 순식간에 자신이 생각하는 이미지 그대로 변해버렸다.
“올! 득템이다.”
대한은 기쁨에 겨워 두 손을 번쩍 위로 들어 올렸다.
이번에는 중세의 기사를 떠올렸다.
가슴에 손을 대고 풀 플레이트 아머를 입은 자신의 모습을 생각했다.
스르륵!
곧바로 전신이 은색의 풀 플레이트 아머를 입은 기사로 변해버렸다.
“대박!”
놀랍게도 촉감과 두께까지 완벽하게 풀 플레이트 아머를 그대로 재현했다.
그는 신이 나서 그동안 입고 싶었던 여러 가지 디자인의 의상을 떠올렸다.
생각하는 족족 완벽하게 떠올린 이미지와 일치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처음에 본 상태로 그대로 되돌려놓았다.
―패션쇼는 만족하게 하셨습니까?
‘놀리는 거야?’
―네.
‘크크! 잘했어. 아주 훌륭해!’
―다행입니다. 이제 수확하러 가볼까요?
‘좋아.’
성공하면 대박이다.
뭐 안돼도 쪽박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양심이 있다면 힐릭스의 메인 AI도 대한을 승무원 정도로는 받아줄 것이다.
대한은 동굴 한쪽 바닥에 가지런히 놔둔 자신의 옷을 쳐다봤다.
위에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 옆에는 드론도 있었는데 역시 먼지에 뒤덮여 있었다.
이것만 봐도 이미 시간이 상당히 흐른 듯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냥 옷가지를 배낭 안에 쑤셔 박았다.
등에 배낭을 멘 대한은 바닥에 놓인 무기와 장비들까지 모두 잘 챙겼다.
그는 동굴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그러다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몸을 멈칫했다.
―마스터! 밖에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니, 어떻게 실드를 뚫고 들어왔지?’
―히릭스의 메인 AI에 물어봤지만, 대답을 해주지 않습니다.
‘그럼 히릭스 말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장비나 스마트폰을 통해서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봐!’
―네, 마스터! 지금 상황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대한은 에바의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
고개를 살짝 내밀어 간이 실드 밖을 살펴봤다.
여전히 어두운 공간이었다.
그런데 여기저기에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공동에 들어온 사람들이 하나둘이 아니라는 소리다.
고개를 돌려 히릭스를 쳐다봤다.
자신이 들어왔을 때와는 달리 전혀 빛을 내고 있지 않았다.
시선을 가까운 쪽의 불빛으로 돌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수십 명의 러시아인들이 소총을 들고 서 있었다.
그들은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오른쪽 벽을 타고 어디론가 뛰어가기 시작했다.
‘지금 이게 무슨 엿 같은 상황이냐!’
―마스터! 지금으로부터 6개월 전에 갑자기 공동을 막고 있던 실드가 사라졌답니다.
‘6개월 전이라니? 아까 낙하산 타고 내려올 때까지만해도 실드는 멀쩡했잖아.’
―마스터!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에바는 조심스럽게 대한에게 말했다.
그는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침을 한번 꿀꺽 삼킨 대한!
어쩐지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마스터께서 북극 공동에 들어오신 지 거의 1년이 지났습니다.
‘그게 무슨……. 아!’
대한은 에바에게 짜증을 내려다가 갑자기 감탄사를 터트렸다.
그제야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깨달은 것이다.
‘혹시 이 모든 게 시공간 결계 때문에 일어난 일이야?’
―죄송합니다. 마스터!
에바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갑자기 다리에 힘이 쫙 풀렸다.
털썩!
그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오늘이 마스터의 생일입니다.
‘시발! 진짜 미치겠네.’
대한은 도저히 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2월에 북극 공동으로 들어왔는데 시간이 빠르게 흘러서 새해가 됐다.
게다가 오늘이 바로 자신의 생일인 1월 2일이란다.
정말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마스터! 성년이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야! 너 지금 나 열 받으라고 일부러 약 올리는 거지?’
―아닙니다. 마스터!
‘그럼 좀 닥치고 있어!’
―눼에에에!
너무 화가 나자 오히려 마음이 차갑게 식어버렸다.
