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합동 방송>
“내가 왜 이때까지 대한에 대해 모르고 있었을까요?”
“글쎄요. 아직도 제가 주류언론에 노출되지 않은 것이겠지요.”
나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아요. 한번 해봐요.”
“우리 전투 나가는 거 아니에요.”
“알아요. 방송하는 거라는 거!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혹시 미용실이나 코디네이터를 구해달라는 것은 아니겠죠?”
“마음 같아서는 풀 메이크업해서 나가고 싶은데 그건 좀 곤란하겠죠?”
“하하하! 너무 부담 갖지 말아요. 그냥 지금처럼 자연스럽게 하면 돼요.”
대한의 따뜻한 말이 산들바람처럼 그녀의 귀를 간지럽혔다.
덕분에 그녀는 긴장이 조금은 풀리는 기분이었다.
“잠시 들어가서 일 좀 보고 올게요.”
“네.”
나나는 그의 손을 놓는 것이 무척 아쉬웠다.
그걸 느꼈을까?
대한은 그녀의 손등에 가만히 키스했다.
그러자 나나의 손에서 천천히 힘이 풀렸다.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듯한 허전한 기분!
왠지 그의 뒷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불안감도 엄습했다.
‘미쳤어. 정말 미쳤어! 나 왜 이러지? 혹시 대한에게 벌써 반해버렸나? 내가 이렇게 금사빠인줄 몰랐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갑자기 상실감과 함께 자괴감이 밀려들었다.
이날 이때까지 남자에게 특별한 매력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여자를 좋아한다는 의미는 단연코 아니었다.
남자친구를 몇 번 사귀어봤지만 모두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금세 헤어졌다.
하는 짓이 다들 너무 어린아이 같았다.
그리고 남자친구들이 원하는 것이 한결같아 짜증이 났다.
그때마다 차버리고 깔끔하게 손절해버렸다.
그런데 오늘 자신의 행동을 보니 과거에 사귀었던 남자친구들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그렇다고 다시 만나서 사귀고 싶은 생각은 절대 들지 않았다.
단지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자신은 운명의 상대를 만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어멋! 그러고 보니 키스도 내가 먼저 해버렸네. 이거 어떻게 하지? 대한이 날 아주 쉬운, 그냥 그렇고 그런 여자로 보는 것은 아닐까?’
나나는 갑자기 여러 가지 걱정이 생겨버렸다.
전에는 한 번도 고민해본 적이 없었던 것들이었다.
생소한 감정이 그녀의 가슴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그래도 눈으로는 계속 대한TV를 보고 있었다.
이상하게 보면 볼수록 재미있고 점차 대한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참 신기한 현상이다.
한편, 대한은 조동혁 대리를 불렀다.
그는 나나 히로세에 관해 말하고 오늘 개인방송 콘셉트를 설명했다.
“그러니까 나나 히로세 양을 오늘 만났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요. 한국에 관광을 온 프랑스·일본 혼혈이에요.”
조동혁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대한이 길거리에서 여자를 헌팅을 했다는 말로 이해했다.
전례가 없는 일이라서 살짝 긴장했다.
“데이트 콘셉트라는 말은 이해가 갑니다. 다만 야시장을 간다면 저 혼자는 무리입니다.”
“혹시 좋은 생각 있어요?”
“네, 이번에 대한TV에 입사한 신입사원 둘을 데리고 가는 게 좋겠습니다.”
“아! 그럼 조 대리가 메인 카메라고 신입사원 둘이 서브 카메라겠네요.”
“그렇습니다.”
생각해보니 참 좋은 아이디어였다.
대한TV에 입사했으니 개인방송을 하는 것을 봐두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신입사원에게는 회사의 정체성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 될 수도 있었다.
“좋아요. 그렇게 하죠.”
“감사합니다. 그리고 방송용 장비 중에서 드론도 있습니다. 기왕 야외로 나가는 거 장비도 점검해볼 겸 드론을 한번 같이 써보죠!”
“좋은 생각이긴 한데, 저녁에 드론을 날리는 것은 좀 위험하지 않을까요?”
“그런가요?”
조동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에바가 급히 대한을 불렀다.
―마스터!
‘응?’
―드론은 제가 조정하겠습니다. 그러니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에바가 나서준다면야 나도 안심이지. 장소가 여의도한강공원 물빛광장인데 미리 허가를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런 거야 금방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드론을 꼭 가지고 나가세요. 제가 미리 테스트해볼 게 몇 가지 있습니다.
‘알았어.’
대한은 에바의 말에 바로 생각을 바꿨다.
“생각해보니 연습 삼아 드론을 한번 띄워보는 것도 괜찮겠네요.”
“아! 그럼 드론도 준비해놓겠습니다.”
