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마리아나>
그는 잠시 헬레나의 얼굴을 떠올려봤다.
소녀같이 귀여운 얼굴의 그녀가 제자리에서 방방 뜨며 좋아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대한은 오빠 미소를 한번 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영복만 입은 몸이 살아있는 듯 마구 꿈틀거렸다.
“대한! 어디 가려고?”
“내일 시합인데 당연히 운동하러 가야지.”
가슴에 털이 수북한 올리버가 대한의 말에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일이 크리스마스이브야. 그런데 넌 꼭 그날 시합을 잡았어야 했니?”
“왜? 좋잖아. 크리스마스이브에 내 시합 보고.”
“그러는 넌! 넌 안 노냐?”
“벌 수 있을 때 바짝 벌어놔야지.”
대한은 당연한 것을 왜 묻냐는 듯한 얼굴이었다.
“도대체 그렇게 돈 벌어서 뭘 하려고 그래?”
“내 꿈이 뭔 줄 알아?”
“뭔데?”
“건물주야.”
“건물주? 건물 주인?”
“응.”
올리버는 거만한 표정을 짓더니 지갑을 꺼냈다.
“그럼 내가 건물 하나 사줄까? 그거 주인 할래?”
“그런 소리가 아니잖아. 난 누구보다도 커다란 건물을 세워서 주인이 될 거야.”
“아아! 그게 네 꿈이었구나. 그럼 부동산투자회사라도 하나 차리지 그랬냐?”
“그거보다는 투자를 해서 돈을 버는 것이 더 빨라.”
대한이 투자하고 있다는 말에 올리버는 호기심이 생겼다.
“너 투자도 하냐?”
“응, 그러는 너는 투자 안 하냐?”
“그거야 내 재산관리인이 알아서 하고 있지.”
“그럼 넌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어?”
“골치 아프게 그걸 내가 왜 들여다봐! 어머니가 어련히 알아서 잘 투자해주지 않을까 봐!”
올리버는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얼씨구! 넌 참 좋겠다.”
“왜?”
“아무 생각 없이 살아서.”
“우리 어머니와 똑같은 소리를 하네.”
가만히 보니 올리버의 어머니도 절대 쉬운 인생을 살고 계시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세계 최고의 빌딩을 가지고 나면 어떻게 할 건데? 그게 끝이야?”
“아니지. 세계 최고의 사나이가 돼야지.”
“그건 또 무슨 참신한 개소리냐?”
“그런 게 있어.”
그는 굳이 더 이상 말해주지 않았다.
대한은 천만재능을 가지게 해줄 에바의 주인이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강하고 뛰어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물론 그게 어디까지 가능한지 아직까진 제대로 감도 잡지 못했다.
하지만 하나씩 재능을 늘려가다 보면 이 세상에 뚜렷한 이름과 족적을 남기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돈을 아주 많이 벌어야 한다.
그렇다고 일만 할 것이냐? 그건 절대 아니다.
당연히 신나게 놀기도 하고 세계여행도 다닐 것이다.
예쁜 미녀와 알콩달콩 사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지이이잉!
방으로 돌아와 외출준비를 하는데 또 전화가 왔다.
스마트폰을 들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대한! 저예요.
“누구세요?”
―마리아나에요.
“아!”
헬레나 고메스에 이어 마리아나 그란데에게 전화가 왔다.
마치 이 둘은 서로 한 세트로 놀려고 하는 것만 같았다.
“잘 지냈어요?”
―아니요. 연락도 하지 않는 누구 덕분에 별로 잘 못 지냈어요.
“그게 누굽니까?”
―혹시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은 아니시죠?
“몰라서 물어보는 건데요.”
대한은 아주 뻔뻔스럽게 나갔다.
마리아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열을 식히느라 얼음을 가지러 간 모양이다.
―이궁! 어쨌든 지난번에 공연 때문에 의논드리고 싶다는 얘기 기억하시죠?
“네.”
―언제 시간이 나세요? 뉴욕에서 한번 만났으면 좋겠는데요.
“당장 뉴욕에 갈 일정은 없어요.”
―그럼 동부로 오실 일이 전혀 없다는 거예요?
“네, 지금은 없습니다.”
―아!
마리아나는 황당한 기분이었다.
보통 자신이 이렇게 전화를 하면 대부분 사람은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온다.
그런데 대한은 전혀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인제 와서 그냥 포기하자니 헬레나 고메스의 음반을 대한이 피처링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그럼 할 수 없죠. 제가 시간을 한번 내볼게요.
“알겠어요. 일정 관리는 제 비서가 맡고 있으니 이 번호로 전화를 하라고 할게요.”
―네에?
마리아나는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얘기가 잘 되면 그때 보도록 하죠. 그만 가볼게요. 제가 내일 시합이 있어서 마무리 연습을 하러 가야 하거든요.”
―아! 네.
