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귀국>
범죄조직 세 곳의 미국지부와 LA의 악명 놓은 갱인 ‘아미고스’를 탈탈 털었다.
그로 인해 LA 경찰과 라스베이거스 경찰도 무지하게 바빠졌다.
특히 두 도시의 SWAT팀과 FBI SWAT팀은 몇 번이나 출동해서 조직원들을 잡아들였다.
이 과정에서 수십 명의 범죄조직 행동대원들이 사살당했다.
미국의 각 내셔널 TV 방송국에서는 이를 대서특필했다.
어떤 곳은 아예 특별코너를 만들어서 생방송으로 실시간 현장을 중계했다.
미국 시민들은 이런 당국의 조직범죄 퇴치 작전에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특히 LA와 라스베이거스의 시민들이 아주 좋아했다.
그러나 누구보다 좋아한 것은 대한이었다.
비록 자신이 실수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온갖 마약이 섞인 콜라를 마시게 하다니.
생각할수록 열이 받는 이번 사태는 에바의 도움으로 빠르게 해결됐다.
아니 단순히 해결된 것만이 아니라 범죄조직 세 곳의 미국지부를 박살 냈다.
그리고 LA에서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던 범죄조직 ‘아미고스’를 완전히 초토화했다.
이 과정에서 에바가 사용한 비자금과 급전까지 받아서 동원 가능한 자금을 몽땅 투입해 원금의 두 배에 달하는 배당금까지 알뜰하게 챙겼다.
나중에 배당금 총액을 확인하고 대한이 기절할 뻔했다는 것은 미담 수준이었다.
* * *
인천국제공항.
크리스마스 캐럴이 싹 사라진 인천공항.
해외를 나가고 들어오는 수많은 인파로 바글댔다.
지잉!
출국장의 자동문이 열렸다.
선글라스를 낀 건장한 체격의 사내 둘이 걸어 나왔다.
“이렇게 꼭 크리스마스를 비행기 안에서 보내야 했니?”
“그럼 어떻게 해? 아버지와 어머니가 보고 싶다고 하시는데.”
“아주 효자 났네.”
“그럼 넌 브라질에 있는 너희 집이나 가지 왜 날 따라왔어?”
“내가 없으면 네가 심심할까 봐 그러지.”
대한과 올리버는 출국장 밖으로 나와서도 여전히 티격태격했다.
그 모습을 조동혁이 액션카메라로 열심히 찍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도 개인방송을 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이제는 방송인이라고 할 만했다.
그들의 옆으로 대한과 올리버의 합동 경호팀이 짐을 챙겨서 나왔다.
“사장님!”
“오! 유아영 대리!”
출국장 앞에서 유아영 대리가 반가운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조동혁 매니저!”
“대리님, 안녕하세요.”
조동혁이 유아영에게 인사를 하자 그녀도 마주 고개를 숙였다.
“잘 지냈어요?”
“네, 사장님. 저희는 아주 바쁘게 보냈어요. 누구 때문에.”
“설마 그게 나는 아니겠죠?”
“그건 혼자 한번 생각해보세요.”
유아영의 뾰로통한 얼굴을 보자 확실히 살이 많이 빠진 상태였다.
대한은 그녀의 태도에 웃음이 나왔지만, 겉으로는 모르는 척했다.
“대한! 누구야? 이 아름다운 숙녀는?”
“올리버! 우리 회사 직원이야.”
“아! 대한TV에서 일하시는구나.”
올리버는 유아영 대리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반가워요. 저는 올리버입니다.”
“유, 유아영입니다.”
유아영은 느끼한 올리버의 행동에 얼굴을 발갛게 물들였다.
그녀는 올리버의 손을 잡고 악수를 했다.
하지만 올리버는 그에 만족하지 않고 유아영의 손등에 키스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네? 네.”
끈적한 눈빛과 느끼한 말투!
과장된 미소의 올리버는 정말 주먹을 부르는 조건을 다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여자들은 올리버의 행동에 자꾸만 얼굴을 붉혔다.
보다못해 대한이 나섰다.
“자자! 인사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일단 공항을 빠져나갑시다.”
“네, 사장님. 미니버스를 준비해놓았습니다.”
귀국하는 일행의 숫자가 많아서 미리 연락해놓았다.
다행히 유아영이 미니버스 한 대를 빌려 놓아 모두 같이 이동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도 치안이 안전한 나라다.
그래서 대한과 함께 온 네 명의 경호원은 보유한 총기와 장비를 모두 올리버의 집에 두고 왔다.
물론 올리버를 경호하기 위해서 온 경호팀도 마찬가지였다.
건물 밖으로 나가자 대기하고 있던 미니버스가 문을 열어줬다.
대한과 올리버가 미니버스에 올라탔다.
