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북극 공동>
“배고파요?”
“아뇨.”
“그럼 우리 야시장 구경하러 갈까요?”
“좋아요.”
나나는 대한의 팔에 자신의 팔을 걸고 걸어갔다
그녀의 얼굴은 한 떨기 꽃처럼 환하게 피어났다.
고혹한 분위기와 은은한 미소는 보는 사람의 심장을 떨리게 했다.
둘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야시장을 구경했다.
“와아! 별의별 게 다 있어요.”
“각양각색의 수제품을 팔고 있네요.”
“여기가 다문화 체험시장이라고 하네요.”
“각가지 먹거리도 많아요.”
대한은 푸드트럭에서 버블티 두 개를 샀다.
둘은 음료수를 하나씩 손에 들고는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푸드트럭에서 코를 자극하는 음식 냄새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한쪽에서는 각국의 다양한 예술가들이 선보이는 색다른 공연도 펼쳐졌다.
그 사이!
에바는 밴의 지붕 위에 놓아둔 드론 두 대를 조용히 띄워 올렸다.
아메리카TV에서 파견 나온 직원들은 대한TV의 직원들이 드론을 띄웠다고 생각하곤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일은 전용 밴으로 BJ들을 원하는 곳에 데려다주는 것이 전부였다.
위이이잉!
여섯 개의 프로펠러를 가진 하얀 드론의 크기는 커다란 수박만 했다.
하부에는 고화질의 카메라가 달려있었다.
흔들림이 없어 야외촬영용으로 많이 쓰이는 모델이었다.
에바는 일단 드론을 높이 띄워 강가로 움직였다.
하드웨어의 성능을 파악하고 드론에 내장된 프로그램을 살짝 바꿨다.
그것만으로도 기존에 가지고 있던 성능의 몇 배를 훨씬 뛰어넘었다.
―아주 원시적인 물건이네요. 소프트웨어는 쓸데없이 복잡하고 하드웨어는 낭비되는 자원이 많고.
‘무슨 소리야?’
―사무실에서 가져온 방송용 드론에 관해 설명한 것입니다.
대한이 강가로 고개를 돌리자 허공에 뜬 하얀색 드론 두 대가 보였다.
그런데 거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에바가 드론의 소프트웨어를 손봐서 최적의 회전수로 조절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득을 본 것은 대한TV의 시청자들이었다.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며 찍는 드론은 방송을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한눈에 공원의 모습과 야시장의 전경도 볼 수 있었다.
이쯤 되면 이미 개인방송을 능가하는 퀄리티였다.
아마 방송국에서 찍어도 이 정도로 다이내믹한 영상은 찍어낼 수 없을 것이다.
이로 인해 한강의 아름다움과 여의도한강공원 물빛광장에서 펼쳐지는 야시장이 크게 주목받았다.
한 시간쯤 돌아다니자 슬슬 배가 고파졌다.
대한은 스마트폰으로 동혁에게 문자를 쳤다.
그런 후 나나를 데리고 푸드트럭으로 갔다.
“먹고 싶은 것 있으면 골라보세요.”
“대한은 뭘 드실 거예요?”
“난 아메리칸 바비큐요.”
“그럼 전 스테이크로 할래요.”
다행히 시간이 일러서 기다리는 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하지만 점점 사람들이 몰려와 길게 줄을 만들어갔다.
모르긴 해도 아마 조금만 늦게 왔더라면 30분은 족히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대한과 나나는 각자 주문한 음식과 음료수를 들고 거리를 빠져나왔다.
강가의 한적한 곳으로 이동하자 간이 테이블과 의자가 마련되어 있었다.
동혁이 대한의 문자를 받고 급하게 준비해놓은 것이다.
“이리 앉죠.”
“네.”
둘은 서로 마주 보고 앉았다.
테이블 위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요리가 식욕을 자극했다.
두툼한 패티가 들어간 햄버거와 커다란 소시지, 따뜻한 빵과 신선한 채소까지.
정말 레스토랑이 부럽지 않았다.
나나가 사 온 스테이크도 훌륭했다.
육즙이 팡팡 터지는 소고기 스테이크에 잘 구워진 피망과 양파!
한입에 먹기 좋게 썰린 아메리칸 스테이크는 적당하게 간이 잘 배어있었다.
“음! 맛있어요.”
“이것도 좀 들어봐요.”
대한은 잘게 썬 소시지를 포크로 찍어 나나에게 먹여줬다.
그녀의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
하지만 석양이 물든 탓인지 그렇게 티가 나지는 않았다.
나나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포크로 스테이크 조각을 콕 찍어서 그의 입에 넣어줬다.
입술에 소스가 묻자 그녀는 우선 손가락으로 닦았다.
그런 후 티슈를 꺼내 정성스럽게 다시 닦아줬다.
그 모습이 영락없는 여자친구의 모습이었다.
석양이라는 자연의 조명과 가로등이라는 인공적 조명!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상반된 존재다.
하지만 어쩐지 이곳 한강 변에서만큼은 참 잘 어우러졌다.
거기에다 하늘을 오렌지색으로 물들인 배경을 찢고 나온듯한 선남선녀!
