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헬레나>
수익금 자체는 적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투자한 투자금이 수백억이나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많다고도 할 수 없었다.
‘투자한 것에 비교하면 많은 수익은 아니네. 그럼 앞으로 오를 가능성이 큰 주식이나 투자 대비 수익률이 높은 첨단기술 보유기업에 투자해봐. 이를테면 실리콘밸리 같은 곳에 투자해도 좋을 거야!’
―안 그래도 투자적격 여부를 정밀심사하고 있는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 몇 곳이 있습니다. 투자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되면 투자하겠습니다.
이제는 왠지 기업에도 투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투자 성공률이 높고 발전 가능성이 큰 벤처기업에 투자하기로 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에바가 벤처기업이 가진 기술력에 관한 판단은 정확했다.
‘요새는 대박 투자처가 없는가 보지?’
―한군데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곳이 있습니다.
대박 투자처가 있다는 말에 대한의 눈이 번쩍 뜨였다.
‘어딘데?’
―일본입니다.
‘또 일본이야?’
대한은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요새 우리나라가 일본과 사이가 안 좋은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지난번에 있었던 일본의 검은 자본이 작전주를 이용해 대한민국 증권시장을 교란하는 시도 때문이었다.
물론 에바 때문에 실패로 돌아가 큰 손해를 봤고 오히려 대한은 큰 이득을 얻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들에게 받은 좋지 않은 인상이 저절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일본 정부입니다.
‘일본 정부라니?’
뭔가 규모가 엄청나게 커질 것으로 보이자 절로 관심이 기울어졌다.
―일본의 ‘양적 완화’에 대해선 잘 아시죠?
‘일본 정부는 국채를 마구 찍어내고, 일본 은행은 돈을 마구 찍어내는 거 아냐? 그 찍어낸 돈으로 국채 및 일반 기업들의 채권을 막 사들이고, 국가는 각종 사업을 진행하는 등 강제적으로 시장에 돈을 폭격하는 거지. 기업 감세는 덤이고.’
―정확합니다. 그걸 전부 기억하고 계셨군요.
‘요새는 어쩐지 기억력이 좀 좋아진 것 같아.’
―확실히 기억력이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에바의 칭찬에 대한은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단순한 놈!
‘어쨌든 그래서?’
―사실 일본의 양적 완화의 문제점은 바로 ‘독이 든 성배’라는 겁니다. 라스트 컨틴전시 플랜, 즉 최후의 비상계획이라는 거죠. 만약 이 정책이 실패하면 국가가 더는 경제에 개입할 방법이 없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일본의 GDP 대비 부채율이 250%도 넘는다고 하더군.’
―맞습니다. 그래서 지금 카드 돌려막기처럼 빚을 갚기 위해 다시 국채를 찍는 ‘차환발행(refunding)’을 하고 있습니다.
‘얘기가 너무 장황해지는 거 아냐? 요점만 말해봐!’
대한은 얘기가 너무 길어지자 중간에서 잘랐다.
―죄송합니다. 핵심부터 말씀드리면 대장성 관리들과 정치권이 은밀히 야합하는 것을 포착했습니다.
‘대장성 관리들과 정치권이?’
―네, 현재 일본은 국채를 마구 찍어내서 자국기업의 주식, 특히 우량주를 사들이는 증시부양책을 쓰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이 몇 개의 기업을 선정해 과도하게 밀어주기로 합의를 본 것입니다.
‘아! 그럼 선택된 기업의 주가가 일시적으로 폭등하겠군.’
―맞습니다. 그 과정에서 얻는 이익을 대장성 관리들과 정치권이 나눠 먹을 계획입니다.
‘우리는 그사이에 끼어서 소리소문없이 떡고물을 퍼가는 것이고.’
―그렇습니다.
대한의 입꼬리가 스윽 위로 치켜져 올라갔다.
‘크크크! 그거 재미있겠다. 당장 추진해! 안 그래도 이놈의 국제 신용불량 국가가 요새 독도 가지고 또 지랄하던데. 이렇게라도 해야 내 속이 좀 풀리겠다.’
―네, 마스터! 그런데 일본이 마음에 안 들면 그냥 원자력발전소 몇 개 터트려버릴까요?
에바는 다 좋은데 이렇게 살벌한 얘기를 너무 쉽고 다정하게 말했다.
문제는 그녀에게 자신의 말을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이다.
정말 에바가 자신같이 멀쩡한(?) 인간을 찾아와서 참 다행이었다.
만약 싸이코나 범죄자에게 갔다면 아마 지구에 대재앙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건 아니지. 가까운 일본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우리나라는 멀쩡하겠어? 지금도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때문에 방사능 오염문제가 심각한데.’
