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만재능(Feat. 대한 TV)-140화 (139/331)

140화 <새롬의 방문>

사실 그는 매일 듣는 소리라서 별로 신경 쓰지도 않았다.

대신 오랜만에 만나보는 한새롬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봤다.

정장을 입었을 때와는 달리.

캐주얼하게 입은 그녀의 모습은 자신의 장점을 잘 살리고 있었다.

하얗고 길쭉한 팔다리와 170cm의 늘씬한 몸매!

탈아시아급을 표방하는 부푼 가슴과 탱글탱글한 엉덩이!

작은 얼굴에 큰 눈, 오뚝한 코와 도톰한 입술!

시원시원한 서구형 마스크를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오밀조밀한 동양적 미가 드러나고 있었다.

참 예쁘고 아름다운 여자였다.

“뭘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봐요.”

“실례했습니다. 너무 예뻐서요.”

“크흠.”

대한의 돌직구에 당황한 한새롬은 자신도 모르게 기침을 하고 말았다.

그런데 알고 있을까?

발갛게 변한 그녀의 얼굴이 더욱 예뻐졌다는 것을 말이다.

그는 굳이 그런 사실을 얘기해주지 않았다.

“혹시 식사는 했어요?”

“아침 먹고 왔어요.”

“잘됐네요. 저도 막 어머니가 끓여주신 떡국을 먹었는데.”

“새해에는 다들 떡국을 해 먹잖아요.”

“맞아요.”

대한은 가벼운 주제로 얘기를 시작했다.

“저의 집에 잘 오셨습니다.”

“오피스텔이 아담하네요.”

“좀 작죠.”

“그런 뜻은 아니에요.”

“괜찮아요. 처음에는 이것도 아주 크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작다고 느껴지더라고요.”

한새롬은 자신이 말실수했나 하고 눈을 깜빡였다.

“그럼 이제 슬슬 얘기해볼까요?”

“아!”

대한의 말에 그녀는 감탄사를 발하며 자세를 바로 했다.

“저와 함께 상의하고 싶은 게 있다고 하셨죠?”

“네.”

“그게 뭐죠?”

얘기가 본론으로 들어가자 한새롬은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여기까지 온 이상!

더는 망설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스포츠동해를 그만뒀어요.”

“기자를 그만두셨단 말인가요?”

“둘 다예요.”

“아아!”

대한은 다음 말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대신 둥굴레차를 마시는 것으로 시간을 끌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새롬이 입술을 한번 깨물더니 곧 입을 열었다.

“기자가 다 기자가 아니더라고요. 그리고 날 기자로 보는 사람보다 여자로 보는 사람이 훨씬 많았어요.”

“그래서 힘드셨어요?”

“네, 생각보다 아주 힘들었어요.”

“앞으로 가려는 길은 지금보다 훨씬 더 힘이 들 텐데요.”

“제가 어디로 갈지, 뭘 하려고 하는지 아는 것처럼 들리네요.”

그녀의 눈빛이 살짝 날카로워졌다.

하지만 그의 다음 날에 어깨가 축 가라앉았다.

“연예계로 들어가려고 하시는 거 아닌가요?”

“마, 맞아요.”

대한은 이제 다 식은 둥굴레차를 한꺼번에 마셔버렸다.

“연예계는 한새롬 기자님을 아예 대놓고 여자로 볼 텐데요.”

“그래도 제가 원해서 들어가는 거와 원치 않는데 그런 취급을 받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잖아요. 그리고 저 이제 기자 아니에요. 그러니 기자라는 말은 빼주세요.”

“일단 알겠습니다. 그럼 저를 찾아오신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그거야 당연히 도움을 청하러 왔죠.”

“전에 제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계셨군요.”

“네,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가 없었어요.”

하긴 그동안 여러 가지 일로 대한은 매스컴의 집중조명을 받아왔다.

그것과는 별개로 대한TV의 구독자와 팔로워 수도 엄청났다.

이건 또 다른 의미로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말이다.

결국, 대한과 대한TV의 명성과 인지도를 통해 자신을 널리 알리겠다는 생각이었다.

그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한새롬은 대한을 똑바로 바라봤다.

“혹시 제가 모르는 상황이 발생했나요?”

“그건 아닙니다. 한새롬씨를 어떻게 도와줘야 좋을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대한의 말에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배우가 되고 싶으세요?”

“글쎄요.”

“아니면 모델이나 가수가 되고 싶은 건가요?”

“잘 모르겠어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연예계로 들어갈 마음은 있는데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래서 일단 대한을 만나러 와본 것이다.

대한도 대충 그녀의 마음을 짐작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봤다.

