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북극 공동 탐사>
유운비가 다가와 뭔가 말을 하려다 입을 닫았다.
관우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던 유운비는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그러다가 자신도 침대에 몸을 뉘었다.
그렇게 가는 코 고는 소리가 방을 울리기 시작했다.
―마스터! 마스터!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대한은 에바가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무슨 일이야?’
―국안부 부국장 왕천과 황수센 탐사대장 그리고 장강기지의 관더싱 부장이 작전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내가 얼마나 잤지?’
―6시간 주무셨습니다.
그는 침대에서 나와 기지개를 켰다.
온몸에 힘이 넘치고 개운한 것이 꿀잠을 잔 모양이다.
‘에바 덕분에 잘 잤다.’
―고맙습니다. 마스터!
대한은 물수건을 꺼내 대충 얼굴과 손을 닦았다.
숙소를 나와 식당으로 가자 어느새 탐사대 대원 중 절반이 이미 나와 있었다.
“관우!”
“유운비!”
유운비가 대한을 반갑게 맞아줬다.
대한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그의 앞에 앉았다.
“일찍 일어났네. 잠 못 잤어?”
“아니야. 난 푹 잤어. 너는?”
“나도 잘 잤어.”
둘은 별 특별한 얘기 없이 장강기지에서 주는 대로 밥을 먹었다.
말이 밥이지 내용물은 전투식량이나 다름이 없었다.
‘더럽게 맛없네. 역시 이럴 땐 비빔밥을 먹어야 하는데.’
―차라리 국물이 있는 것을 드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게 낫겠다.’
대한은 먹다 남은 밥을 쓰레기통에 버려버렸다.
대신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국수를 한 그릇 챙겼다.
젓가락으로 한 점 먹어보니 영 맹탕이었다.
맹숭맹숭한 맛에 간도 제대로 맞지 않았다.
그는 고춧가루와 간장, 소금과 참기름 등을 이용해 대충 양념장을 만들었다.
한 숟가락 떠서 국수에 넣고 비벼서 먹자 그럭저럭 먹을 만 해졌다.
“이제야 좀 먹을 만하군.”
“그거 나도 좀 주라.”
유운비가 눈빛을 빛내며 대한을 쳐다봤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이 제조한 양념장을 건넸다.
입에 침을 바르며 유운비는 양념장을 떠서 자신의 국수에 섞었다.
그리고는 젓가락으로 떠먹기 시작했다.
“우와! 맛있다.”
“넌 그게 맛있냐?”
“아까보다 100배는 더 낫다.”
“크크크!”
대한은 유운비의 말에 웃음을 흘렸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1분대 대원들이 몰려왔다.
“나도 좀 줘!”
“좋은 것은 나눠 먹자.”
“관우가 원래 요리사였나 보지?”
“우왕! 이거 끝내주는데!”
그가 만든 양념장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1분대 대원들은 대한 덕분에 다들 국수를 맛있게 먹었다.
뒤늦게 다른 분대원들이 찾아와 양념장을 찾았지만, 대한은 모른척했다.
그러자 1분대 대원들도 그의 눈치를 보고는 나 몰라라 했다.
역시 맛있는 것은 나눠 먹는 게 아니다.
“식사가 끝나며 작전 회의를 핑계로 1차 탐사팀을 뽑을 거야.”
그때 유운비가 은근슬쩍 대한을 보고 속삭였다.
“나보고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 거야?”
“응.”
“당연히 내가 가야지. 아니면 네가 갈래?”
“…….”
그의 물음에 유운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분대장이라고 해도 일단 간부다.
일반 대원보다는 훨씬 많은 정보를 보고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북극 공동 아래로 내려가는 것만큼은 최대한 버티려고 노력했다.
유운비는 국수를 먹다 말고 울컥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대상이 바뀌는 일은 없었다.
식사가 끝나자 정말 유운비 말대로 작전 회의를 핑계로 대한은 차출당했다.
그는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는 유운비를 뒤로 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회의실로 들어갔다.
안에는 왕천과 황수센, 관더싱이 앉아 있었다.
그는 그들을 향해 똑바로 서서 경례를 했다.
“충성!”
“자리에 앉게.”
“네.”
대한이 자리에 앉자 다른 분대에서 차출되어 온 3명의 대원이 보였다.
그들은 2분대의 양양, 3분대의 천웨이팅, 4분대의 황위징이었다.
“작전 회의를 시작한다.”
“다들 이번 작전에 관해 궁금해할 것이다.”
“이건 우리 중화인민공화국 역사상 최초의 지하탐사다.”
왕천, 황수센, 관더싱은 아주 죽이 척척 맞았다.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하는데 마치 한 사람이 말하는 것만 같았다.