그냥 보기만 해도 꿀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달달한 모습이 연출됐다.
이 장면에 채팅 창은 마그마처럼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부부젤라: 달달하누!]
[개좋앙: 개달달!]
[홍콩여자: 누가 꿀 흘렸나요?]
[늑골뽑기: 아오! 저기에다 소금 뿌리고 싶은 건 나뿐인가?]
[독도사랑: 정말 난 대한이고 싶다.]
[터프가이: 진짜 사귀는 연인 같아.]
[치킨효린: 데이트 콘셉트라고 한 것 같은데, 저 표정은 진텐 아냐!]
[고로쇠: 대한·하이스 존버!]
[나베우동: 대한 사마! 나나가 부럽습니다.]
[화가난다: C바! 다음 생에는 꼭 대한으로 태어나기를!]
강가라서 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해가 떨어지자 제법 날씨도 추워졌다.
동혁은 유아영 과장에게 받은 가디건을 재빨리 그에게 넘겼다.
대한은 가디건을 받아 나나의 어깨에 살며시 걸쳐줬다.
이런 소소한 행동에 나나는 그저 심쿵했다.
자신도 모르게 상큼한 미소를 지어버린 그녀!
하얀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사랑스럽게 어루만졌다.
순간 채팅 창이 폭발할 듯 출렁거렸다.
이때부터 콘셉트가 아니라 대한의 숨겨놓은 여친이 아니냐는 합리적인 의심이 표출되기 시작했다.
물론 여기에다 기름을 부은 것은 대한이었다.
그는 나나의 손을 잡고는 손등에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그녀는 그걸 바라보며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에바는 의도적으로 나나의 화사하게 피어난 행복해하는 얼굴을 클로즈업했다.
이건 누가 봐도 대한에게 애정이 넘치는 여자의 얼굴이었다.
나중에 이 장면이 캡처되어 인터넷에 영구히 박제됐다.
덕분에 나나는 일본에서 주연급 조연으로 드라마에 전격 캐스팅되는 기염을 토할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이 아닌 훗날에 일어날 일이었다.
식사를 끝낸 두 사람은 쓰레기를 치우고 공연을 보러 갔다.
마침 크라운마칭밴드의 행진이 시작됐다.
둘은 손을 잡은 채 나란히 서서 구경을 했다.
이어 마술사의 공연도 시작됐다.
나나는 호기심 가득한 눈을 빛내며 무척 신기해했다.
하지만 대한은 에바가 마술사의 공연을 하나씩 분석해주는 바람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마술사의 속임수를 전부 잡아서 입체적으로 파헤쳐서 보여주니 재미있을 리가 없었다.
다음은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의 공연이 이어졌다.
이건 나름 독특하고 개성이 넘쳤다.
십인십색의 노래와 목소리라서 꽤 볼만했다.
휘이이잉!
그런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기온이 뚝 떨어졌다.
나나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대한은 할 수 없이 그녀의 뒤에서 백허그를 해줬다.
넓고 따뜻한 품에 안기자 추위는커녕 오히려 몸에서 열이 올라왔다.
그 바람에 나나는 대한의 여성 팬들에게 노여움을 샀다.
하지만 대부분은 참 좋겠다며 부러워하는 반응이었다.
에바는 여기서 한술 더 떴다.
대한의 노래를 은은하게 배경음악으로 깔았다.
두 개의 드론을 이용해, 8자로 교차해서 360도를 회전시켜가며 영상을 찍었다.
그러자 몽환적인 영상미와 입체적 공간미가 폭발적인 시너지효과를 냈다.
마치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시청자들은 입을 딱 벌리며 한류드라마를 보듯 몰입해버렸다.
이것 때문에 가장 혜택을 보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나나였다.
그녀는 이 장면 하나로 만인의 연인이란 이미지가 심어져 버렸다.
‘이것도 그리 나쁘지 않네.’
대한은 길게 심호흡을 했다.
사실 모든 게 의도된 행동이었다.
방송용 콘셉트란 말이다.
그런데 이게 느낌이 썩 괜찮았다.
상대와 교감만 있다면 이렇게 계속 있어도 좋을 듯싶었다.
반은 진심이고 반은 의도된 데이트!
대한과 나나는 즐겁게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어느새 방송이라는 것도 잊고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하니까 모든 것이 편하고 쉬웠다.
물론 대한과 좀 더 진한 스킨십을 나누고 싶긴 했다.
하지만 그건 보는 눈이 많아서 곤란했다.
이미 대한과 나나의 데이트는 진결이 아니냐는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이날은 그렇게 밤새도록 야시장을 돌아다니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 * *
위이이잉!
벌써 모터가 돌아간 지도 한참이나 됐다.
그런데도 밧줄은 끝도 없이 끌려 올라왔다.
이미 감겨있는 밧줄만 해도 자신의 키만큼이나 됐다.
“콜린! 아직 멀었어?”
“알버트! 도대체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듣는 거야? 깊이가 최소 10km라니까.”
콜린의 짜증 난 목소리에 알버트는 속으로 혀를 찼다.
“어휴! 추워!”
“그러니까 제발 옷 좀 든든히 입고 오라고 했잖아.”
