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만재능(Feat. 대한 TV)-142화 (141/331)

142화 <찾았다!>

―찾았어요.

‘에바! 뭐야?’

―마스터! 찾았어요. 찾았다고요.

‘뭘 말이야?’

에바의 흥분된 목소리에 대한은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뭐긴 뭐겠어요? 우주탐사선 히릭스(Hilix)죠.

‘정말이야?’

―네, 이것 좀 보세요.

에바는 허공에 몇 장의 사진을 띄워줬다.

우윳빛 막 같은, 투명한 것이 씌워진 유선형의 물체!

선명하지는 않지만 거기엔 원과 삼각형 그리고 역삼각형이 겹치듯 반복되는 도형이 있었다.

‘이게 히릭스야?’

―네, 유선형의 선체가 그대로 드러나 있잖아요. 무엇보다 스파이럴 제국의 우주탐사선에만 부여하는 고유마크가 붙어있어요. 이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증거죠.

흥분을 감추지 못한 에바는 온몸으로 기쁨을 발산하고 있었다.

‘축하해! 이제 히릭스의 소재만 알면 되겠군. 재생수리를 하면 에바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고 했지?’

―맞아요. 그리고 히릭스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이미 확인했어요.

‘어디에 있는데?’

―북극의 공동이에요.

‘북극?’

대한은 북극이라는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런데 왠지 등골이 서늘한 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에바! 설마 나보고 북극을 가라는 말은 아니겠지?’

―마스터께서 꼭 가셔야 해요.

그는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북극을 떠올리며 바로 도리질을 했다.

‘거길 내가 어떻게 가?’

―물론 당장 그곳을 향해 갈 수는 없어요. 강대국들이 북극에 공동이 있다는 것 자체를 비밀로 하고 있어요. 마스터가 들어가고 싶어도 들여보내 주지 않을 거예요.

‘내가 왜 못 들어가는데?’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북극에 절대 가지 않을 것처럼 말했던 대한은 단번에 마음이 뒤집혔다.

못 들어간다니까 이제는 반대로 왜 못 들어가냐고 따지고 있었다.

―미국, 러시아, 중국, 유럽연합만 북극 공동의 존재를 알고 있어요. 이들은 북극 공동의 비밀을 다른 누군가가 더 알기를 원하지 않아요. 그래서 만약 몰래 들어가려고 한다면 반드시 협력해서 저지하려고 할 거예요.

‘그럼 4개국이 북극 공동에 관해 협력하고 있다는 말이야?’

―아직 정보가 부족해서 단언할 수 없어요. 하지만 직접 협력하는 것으로 보이진 않아요. 오히려 서로를 견제하고 북극 공동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을 거예요.

대한은 북극 공동이 도대체 뭔지, 어떤 가치가 있는지 알지 못했다.

‘북극 공동이 뭐야?’

―제가 찾아낸 극비자료에 의하면 지름 1km, 깊이는 최소 10km에 달하는 원기둥꼴 동굴이에요.

‘무지하게 큰 동굴이네. 깊이가 최소 10km라면 최대는 100km도 될 수 있다는 말이잖아.’

―그렇습니다.

에바의 긍정에 그는 입을 딱 벌렸다.

상상만으로도 그 규모가 가히 짐작됐기 때문이다.

‘이건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규모네. 북극에 그런 곳이 있다는 말은 처음 들어봐.’

―저도 조금 전까지는 모르고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전에 뿌려둔 인터넷 봇(Internet bot)이 이 사진을 찾아낸 순간, 어디에서 정보를 찾고, 또 캐야 할지 알게 됐어요.

‘인터넷 봇이라면 웹 로봇(web robot)을 말하는 건가?’

―자동화된 작업, 즉 스크립트를 실행하는 응용 소프트웨어라는 점에서 둘은 같다고 보시면 돼요.

하긴 지금 용어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대한은 일단 의미만 이해하고 넘어갔다.

‘히릭스를 찾았으니 이젠 비밀리에 들어갈 방법을 강구해야겠군.’

―네, 마스터. 하지만 북극 공동 안으로 비밀리에 들어가기는 절대 쉽지 않아요.

‘그럼 어떻게 해? 때가 올 때까지 기다리자는 거야?’

―아니에요. 마스터를 합법적으로 침투시켜야지요.

점입가경이었다.

미국, 러시아, 중국, 유럽연합에 합법적으로 침투하는 방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게 무슨 참신한 헛소리야? 난 그냥 일반 사람보다 조금 힘이 센 사람에 불과하다고. 적국에 침투하기 위해 훈련받은 첩보원이 아니란 말이야.’

―현재 북극 공동 탐사는 지지부진한 상태에요. 탐사하러 내려간 특수부대원이나 과학자들이 단 한 명도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어요.