“제 경기 페이퍼뷰로 꼭 보세요. 재미있을 거예요.”
―네에에!
대한은 냉정하게 전화를 끊었다.
솔직히 마리아나는 그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얼굴은 예쁘장했지만, 키도 작았고 별로 매력적이지 않았다.
자신이 워낙 작았었기 때문인지…….
키가 너무 작은 여자는 별로 내키지도 않는 모양이다.
―에바! 마리아나에게 전화 걸어서 공연을 언제 어떻게 같이 하겠다는 건지 알아봐 줘! 그리고 공연비는 얼마에, 조건은 또 어떤지 확실히 물어봐!
―네, 마스터.
에바는 그의 말에 즉시 전화를 걸어 마리아나와 대화를 나눴다.
대한과 통화를 할 때와는 딴판으로 상당히 사무적이었다.
그녀는 대충 대화를 나누다가 공연관계자에게 전화를 돌렸다.
부아아앙!
대한은 올리버의 페라리를 타고 베벌리힐스 주짓수 체육관으로 갔다.
뒤에서 조동혁과 경호팀이 열심히 따라오고 있었다.
그 사이!
에바가 마리아나와 공연관계자와 통화를 끝내고 보고를 했다.
―마스터!
‘응.’
―그냥 한번 찔러보는 느낌이 강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공연비로 만 불도 안 줍니다. 그런데 기다리는 시간이랑 이동하는 시간 등 들어가는 시간이 너무 깁니다.
‘관두자. 돈도 안 되는 것에 굳이 매달릴 필요는 없지.’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헬레나 고메스의 피처링에 참여하신 겁니까? 거긴 돈 한 푼 안 받고 그냥 해주시지 않았습니까?
‘귀엽잖아.’
―네에?
에바는 화가 난 표정으로 볼을 크게 부풀렸다.
그 모습이 마치 다람쥐 같았다.
―전 이해가 잘 안 갑니다.
‘헬레나 고메스 같은 셀럽은 대한TV에 나와준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는 거야. 그런 여자와는 굳이 돈 관계를 하지 않아도 돼. 그냥 친하게 알고 지내는 것만으로도 눈에 보이지 않는 막대한 이득이 생겨.’
―그렇다면 마리아나 그란데와도 친하게 지내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맞아.’
너무나도 간단히 긍정해버렸다.
에바는 순간 혼란에 빠졌다.
―그런데 왜?
‘걘 별로잖아.’
―뭐가요?
‘너 자꾸 따질래? 그냥 그런 줄 알고 있어.’
―눼에에에! 괜히 신경질이앙!
에바는 살짝 반항하며 볼을 부풀리고 허리에 손을 척 얹었다.
대한은 자신이 말을 하고도 지극히 논리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이상하게 그는 마리아나 그란데와는 별로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러나 헬레나 고메스는 괜히 막 도와주고 싶었다.
물론 헬레나도 대한TV에 나왔다고 돈 달라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원래 사람의 관계가 그런 건가 보다.
누군 그냥 괜히 마음이 가고, 누군 준 것 없이 그냥 미운 거 말이다.
의문의 1패를 당한 마리아나 그란데!
대한은 전화번호를 차단하는 것으로 바로 손절해버렸다.
퉁 퉁 퉁 퉁 퉁!
“좋아요. 아주 좋아요.”
페드루 코치는 미트를 대어주며 연신 웃음을 터트렸다.
미트에서 나는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원투 스트레이트는 물론이고 훅과 어퍼컷도 아주 날카로웠다.
그렇다고 전력을 다해 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30분 정도 미트를 대주자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치는 사람은 대한인데 어째 미트를 대주며 운동을 하는 기분이다.
페드루는 이제 발차기용 미트로 바꿨다.
혹시 몰라 보호구도 꼼꼼히 착용했다.
대한의 발차기는 파워가 워낙 셌다.
한 대라도 잘못 맞으면 바로 골로 가는 수가 있었다.
펑 펑 펑 펑 펑!
정말 시원한 가죽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페드루의 지시에 따라 로우킥, 미들킥, 하이킥, 프론트킥을 골고루 찼다.
그런데 안에 보호 장갑을 두 개나 꼈는데도 손이 아팠다.
그래도 페드루는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대한이 금세 눈치를 채고는 좀 쉬었다가 하자고 했다.
그제야 페드루는 손을 털며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이제 이런 방식으로는 훈련이 안 되겠군.’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무실 때 가상전투로 훈련을 하면 됩니다.
‘그런 방법도 있어?’
―물론이지요. 그동안은 육체가 따라와 주지 못해서 별 효과를 보지 못했겠지만, 이제는 가상전투로도 충분히 훈련을 대체할 수 있을 겁니다.
대한은 에바의 말에 크게 고무됐다.
‘그럼 지금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을 필요가 없잖아.’