‘에바, 어떻게 한새롬으로 도와줘야 하지?’

―일단 대한TV와 계약을 맺고 마스터가 하는 방송의 MC를 보게 하면 어떨까요?

‘그거 좋은 생각이다.’

대한은 바로 그녀에게 얘기했다.

“대한TV와 계약을 맺고 MC를 보라고요?”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겠죠?”

한새롬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거야 그렇지만, 계약부터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어요.”

“저희 대한TV와 꼭 연예기획사처럼 계약을 맺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어딘가에 속해있지 않으면 활동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당장 광고라도 들어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누군가가 도와줘야 하지 않습니까!”

“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

“불안하시면 언제든지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으면 됩니다. 대한TV에 출연하면 출연료를 드리겠습니다. 물론 광고를 따오면 저희도 일정 부분 수수료를 받겠습니다. 어떻습니까?”

“그런 조건이라면 좋아요. 그런데 혹시 계약금도 주나요?”

대한은 살짝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중저음의 목소리로 말했다.

“계약금을 주고 받을만한 계약은 아닌 것 같은데요. 혹시 돈 필요하세요?”

“아뇨. 꼭 돈이 필요하다는 말은 아니었어요. 그냥 한번 물어본 거예요.”

한새롬을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에바! 혹시 한새롬 돈 필요해?’

―아닙니다. 한새롬의 집은 잘사는 편입니다. 돈 때문에 어려운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됩니다.

그는 에바의 판단을 믿기로 했다.

대한은 잠시 뜸을 들였다가 돌연 합방제안을 했다.

“괜찮으시다면 오늘부터 한번 해보실래요?”

“뭘요?”

“일단 저와 합방을 한번 해보죠.”

“네에! 합방이요?”

그녀는 순간 얼굴이 홍당무처럼 변해버렸다.

그제야 대한은 한새롬이 뭔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혹시 합방이란 말의 뜻을 모르세요? 개인방송에서 주로 쓰는 합동방송의 준말이에요.”

“아! 그, 그렇군요.”

그녀의 얼굴에 이제 석양처럼 물들었다.

아까보다 더욱 붉어진 한새롬은 대한의 시선을 피해 창밖을 내다봤다.

가늘고 얇은 하얀 손은 연신 얼굴을 부채질해대고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내가 오해했구나. 아이 창피해!’

대한은 신사였다.

굳이 그녀의 허물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냥 잠시 가만히 한새롬이 진정하기를 기다렸다.

그녀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자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대한TV 시청하신 적 있으세요?”

“네, 몇 번 본적이 있어요.”

“합동방송 하는 것도 봤죠?”

“봤어요.”

“그럼 문제없겠네요.”

“저 그럼 게임도 같이해야 하나요?”

질문하는 그녀의 얼굴이 다시 발갛게 물들어갔다.

대한은 터지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고 말했다.

“합동방송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려는 의도에요. 저와 게임을 하거나 달달한 분위기를 연출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냥 옆에 서서 제가 물어보는 것만 대답하세요.”

“알겠습니다. 한번 해볼게요.”

“잘 생각하셨어요. 계약은 나중에 우리 사무실에 가서 하시고, 지금은 궁금한 점을 조 대리에게 물어보세요. 준비되시면 그때 방송을 시작할게요.”

“네.”

한새롬은 결심을 굳혔는지 얼굴이 많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편하게 말씀 놓으세요. 제가 동생이잖아요.”

“아니에요. 그건 천천히 나중에 하도록 해요.”

대한은 그녀가 쉽게 말을 놓지 않는 것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아직도 100% 자신을 믿지 않는 것 같았다.

어쨌든 대한은 조 대리를 불러서 한새롬을 옆에 붙여줬다.

그러자 조동혁은 좋다고 그녀를 데리고 스튜디오로 들어갔다.

헛물켜고 있는 게 뻔히 보였다.

하지만 그래도 의욕이 넘치니 좋아 보이긴 했다.

지이이잉!

테이블에 놓아둔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누가 연락했는지 보자 고리나였다.

“리나!”

―대한!

고리나는 하이톤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잘 지냈어?”

―아니, 나 잘 못 지냈어.

대한은 리나의 말에 깜짝 놀랐다.

“무슨 일이야? 혹시 어디 아파?”

―아니, 그게 아니라 대한을 보고 싶어서 잘 못 지냈다고.

“푸훗!”

대한은 노골적인 리나의 말에 그만 웃음을 흘렸다.

―웃어? 나 지금 심각하다고.

“미안! 나도 모르게 실수했다. 그런데 뭐가 그렇게 심각해?”