조동혁은 드론이란 새로운 장비, 아니 장난감에 금세 눈이 반짝거렸다.
“다섯 명이 동시에 움직이려면 아무래도 차가 필요하겠군요.”
“아메리카TV에서 방송 콘텐츠 제작 및 홍보 그리고 전용 밴을 지원하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이번엔 그걸 이용해보죠.”
“좋은 생각이에요. 공짜로 쓸 수 있는 차량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사용해야지요.”
“그럼 제가 연락해서 전용 밴을 보내 달라고 말해놓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대한은 당연히 찬성했다.
조동혁은 오랜만에 좋은 아이디어를 냈다.
갈수록 성장해서 노련해져 가는 느낌이 들었다.
사무실에 대한의 개인방송 일정이 파다하게 퍼졌다.
다들 이번에는 어떤 광고와 PPL을 쓸지 의논했다.
그동안 주인이 없는 것처럼 굴러가던 회사였다.
그런데 하루 만에 활기가 넘쳐나고 있었다.
‘음! 이거 기분이 나쁘지 않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뜬금없이 나온 대한의 말에 에바가 바로 질문을 던졌다.
‘재벌들이 왜 그렇게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
―설마 직원 열 명의 구멍가게와 재벌을 비교하는 건 아니죠?
비딱한 에바의 말에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거 비유를 해도 꼭 구멍가게가 뭐야! 기업이나 회사라는 이름도 있잖아.’
―죄송합니다. 기업이나 회사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너무도 작은 규모라서 제가 실수했네요.
‘너 지금 나 돌려 까는 거 맞지?’
―그럴 리가 있습니까! 저는 그냥 펙트를 말했을 뿐입니다.
화를 내고 싶었지만 사실 구멍가게라는 말이 크게 틀린 것도 아니었다.
회사에서 물건을 팔거나 자체적인 서비스로 수익을 내는 게 아니다.
전적으로 매출을 대한에게 의존하고 있는 구조라 일인 기업이나 마찬가지였다.
직원들은 그냥 대한을 보조하는 데 필요해서 고용한 것뿐이다.
물론 앞으로는 조금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당장은 크게 바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도 세금으로 나가는 것보다는 직원을 고용하는 게 낫겠지.’
―자꾸 뭐라고 구시렁거리십니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확실하게 알아듣게 얘기해주세요.
‘아니다. 내가 너와 싸워서 무슨 이득을 보겠어! 차라리 재능이나 흡수하는 게 낫지.’
―새로운 재능을 흡수하기로 마음먹으셨습니까?
‘그래. 일본어 어때?’
―나나 히로세를 통해 재능 일본어를 흡수하시겠다는 생각이시군요.
‘맞아.’
―알겠습니다. 재능흡수 대상자와 신체접촉을 하시면 일본어를 흡수하겠습니다.
대한은 과자와 음료수 몇 병을 가지고 나나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대한TV를 시청하는데 푹 빠져있어서 그가 온 지도 몰랐다.
테이블 위에 과자와 음료수를 내려놓고 그녀의 어깨를 한번 툭 쳤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손가락으로 목 뒤를 스쳤다.
나나가 깜짝 놀라서 그를 쳐다봤다.
대한은 미소를 지으며 손으로 테이블 위의 과자와 음료수를 가리켰다.
“이거 마셔가면서 봐요.”
“아! 고마워요.”
그녀는 깍듯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대한은 가볍게 손을 흔들며 물러났다.
‘에바!’
―피코셀을 주입했습니다. 재능흡수 대상자 나나 히로세의 DNA를 분석 중입니다.
‘최대 재능은 뭐지?’
―연기(SSS)입니다. 그다음이 프랑스어(SS)와 일본어(SS)네요.
최대 재능이 연기(SSS)라는 말에 그는 깜짝 놀랐다.
나나 히로세가 괜히 배우지망생이 아니었다.
‘이거 일본어 대신 연기를 흡수해야 하는 거 아니야?’
―당장 쓸데가 있다면 그래도 되겠지요.
‘음! 아니다. 내가 지금 연기를 흡수해서 뭘 하게. 일단 일본어를 흡수하고 나중에 필요하면 그때 생각해보자고.’
―네, 마스터. 재능 일본어(SS)를 흡수합니다.
대한은 일단 일본어부터 배우기로 했다.
‘이거 잘하면 미래의 스타와 인연을 맺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겠군.’
그는 창문을 통해 대한TV의 동영상을 시청하는 나나를 쳐다봤다.
그녀는 자신에게 연기라는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그것도 트리플 S등급의 뛰어난 재능을.
뭐 어느 쪽이든 대한에겐 별 상관없었다.
스타가 되든 아니면 그냥 일반인으로 남던 그에게 나나는 그냥 나나일 뿐이었다.
‘에바, 대한TV의 구독자와 팔로워 상태를 알려줘!’
