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재생수리>
“와아! 편하다!”
의자는 놀랍게도 편하고 부드러웠다.
손으로 만져보니 마치 젤리처럼 말랑말랑했다.
눕고 싶다는 생각에 몸을 뒤로 젖히자 의자가 그에 맞춰 자동으로 반응했다.
거의 퍼스트 클래스의 좌석 수준으로 눕혀졌다.
하지만 그 편안함과 부드러움은 가히 이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히릭스의 메인 AI로부터 재생수리를 허가받았습니다. 마스터께서는 그동안 저를 도와주신 공이 인정되어 게스트 자격을 얻으셨습니다.
‘잘됐다. 그런데 게스트 자격으로 뭘 할 수 있지?’
―히릭스에 언제든지 방문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도 함교에는 못 들어가겠지?’
―함교뿐만 아니라 히릭스의 중요한 공간은 철저히 출입이 통제됩니다.
대한은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봤다.
게스트 자격은 그에게 전혀 메리트가 없었다.
하긴 뭔가 특별히 바라고 물어본 것은 아니었다.
혹시나 하고 한번 찔러본 것에 불과했다.
―눈을 감고 편하게 누워주세요.
‘그러고 있어.’
그는 이미 눈을 감고 있었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나시면 모든 것이 끝나 있을 겁니다.
‘응, 알았어.’
대한이 대답한 순간 이미 그는 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서서히 의무실에 변화가 시작됐다.
바닥에서 투명한 원기둥이 올라왔다.
천정에서 투명하고 넓은 판이 내려왔다.
벽에서 원형의 그릇이 둥실 떠올랐다.
안에는 수은 같은 은색의 액체가 가득했다.
우웅!
의무실에 가벼운 공명음이 울렸다.
그런 후 대한이 누운 의자의 머리 뒷공간에 구멍이 열렸다.
그곳을 향해 아래쪽에서 원기둥이 올라왔다.
원기둥에서 뭔가 빛이 살짝 번쩍거렸다.
순간 그의 뒤통수에서 은색의 실이 쭉 빠져나왔다.
그러자 원형의 그릇이 다가와 원기둥에 내려앉았다.
은색의 실은 힘을 잃은 듯 그릇에 담겼고 곧 환하게 빛을 냈다.
허공에 떠 있는 투명한 판에서도 밝은 빛이 번쩍였다.
은색의 실은 그릇에 담긴 액체를 빠르게 흡수해 빨아들였다.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그릇 안에 담겨있던 은색의 액체는 모조리 사라져버렸다.
투명한 원기둥이 바닥으로 내려갔다.
빛을 내던 투명한 판도 천정으로 올라갔다.
벽에서 나왔던 원형의 그릇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은색의 실만큼은 아직도 배가 고프다는 듯 허공에서 펄럭거렸다.
그러다가 이내 바닥으로 축 처졌다.
그러다가 은색의 실이 갑자기 쭉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니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한쪽 벽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쏘아졌다.
텅!
가벼운 소음이 일며 은색의 실은 벽을 뚫고 들어갔다.
우웅!
의무실에 작은 파동이 일었다.
동시에 벽을 뚫고 들어간 은색 실이 파르르 떨렸다.
순간 놀랍게도 은색의 실을 타고 벽 안에서 황금빛의 액체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황금빛 액체는 얇디얇은 실을 타고 뱅글뱅글 돌면서 대한의 뒤통수로 다가왔다.
그러다가 대한의 몸과 전신 피부를 타고 확 퍼져나갔다.
우웅!
의무실에 아까보다 강한 파동이 일어났다.
은색 실이 파르르 떨리더니 곧바로 벽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리곤 이내 대한의 머릿속으로 잽싸게 빨려 들어갔다.
그의 얼굴을 비롯한 전신은 현재 황금빛 액체로 덮여있었다.
그러나 은색의 실이 사라지자 황금빛 액체도 덩달아 대한의 피부로 빨려들 듯 스며들었다.
―마스터!
대한은 에바의 목소리와 함께 눈을 떴다.
몸을 일으키자 그 어느 때보다도 기분이 매우 상쾌했다.
‘에바! 다 끝난 거야?’
―네, 재생수리가 끝났어요.
‘와우! 축하해! 이제 수명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네.’
―모두 마스터 덕분이에요. 앞으로 100년 동안은 문제없어요.
‘이야! 나보다 오래 살겠구나.’
―그럴 리가요. 마스터가 죽으면 저도 죽습니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그럼 에바를 위해서라도 나 오래 살아야겠다.’
―꼭 그렇게 해주세요.
그는 에바의 기뻐하는 목소리를 듣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돌아가는 거야?’
―아직은 아니에요. 공동을 떠나기 전에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이 하나 남아있어요.
‘그게 뭐지?’
―나가서 말씀드릴게요.
