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알버트와 콜린도 캡틴 딜런과 그의 부하들이 주고받는 말을 들었다.
둘은 조심스럽게 구멍으로 다가와 고개를 내밀었다.
랜턴으로 아래를 비추자 올라오는 밧줄 끝이 보였다.
확실히 뭔가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다.
위이이잉 키잉 킹킹!
콜린은 모터의 속도를 조절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모터를 멈춰 세웠다.
알버트는 발판을 잡고 힘껏 바깥쪽으로 밀어서 고정했다.
그러자 딜런과 그의 부하들이 기다렸다는 듯 발판을 밟고 지나갔다.
“허억!”
“저게 뭐야!”
알버트와 콜린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밧줄 끝에는 사람의 잘린 팔이 매달려있었다.
뭔가 날카로운 것에 잘린 듯 단면이 너무나도 깔끔했다.
딜런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알버트와 콜린이 민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다시 얼굴을 폈다.
대신 밧줄을 꽉 붙잡고 있는 잘린 팔을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그래도 소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군.”
“손목에 스마트워치가 달려있습니다.”
이 거대한 공동 아래로 내려간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지금까지 돌아온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특수요원들이 낙하산을 메고 점프를 했었다.
과학자들이 커다란 풍선처럼 생긴 기구를 타고 내려가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내려가기만 하면 사라져버리니 보낸 사람들도 죽을 맛이었다.
할 수 없이 드론을 비롯한 온갖 무인기와 정찰 장비를 날려 보냈다.
그러나 역시 채 어느 순간 전부 나뭇잎처럼 떨어져 버렸다.
그래서 마지막 수단으로 사람을 줄에 매달아 직접 내려보냈다.
하지만 수차례의 도전에도 모조리 실패했다.
대략 지하 10km 지점을 통과하는 순간!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줄은 끊어져 버렸다.
그렇다고 서로 통신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무저갱 같은 지하 공동은 1000m만 내려가도 통신기기가 먹통이 됐다.
이건 유선이건 무선이건 마찬가지였다.
더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고 지하 공동을 탐사하는 프로젝트는 이제 거의 포기단계에 이르렀다.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내려보낸 탐사대는 사실 자살탐사대라고 불렸다.
그런데 하늘의 돌보심인지!
이렇게 뭔가 단서가 될만한 것이 나타났다.
“팔이 예리한 뭔가에 잘렸군.”
“잘린 것이 아니라 그냥 증발해버렸습니다.”
캡틴의 말에 서전은 약간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딜런도 잘린 팔의 단면을 살펴보더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쪽이 됐든 분석을 해보면 알 수 있겠지.”
“네, 캡틴.”
“연구소로 보내서 살펴보라고 해!”
“옛썰.”
서전은 즉시 딜런의 명령을 수행했다.
커다란 지퍼백을 꺼내 잘린 팔을 조심스럽게 담았다.
그 사이 딜런은 잘린 팔에서 빼낸 스마트워치를 살펴봤다.
버튼을 누르자 자동으로 찍힌 몇 장의 사진을 떠올랐다.
가만히 살펴보던 그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뭐지?”
딜런의 망막에 비친 것은 투명한 우윳빛 막 같은 것이었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안에 커다란 유선형의 물체가 보였다.
그는 스마트워치를 조작해 유선형의 물체를 조금 크게 확대해보았다.
단 한 가지만 빼고는 제대로 잘 보이지 않았다.
원과 삼각형 그리고 역삼각형이 안에서 바깥으로 계속 이어진 도형!
캡틴 딜런은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결국, 옆의 서전을 불러 스마트워치를 건넸다.
“이것도 가져가서 분석해보라고 해!”
“예, 캡틴.”
서전은 스마트워치를 손으로 잡지 않았다.
작은 지퍼백을 하나 꺼내 스마트워치를 담았다.
그런 후, 바로 얼음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얼음계단은 스프링처럼 뱅글뱅글 회전하게 깎아놓았다.
수십 미터를 걸어서 올라가자 차가운 한기가 훅하고 몰아닥쳤다.
장갑을 낀 손으로 방한복을 단단히 잡은 그는 밖으로 뛰어갔다.
매서운 눈보라가 서전의 몸에 강하게 들이닥쳤다.
크고 작은 지퍼백을 소중히 가슴에 품고 그는 에스키모의 이글루처럼 생긴 베이스캠프를 향해 다가갔다.
지퍼백 속에 들어있던 스마트워치가 그때부터 붉은빛을 깜빡이기 시작했다.
* * *
새해가 밝았다.