이 황당한 사태를 앞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다.
정신을 차리고 싶었지만 왠지 의욕이 나지 않았다.
그가 일어날 기회를 준 것은 엉뚱하게도 공동으로 들어온 인간들이었다.
투투퉁 투투퉁 투투퉁!
다다당 다다당 다다당!
멀지 않은 곳에서 둔탁한 총성이 들려왔다.
소총에 소음기를 달고 서로를 향해 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에바! 지금 무전 되는지 확인해봐!’
―무전뿐만 아니라 와이파이까지 잘 되고 있습니다.
그 사이 미국, 러시아, 중국, 유럽연합은 베이스캠프에다 위성 송수신 망까지 세워놓은 모양이었다.
‘제기랄! 일단 아버지와 어머니가 무사한지 살펴봐줘!’
―네, 두 분 모두 정정하십니다.
에바는 집에서 TV를 보고 계신 부모님의 모습을 홀로그램처럼 대한에게 보여줬다.
‘그나마 다행이군.’
부모님의 건강한 모습에 그나마 힘이 좀 났다.
그는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내 얼굴이 아직도 관우의 모습인가?’
―그렇습니다. 본래대로 바꿔놓을까요?
‘아니야. 조금만 더 이대로 있자.’
그는 고개를 살짝 내밀어 바깥을 살펴봤다.
어두운 공동 안에서 두 무리가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 바람에 대충 밖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추측할 수 있었다.
공동안은 우주탐사선 히릭스를 중심으로 네 개의 무리로 나뉘어져있었다.
탐욕스러운 인간들은 우주선을 공동연구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어떻게든 상대를 해치우고 통째로 히릭스를 먹어치우려고 발악을 하고 있었다.
대한은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다가 어느 순간 아래로 훌쩍 뛰어내렸다.
휘익! 척!
한번 뛰어서 올라와 보니 이제 이 정도 높이는 전혀 두렵지도 않았다.
대한은 조심스럽게 우주선을 향해 다가갔다.
전에는 아무 것도 없는 공간이었는데 지금은 사방에 온갖 기계와 장비들이 가득했다.
파파팟!
그때 어디선가 총알이 날아와 땅바닥에 박혔다.
흙먼지가 튀자 그는 반사적으로 몸을 옆으로 날렸다.
그런 후 자세를 낮추고 몸을 기중기 뒤로 은폐했다.
동시에 가슴에 손을 대고 영화 캡틴 아메리카에 나오는 슈트를 상상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 컨셉에서 가장 중요한 비브라늄 방패가 없었다.
대한은 마음을 고쳐먹고 영화 아이언맨에 나오는 Mk.50 블리딩 엣지를 떠올렸다.
스르륵!
대한의 몸과 근육에 딱 맞게 슈트가 만들어졌다.
메탈 레드와 골든 마스크 그리고 가슴과 양손의 네온까지!
오히려 영화나 실사판보다 훨씬 멋있고 우아한 모습이었다.
그는 에바가 거울처럼 보여주는 자신의 모습에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마스터! 2시 방향에 적이 나타났습니다. 두명입니다.
그는 MP7A2 기관단총을 꺼내 손에 쥐었다.
에바가 허공에 화살표를 뛰워 적의 위치를 보여줬다.
대한은 총구를 들어 목표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드르르륵 드르르륵!
다행히 시간이 좀 지났는데도 기관단총은 무리없이 작동됐다.
총알이 연속으로 빠르게 발사되어 한 명의 몸을 두들겼다.
방탄복을 입었는지 즉사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피탄을 당해 팔다리에서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드르르륵 드르르륵!
다시 한번 기관단총을 난사했다.
나머지 한 명도 다리를 맞았는지 즉시 쓰러졌다.
그는 빠르게 다가가 쓰러져 있는 적의 머리를 발로 차버렸다.
머리가 위로 들렸다가 툭 떨어졌다.
이마가 깨지고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하지만 죽지 않고 기절만 해버렸다.
대한은 나머지 적을 향해 몸을 날렸다.
바닥을 한바퀴 구른 그는 쓰러져 있는 적의 이마에 정확히 총구를 가져다댔다.