―그렇죠. 그러니 적당히 몸이나 풀고 내일 시합을 위한 컨디션 조절이나 하세요.
‘당장 가상전투 훈련은 안 할 거야?’
―누구 잡을 일 있으십니까? 그걸 하고 나서 경기를 뛰면 상대방 죽일 수도 있어요.
‘그으래?’
그는 가상전투가 무척 궁금했다.
하지만 에바가 그동안 이유 없이 말린 적은 없었기에 일단은 그녀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잠시 쉬고 있는데 누군가 TV를 틀었다.
그런데 나오는 말이 중국어였다.
대한은 그 말이 전부 이해가 갔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에 관한 뉴스였다.
이번에는 러시아 말이 나왔다.
역시 러시아어도 잘 알아들었다.
체르노빌 핵발전소를 관광지로 개발하고 있다는 허무맹랑한 개소리 기사였다.
‘이제는 중국어와 러시아어가 다 들리네.’
―아랍어와 수영도 배우셨잖아요. 마지막은 정력이었던 가요?
‘배우긴 했는데 써먹을 데가 없잖아.’
―왜요? 베벌리힐스에 아랍사람들 많이 지나다니던데.
‘아니, 그거 말고 정력 말이야.’
대한의 말에 그제야 에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라스베이거스를 다녀온 후 벌써 2주가 다 되어갔다.
그동안 흡수한 재능 수영(SS)을 획득했다.
뒤이어 재능 중국어(S), 러시아어(S), 아랍어(S)를 차례로 획득했다.
마지막으로 재능 정력(SS)까지 장착했다.
언어는 전문가를 초빙하던가 직접 찾아가면 된다.
하지만 정력을 재능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은 찾기가 무척 힘들었다.
그런데 올리버의 경호팀에 소문난 바람둥이가 한 명 있었다.
흑인이라서 그런지 물건이 튼실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결정적으로 그 어떤 여자와 상대해도 먼저 나가떨어진 역사가 없다고 했다.
그 말에 대한은 피코셀을 좀 버리는 셈 치고 확인해봤다.
다행히 운 좋게도 잭팟이 터졌다.
대한은 흑형의 위대함을 깨달고 남몰래 기뻐했다.
조만간 원 없이 재능 정력(SS)을 쓰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는 그렇게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대한은 체육관 한쪽에 걸려있는 ‘미니십자가’를 쳐다보며 상태 창을 열었다.
다른 것은 별로 변한 것이 없었다.
그는 재능과 스탯만 확인했다.
수영(SS), 중국어(S), 러시아어(S), 아랍어(S), 정력(SS)이 보였다.
스탯: 근력 110, 민첩 97, 체력 100, 지력 98, 마력 109
스탯 근력, 민첩, 체력, 지력이 모두 하나씩 올랐다.
마력만 14가 올라서 109가 됐다.
민첩과 지력만 조금 더 올리면 조만간 스탯이 100대를 넘게 될 것이다.
“다시 시작합시다.”
“네.”
페드루 코치의 말에 대한은 상태 창을 치우고 훈련에 임했다.
내일이 시합이라서 무리한 훈련은 하지 않고 가볍게 몸만 풀고 마무리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부동산회사에 들러 좋은 매물이 나왔는지 한번 살펴봤다.
아직은 때가 아닌지, 썩 마음을 끄는 매물은 없었다.
올리버의 집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적당한 크기의 별장 하나는 투자의 개념으로 사 놓을까 생각 중이었다.
살짝 실망한 그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대한!”
“하이스!”
별채로 들어가자 하이스의 반가운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냉큼 그의 품으로 들어와 얼굴을 비볐다.
대한은 하이스를 꼭 안아주며 그녀의 수다를 반찬 삼아 저녁을 먹었다.
그렇게 소소한 일상의 기쁨이 흘러가며 하루가 지나갔다.
* * *
로스앤젤레스 잉글우드 더 포럼.
원형의 꽃잎 모양의 지붕!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을 닮은 기둥!
해가 서산으로 기울자 외부에 분홍빛 조명이 들어왔다.
안에는 체리 핑크 밖은 분홍빛의 조합.
생각보다 신비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끼익 끼익 끼익!
경기장에 페라리가 도착했다.
뒤이어 두 대의 검은 대형 SUV도 앞뒤로 나란히 섰다.
안에서 단단한 체구의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주변을 철저히 감싸고 나자 그제야 페라리의 문이 열렸다.
“이야아! 경기장이 참 재미있게 생겼네.”
“너만 하겠냐?”
“그게 무슨 소리야? 나 재미있다는 말이야?”
“어휴!”
대한은 고개를 흔들며 페라리에서 멀어졌다.
페드루 코치가 빠르게 다가와 그의 옆에 섰다.
뒤이어 조동혁이 따라붙었다.
어느새 경호원인 케인과 나단이 대한의 좌우로 포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