유아영 대리와 조동혁 매니저가 그들의 뒤를 따랐다.
이어 대한의 경호팀 4명, 올리버의 경호팀 4명이 여행용 가방을 싣고 왔다.
짐칸에 짐을 싣고 그들은 차례로 미니버스에 올라탔다.
부우웅!
12명의 손님을 태운 미니버스는 곧장 공항을 출발해 서울로 달렸다.
목적지는 일단 그랜드힐튼호텔이었다.
서울에는 다른 좋은 특급호텔도 많았다.
하지만 올리버는 대한이 머무는 오피스텔과 가깝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호텔을 선택했다.
차로 20분 안에 올 수 있는 거리라 65.9평짜리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을 겁도 없이 덜컥 예약해버렸다.
물론 돈 많은 올리버를 대한이 걱정해줄 필요는 없었다.
올리버는 당분간 경호원들과 호텔에서 머물며 서울관광을 다니기로 했다.
대한은 미니버스에 타자마자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대한이냐?
아버지 이태산이 반가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우리야 네 덕분에 잘 지냈지. 넌 어떻게 지냈니?
“저도 잘 지냈어요. 지금 도착해서 미니버스 타고 공항에서 출발했어요.”
―그럼 집으로 오는데 얼마 안 걸리겠구나?
“친구랑 같이 와서 그랜드힐튼호텔에 들렀다가 갈 거예요.”
―아! 알겠다.
이태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머니 김혜영의 흥분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대한아!
“어머니!”
―아이고 우리 아들! 아픈 데는 없고?
“하하하! 저야 늘 건강하잖아요.”
―네가? 아! 아니다. 요새는 참 건강하지. 내가 착각했다. 미안!
“아니에요. 친구 호텔에 체크인시켜주고 집으로 갈게요.”
―알았다. 기다리마.
“네, 이따 봬요.”
대한은 오랜만에 듣는 부모님의 목소리에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사실 까톡 무료전화를 해도 얼마든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브라질과 미국이라는 심리적인 거리 때문에 자주 전화를 드리지 못했다.
그나마 보고 싶다는 어머니의 말에 이렇게 크리스마스가 지나 연말에라도 귀국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장님, 귀국하시니까 좋으시죠.”
“네. 아주 좋습니다.”
유아영 대리의 말에 대한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문뜩 귀국 전에 미국에서 전화로 지시해놓았던 일들이 생각났다.
“참! 유 대리! 경호팀이 머물 오피스텔은 준비해뒀죠?”
“네, 사장님. 다행히 같은 오피스텔, 같은 층에 매물이 나와서 단기로 임대를 해놓았습니다.”
“네 명이 지내기에는 좀 좁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이번에 나온 매물은 사장님이 계시는 오피스텔보다 두 배는 더 넓어서 별로 좁게 느껴지지 않을 거예요. 단 월세가 좀 비쌉니다.”
“월세가 비싼 것은 문제가 아니에요. 잘했어요.”
대한에게 조금 잔소리를 들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잘했다는 칭찬을 들었다.
유아영 대리는 미소를 지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경호팀과 같이 지내시려면 단독주택이나 고급빌라 같은 것을 구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스튜디오도 확장해서 전문적으로 꾸미려면 좀 더 넓은 장소가 필요해요.”
“맞습니다. 이제 슬슬 한번 찾아보도록 하죠. 사무실은 어떻습니까?”
그는 유아영 대리에게 사무실 임대와 직원보충에 대한 전권을 줬었다.
“사무실은 접근성이 좋은 디지털미디어시티역 근처에 있는 두발빌딩 3층에 얻었습니다.”
“지하철 6호선 새절역에서 두 정거장만 가면 되는 가까운 거리군요.”
“네, 직원도 경력직과 신입사원을 더 구했고 부서도 분야별로 나눠서 전문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괜찮으시면 저녁에라도 한번 들리시죠.”
“아닙니다. 제가 저녁에 가는 것은 민폐예요. 내일 아침에 가는 것으로 하죠.”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아침에 회사의 전 직원을 소집해놓겠습니다.”
“네.”
유아영의 얼굴을 보아하니 내일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사무실에 가봐야 할 것 같았다.
직속 보스이자 회사의 사장이 귀국했다고 아주 의욕이 대단했다.
조동혁도 사무실에 가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에겐 호텔에 잠시 들렀다가 스튜디오에 카메라와 장비만 내려놓고 가라고 했다.
그동안 브라질에서 미국까지 동고동락한 것을 생각하면 휴가라도 주고 싶었지만 당장 동혁을 대신할만한 직원이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동혁은 내일도 정상출근을 해야만 했다.
물론 같이 사무실을 구경하고 인사를 나눈 뒤 오전만 근무하고 일찍 퇴근시킬 생각이었다.
