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복수 도우미>
‘에바! 가자!’
―네, 마스터.
에바는 즉시 그의 눈에만 보이는 화살표를 만들었다.
허공에 둥둥 떠 있는 화살표!
호텔 방문을 통과해 비상계단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는 크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방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호이탁 호텔의 시큐리티 시스템을 장악했습니다. 이제부터 호텔의 모든 CCTV는 제가 조정합니다. 그러니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화살표를 통해 이동해주세요.
‘알았어.’
대한은 손잡이를 돌리고 호텔 방을 나섰다.
밖으로 한발 내디디는 순간!
그는 배틀푸르나(SSS)를 운용했다.
몸이 새털같이 가벼워지고 오감이 극도로 민감해졌다.
복도를 걸으며 그는 주변의 동정을 살피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자정이 다 돼서 그런지 일대는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도도도도!
대한은 복도 끝에 있는 비상계단을 타고 빠르게 일 층으로 내려갔다.
이럴 줄 알고 일부러 높은 층수에 있는 스위트룸을 얻지 않았다.
대신 가장 낮은 층수의 일반 객실을 얻었다.
뒷문을 통해 밖으로 나온 대한은 남동쪽을 향해 달려갔다.
―우루무치시 천산구내의 모든 CCTV와 카메라를 통제하고 있습니다.
‘잘하고 있어.’
그는 에바를 칭찬하며 달리는 속도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100m를 9초로 가볍게 끊은 대한은 1000m를 단 90초 만에 돌파했다.
이것만으로 남자육상 100m 달리기와 1000m 달리기의 세계신기록이 세워졌다.
물론 혼자만 아는 비공식 기록이었다.
행복로에 들어온 그는 중국은행과 중국농업은행 사이의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곳엔 ‘슌지아’라 불리는 이름의 상점이 하나 있었다.
자정이 되어서 그런지 이미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이곳이 우루무지 무장경찰의 안가야?’
―네, 맞습니다. 반대편 주차장을 통해 뒷문으로 들어가십시오.
‘오케이.’
대한은 에바의 말대로 건물을 타고 뒤로 돌아갔다.
주차장이 나오자 뒷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에바가 보안 기능이 붙은 철제문을 슬며시 열어준 것이다.
‘안에는 몇 명이나 있지?’
―2층에 하나, 1층에 셋, 지하실에 둘입니다. 관우는 지하실에 있습니다.
‘그럼 난 지하실로 가야겠군.’
그는 그녀의 목소리를 BGM 삼고 뒷문으로 침투했다.
무기 하나 들지 않은 그였지만 전혀 두렵지 않았다.
고양이처럼 뒷발을 들고 움직이자 거의 소리가 나지 않았다.
대한은 대담하게도 당당히 지하실로 걸어서 내려갔다.
끼익!
문을 열자 경첩이 녹이 슬었는지 듣기 싫은 소리가 났다.
대한은 잠시 가만히 서서 주의를 기울였다.
안에서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살며시 몸을 통과시키고 지하실 문을 닫은 후 자물쇠를 걸었다.
―관우가 깼습니다. 손에 권총을 들고 있는데 아직 안전장치를 풀지는 않았습니다.
‘지하실 내부를 입체적으로 비춰줘!’
―네, 마스터.
대한의 요구에 에바는 즉시 지하실 전체를 투명하게 만들었다.
마치 엑스레이 눈이라도 가진 것처럼 방안이 훤히 보였다.
물론 직접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에바가 장악한 CCTV와 카메라, 스마트폰을 활용한 증강현실이었다.
지하실 복도를 걸어가며 그는 한쪽 벽을 노려봤다.
문 옆에서 권총을 들고 서 있는 관우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슬며시 문을 열고 들어가며 놈의 이름을 불렀다.
끼이익!
“관우!”
대한의 천연덕스러운 연기!
관우는 권총을 내밀면서도 움찔했다.
문이 열리자 어두운 방 안으로 복도의 형광등 불빛이 파도처럼 밀려들어 왔다.
그의 얼굴 뒤로 후광이 비췄다.
관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대한을 쳐다봤다.
누군지 확인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명백한 관우의 실수였다.
그의 모습이 순간 꺼지듯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동시에 관우의 손목과 턱에 강한 충격이 들어왔다.
퍽 퍼억!
관우의 몸이 뒤로 밀리고 허공으로 권총이 둥실 떠올랐다.
대한은 곧바로 관우의 몸에 따라붙었다.
손을 뻗어 목젖을 치고 발로 명치를 차버렸다.
퍼벅!
“커억!”
관우는 숨이 턱 막히고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
하지만 그에게는 비명조차 속 시원하게 지를 기회가 없었다.