―네, 마스터. 먼저 아메리카TV의 평균시청자 수는 10만 명이고 구독자 수는 125만 명입니다. 평균 풍력은 8만입니다.
‘구독자 수만 조금 늘었군.’
기반이 국내 한정인 아메리카TV는 이미 한계에 달해서 더는 발전 가능성이 없었다.
그에 비하면 다른 플랫폼들의 성장은 눈이 부셨다.
―드디어 유티비 구독자 수가 3천만을 돌파했습니다. 정확히는 3,081만 명입니다.
‘와우! 놀랄 만한 일이군.’
―덕분에 유티비에 올린 동영상들의 조회 수도 많이 늘었습니다.
조회 수가 늘었다는 것은 광고를 많이 봤다는 의미다.
결국, 그에 비례해 수익도 크게 늘었다는 말과 같았다.
―다른 플랫폼도 구독자와 팔로워 수가 크게 늘었습니다. 페이스노트 2,261만, 트워치 1,311만, 원스타그램 2,119만입니다.
‘페이스노트와 원스타그램도 각각 2천만을 넘겼군.’
―그렇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플랫폼 성장도 무시무시합니다. 또위 1,883만, 롱주 1,857만, 판다TV 1,667만, 유쿠 1,547만, 후야 1,556만입니다.
‘확실히 인구가 많아서 팔로워 수도 엄청나게 늘어나는군.’
전 세계를 상대로 하는 플랫폼의 성장이 고무적이었다.
인구 대국 중국의 플랫폼 성장도 무시할 수 없었다.
개인방송을 하는 대한에게 구독자와 팔로워!
즉 숫자는 곧 힘이자 돈이었다.
다다익선이라고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대한은 에바의 설명을 끝으로 업무보고서를 확인했다.
들어온 돈과 나간 돈이 맞는지 장부를 살폈다.
광고 계약들도 잘 됐는지 꼼꼼히 확인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에바의 도움을 받아 순식간에 해치웠다.
‘다했다. 이제 뭐 하지?’
―꼭 6시까지 기다려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냥 일찍 가도 되지 않을까요?
‘정말 그러네.’
에바의 조언을 전격 수용했다.
대한은 조동혁을 불러 차량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아메리카TV에서 지원하는 전용 밴 두 대가 이미 도착한 상태였다.
“개인방송 지금 시작합니다.”
“2시간이나 남았는데요.”
“내가 언제부터 일정 잡고 움직였어요?”
“그건 그렇죠.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나나와 같이 차에 타는 것부터 시작합시다.”
“네, 사장님.”
대한은 나머지 일은 조동혁에게 맡겨두고 케인과 나단을 불렀다.
두 사람에게 개인방송의 동선과 야시장이 열리는 여의도한강공원 물빛광장의 장소를 말해줬다.
케인과 나단은 두 대의 밴 조수석에 각각 타기로 했다.
대한은 이제 나나를 부르기 위해 베란다로 향했다.
“나나!”
“아! 대한!”
대한이 그녀를 부르자 나나가 고개를 들었다.
그는 옆자리에 앉아 싱긋 미소를 지었다.
“지루하지 않아요?”
“전혀요. 너무 재미있어요.”
“바람이 좀 불던데 춥지는 않아요?”
“음, 지금은 괜찮아요.”
나나는 전혀 문제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대한의 생각은 좀 달랐다.
저녁이 되면 추울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슬슬 나가볼까 하는데 어때요? 같이 나갈래요?”
“일 다 끝내셨어요?”
“네, 그래서 2시간쯤 앞당겨볼까 하고요.”
“저야 좋죠.”
“그럼 우리 지금 나가요.”
“네.”
나나는 흔쾌히 대한의 제안을 수용했다.
대한은 그녀를 에스코트하며 사무실을 나섰다.
유아영 과장이 급히 다가와 물었다.
“지금 개인방송 시작하실 거죠?”
“네, 차에 타는 것부터 할 거예요.”
“혹시 뭐 필요한 것 없으세요?”
“여기 나나 메이크업 좀 봐주세요. 저녁에 추울 수 있으니 가디건 같은 거 있으면 좀 빌려주시고요.”
“네.”
대한의 말에 유아영은 빠르게 움직였다.
메이크업과 코디네이션을 했던 직원 둘을 나나에게 붙였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하얀 가디건을 쇼핑백에 담아 차량에 실었다.
나나는 자신의 얼굴과 머리를 매만지는 여자들을 쳐다봤다.
대한의 회사 직원들이라 그냥 가만히 앉아서 하는 대로 내버려 뒀다.
그런데 거울을 보자 점차 자신이 변해가고 있었다.
메이크업과 머리를 손보는 이들에 의해 그녀의 아름다움이 싱그럽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