에바는 어쩐지 동문서답을 하고 있었다.

―그런 희생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지금도 꾸준히 탐사대를 파견하고 있어요.

‘설마 나보고 저들의 탐사대에 합류하라는 말은 아니겠지?’

―현재까지는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

‘다 죽었다며! 북극 공동에 들어가는 사람은 무조건 죽는 거 아니야?’

대한의 합리적인 의문에 에바는 일단 대답을 회피했다.

마치 한 발짝 뒤로 물러서는 느낌이었다.

―제 생각에는 우주탐사선 히릭스가 실드나 차원결계 같은 것을 발동시켜 놓은 것 같아요. 그래서 저들이 보낸 탐사대가 닿기만 하면 죽거나 증발했던 거예요.

‘그럼 나도 탐사대에 합류하면 죽거나 증발하겠네!’

―그건 아니죠. 마스터에게는 제가 있잖아요. 다른 사람은 통과할 수 없지만 저는 히릭스의 실드나 차원결계에 마스터를 통과시킬 수 있어요.

이제까지 에바가 한 말은 다 믿었다.

하지만 왠지 지금은 그녀의 말을 믿기가 힘들었다.

전과는 달리 목숨이 달린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위험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사실 좋은 방법이 하나 있어요.

‘뭔데?’

에바는 꿀꺽 침을 삼키며 대한을 쳐다봤다.

그 모습에 그는 어쩐지 뒷골이 서늘해졌다.

―중국의 북극황하연구기지로 침투하는 거예요.

‘북극황하연구기지?’

대한의 머리 위로 의문부호가 생기는 듯했다.

에바는 즉시 그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설명을 시작했다.

북극황하연구기지(Arctic Yellow River Research Station)는 중국이 노르웨이령 스발바르 제도(Svalbard Islands), 스피츠 베르겐 섬(Spitsbergen Island)의 니알슨(Ny―Alesund)에 세운 연구시설이다.

이곳은 대기와 지구온난화, 빙하와 이 지역의 특이한 야생동물을 연구할 수 있는 이상적인 장소로 알려졌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북극해 해저에 매장된 엄청난 양의 석유와 가스에 대한 통제권에 국제적인 관심이 쏠려있다.

물론 지금은 북극 공동(空同)의 탐사를 위한 전진기지 역할이 더 크다.

―마스터는 지금부터 중국의 특수부대인 설표돌격대의 대원이 되시는 거예요.

‘그건 또 무슨 신박한 개소리야?’

설표돌격대는 중국 인민무장경찰부대 북경총대 제13지대 제3부대소속이다.

자칭 ‘아시아 최강’으로 부르는 이 대테러부대는 중국 내에서는 중국의 델타포스 및 DEVGRU 또는 대륙의 네이비실이라고 자랑하고 있다.

―특수부대원의 하나로 차출되어 북극황하연구기지로 당당히 들어가시는 거죠.

‘그러다가 신분이 들통나면 어떻게 해? 바로 총살 아냐?’

―그건 전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피코셀을 이용하면 마스터의 얼굴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어요.

대한은 에바의 적극적인 태도에 입이 딱 벌어졌다.

어지간하면 당장 거절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에바에게도 목숨이 걸린 일이다.

그래서 감히 함부로 입을 뗄 수 없었다.

‘에바! 너무 무리한 계획이 아닐까?’

―전혀 그렇지 않아요. 북극 공동 탐사는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안전부(Ministry of State Security)의 제1국 구미정보국과 제2국 동구정보국이 합작으로 지원하고 있어요. 현재 중국 인민해방군(PLA)과 인민무장경찰의 여러 특수부대의 대원들이 탐사대의 일원으로 차출당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나를 설표돌격대의 대원 중 하나로 위장해서 탐사대에 집어넣겠다는 거잖아.’

―맞습니다. 이미 대상도 물색해뒀어요.

에바는 허공에 키가 크고 탄탄한 몸을 가진 젊은 남자의 사진 하나를 띄웠다.

‘이건 누구야?’

―관우라고 설표돌격대의 팀장입니다. 현재 위구르에서 분리주의운동 지도부에 대한 일제검거 작전에 투입되어 있습니다.

‘위구르?’

대한은 위구르란 말에 고리나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걸 눈치챘는지 에바는 슬그머니 허공에 잘생긴 위구르 중년인의 사진을 떠올렸다.

‘이 사람은 고라니라고 불리는 위구르의 분리주의운동 지도자 중 한 명입니다.’

―얼굴이 잘생겼네.

―그렇습니다. 고리나의 삼촌이기도 합니다.

‘고리나의 삼촌!’

에바의 말에 그는 깜짝 놀랐다.