드디어 묵은 해가 지나가고 희망찬 새해가 시작된 것이다.
대한은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의 커튼을 열어젖혔다.
촤아악!
온 세상이 하얗다.
하얀 눈꽃 송이가 작은 솜뭉치처럼 망울망울 떨어지고 있었다.
“으아아아아!”
그는 두 팔을 좌우로 활짝 벌리며 기지개를 켰다.
―마스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래. 에바도 새해 복 많이 받아.’
―고맙습니다.
일어나자마자 새해 인사를 받은 대한은 부모님을 떠올렸다.
그는 즉시 이태산과 김혜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벨이 3번 울리기 전에 이태산의 꽉 잠긴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아버지!”
―대한이냐?
“네, 아버지. 대한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태산은 대한의 말에 기분 좋은 목소리로 변했다.
―너도 새해 복 많이 받아라!
“네, 감사합니다. 어머니 좀 바꿔주세요.”
―응, 잠깐만 기다려!
1초도 지나기 전에 잔뜩 흥분한 김혜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한이냐?
“네, 어머니! 새해 인사하려고 전화 걸었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니,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살면서, 뭘 그런 거로 전화를 다 해? 어쨌든 너도 새해 복 많이 받아라!
“네에. 고맙습니다.”
김혜영은 어색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너 떡국 먹으러 집엔 안 오냐?
“당연히 가야죠. 그런데 손님이 오기로 했어요.”
―누구? 여자냐?
“네, 어머니도 잘 알고 계신 여자예요.”
대한의 말에 김혜영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내가 아는 여자라고? 그럼 방송에서 본 애들밖에 없을 텐데. 혹시 일본 혼혈이라는 나나냐?
“아니요. 나나는 어제 아침 비행기로 일본의 자기 집으로 돌아갔어요.”
―그럼 누구지? 하이스?
대한TV의 열렬한 구독자이자 시청자인 김혜영은 대한과 합방한 여자들을 모두 알고 있었다.
“하이스는 지금 프랑스에서 촬영 중이에요.”
―무슨 촬영?
“자세한 것은 잘 모르지만, 패션 잡지의 표지사진을 찍는다고 했어요.”
―어! 그래! 그럼 고리나와 류연 밖에는 남지 않는데. 둘 중 하나인가 보구나.
“아니에요. 왜 나와 합방했던 여자라고 생각하세요?”
―그럼 아니야?
“아니에요.”
그제야 김혜영은 자신이 너무 앞서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한은 곧바로 손님의 정체를 밝혔다.
“스포츠동해 한새롬 기자 아시죠?”
―아! 너 처음에 인터뷰했던 그 예쁜 여기자?
“맞아요.”
―아니 그런데 왜 기자가 새해 첫날부터 널 찾냐? 또 인터뷰하는 거야?
“아니에요. 뭐 좀 물어볼 게 있다고 했어요.”
그는 굳이 자세하게 설명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대강 그녀가 왜 자신을 찾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그럼 내가 떡국 싸서 오피스텔로 갈까?
“여기로요?”
―응.
“그러세요.”
대한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어머니가 아들 집에 온다는데 오지 말라고 하는 것도 이상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그는 욕실로 가서 샤워했다.
깨끗이 씻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나자 아버지와 어머니가 벌써 도착해계셨다.
어지간히 아들을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들어오세요.”
“혼자 있니.”
김혜영은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혹시라도 누가 있는지 살피는 것이다.
“네, 아직 안 왔어요.”
“그런데 오늘도 방송하니?”
“예, 그러려고요.”
“우리가 옆에 있으면 방해되겠지?”
김혜영은 아들이 방송하는 것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대한이 좀 곤란했다.
어머니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부담스러울 게 틀림없었다.
“조금 있다가 조 대리도 올 거예요.”
“조동혁 매니저 말이니?”
“네, 대리로 승진했으니까 이제부터는 매니저라고 부르시지 말고 대리라고 불러주세요.”
“알았다.”
대한은 조동혁이 온다는 말로 방송할 때 옆에 있는 것은 곤란하다고 돌려 말했다.
김혜영도 바보는 아니라서 금세 아들의 마음을 눈치챘다.
“떡국이나 먹어라.”
그녀는 깔끔하게 포기했다.
이태산이 말없이 보따리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김혜영은 보따리를 끌러 냄비를 꺼냈다.
안에는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떡국이 가득 담겨있었다.
“식기 전에 먹어라!”
“네, 잘 먹겠습니다.”
마침 배가 고팠는데 잘 됐다 싶었다.
