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우주탐사선 히릭스>
100m, 200m, 300m!
점점 아래로 내려가자 드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노트북의 모니터를 통해 드론이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800m, 900m, 1000m!
드디어 1km를 돌파하자 순간 모니터가 회색으로 변해버렸다.
드론에 부착된 카메라와 연결이 끊겨버린 것이다.
“들어 올려!”
“네.”
혹시나 해서 관더싱은 드론을 끌어 올리라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한번 내려간 드론은 다시 떠오를 줄 몰랐다.
‘에바, 어떻게 된 거야?’
―북극 공동 지하 1km 지점에 광통신을 차단하는 간이 실드가 쳐져 있습니다.
‘광통신? 간이 실드?’
―레이저, 적외선, 가시광선 등을 포함한 광학 관측과 전파 같은 무선통신을 합쳐서 광통신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간이 실드는 원하는 광통신을 제외한 모든 광통신 기기를 차단하는 스파이럴 제국군의 교란 장치 중 하나입니다.
‘이제야 좀 이해가 가는군.’
대한은 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에바의 말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재 쿼드드론은 제가 통제하고 있습니다.
‘모든 광통신 기기를 차단하는 교란 장치가 켜져 있다고 했잖아.’
―원하는 광통신을 제외할 수 있다고도 말씀드렸습니다.
‘그럼 뭐야? 저 안에서 광통신을 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는 거야?’
―물론입니다. 스파이럴 제국이 사용하는 다중광통신분할체계와 양자 패턴을 이용하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는 에바의 말을 듣고 있으면서도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쨌든 드론과 통신을 할 수 있다는 말은 알아들었어.’
―한 가지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양자 패턴을 분석해보니 공동 아래에 존재하는 우주선은 우주탐사선 히릭스가 맞습니다.
‘올! 그것참 반가운 소식이네.’
대한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본 양천의 눈에 기광이 흘렀다.
“드론은 실패했습니다. 이제 직접 내려가서 확인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제가 내려가겠습니다.”
대한이 손을 들고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양천이 일어나 손뼉을 쳤다.
짝 짝 짝 짝!
그러자 곧 모든 사람이 대한을 향해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짝짝짝짝! 짝짝짝짝!
“과연 영웅적인 행동이요.”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이게 모두 나라를 위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그렇소.”
양천은 대한의 손을 잡고 흔들면서 환하게 웃었다.
입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그는 대계를 위해 꾹 참았다.
“새로운 기중기를 설치하고 줄을 내릴 테니 감시 기다리시오.”
관더싱도 대한에게 다가와 친근한 어투로 말했다.
하지만 대한은 바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냥 낙하산을 타고 내려가겠습니다. 어차피 줄을 타고 가나 낙하산을 타고 가나 저에게는 똑같습니다.”
“아니 그래도…….”
그의 말에 깜짝 놀란 관더싱이 만류를 했다.
하지만 곧 양천에 의해 제지됐다.
“원하는 데로 해주시오.”
“아, 알겠습니다.”
관더싱은 바로 포기했다.
어차피 대한이 없다고 해도 옆에 3명의 지원자(?)가 대기 중이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좋소. 조심하시오.”
대한은 끝으로 다가가 구멍 아래를 내려다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뒤로 최대한 물러났다.
‘에바! 정말 이렇게 하면 되는 거지?’
―네, 마스터! 낙하산을 펴는 시기는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잘 해보자.’
―아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지켜드리겠습니다.
대한은 에바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한쪽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자들의 눈빛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씩 미소를 지으면서 한 손을 흔들었다.
“고맙다.”
작게 혼잣말을 한순간!
그는 구멍을 향해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탁!
엄청난 순간 속도를 낸 대한은 마지막 도움닫기를 하며 힘차게 떠올랐다.
휘익!
바람 한 점 없는 공간에 바람이 일어났다.
대한은 한순간 허공에 맨몸으로 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찰나의 순간!
해방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느낌을 만끽하기도 전에 그의 몸이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아!”
“악!”
“흐윽!”
같은 탐사팀 대원인 양양, 천웨이팅, 황위징이 놀란 표정으로 비명을 질렀다.
대한이 구멍을 향해 뛰어든 모습이 마치 자신의 미래를 보는 듯했나 보다.
그의 모습은 순간적으로 구멍 속으로 사라졌다.
휘이익!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
대한은 빠르게 공동 아래로 낙하하고 있었다.