“내복에다 일체형 방한 작업복에 롱패딩까지 걸쳤어. 이 이상 어떻게 하라고?”
“그럼 여분의 오리털 파카라도 걸치고 나오지 그랬어!”
“지금도 뚱뚱한데 그것까지 입으면 어떻게 움직여?”
“여기가 어딘지 몰라서 그래? 북극이야. 그것도 수십 미터의 얼음이 뒤덮인 공동 안이라고.”
한마디도 지지 않는 콜린의 목소리!
오늘따라 유난히 신경을 바짝 긁어댔다.
알버트는 슬쩍 고개를 내밀어 아래를 내려다봤다.
지름 1km의 거대한 원형의 구멍.
얼마나 깊은지 조명을 비춰도 전혀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다 먹물이라도 뿌려놨는지 안은 온통 검게 물들여져 있었다.
지옥의 무저갱이라면 이럴까!
암흑에 먹혀버린 공간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으스스했다.
“제기랄! 괜히 이곳에 왔어.”
“후회해봐야 소용없어.”
“나도 알아. 계약이 끝날 때까지는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그래도 돈은 많이 주잖아.”
“지금 돈이 문제야.”
“아주 지겨운 작업이라는 것을 빼면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
한숨을 내쉬며 알버트는 콜린을 쳐다봤다.
“콜린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그냥 포기해! 그래도 지상에서 경비를 서는 놈들보다는 우리가 낫잖아.”
콜린의 말에 알버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하긴 북극의 차가운 바람에도 이곳은 절대 경계를 늦출 수 없는 곳이다.
그만큼 중요하고 또한 경쟁도 치열했다.
캉캉캉캉캉!
그때 거대한 공동의 반대편에서 규칙적인 소음이 들려왔다.
둘은 잠시 그쪽을 바라보다 시선을 돌렸다.
서로의 눈을 마주친 그들은 거의 동시에 좌우로 고개를 흔들었다.
“끝내 러시아와 중국까지 왔군.”
“이미 구멍을 파고 들어온 유럽연합도 있잖아.”
알버트의 말에 콜린이 재빨리 첨언을 했다.
“뭐 주워 먹을 일이 있다고 다들 여기까지 몰려오는지. 매일 저렇게 시끄럽게 하니까 피곤해 죽겠어.”
“우리와 비슷한 목적이겠지.”
콜린은 알버트와는 달리 합리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감정적인 알버트는 대놓고 악담을 했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는 모르지만, 그냥 다 쏴 죽여버렸으면 좋겠다.”
“큰일 날 소리! 진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우리 같은 민간인이 제일 위험하다는 거 몰라.”
“크으! 맞는 말이라서 부정할 수가 없네.”
저벅 저벅 저벅!
그때 위쪽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얼음계단을 타고 서너 명의 장정들이 내려왔다.
하나같이 특수방한복에 소총과 권총으로 무장을 한 사내들이었다.
그중 한 명이 그들을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그는 거대한 공동 바로 앞에 서서는 목에 걸린 망원경으로 건너편을 살펴봤다.
“알버트! 별일 없었지?”
“네, 캡틴.”
캡틴 딜런의 물음에 알버트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딜런은 아예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아래쪽을 살펴보며 물었다.
“얼마나 더 시간이 필요하지?”
“글쎄요.”
알버트는 콜린을 바라보며 말끝을 흐렸다.
콜린은 그의 행동에 인상을 팍 쓰면서 빠르게 대답했다.
“거의 다 됐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걸리냐고.”
“한 30분 정도입니다.”
“그럼 기다려보도록 하지.”
딜런의 말에 알버트와 콜린은 동시에 미간을 찌푸렸다.
작업할 때 누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누구든 불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나중에 오라고 쫓아낼 수 있는 자들도 아니었다.
위이이이이!
모터는 계속 돌아갔고 줄은 계속 끌려 올라왔다.
이 과정이 20분쯤 진행됐다.
그런데 딜런과 그의 부하들은 그동안 아예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린베레, 델타포스, 네이비실에서 특별히 차출되어온 최고의 대원들이라고 하더니 그 말이 맞는 모양이었다.
“어!”
그때 콜린의 감탄사가 터졌다.
“콜린, 왜 그래?”
“가벼워졌어.”
“그게 무슨 말이야?”
“아무래도 줄이 끊어진 것 같아.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아.”
“설마 또 실패한 건가?”
“그럴지도.”
알버트와 콜린은 대화하면서도 캡틴 딜런의 눈치를 봤다.
아니나 다를까!
딜런과 그의 부하들이 옆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들은 랜턴을 꺼내 아래쪽을 향해 비췄다.
확실히 아까보다 줄이 감기는 속도가 빨라졌다.
그리고 뭔가 지나치게 가벼워진 느낌도 들었다.
건장한 사내 한 명이 아래를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딜런을 불렀다.
“캡틴!”
“서전, 뭔가?”
“아무도 매달려있지 않습니다.”
“또 실패했나 보군.”
“그런데 뭔가 걸려있긴 합니다.”
그제야 딜런의 무표정한 얼굴에 처음으로 감정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