―우주탐사선 히릭스(Hilix)만 있으면 그까짓 방사능 제거는 문제도 아닙니다.
‘그럼 빨리 찾아봐!’
―열심히 찾고 있기는 한데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흔적도 없습니다.
‘거참 이상하네. 에바의 능력이라면 지구에서 그걸 못 찾을 리가 없는데. 뭐 계속 노력하다 보면 찾을 수 있겠지.’
―눼에에에!
대한은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에바의 눈치를 보며 슬쩍 말을 돌렸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벌었지?’
―비자금을 제외하고, 개인방송 수입과 각종 광고료, 종합격투기 경기 수입과 페이퍼뷰 수익 그리고 투자수익 등을 모두 합치면 963억 5천만 원 정도입니다.
정말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많은 돈이었다.
하지만 손으로 만져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점점 숫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꽤 많이 벌었네.’
―지난달에 정산된 개인방송 수입과 광고료 125억 원과 이번 달에 입금될 개인방송 수입과 광고료 230억 원을 모두 합친 금액입니다.
‘지출은?’
―현재까지 총 16억 원을 지출했습니다. 다음 달에는 12억 원이 지출될 전망입니다.
버는 돈에 비해 쓰는 돈은 정말 작았다.
아직은 부자마인드가 아닌 모양이다.
‘아직 세금은 안 냈지?’
―나눠서 내는 것보다는 한꺼번에 몰아서 내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해서 준비 중입니다. 작게는 20%에서 많게는 30% 정도 세금을 내야 할 겁니다.
‘그렇게나 많이?’
수입이 많아지자 당연히 내야 할 세금도 엄청나게 늘어났다.
보통사람(?)에게 200억에서 300억을 세금으로 내라고 한다면 아마 기절할 것이다.
그렇다고 세금포탈은 하고 싶지 않았다.
현재 유화정 회계사를 비롯해 미국과 브라질의 회계법인까지 동원해서 최대한 합법적으로 절세할 방법을 찾아서 조율하고 있었다.
수영을 마치고 나자 올리버가 다가왔다.
“대한! 오늘 헬레나 고메스랑 같이 노래를 불러서 녹음한다고 하지 않았어?”
“맞아. 정확히는 헬레나의 곡을 피처링 해주는 거야.”
“나고 같이 가면 안 될까?”
“너도 가려고?”
“응.”
올리버는 마치 불쌍한 고양이의 눈빛을 여기하고 있었다.
속으로 가소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올리버 때문에 이렇게 좋은 저택에서 공짜로 신세를 지고 있었다.
마냥 거절하는 것은 좀 껄끄러웠다.
“알았어. 까짓거 헬레나에게 전화해서 데려가도 되냐고 물어볼게.”
“고마워. 꼭 한번 구경해보고 싶었거든. 그리고 헬레나는 당연히 된다고 할 거야.”
올리버의 예언대로 헬레나는 흔쾌히 승낙했다.
나중에 대한과 올리버가 같이 외출하는 것을 보고 지지도 따라오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헬레나가 정중하게 거절했다.
올리버는 대충 그 이유를 짐작했다.
하지만 대한은 별생각 없이 지지에게 집에서 푹 쉬고 있으라며 올리버의 페라리에 올라탔다.
부아앙!
거친 엔진음을 토해내는 페라리의 뒤로 두 대의 대형 SUV가 빠르게 따라왔다.
헬레나가 사용하고 있는 녹음실은 베벌리힐스에서 가까운 할리우드에 있었다.
그래서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자 조동혁이 얼른 밖으로 나와 액션 카메라로 대한을 찍었다.
사전에 개인방송을 허락한 터라 촬영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헬레나 고메스를 만나러 녹음실에 왔습니다.”
그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며 카메라를 향해 멘트를 날렸다.
“설마 그녀가 누군지 모르는 것은 아니겠죠? 네, 맞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수이자 배우이자 톱 셀럽입니다.”
대한의 뒤를 올리버와 경호팀이 따라갔다.
그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대한을 향해 다가오는 헬레나의 모습이 보였다.
“대한!”
“헬레나!”
둘은 마치 다정한 연인처럼 정겹게 포옹했다.
“오랜만에 뵙네요.”
“정말 뉴욕에서 보고 이게 얼마 만인가요?”
“종합격투기 시합하느라 바쁘신 분이니 결국 제가 서부로 왔어요.”
“아! 이거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동부로 자주 놀러 가야겠습니다.”
헬레나의 귀여운 투정에 대한은 너스레를 떨었다.
“여러분! 소개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소녀! 헬레나 고메스입니다.”