―1000m, 2000m, 3000m! 7000m 지점에서 낙하산을 펴야 합니다.
‘알았어.’
그는 에바의 목소리에 전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걸었다.
―6000m, 곧 목표지점에 도달합니다. 7000m! 낙하산을 펴세요.
‘오케이!’
대한은 에바의 말에 맞춰 잽싸게 낙하산을 폈다.
파라라락 펄럭!
그는 갑자기 몸이 위로 둥실 떠 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낙하산이 잘 펴진 것이다.
―왼쪽으로 너무 붙었어요. 오른쪽을 이동하세요.
‘응.’
앞이 안 보이니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대한은 에바의 말대로 낙하산을 조정해서 오른쪽으로 조금씩 이동했다.
그러다가 문뜩 뇌리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대한은 즉시 배틀푸르나(SSS)를 운용했다.
정수리에서부터 꼬리뼈까지 빠르게 진자운동이 일어났다.
동시에 전신이 가벼워지고 눈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마력을 끌어모아 두 눈으로 보냈다.
대한의 눈이 시퍼렇게 변했다.
놀랍게도 그때부터 주변 경관이 훤히 보이기 시작했다.
‘아! 성공이다.’
―잘하셨어요. 훌륭한 마력의 응용능력입니다.
에바는 대한의 행동에 아낌없는 칭찬을 했다.
그 사이에도 낙하산은 아래로 쭉쭉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위이이잉!
그때 대한의 귀에 미약한 소음이 들려왔다.
에바가 조정하고 있는 쿼드드론이 그의 발아래 쪽에서 비행 중이었다.
‘드론이 벌써 여기까지 왔네.’
―제가 조정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 그래. 이제 난 뭘 해야 하지?’
―북극 공동 10km 아래에 실드가 펼쳐져 있는 걸 확인했습니다. 이미 실드와 동기화를 마치고 임시로 통로를 열기로 했습니다. 정확히 중앙에 열리는 빈틈으로 내려가셔야만 합니다.
‘알았어. 그런데 그 통로라는 것은 어떻게 생겼지?’
―직접 한번 보세요.
대한은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래를 내려다봤다.
지름 1km의 원형 공간을 우윳빛 투명한 막이 단단히 가로막고 있었다.
중앙을 보자 지름 100m의 원형의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마침 딱 그곳만 실드가 열려있는 것이다.
도대체 이런 게 어떻게 가능한지 그는 알 수 없었다.
그보다 일단 중요한 것은 자신이 그곳을 잘 통과하는 것이다.
둥실! 두둥실!
대한은 낙하산의 줄을 조정해 가운데로 떨어져 내렸다.
사악!
낙하산의 끝이 실드에 살짝 닿았다.
그러자 아이스크림을 퍼먹은 것처럼 그곳만 싹 증발해버렸다.
그 모습에 대한은 절로 소름이 끼쳤다.
꿀꺽!
대한이 실드를 통과하자 곧바로 실드는 원래대로 원상 복구됐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여전히 어둠 속이었다.
‘에바, 앞으로 얼마나 더 내려가야 하지?’
―대략 2km는 더 가셔야 합니다.
에바는 먼저 드론을 빠르게 아래로 내려보냈다.
중국 정부에서 공작금을 아끼지 않고 처발라 특별제작한 쿼드드론이었다.
그래서 운용시간이 가뿐하게 2시간을 넘겼다.
그동안 에바가 운용했던 그 어떤 드론보다 성능이 좋았다.
‘저거라도 눈에 보이니 다행이다.’
―그대로 계속 내려가시면 됩니다.
에바는 동문서답을 했다.
대한도 굳이 그녀의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낙하산은 눈꽃 송이처럼 천천히 내려갔다.
발아래에 드론의 불빛이 번뜩거렸다.
―거의 다 왔습니다. 실드를 통과하고 2km 더 내려왔네요.
‘바닥의 상태는 어때?’
―평평한 땅입니다. 물도 없고 방해물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에바의 말대로 아래는 평평했다.
하지만 한쪽에 거대한 유선형의 물체가 있었다.
아무래도 저게 스파이럴 대제국의 우주탐사선 히릭스인 모양이었다.
대한은 잠시 히릭스를 쳐다보다 다시 시선을 아래로 돌렸다.
촤악!
두 줄을 힘차게 위로 당겼다.
그러자 낙하산이 팽팽히 당겨지며 속도가 급감했다.
대한은 바닥에 다리가 닿자마자 앞으로 달려갔다.