“국내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사장님이 하도 많은 사건을 터트려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광고는 많이 들어왔겠군요.”
“말도 마세요. 사무실로 기자들이 찾아오겠다는 것을 간신히 말리고 있는 상태입니다.”
둘은 의도적으로 딴소리를 해댔다.
하지만 유아영은 절대 사장인 대한을 이길 수 없었다.
“조만간 EPL의 빅식스와 라리가의 두 구단에서 협상팀이 올 거예요.”
“예에?”
협상팀이 온다는 말에 순간적으로 그녀의 얼굴이 탈색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왜 그렇게 놀래요? 협상 처음이라는 것도 아니면서.”
“그런 그렇죠. 이제 계약을 하는 건가요?”
“아니요. 협상입니다. 최후의 한순간까지 누구와 계약할지는 나도 몰라요.”
“무슨 말인지 잘 알겠습니다. 보안을 철저하게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유아영의 센스있는 대답에 그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이제 경력이 쌓이고 있는지 말이 잘 통하고 있었다.
끼익!
이윽고 미니버스가 멈춰 섰다.
창문을 통해 밖을 보니 어느새 그랜드힐튼호텔 입구였다.
“올리버! 내려라!”
“벌써 도착했네.”
“오늘은 호텔에서 푹 쉬고 내일부터 관광이나 다녀.”
“연락은?”
“시간 날 때 할게.”
“알았어.”
어쩐 일인지 대한의 말에 올리버는 쿨하게 손을 흔들고 나갔다.
호세와 경호팀은 대한을 향해 손을 흔들고 올리버를 따라 내렸다.
그들은 미니버스에서 짐을 꺼내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객실안내원이 뒤늦게 나타나 서둘러 올리버 일행의 짐을 싣고 갔다.
“유아영 대리는 안 가요?”
“제가 어딜 가요?”
“올리버 호텔 체크인하는 거 안 도와줘요?”
“설마 특급호텔에서 영어 못하겠어요?”
유아영 대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다.
하지만 어느새 볼이 홍당무처럼 변한 상태였다.
대한은 묘한 미소 띤 얼굴로 그녀를 쳐다봤다.
유아영은 더는 참을 수 없었는지 당장 미니버스를 출발시켰다.
“아저씨! 새절역으로 가주세요.”
“네.”
운전사는 문을 닫고 곧바로 새절역으로 향했다.
부우웅!
정확히 18분 만에, 미니버스는 새절역 근처에 있는 대한의 오피스텔 앞에 도착했다.
그는 차에서 내려 자신의 여행용 가방을 챙겼다.
동혁도 자신의 여행용 가방과 카메라와 장비가 들어있는 가방을 꺼냈다.
경호팀도 각자 자신의 짐을 꺼내 오피스텔로 향했다.
그들은 승강기를 나눠타고 올라갔다.
다들 제일 먼저 대한의 오피스텔부터 들어갔다.
경호팀에게는 아무래도 경호대상의 집부터 확인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철컹!
동혁이 대한의 오피스텔의 문을 열었다.
오랜만에 돌아왔는데도 집이란 느낌이 확 들었다.
유아영 대리가 청소라도 해놓았는지 오피스텔에는 향긋한 냄새가 났다.
카메라와 장비가 든 가방을 가지고 동혁은 스튜디오로 들어갔다.
그 뒤를 대한과 일행이 졸졸 쫓아갔다.
“여기가 내 스튜디오에요.”
“보스! 아주 아기자기한 스튜디오입니다.”
“여러분의 눈에는 이게 아기자기하게 보이겠군요.”
케인의 말에 대한은 고소를 금치 못했다.
하긴 미국에 가보니 모든 게 다 컸다.
도로도 넓고 집도 크고 심지어는 여자들도(?) 컸다.
경호원들은 대한의 오피스텔을 꼼꼼히 둘러봤다.
그리고 난 후!
건너편에 있는 오피스텔로 들어갔다.
이제부터 이곳이 경호팀의 공식숙소였다.
유아영이 어눌한 영어로 그들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해준다고 애를 썼다.
대한은 도와줄 수도 있었지만, 굳이 도와주지 않았다.
이 정도는 이제 스스로 알아서 할 때도 됐다.
“조동혁 매니저! 그만 퇴근하세요. 그동안 아주 고생이 많았어요.”
“아닙니다. 사장님 덕분에 아주 버라이어티하고 익사이팅했습니다.”
미국물 좀 먹었다고 이제는 영어도 잘 사용하는 조동혁이었다.
“보너스 두둑이 넣어놓았으니 가면서 확인하세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동혁은 무엇보다 반가운 소리를 하는 대한에게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역시 보스는 보너스로 말해야 한다.
이게 존경받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