대한이 재빨리 옆으로 돌아 관우의 목덜미를 손날로 쳐버린 것이다.
퍽! 풀썩!
어둠을 대낮처럼 보는 대한의 시퍼런 눈빛!
도저히 눈으로 좇을 수 없는 벼락같은 연타!
관우는 단 한 번의 반항도 해보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그는 놈의 몸을 들어 침대에 눕혔다.
겉으로 보기엔 뇌종양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 수 없을 만큼 건강한 모습이었다.
대한은 문을 닫고 불을 켰다.
바닥에 떨어진 권총을 주어 안주머니에 넣었다.
―마스터! 이것 좀 보십시오.
‘이런 개새끼!’
그는 에바가 보여주는 CCTV 영상을 보자 갑자기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카메라가 비추는 공간은 한마디로 인세의 지옥이었다.
위구르인으로 보이는 남자들이 갖은 고문을 받으며 죽어갔다.
죽기 직전 하얀 가운을 입은 놈이 들어와 산채로 장기를 적출 해갔다.
다 죽어가는 위구르인 들은 관우와 그의 동료들에 의해 옆방으로 옮겨졌다.
그 방안에는 커다란 기계가 하나 놓여있었다.
관우가 스위치를 켰다.
그러자 그의 동료들이 위구르인 들을 들어 기계의 위쪽으로 집어넣었다.
사람의 몸이 갈리는 모습이 보였다.
위구르인 들은 순식간에 분쇄되어 바스러졌다.
기계의 아래쪽으로 시뻘건 고깃덩이들이 뚝뚝 떨어졌다.
커다란 양동이가 한순간에 채워졌다.
그때마다 관우는 양동이를 들고 한쪽 벽으로 걸어갔다.
커튼을 옆으로 치우자 변기처럼 아래쪽으로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는 게 보였다.
관우는 그곳에다 양동이를 계속 비웠다.
아무래도 그 아래쪽은 하수구가 아닌가 싶었다.
관우의 동료들은 작업이 끝나자 호수로 기계와 방을 청소했다.
‘이게 뭐야?’
―몇 시간 전에 실제로 일어났던 일입니다.
‘정말 끔찍하군. 혹시 지하실에 남아있는 다른 한 사람은 관우의 동료야?’
―아닙니다.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직 고문을 당하지 않은 젊은 위구르 여성입니다. 현재 사지가 침대에 결박된 상태입니다.
‘울고 있군.’
에바가 말을 한쪽으로 들으며 대한은 옆방의 모습을 상세히 살폈다.
확실히 위구르 여성은 피눈물을 흘리며 분노와 공포에 몸을 떨고 있었다.
―마스터! 일단 관우부터 마무리하시죠.
‘그래야지.’
대한은 에바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는 관우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앉아 놈을 쳐다봤다.
―관우의 얼굴을 스캔했습니다. 이제 옷을 벗겨주십시오.
대한은 에바의 부탁대로 관우의 옷을 모조리 벗겼다.
굳이 남의 은밀한 치부를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전신 스캔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놈의 몸 구석구석을 샅샅이 살펴봐야 했다.
―전신 스캔이 끝났습니다. 이제 금고로 가서 관우의 소지품을 챙기십시오.
‘알았어.’
대한은 의자에서 일어나 한쪽 벽으로 갔다.
찬장을 옆으로 치우자 무식하게 생긴 커다란 철제금고가 나타났다.
덜컹!
그래도 전자식 금고라 다행이었다.
그가 손을 대기도 전에 에바가 이미 활짝 열어버렸다.
금고 안을 자세히 살펴봤다.
안은 정확히 여섯 등분으로 나뉘어있었다.
대한은 그중 관우의 것으로 보이는 작은 가방 하나를 꺼냈다.
안에는 여권과 지갑, 은행 통장과 빳빳한 100달러짜리 묶음이 가득 들어있었다.
지갑을 열자 100위안짜리 지폐와 신분증, 은행카드와 보안카드 등이 보였다.
그리고 한 장의 전출명령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찾았다.’
―없으면 하나 만들려고 했는데 아주 잘 됐군요.
꼭 필요한 것을 찾았으니 나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대한은 대충 살펴보다 작은 가방을 챙기고 금고의 문을 닫았다.
괜히 다른 놈들의 것을 건드려서 타초경사의 우를 범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싶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관우의 옷가지와 신발도 뒤져봤다.
날 선 대검 한 자루를 제외하고, 특별한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
―마스터! 이제 다 됐습니다. 관우를 들고 현장을 탈출하세요.
‘응.’
대답은 했지만, 대한은 서두르지 않았다.
대신 관우의 몸을 들고 옆방으로 갔다.
문을 열자 역겨운 피비린내가 훅 풍겨왔다.