여러 가지 잡설을 잘도 내뱉었다.
빙글빙글 돌려가면서 얘기를 했지만 결국 핵심은 간단했다.
중국과 중화인의 미래를 위해 목숨을 바쳐 북극 공동을 탐사하라는 것이었다.
“당과 인민은 그대들의 노력과 희생을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다.”
“성공만 하면 역사책에 제군들의 이름이 오르게 될 것이다.”
“이번 작전은 목숨을 걸어서라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
셋은 같은 소리를 다양하게 표현하는 재주가 있었다.
대한은 속으로 한숨이 나왔지만, 겉으로는 진지하게 듣는 척했다.
무려 1시간 동안!
거의 세뇌 당하다시피 이번 작전의 당위성에 대해 들었다.
막바지에 이르자 유언장과 작전동의서를 내밀었다.
그는 쓱 한번 훑어보고는 두말없이 서명했다.
그런 모습에 세 놈은 감격한 듯 손뼉을 쳐댔다.
양양, 천웨이팅, 황위징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빠르게 서명했다.
“자! 이제 장비를 챙기고 작전을 시작하자.”
“중화인민공화국에 영광이 있으라!”
“중화인민공화국 만세!”
대한은 왕천, 황수센, 관더싱의 선동질에 감격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두 손을 높이 들고 만세를 외쳤다.
양양, 천웨이팅, 황위징도 화들짝 놀라 즉시 그 대열에 동참했다.
“중화인민공화국 만세!”
“중화인민공화국 만세!”
“중화인민공화국 만세!”
“중화인민공화국 만세!”
잠시 회의실은 이들이 악을 쓰며 소리치는 구호에 먹혀버렸다.
역겨운 개지랄이 끝나자 대한은 당장이라도 속이 뒤집힐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왕천과 황수센, 관더싱은 혹시라도 마음이 변할세라!
대한을 비롯해 3명의 대원을 데리고 차고로 이동했다.
차고에는 북극 공동 탐사에 필요한 모든 장비가 잘 갖춰져 있었다.
대한은 먼저 특수방한복을 걸쳤다.
온갖 생존장비가 들어있는 배낭을 메고 앞뒤로 낙하산도 하나씩 달았다.
허리에는 권총 한 정과 대검 한 자루를 꽂았다.
머리에는 헬멧을 썼는데 앞쪽에 LED 헤드라이트와 초소형 카메라가 달려있었다.
귀에는 이어피스를 꼽고 가슴에는 무전기를 달았다.
목에는 야간투시경을 걸었다.
“무기는 원하는 것으로 가져가라!”
황수센의 말에 대한은 차고 한쪽 벽을 가득 채운 무기들을 살펴봤다.
동서양의 각종 무기가 다 전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대한은 독일의 헤클러 운트 코흐 사의 기관단총 MP7A2를 보자 바로 이놈을 선택해버렸다.
주·야간 조준경과 전용 소음기까지 달려서 더욱 마음에 들었다.
넉넉히 탄약까지 챙긴 그는 한쪽에 놓여있는 테이블 앞에 앉았다.
1차 탐사팀에 속한 다른 대원들이 아직 준비를 끝내지 못한 상태였다.
황수센은 이들이 공동 아래로 내려가면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보채지 않았다.
그로 인해 시간이 남아버린 대한은 MP7A2를 분해했다가 조립하기를 반복했다.
몇 번이나 살펴보니 대충 기관단총의 메커니즘이 이해가 됐다.
‘에바!’
―네, 마스터.
‘히릭스는 발견했어.’
―북극 공동 안에서 미세한 파장을 감지했습니다. 우주탐사선 히릭스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스파이럴 제국의 우주선이 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실체는 없지만, 파장은 확인했다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공동 아래는 우주선의 실드로 보호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에바가 더욱 많은 정보를 얻을수록 그가 죽을 확률이 줄어든다.
“이제 출발하자!”
“예.”
황수센의 말에 1차 탐사팀 대원들이 즉시 한쪽으로 모였다.
대한은 기관단총을 방한복 안에 넣고 장갑을 꼈다.
대형 스노비히클 두 대에 시동이 걸렸다.
뒤쪽으로 트레일러가 걸리고 차고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국가안전부 부국장 왕천, 황수센 탐사대장, 관더싱 부장 셋이 함께 스노비히클에 올랐다.
그들의 뒤로 장강기지의 직원들이 나머지 자리를 채웠다.
대한과 세 명의 대원은 따로 다른 한 차량에 탑승했다.
부웅 부웅 부우우웅!
