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런웨이>
둘은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나와 주차장으로 갔다.
이미 경호원들이 출발준비를 마쳐놓고 있었다.
“클로징 할게요.”
“네, 보스.”
동혁도 미국물을 좀 먹는지 이제는 사장님이라는 말보단 보스라는 말을 더 자주 쓰기 시작했다.
“여러분! 유니버셜 스튜디오 재미있게 구경하셨나요? 내일은 하이스를 만나러 뉴욕으로 갈 겁니다.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입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대한이 손을 흔들자 올리버가 다가와 은근슬쩍 얼굴을 들이밀었다.
정말 이놈은 관종이 맞는 것 같다.
카메라를 끄고 장비를 차에 실었다.
대한과 올리버는 페라리를 타고 먼저 출발했다.
곧이어 두 대의 대형 SUV 차량이 앞뒤로 따라붙었다.
그때 에바가 대한을 불렀다.
―마스터!
‘응?’
―모니카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모니카에게?’
대한은 깜짝 놀랐다.
집에 간다고 출국하고 나서 그동안 깜깜무소식이었다.
물론 가끔 개인방송을 하긴 했다.
그러나 장소가 그녀의 방이나 정원으로 보였다.
‘전화번호를 알지는 못할 테고. 이메일인가?’
―그렇습니다. 모니카가 자신의 전화번호를 남겨놓았습니다.
‘그럼 번호 줘봐! 한번 걸어볼게.’
대한은 에바에게 그녀의 전화번호를 받았다.
그런 다음, 하이스에게 받은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괜히 하이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몇 번 전화벨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다 익숙한 목소리가 나왔다.
―여보세요.
“모니카!”
―아! 대한.
대한의 목소리를 듣자 모니카의 목소리가 한층 톤이 올라갔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저는 걱정해주신 덕분에 잘 지냈어요.
“왜 이렇게 연락을 안 했어요?”
―집에 일이 생겨서 좀 바빴어요. 미안해요.
“그렇구나. 그런데 어쩐 일로 전화번호를 다 남겼어요?”
대한의 목소리가 살짝 토라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나 보다.
모니카는 미안한 마음에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대한과 통화하고 싶어서 그랬어요. 계속 외국에 있었잖아요.
생각해보니 모니카의 말도 맞았다.
계속 브라질에 있었으니 전화통화를 하기는 곤란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게 연락을 안 한 절대적인 이유가 될 수는 없었다.
“까톡으로 하면 되잖아요.”
―헤헤! 그 생각을 못 했네요.
모니카는 그제야 자신의 머리를 한 대 쳤다.
대한은 그녀의 바뀐 목소리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어쨌든 이제 마음껏 전화해요. 새로 스마트폰도 생겼으니까.”
―네, 그렇게 할게요. 그런데 계속 서부에 있을 거예요?
“아니요. 내일 뉴욕으로 가요.”
―뉴욕으로요?
“하이스라고 브라질에서 만난 친구가 있는데 이번에 뉴욕패션쇼에 데뷔해요. 거기에 초청받았어요.”
―아!
모니카는 짧게 감탄사를 발했다.
그녀도 이미 하이스는 잘 알고 있었다.
브라질에서 있을 때!
거의 매일 빠지지 않고 대한의 개인방송에 나오는데 모를 리가 없었다.
모니카는 갑자기 심기가 불편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바로 드러내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뉴욕에 오면 잠깐 볼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그럼 뉴욕에 와서 전화해 주세요.
“그럴게요.”
대한은 쿨하게 대답했다.
모니카와 전화통화를 마치고 나자 올리버가 은근히 물었다.
“모니카?”
“응.”
“하이스에게 경쟁자가 붙었군.”
“뭔 개소리야?”
“아니야. 아무것도.”
올리버는 모른 척했지만 이미 그가 한 얘기는 다 들은 상태였다.
대한은 베벌리힐스로 들어가는 차 안에서 모니카의 얼굴을 떠올렸다.
삼단 같은 검은 머리카락!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갈색의 깊은 눈동자!
오뚝한 코와 빛나는 붉은 입술!
자체발광을 하는 듯한 하얀 피부!
자신을 바라보며 짓는 그녀의 미소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왜 집에 가서 밖으로 나오질 않는 걸까?
대한은 오늘따라 모니카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참 궁금했다.
* * *
뉴욕 맨해튼, 스카이라이트 클락슨 스퀘어(Skylight Clarkson Sq).
쿵! 쿠쿵! 쿵쿵!
신나는 비트에 맞춰 런웨이를 걷는 모델들의 발걸음이 경쾌하다.
수백 명의 패션관계자와 셀럽 그리고 유명인사들!
이들의 시선이 온통 한곳으로 쏠렸다.
“저기 나온다.”
그때 귓전으로 올리버의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봤어.”
대한은 짧게 대답하고 이제 막 무대를 나오는 하이스 올리베이라를 쳐다봤다.
“와우!”
“뭐야? 진짜 모델 같네.”
대한은 감탄사를 터트렸다.
올리버도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짧은 원피스를 입고 당당하게 걸어오는 하이스!
워킹이나 포즈, 눈빛 등이 그냥 딱 모델, 아니 슈퍼모델 그 자체였다.
‘얘도 저렇게 꾸며 놓으니까 정말 볼만하구나.’
―그 정도가 아닙니다. 갤러리1의 대부분의 시선이 지금 하이스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패션쇼를 하면 옷을 봐야지. 왜 모델을 보냐?’