그는 관우의 몸을 한쪽 철제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런 후 밖으로 나가 건너편 방으로 들어갔다.
뚜벅 뚜벅 뚜벅!
침대에 묶여있던 여자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대한을 바라봤다.
그는 관우의 대검을 들고 다가갔다.
여자는 소스라치게 놀라다가 그만 눈물을 쏟고 말았다.
아무래도 대한이 그녀를 죽이려 한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대한은 급히 작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울지 마시오. 당신을 탈출시키기 위해서 왔소.”
“예에?”
“풀어줄 테니 조용히 나를 따라오시오.”
“아!”
다 죽어가던 그녀의 눈빛이 순간 불꽃처럼 일어났다.
죽일 줄 알았는데 살려준다니 생기가 돈 것이다.
그는 여자의 손발을 결박한 밧줄을 대검으로 사정없이 잘라버렸다.
자유의 몸이 되자 그녀는 재빨리 침대에서 내려왔다.
한쪽 구석에 던져져 있는 신발을 신고 자신의 백을 되찾았다.
대한은 말없이 여자를 향해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그의 말뜻을 알아들은 그녀는 조용히 대한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그가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옆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봤다.
여자는 덜컥 겁이 났다.
대한이 그녀의 눈빛을 보곤 바로 방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이자가 누구인지 아시오?”
“헉! 과, 관우!”
그녀는 관우의 이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갑자기 여자의 눈이 광기로 뒤덮였다.
그것은 마치 철천지원수를 보는 듯한 원한의 눈빛이었다.
“은공! 이자를 죽이게 해주세요.”
“좋소.”
대한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처음부터 이러려고 여자를 이곳에 데려왔다.
그녀는 대뜸 관우에게 달려가 목을 졸랐다.
“내 남편을 죽인 원수! 죽어라!”
대한은 그제야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몇 시간 전!
관우와 그의 동료들이 고문하고, 장기를 적출하고, 갈아서 없애버린 위구르 남자들!
그중 한 명이 바로 이 여자의 남편이었다.
대한은 여자에게 다가가 어깨를 툭 쳤다.
그녀는 휙 하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저걸 쓰는 게 더 낫지 않겠소?”
“아아!”
그녀는 대한의 말을 금세 알아먹었다.
여자는 입을 앙다물었다.
그리곤 기절한 관우의 몸을 힘껏 들었다.
하지만 연약한 여자의 힘으로 체격이 장대한 관우를 드는 것은 무리였다.
거기에다 기계의 위쪽으로 넣는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대한이 그녀를 위해 조금 거들어줬다.
관우의 몸이 기계 안으로 쏙 들어갔다.
대한은 분쇄기 아래쪽에 커다란 양동이를 가져다 댔다.
그리곤 여자를 향해 손가락으로 스위치의 위치를 가르쳐 줬다.
그녀는 이게 무슨 뜻인지 알아먹고도 잠시 망설였다.
그는 얼마든지 기다려줄 용의가 있었다.
처지를 바꿔서 생각해봐도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자의 고민은 몇 초 걸리지도 않았다.
그녀는 떨리는 하얀 손가락을 들더니 결국 스위치를 꾹 누르고야 말았다.
위이이잉!
카가가가각 카가가가각!
우드득 와드득 빠각 빠가각!
대한은 얼른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콧속으로 역겨운 피비린내가 확 스며들었다.
그러나 여자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끝까지 분쇄기를 노려봤다.
새빨간 고깃덩어리가 피와 함께 아래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
양동이는 금세 분쇄된 붉은 인육과 뼈 그리고 피로 가득했다.
위이이잉!
더 갈릴 것이 없었는지 계속 분쇄기가 헛돌았다.
대한은 그제야 스위치를 끄고 직접 양동이를 들었다.
양동이 안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그는 욕지기가 밀려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그리곤 아까 그 영상대로 한쪽 벽의 커튼을 열어젖혔다.
아래쪽으로 뻥 뚫린 구멍이 검은 아가리를 드러냈다.
대한은 바로 양동이를 비워버렸다.
후드득!
양동이가 텅 비자 그는 물을 틀었다.
호수로 분쇄기와 양동이 그리고 방을 대충 청소했다.
“만족합니까?”
“네, 은공.”
“그럼 이만 여길 나갑시다.”
“예.”
대한은 미련 없이 방문을 나섰다.
여자는 손으로 연신 눈물을 훔쳤다.
그러면서도 혹시라도 그를 놓칠세라 종종걸음으로 따라왔다.
대한은 지하실 문을 열고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1층에 도착하자 뒷문으로 걸어갔다.
살그머니 문을 열고 밖을 살폈다.
여전히 사방은 어둡고 조용했다.
그는 여인을 먼저 내보내고 뒤따라 밖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