대한은 에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의무실을 나가자 옆으로 구멍이 하나 뚫렸다.
들어온 곳과는 다른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디로 나가든 밖으로 나갈 수만 있으면 그만이었다.
우주선 나오자 환하게 빛나는 우주탐사선의 히릭스의 매끈한 모습이 보였다.
덕분에 주변은 불을 밝히지 않아도 대낮처럼 환했다.
―마스터! 지금 보고 있는 곳을 기준으로 10시를 보세요.
‘응, 봤어.’
―위로 10m쯤 보시면 뭔가 다르다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뭐가 다르단 말이지?’
대한은 에바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의 눈에는 그 어떤 이상한 점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문뜩 자신이 전에 했던 행동을 떠올렸다.
뜻이 일자 마력이 움직였다.
한번 하기가 어렵지 두 번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마치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마력을 두 눈으로 보냈다.
“어!”
대한의 입에서 감탄사가 떠올랐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분명히 벽 안에 텅 비어있는 공간이 보였다.
‘공간이 있다.’
―저게 간이 실드에요. 겉으로 봐서는 절대 별다른 점을 발견할 수가 없어요.
‘저 안에 뭔가 있구나.’
―맞아요. 제 생각이 맞다면 마스터는 게스트의 신분에서 단번에 함교에 들어갈 수 있는 함대 장교가 될 수 있어요.
‘함교에 들어갈 수가 있다고!’
다른 것은 모르지만 함교에는 꼭 한번 들어가 보고 싶었다.
대한은 아직 에바가 한 말의 의미를 100%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저길 올라갈 수 있을까?’
―마력을 이용하시면 충분히 가능할 거예요.
‘알았어. 한번 해볼게.’
평범한 사람은 절대 10m 위의 공간을 뛰어넘을 수 없다.
하지만 대한은 이미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거기에다 그는 마력과 비장의 권능인 배틀푸르나(SSS)가 있었다.
에바는 드론을 움직여 목표지점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췄다.
대한은 배틀푸르나를 운용하면서 마력을 끌어올렸다.
“이얏!”
칭호 워크라이로 스탯을 40% 증폭했다.
칭호 투지의 신병으로 재능 스프린트(SS)를 40% 부스팅했다.
그리고도 모자라 스파이럴 제국기사단의 비전 무공 탄탈러스(SS)의 운신법을 이용해 전신을 가볍게 만들었다.
팟!
대한의 몸이 빠르게 벽을 향해 쏘아졌다.
무시무시한 속도를 내던 그는 어느 순간 힘차게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탓!
휘이익!
놀랍게도 그의 몸은 단번에 새처럼 허공을 날아올라 10m 높이의 벽에 정확히 부딪혔다.
사악!
아니 벽을 가볍게 뚫고 들어갔다.
―성공했어요.
‘휴우! 다행이다.’
에바는 대한의 앞에서 신나게 춤을 췄다.
그도 안도의 한숨을 쉬며 몸을 일으켰다.
드론이 대한의 뒤를 따라 동굴 안으로 들어와 빛을 비췄다.
위이잉!
밖을 내다보자 공동의 내부가 한눈에 들어왔다.
손을 뻗어 입구를 만지자 눈에 보이지 않던 빛의 입자가 파르르 떨려왔다.
‘정말 대단한 과학기술이다.’
대한은 혀를 내두르며 몸을 돌렸다.
동굴은 한 사람이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크고 높았다.
저벅 저벅 저벅!
그는 동굴을 걸어가며 마력을 눈에 집중시켰다.
드론이 빛을 비췄지만, 여전히 어두웠던 동굴이 이제는 환하게 보였다.
100m쯤 걸어가자 전면에 출렁이는 물의 막 같은 게 보였다.
전혀 빛나지 않아서 모르고 그냥 지나칠 뻔했다.
에바가 다급한 목소리로 그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마스터! 멈추세요.
‘이게 뭐야?’
―만지면 안 돼요.
놀란 대한이 뻗으려던 손을 급히 거둬들였다.
―이건 시공간 결계에요.
‘시공간 결계?’
―네, 시간과 공간으로 결계를 만든 거예요.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봐!’
―쉽게 말해서 마스터가 서 계신 곳과 저 안의 시간이 다르다는 말이에요.
‘아!’
너무 놀라서 그냥 입을 딱 벌렸다.
세상에 시공간 결계라니…….
이건 무슨 판타지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말인가!
고도로 발달된 문명은 마치 마법과도 같다는 말이 떠올랐다.
‘이건 정말 마법 같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시공간 결계 앞에 서서 안을 살펴보세요.
‘알았어.’
대한은 에바의 말대로 시공간 결계 앞에 섰다.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닿지 않도록 조심했다.
마력을 두 눈에 불어넣고 정신을 집중하자!
신기하게도 시공간 결계 안이 눈에 보였다.
거리는 대략 100m쯤이었다.