그런 후 속도를 줄이면서 낙하산을 풀어버렸다.
낙하산이 한쪽으로 몰리고 그는 자유의 몸이 됐다.
“살았다!”
대한은 털썩 주저앉아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았다.
―마스터! 수고하셨습니다.
‘에바도 수고했어.’
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위를 올려다봤다.
검은 어둠이 집어삼킨 공동은 암흑으로 뒤덮여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다시 올라가지?’
―그건 제가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일단 좀 쉬고 계십시오.
‘응.’
어차피 에바 하나만 믿고 이런 모험을 감행했다.
그러니 알아서 해결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잠시 제자리에 앉아 숨을 돌리고 나자 주변의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천천히 걸어서 일대를 살펴봤다.
먼저 벽에다 손을 대봤다.
마치 대리석처럼 매끈했다.
어떻게 깎아냈는지 모르지만 정말 완벽하고 깔끔한 원형의 공간이었다.
혹시나 하고 기대를 하고 주위를 둘러봤다.
“별거 없네.”
하지만 특별히 관심을 끄는 것은 없었다.
한쪽에 세워진 커다란 유선형의 우주탐사선 히릭스를 제외하곤 말이다.
우웅!
그때, 갑자기 우주선에서 강한 파동이 일어났다.
동시에 우주선의 표면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은빛으로 영롱하게 반짝이는 모습이 마치 불빛에 비춘 진주 같았다.
‘에바! 뭐야?’
―드디어 히릭스의 메인 AI에 접속했습니다.
에바가 ‘AI’라고 표현했지만 정말 지구의 허접한 ‘AI’ 같은 것은 아닐 것이다.
모르긴 해도 에바를 능가하는 ‘초자아 슈퍼모듈’일지도 모른다.
‘이제 우주선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 거야?’
―그렇습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우웅!
또다시 강한 파동이 한번 일어났다.
순간 소리 없이 우주선에 문이 생겼다.
대한은 크게 한번 심호흡을 하고는 우주선 안으로 들어갔다.
혹시나 해서 뒤쪽을 돌아봤다.
하지만 역시나 우주선에 열렸던 통로는 깔끔하게 복구되어 있었다.
동그랗고 긴 원형의 통로를 걸어갔다.
에바가 그의 눈앞으로 화살표를 그려줘 금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곳이 히릭스의 함교입니다.
그곳은 체육관만 한 넓은 공간이었다.
함교는 예술품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아름다운 장식품으로 가득했다.
삼면의 벽은 오색칠채의 아름다운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진줏빛으로 빛나는 테이블과 의자의 형태도 아주 독특했다.
뭔지 모를 은빛의 구체들이 허공을 둥둥 떠다니고 있는 게 환상적이었다.
대한은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중간에 투명한 막이 있어서 함교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뭐야? 막혀있는데.’
―저희는 함교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자격이 없는 겁니다.
‘그럼 누가 들어갈 수 있는데?’
―원래는 우주탐사선 히릭스의 함장과 부함장 및 장교들이 들어갑니다. 하지만 현재는 아무도 들어갈 수가 없다네요.
‘이런!’
대한은 안타까운 마음에 혀를 찼다.
이렇게 아름답고 멋진 우주선이 이대로 방치되어 있다는 게 안쓰러웠다.
그는 잠시 함교를 좀 더 살펴보다 몸을 돌렸다.
‘지금 우리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맞습니다. 이제 의무실로 이동하시죠.
‘의무실?’
의무실이라는 말에 대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에바가 보여주는 화살표를 따라 움직였다.
통로는 원형으로 빛나고 있었다.
어디를 만져봐도 전부 매끈한 상태였다.
오직 바닥만 대한이 걸어갈 수 있게 평평했다.
그러나 벽과 바닥 그 어떤 곳에도 아무 표시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 어디에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왜 하필이면 의무실이지?’
―피코셀을 이용한 에듀케이션 모듈은 카테고리가 의료품입니다.
‘아!’
그제야 그녀의 말이 이해가 갔다.
이번에도 소리 없이 벽에 문이 열렸다.
대한은 곧바로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무것도 없는 40평 정도의 매끈한 방이었다.
그 모습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에바가 차분하게 설명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곧 재생수리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래.’
대답하고 나자 눈앞에 바로 의자 하나가 올라와 있었다.
일체의 소음이 없으니 왠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일단 의자에 앉았다.
의자가 자동으로 그의 몸에 맞춰서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