“대한TV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전 헬레나 고메스입니다. 그런데 귀여운 소녀라는 말은 좀 안 어울리는 것 같네요. 이제 소녀라고 불리기엔 저도 나이를 먹었거든요.”
헬레나가 카메라를 보며 귀엽게 인사를 하자 채팅 창에 주르륵 비가 흘러내렸다.
[LA팝핀: 꺄악! 정말 헬레나 고메스야.]
[힙합장인: 세상에! 대한TV에서 헬레나를 볼 수 있다니.]
[NoMercy: 너무 귀엽게 생겼다.]
[CryingNut: 깨물어 주고 싶다.]
[Microshift: 참 예쁘다.]
[마하라자: 대한의 클래스 좀 보소! 국제적이다.]
[대한만세: 우리 대한이 많이 컸다.]
[화가난다: 이제는 헬레나 고메스까지! 악! 화가 난다.]
[돌고래: 미친 섭외력이다.]
[HawiianPunch: 대한! 그 능력의 끝은 어디까지인가!]
인사를 마친 헬레나는 대한의 손을 잡고 녹음실로 들어갔다.
그 사이 카메라는 녹음실 복도의 사진을 한번 훑었다.
그리고 입구로 연결되는 벽에 잔뜩 진열된 플래티넘 음반들과 상장 등을 찍었다.
“SNS로 보낸 곡 ‘Start Now’는 받았죠?”
“물론이죠. 이미 제 파트는 완벽히 숙지했어요.”
“어머! 벌써 준비를 다 해오신 거예요?”
“뭐 그런 셈이죠.”
대한의 준비성에 헬레나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전 남자친구가 왜 그녀에게 그렇게 반했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은 맑고 순수한 미소였다.
이때부터 대한과 헬레나는 오늘 녹음할 곡과 피처링에 관해 이야기꽃을 피웠다.
조동혁은 녹음실 밖에서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대한과 헬레나를 열심히 찍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림만 봐도 무척 잘 어울린다는 한 쌍이란 느낌을 받았다.
에바는 시청자들이 지루하지 않게 적당히 광고와 자료화면을 같이 내보냈다.
그러면서 대한과 헬레나의 달달한 분위기에 맞게 배경음악을 내보냈다.
덕분에 대한TV에 유입되는 구독자와 팔로워의 수가 엄청났다.
확실히 세인들의 셀럽에 관한 관심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하이!”
“요! 왓스업!”
그때 녹음실로 힙합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거대한 덩치의 흑인 둘이 들어왔다.
“대한! 여긴 존이에요. 래퍼이자 이번 앨범의 메인 프로듀서예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대한입니다.”
대한이 손을 내밀자 존은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든 손을 내밀며 힘차게 악수를 했다.
움직이는 동작 하나하나가 마치 음악이자 허세처럼 보였다.
‘이게 말로만 듣던 래퍼들의 그 스웨그인가?’
그는 존의 허세에 맞게 손을 꽉 잡아줬다.
당장 존의 눈빛이 변하면서 눈동자가 흔들렸다.
얼른 빼내는 손을 보자 검은 피부가 하얗게 변해버린 느낌이 들었다.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는 존!
대한은 싱긋 미소를 지어줬다.
“남자들끼리 화끈한 인사가 끝났다면 계속 소개할게요. 여긴 래퍼이자 레코딩 엔지니어인 마이클이예요.”
“이대한입니다.”
마이클은 이미 존이 어떻게 당했는지 봤다.
그래서 얌전히 손을 내밀고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대한은 마이클의 손을 가볍게 잡고 흔들었다.
안심한 마이클이 존을 보더니 피식 웃음을 흘렸다.
“너 이대한 선수 모르지?”
“이대한 선수라니?”
확실히 존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나도 이제 막 생각났어. 얼마 전에 페이퍼뷰로 봤던 UFC 라스베이거스 대회에서 통쾌한 KO로 승리한 미들급 종합격투기 선수잖아.”
“그래?”
그제야 존은 얼굴이 활짝 폈다.
일반인에게 당한 것이 아니라서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었다.
확실히 미국 사람은 이런 쪽에 좀 약했다.
“몰라봐서 미안합니다. 앞으로 팬 할게요.”
“하하하! 고맙습니다.”
“난 이미 이대한 선수의 팬입니다. 그날 경기 정말 시원했어요.”
종합격투기 얘기가 나오자마자 분위기가 엄청 부드러워졌다.
헬레나는 미소를 지으며 세 남자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나도 페이퍼뷰로 대한의 경기 봤어요. 사실 다칠까 봐 걱정도 많이 했어요.”
“그래요?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생각보다 대한의 경기를 본 사람이 많았다.
그는 괜히 미국에서 페이퍼뷰를 파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