치이익!
뜨거워진 총구가 놈의 살갗을 태우기 시작했다.
“으악!”
상대가 고통에 못이겨 비명을 질렀다.
‘이 새끼! 양천이잖아.’
―맞습니다. 중국의 국가안전부 부국장 양천입니다.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고 하더니 지금이 바로 그 짝이었다.
양천의 모습은 크기 바뀐 것이 없었다.
하지만 공포에 질린 놈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나왔다.
가랑이 사이에선 노란 물도 줄줄 새어나왔다.
퍽!
대한은 주먹으로 양천의 턱을 갈겨버렸다.
옥수수같이 생긴 하얀 것들이 허공으로 튀어나왔다.
딱 봐도 턱이 부서져나간 것이 틀림없었다.
팔다리에 총상을 입은 상태에서 턱이 나갔으니…….
앞으로 편하게 밥 먹고 살긴 글러먹은 인생이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히릭스에서 강한 파동이 일어났다.
우웅 우웅 우웅 우웅!
마치 대한이 다가오는 것을 반기기라도 하는 모습이었다.
격한 공명음에 그의 심장의 박동수도 빨라졌다.
재빨리 히릭스를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중간에 방해꾼들이 나타나서 급히 몸을 멈춰 세워야 했다.
―전방에 적들이 매복을 하고 있습니다.
‘투시모드로 보여줘!’
―네, 마스터.
대한의 말에 에바는 즉시 주변의 상황을 투시모드로 바꿨다.
그의 눈에만 보이는, 모든 사물을 뚫어보는 것 같은 증강현실이 구현됐다.
‘에바! 내가 입은 이 옷의 방어력이 어느 정도지? 소총의 탄환을 방어할 수 있는 거야?’
―그 정도는 문제없습니다. 또한, 보험을 들어놓았으니 피격될 염려는 없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그녀의 자신 있는 말에 대한의 간덩이가 크게 부풀기 시작했다.
그는 배틀푸르나(SSS)를 운용했다.
마력을 일으켜 온몸으로 퍼트렸다.
눈이 밝아지고 몸이 가벼워졌다.
거기에다 에바가 보여주는 투시모드의 증강현실은 적의 위치와 자세까지 훤히 보였다.
다다다다다!
어두운 공간을 대한이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He is coming!”
“Stop him!”
전방에서 다급한 영어가 들려왔다.
적의 숫자는 무려 다섯!
그러나 대한은 두려움 없이 그들을 향해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놀란 백인이 총구를 들고 방아쇠를 당겼다.
투투투퉁!
대한은 즉시 몸을 낮추고 왼손으로 상대의 총구를 위로 쳐올렸다.
동시에 오른손을 명치에 쑤셔 박았다.
퍽!
“커억!”
새우처럼 몸을 수그린 백인은 그 와중에도 한 손으로 권총을 꺼내려고 했다.
하는 짓을 보니 미국의 특수부대 대원이 분명했다.
그러나 상대의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대한이 곧바로 앞발차기로 턱을 쳐버렸기 때문이다.
풀썩!
백인이 쓰러지자 이번에는 흑인이 나타나 기관단총을 갈겼다.
드르르륵!
그는 슬쩍 옆으로 피하면서 떨어져 내리는 백인의 권총을 발로 찼다.
권총은 빠르게 회전하며 흑인이 들고 있는 기관단총을 향해 날아갔다.
“엇!”
놀란 흑인이 반사적으로 몸을 피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얼굴에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퍼억!
“큭!”
흑인은 짧은 단말마를 내뱉으며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대한은 쓰러지는 흑인의 허리에서 대검을 빼더니 곧장 정면을 향해 던져 버렸다.
“크악!”
대머리에 콧수염이 멋들어지게 난 백인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갔다.
어깨에는 대한이 날린 대검이 깊숙이 박혀있었다.
투투투투투투투!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소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을 보면 독종이 분명했다.
물론 총구가 위로 올라가서 하늘에 비를 뿌려주는 격이었다.
도도도도!
대한은 그 틈에 번개처럼 다가가 일어나려는 대머리의 턱을 사커킥으로 날려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