―대한 고파서 죽을 것 같아.

그의 입가가 좌우로 쫙 벌어졌다.

고리나 같은 미녀가 자신이 좋아죽을 것 같다니 기분이 좋아졌다.

대한은 리나를 향해 중국어로 말했다.

“나도 리나 고파.”

―응? 뭐라고?

“나도 리나 고프다고.”

―아니. 그게 아니라 지금 중국어 한 거 아냐?

“맞아.”

―오마이갓!

리나는 깜짝 놀라서 소리를 쳤다.

그는 살짝 스마트폰을 귀에서 떨어뜨렸다가 다시 붙였다.

“귀청 떨어지겠어.”

―믿을 수가 없어. 어떻게 중국어를 배웠어? 혹시 나 때문에?

“물론이지.”

―꺅! 감동이야.

리나는 흥분해서 갑자기 엄청 말이 빨라졌다.

솔직히 그녀 때문에 중국어를 배운 것은 아니다.

재능 중국어(S)를 흡수할 기회와 시간이 있어서 그냥 획득해버렸다.

물론 중국에 엄청난 팔로워가 생겼고 위안을 쓸어 담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당연히 대한은 그녀에게 진실을 얘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립서비스로 리나를 언급한 것이다.

하지만 듣는 리나로서는 감격할 수밖에 없는 얘기였다.

세계에서 가장 배우기 어려운 언어가 세 가지 있다.

러시아어와 아랍어, 그리고 중국어다.

리나도 외국인이 중국어를 배우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이 좋아하는 대한이 중국어를 배웠다.

그것도 원어민 수준으로 얘기를 하고 있으니…….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했겠는가!

그녀는 크나큰 오해를 해버렸다.

―대한! 미안해! 이렇게 날 놀라게 해주려고 준비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연락 자주 않는다고 그동안 원망만 했었어. 나를 용서해줘!

“아니야. 용서는 무슨. 앞으로 자주 보면 되지.”

대한은 리나의 말에 가슴이 아파졌다.

양심이 찔려서 고통처럼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얼른 대화의 주제를 바꿨다.

“리나! 새해 복 많이 받아!”

―응, 대한도 많이 받아!

그렇게 둘은 서로에게 새해 인사를 하며 수다를 떨었다.

30분쯤 얘기를 하고 있자 한새롬이 밖으로 나와 눈치를 봤다.

대한은 방송준비를 핑계로 간신히 리나의 전화를 끊었다.

“한새롬 씨, 뭡니까?”

“중국말도 잘하시네요.”

그는 눈에 힘을 주며 물어봤다.

“그거 물어보려고 오셨어요?”

“아니에요. 대한TV에 관해 궁금한 게 다 풀렸어요. 방송은 언제 하죠?”

그녀는 ‘앗 뜨거워라!’하더니 정색을 하고 되물었다.

대한은 속으로 코웃음을 치면서 스튜디오를 향해 걸어갔다.

“지금이요.”

“네에!”

대한은 스튜디오로 들어가 조동혁을 쳐다봤다.

“조 대리, 방송 시작합시다.”

“네, 사장님.”

조동혁은 밖으로 나가 한새롬을 데리고 스튜디오로 들어왔다.

“복장은 이걸로 괜찮을까요?”

“예쁜데요. 왜?”

“아, 아니에요.”

그녀는 대한의 말에 심쿵했다.

왜 그런지는 자신도 몰랐다.

자꾸 그의 얼굴을 보게 되고 목소리를 들으면 심장이 떨려왔다.

진정하려고 해도 대한과 가까이 있으면 있을수록 점점 더 심해졌다.

‘내가 왜 이러지? 미친 거 아냐! 정신 차려! 한새롬!’

한새롬은 속으로 자신을 꾸짖었다.

그러나 방송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쉽게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이런 그녀를 본 대한은 그저 첫 합방이라서 긴장했다고 생각했다.

‘에바!’

―네, 마스터.

‘방송을 준비해!’

―이미 방송준비가 끝났습니다.

에바의 자신 있는 말투에 대한은 한새롬을 쳐다봤다.

“준비됐으면 시작할까요?”

“네.”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꼭 누르면서 그녀는 심호흡했다.

대한은 굳이 보여줄 필요가 없는 부위가 도드라지자 슬쩍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이쪽으로 오세요.”

“네.”

둘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카메라를 쳐다봤다.

정면에 모니터가 켜지고 그와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한새롬은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

그녀는 방송을 처음 하는 애송이가 아니다.

방송국에서 가끔 리포터나 스포츠기자로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역시 한새롬은 프로였다.

점차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이성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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