끝에는 의자 하나가 놓여있었다.
의자에는 장대한 사람이, 아니 해골 하나가 앉아 있었다.
‘해골이 있다.’
―목과 손가락에 뭐가 있는지 보이세요?
‘목걸이와 반지가 있어.’
―복장을 보니 히릭스의 함장이 분명해요.
‘그런데 왜 저기에 저런 모습으로 죽어있지?’
―그건 저도 알 수 없어요. 하지만 마스터가 히릭스 함장의 목걸이와 반지를 가져온다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거예요.
‘알았어.’
대한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스터!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절대 저 안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면 안 돼요. 무조건 목걸이와 반지를 확보한 후 곧장 되돌아와야 해요.
‘알았어.’
에바는 그에게 신신당부했다.
대한은 일단 옷을 몽땅 벗었다.
그리고 가지고 있는 장비를 전부 바닥에 내려놓았다.
만의 하나를 대비한 행동이었다.
―혹시 몰라서 저도 보험을 하나 들어놓아야겠어요.
‘그게 뭔데?’
대한은 말이 끝나자마자 자신의 몸이 황금빛으로 빛나는 것을 발견했다.
‘이게 뭐야?’
―설명은 나중에 드릴게요. 바로 들어가셨다가 아이템만 챙겨서 바로 나오세요.
‘알았어.’
에바의 말이 옳았다.
뭐가 됐든 이젠 최선을 다해 달려야 한다.
대한은 대검을 한 손에 쥐고 뒤쪽으로 물러났다.
그리고는 크게 심호흡을 한번 했다.
발가벗은 몸이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탓!
그는 쏜살같이 달려서 번개처럼 시공간 결계를 통과했다.
웅웅!
순간 머릿속에 이명이 들려왔다.
몸이 허공으로 붕 뜨는 느낌이었다.
마치 영혼과 육체가 나뉘기라도 하듯 몽롱해졌다.
대한은 이를 꽉 다물고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도도도도도!
100m를 단 몇 초 만에 주파했다.
그의 눈에 의자에 앉아 있는 히릭스의 함장의 모습이 보였다.
유니폼을 입고 있었지만 끔찍하게도 머리는 이미 해골이었다.
대한은 대검을 이용해 목걸이와 반지를 잘라가려고 하다가 이내 마음을 바꿨다.
그는 의자를 통째로 들었다.
그리곤 곧바로 몸을 돌려 시공간 결계의 입구로 달려갔다.
다다다다다!
대한은 그야말로 결사적이었다.
손에 들고 있는 대검의 날이 빠르게 녹이 슬고 있었다.
그 모습에 온몸의 마력을 두 다리에 폭발시키듯 쏟아부었다.
덩달아 달려가는 속도도 눈부시게 빨라졌다.
이윽고 시공간 결계를 찢어버릴 듯 뚫고 나왔다.
화악!
시공간 결계를 빠져나온 순간!
대한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시공간 결계 안과 밖의 환경이 많이 달랐다.
그래서 몸의 중심을 그만 잃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대한은 급히 정신을 추스렸다.
다행히 넘어지지 않고 간신히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퍽!
그때였다.
손에 들고 있던 의자가 가루로 변해버렸다.
히릭스의 함장, 아니 해골도 먼지가 되어 스러져갔다.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지는 하얀 뼈조각들!
그가 들고 있는 것은 결국 함장의 옷가지뿐이었다.
‘아아!’
―마스터! 수고하셨어요.
‘천만에. 그런데 좀 허무하다.’
―이제 목걸이와 반지를 차세요.
‘알았어.’
대한은 에바의 말을 따랐다.
일단 땅에 떨어진 히릭스 함장의 목걸이와 반지를 주웠다.
500원짜리 동전 크기의 타원형의 은색 목걸이!
중앙에는 황금색 십자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뒤쪽을 보니 우주탐사선 히릭스의 모습이 음각되어 있었다.
목걸이의 바깥쪽으로 스파이럴 대제국의 고어가 원형으로 돌아가며 새겨져 있었다.
반지는 은색에 아무런 문양이 새겨져 있지 않았다.
하지만 안쪽으로 정교한 스파이럴 대제국의 고어와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대한은 목걸이를 목에 차고, 반지는 왼손가락에 꼈다.
신기하게도 목걸이와 반지는 그의 몸에 맞춰서 저절로 사이즈가 줄어들었다.
“아야!”
그때 갑자기 목과 손가락이 따끔했다.
그러나 통증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대한은 이게 뭔가 하고 목과 손가락을 만졌다.
―마스터! 히릭스 함장의 목걸이와 반지가 마스터와 동기화를 시작했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쉽게 말해서 이제 목걸이와 반지의 주인은 오직 마스터라는 뜻입니다.
목걸이와 반지의 주인이 됐다는 말에 고개가 자동으로 끄덕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