이게 사실이라면 당장 고리나가 위험해질 수 있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고라니가 고리나의 삼촌이라는 사실은 세상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비밀입니다. 그리고 관우라는 자가 고라니를 잔인하게 고문해서 죽인 것도 역시 아무도 모르는 비밀 중에 하나지요.

‘세상에 맙소사!’

대한은 그녀의 말에 다시 한번 사진을 보게 됐다.

그러다가 퍼뜩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나한테 이런 비밀을 알려주는 것을 보니, 나보고 관우를 처치하고 그로 변해서 탐사대에 합류하라는 말이겠군.’

―정답입니다.

‘지금 나한테 관우를 직접 죽이라는 거야?’

에바의 말에 그는 슬슬 열이 받았다.

―그건 아닙니다. 관우는 어차피 가만히 내버려 둬도 6개월을 넘기지 못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관우는 지금 심각한 뇌종양을 앓고 있습니다.

‘뇌종양! 그럼 불치병에 걸렸다는 말이네.’

―맞습니다. 그 사실을 설표돌격대와 국안부(중국 국가안전부)가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제야 에바가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이해가 갔다.

어차피 죽을 놈이니 기왕이면 나라를 위해 죽으라고 등을 떠미는 격!

중국 국안부의 행태에 대한은 절로 소름이 끼쳤다.

탐사대에 들어가 북극 공동 안으로 내려가면 100% 죽는다.

그러니 어차피 죽을 관우에게 이런 명령을 내리더라도 그들은 전혀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놈도 불쌍한 인생이네!’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관우의 비밀 파일을 보면 그동안 티베트와 위구르 등 중국의 통치에 반발하는 지역의 분리주의운동 지도자들을 수십 명이나 사로잡아 고문하고 무참히 죽여왔습니다. 정식보고서에 등재되지 않은 민간인 살인, 납치, 폭행, 강간 등 흉악한 범죄도 수백 건이나 됩니다.

‘죽어 마땅한 놈이니 나보고 양심에 가책을 받을 필요 없다는 소리네.’

대한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에바는 거기에다 아예 드라이아이스를 뿌려댔다.

―그렇습니다. 관우가 저지른 범죄 중에는 탈북 여성들의 인신매매와 장기 적출, 어린아이의 유괴와 성매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뭐시라!’

다른 것은 몰라도 이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범죄였다.

그는 관우의 사진을 다시 보며 이를 바드득 갈았다.

‘에바! 네가 이겼다.’

―마스터! 고맙습니다.

으르렁거리는 듯한 대한의 말에 에바는 즉각 90도 각도로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조건이 하나 있어.’

―네, 무슨 조건이든 전부 받아들이겠습니다.

에바는 그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아주 세게 나왔다.

마치 도박판에서 모든 것을 한꺼번에 걸어버린 것 같은 절실한 태도였다.

‘먼저 내 생명을 확실히 보장해줘!’

―물론입니다. 만약 북극 공동에서 마스터의 생명이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전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을 죽여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마스터를 보호하겠습니다.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야.’

대한은 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한을 쳐다봤다.

‘만약 내가 위험한 상황에 부닥친다면 에바가 포기하란 말이야.’

―아!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정말 그런 일이 생기면 저는 수명연장을 포기하더라도 마스터를 지키겠습니다.

에바는 아주 심플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렇게 나오자 대한이 오히려 더 당황스러워졌다.

‘그게 정말이야?’

―예, 마스터가 존재하지 않으면 저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저희 둘은 이미 운명공동체입니다.

‘이건 또 무슨 기발한 레퍼토리야?’

에바는 허공에 그림을 그려가며 자세히 설명했다.

―마스터의 몸에 이미 저의 뿌리가 깊이 내려졌습니다. 마스터가 목숨을 잃으면 저도 100% 죽습니다.

‘그럼 다른 숙주로 옮겨가면 되잖아.’

―이제는 그게 불가능해졌습니다.

대한은 처음 듣는 소리에 눈을 깜빡거리며 그녀를 쳐다봤다.

‘쉽게 설명하면, 피코셀의 개체 수를 유지하기 위해 마스터의 몸에 공장을 세웠습니다. 그 모체가 바로 저 자신입니다.’

‘히릭스에 가서 재생수리를 받아도 안 되는 거야?’

―히릭스에서도 저와 마스터를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스파이럴 제국의 모듈연구소에 간다면 또 모르지만 말입니다.

에바의 말에 그는 더는 물러설 곳이 없었다.

이렇게까지 얘기하니 대한은 도저히 그녀의 말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거 잘하면 팔자에도 없는 스파이 노릇을 하게 생겼구먼.’

그는 이 겨울에 북극에 가야 한다는 게 참 곤혹스러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