어제 늦게까지 방송을 하느라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대한은 숟가락을 들고는 열심히 떡국을 퍼먹었다.
김혜영이 김치를 꺼내더니 쫙쫙 찢어서 숟가락 위에 올려줬다.
이태산도 맞은 편에 앉아 아들이 떡국 먹는 것을 지켜봤다.
대한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시선에는 애정이 뚝뚝 넘쳐 흘렀다.
순식간에 떡국 두 그릇을 해치웠다.
“잘 먹었어요.”
“더 먹어도 되는데.”
“아니에요. 배불러요.”
“그래. 그럼 나머지는 냉장고에 넣어둘게. 배고프면 꺼내서 데워서 먹어라!”
“예.”
딩동!
그때 초인종 소리가 났다.
대한이 문을 열자 조동혁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조동혁은 대한의 부모님을 보자 얼른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했다.
“어서 와요. 혹시 떡국 먹었어요?”
“아뇨. 아직 안 먹었어요.”
“그럼 식사 전이겠네요.”
“네.”
김혜영은 오지랖 넓게 조동혁을 불러 식탁에 앉혔다.
“내가 떡국 끓여왔어요. 좀 드세요.”
“예!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조동혁은 굳이 사양하지 않았다.
어차피 배가 고파서 빵이라도 사 먹으려고 했다.
아니면 배달음식을 시켜 먹던가.
그런데 이렇게 맛있는 냄새가 나는 떡국이 있자 벌써 입에서 침이 나왔다.
결국, 남은 떡국은 조동혁이 깡그리 해치웠다.
딩동!
그때,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제가 나가볼게요.”
대한이 일어나기 전에 조동혁이 얼른 일어나 문을 열어줬다.
“안녕하세요!”
“아! 어서 오세요.”
문이 열리자 안으로 들어온 것은 스포츠동해 한새롬 기자였다.
대한은 그녀와 악수를 하고 거실로 데려갔다.
김혜영은 눈빛을 반짝이며 따라가려고 했다.
하지만 이태산이 바로 끼어들어 그녀의 팔을 잡았다.
“여보! 갑시다.”
“이제 왔는데 어디를 가요?”
이태산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김혜영을 문 쪽으로 끌고 갔다.
“주책맞게 뭐 하는 거야? 괜히 아들 일하는 거 방해하지 말고 갑시다.”
“누가 방해를 한다는 거예요?”
“대한아! 우리 간다.”
“네, 아버지! 어머니도 조심히 들어가세요.”
대한은 아버지에게 슬쩍 엄지를 올려줬다.
그리고는 어머니에게 냉정하게 인사했다.
그 모습에 김혜영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집을 나섰다.
“일 끝나고 연락해라!”
“네에!”
대한은 문밖까지 따라와 아버지와 어머니를 배웅했다.
김혜영은 뭐가 그렇게 아쉬운지 자꾸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이태산에 의해 결국 승강기를 타야 했다.
몸을 돌리자 앞문이 살짝 열리며 케인과 나단, 데럴과 라이스가 나왔다.
혹시나 무슨 일이 있을까 봐 문틈으로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Happy New Year!”
“Happy New Year!”
대한은 그들과 새 해인사를 하고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로 가자 조동혁이 한새롬에게 녹차를 타주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 있는 그녀는 대한을 보자 다시 일어나려고 했다.
“괜찮아요. 앉아 계세요.”
“사장님도 한잔 타드릴까요?”
“네, 전 둥굴레차로 부탁합니다.”
조동혁은 얼른 부엌으로 가서 둥굴레차를 타가지고 왔다.
눈치를 보아하니 한새롬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 그러는 것 같았다.
호르르!
잠시 차를 마시느라 거실에는 침묵이 흘렀다.
대한은 느긋하게 몸을 소파에 기대고 창밖을 내다봤다.
온 세상이 새하얗게 변하는 모습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무거운 침묵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겠던지…….
조동혁은 조심스럽게 스튜디오로 물러갔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 미안합니다. 인제 보니 제가 인사하는 것이 늦었군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한새롬의 새해 인사에 대한은 자신의 머리를 긁적였다.
그녀는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절 쳐다보세요?”
“도저히 쳐다보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
“왜요?”
“정말 몰라서 묻는 거예요?”
“모르겠는데요.”
대한은 뻔뻔하게 대답했다.
한새롬은 고개를 살살 옆으로 흔들면서 말했다.
“그 짧은 사이, 정말 엄청나게 모습이 변했어요.”
“그거 칭찬인가요?”
“네, 칭찬이에요.”
얼마나 놀랐던지 그녀의 목소리까지 살짝 떨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