스노비히클 두 대는 거친 소음을 토해내며 설원을 달렸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짧은 거리에 시커먼 얼음동굴이 하나 보였다.
안에서 그들을 향해 불빛을 보내고 있었다.
눈보라 속에서도 그 빛은 잘 보였다.
스노비히클 두 대가 얼음동굴에 바짝 붙어서 멈췄다.
끼익 끼익!
문이 열리자 대한이 제일 먼저 내렸다.
그는 안내인을 따라 거침없이 얼음동굴 아래로 내려갔다.
원을 그리며 내려가는 계단 때문에 살짝 어지럼증이 올라올 만한 구조였다.
수십 미터를 그렇게 아래만 보고 내려갔다.
어느 순간 앞이 탁 트이며 거대한 암흑의 공간이 보였다.
“조심하십시오.”
안내인의 말에 대한은 흠칫 몸을 떨었다.
바로 아래쪽에 지름 1km의 거대한 원형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조명을 비추고 있었지만 얼마나 깊은지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거대한 붓으로 먹물을 듬뿍 묻혀 그려놓은 것 같은 암흑의 공간이었다.
‘헐! 이건 그냥 지옥으로 통하는 무저갱이네.’
입에서 절로 욕이 나오려고 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새까만 공간은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 그 자체였다.
대한은 안내인의 뒤를 졸졸 쫓아갔다.
뒤에서 따라오는 대원들이 욕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다들 이번 작전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얼음을 깊게 파놓은 공간이 나타났다.
대한을 비롯한 대원들과 장강기지 직원들이 그곳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뒤이어 국안부 부국장 왕천과 황수센 탐사대장 그리고 장강기지 관더싱 부장이 나타났다.
관더싱은 이곳에 여러 번 왔는지 얼굴이 멀쩡했다.
하지만 왕천과 황수센의 얼굴은 이미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크흠!”
관더싱은 두 사람의 눈치를 살펴보다가 입을 열었다.
“잠시 브리핑을 하겠습니다.”
왕천은 관더싱의 말에 금세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아직도 두 눈에는 공포가 서려 있었다.
그래서 아무 말 없이 그냥 관더싱만 쳐다봤다.
황수센이 왕천의 상태를 짐작하고 관더싱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관더싱이 계속 말을 이었다.
“이곳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생긴 북극의 공동입니다. 지름이 정확히 1km인 원기둥 모양의 구멍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깊이가 10km 정도입니다. 물론 더 깊을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10km 지점 이하로 더 내려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드론이나 카메라를 매달아 내리면 되지 않습니까?”
황수센의 말에 관더싱은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당연히 시도해봤습니다. 드론이나 카메라는 1km를 기점으로 더 아래로 내려가는 순간 먹통이 됩니다. 아무것도 찍히지 않고 오히려 고장이 나는 형편입니다. 아날로그식 카메라를 밧줄에 매달아 내려보내기도 했지만 역시 실패했습니다.”
“사람은 어떻습니까?”
“그동안 기중기의 힘이 부족해서 토끼나 실험실의 흰쥐를 이용해서 테스트해봤습니다. 정확히 10km까지는 문제없습니다. 하지만 그 이하로 내려가면 깨끗이 증발합니다.”
증발이란 말에 황수센은 합리적인 질문을 해봤다.
“증발이라니요? 혹시 아래에 용암이라도 있다는 말입니까?”
“용암이 있다면 오히려 탐사가 이리 지지부진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용암처럼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그 지점 아래로만 내려가면 마치 증발이라도 한 듯 물체가 사라집니다.”
대한을 제외한 양양, 천웨이팅, 황위징 대원의 눈이 공포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그들의 뒤에는 어느새 무기를 들고 있는 자들이 포진해있었다.
그 모습에 그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일단 오늘도 드론을 한 대 날려볼 생각입니다.”
관더싱이 옆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기지의 남자직원 한 명이 커다란 쿼드드론을 들고 나타났다.
그는 드론을 바닥에 내려놓고 벽에 붙어 있는 얼음 책상으로 다가갔다.
노트북을 켜고 조정 간을 연결했다.
드론 하부에 있는 카메라에 불이 들어오고 노트북의 모니터 화면이 켜졌다.
위이잉!
RC 레이싱 조정기 같은 것을 움직이자 쿼드드론이 서서히 떠올랐다.
네 개의 프로펠러가 힘차게 돌아갔다.
드론을 조정하는 직원이 잠시 관더싱을 쳐다봤다.
그러자 관더싱은 왕천을 바라봤다.
왕천이 고개를 끄덕이자 관더싱도 고개를 끄덕였다.
쿼드드론은 곧 검고 어두운 공동 아래로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