―이곳에는 경쟁업체나 모델 에이전시, 패션계의 거장들도 많이 모여있습니다. 좋은 모델이 있다면 당연히 먼저 선점해서 쓰려고 하는 겁니다.
‘음! 그 말은 하이스가 이제 확실히 뜰 거란 말이네.’
―그렇습니다.
에바는 하이스가 모델로 뜨게 될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 눈치였다.
하긴 그의 눈에도 하이스는 정말 모델이란 직업에 너무 잘 어울렸다.
아니, 그냥 타고난 슈퍼모델이었다.
이번 뉴욕패션쇼는 얼마 전 끝난 뉴욕패션위크의 축소판이었다.
미처 참석하지 못한 패션업체와 뒤늦게 런칭된 브랜드들이 모여 그들만의 축제를 열었다.
그렇다고 매스컴의 관심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름만 대도 알만한 슈퍼모델들과 유명 메이커들이 하는 패션쇼이니 유명인사들과 셀럽들이 많이 참석했다.
그런 사실만으로도 이미 뉴욕패션쇼는 반쯤 성공이라고 할 만했다.
“다나 캐렌, 켈빈 클레임, 탕 포드, 랄프 로렝, 야나 수이 등 유명 브랜드도 많네.”
“하이스가 이런 패션쇼에 모델로 참가하다니 참 놀랍다.”
“걔는 원래 모델 말고는 할 게 없잖아.”
“하이스가 모델에 최적화된 몸이긴 하지.”
올리버와 대한은 런웨이를 보며 작게 속삭였다.
그들의 옆에는 조동혁이 열심히 카메라로 런웨이를 찍고 있었다.
사전에 허락을 받아 대한TV를 통해 현재 전 세계로 생중계를 하고 있었다.
뉴욕패션쇼 주최 측도 두 손을 들고 환영을 했다.
유티비만 2,500만 명의 구독자를 가지고 있는 대한TV다.
모든 플랫폼의 구독자와 팔로워 수까지 합치면 더 엄청나다.
아무리 하이패션이지만 대중들의 관심이 높게 유지되는 것은 브랜드 가치를 올리는 데도 아주 좋았다.
괜히 대한과 올리버가 패션과는 1도 관계없는데도 런웨이를 정면에서 볼 수 있는 명당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덕분에 패션쇼를 보러온 많은 셀럽과 유명인사들이 대한과 올리버에게 관심을 보였다.
“아참! 이것 받아라.”
“뭐야?”
“캘리포니아 운전면허증이야.”
“이걸 왜 지금 주는데?”
“내가 준다는 것을 깜빡 잊어버렸어.”
“거참 잘도 깜빡거린다. 치매냐?”
대한은 대충 한번 훑어보고 주머니에 넣었다.
지금은 패션쇼를 보는 게 중요했다.
그러나 패알못 올리버는 좀 지겨워진 모양이었다.
조금 전에 란제리 패션쇼를 볼 때는 눈에서 불이 나올 것만 같았는데 말이다.
그러다가 관람석을 보고는 눈을 번뜩였다.
“헬레나 고메스다. 마리아나 그란데도 있어. 테일러 스위트에다 케이트 베킨세인, 엠마 왓손까지.”
“뭘 그렇게 중얼거려?”
“너 저들이 누군지 몰라?”
“당연히 알지. 저렇게 유명한 가수와 배우들을 어떻게 모르겠어.”
“그런데 왜 모른 척해?”
“이 바보야! 우리도 저들의 눈에는 유명인사야.”
“그런가?”
대한의 말에 올리버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직 자신이 유명인사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인간이었다.
그러다가 올리버의 눈이 런웨이를 보게 됐다.
올리버는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눈을 부릅떴다.
“대박! 얘네들이 왜 이렇게 한꺼번에 나오냐?”
“누군데 그래?”
올리버의 시선을 따라 대한이 런웨이로 눈을 돌렸다.
거기에는 아름다운 모델들이 차례로 나와 자신의 맵시를 서로 뽐내고 있었다.
“지지 하이디와 벨라 하이디 자매다. 거기에다 켄달 제인과 카일리 제인 자매까지 있어. 이야아! 뉴욕패션쇼에서 돈 많이 썼구나. 이들을 한자리에서 보게 되다니.”
“아!”
대한은 그제야 어디선가 많이 봤던 셀럽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할리우드를 점령한 셀러브리티 자매 군단입니다. 먼저 하이디 자매는 세계 곳곳에서 런웨이를 질주하는 슈퍼모델입니다. 세계적인 패션 잡지 커버 모델로 자주 등장하고 있고 이 시대의 가장 ‘핫’한 모델들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유명한 사람들인지는 몰랐네.’
그는 에바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런웨이에 서 있는 모델들을 다시 보게 됐다.
―켄달 제인은 킴 카다시피의 이복동생으로 세계적인 패션 잡지에 여러 번 표지 모델로 등장했습니다. 세계적인 유명 브랜드들의 패션쇼 런웨이를 질주하고 있습니다. 켄달 제인의 스트리트 패션은 전 세계 여성들의 중요 관심사이며 특히 10대 소녀들은 그녀가 입는 옷은 무엇이든 따라 입기도 하는 워너비 스타이기도 합니다.
‘설명이 긴 것을 보니 유명하긴 유명한가 보군.’
―미국 사교계의 핫 이슈 진원지인 카다시피·제인 가문의 막내 카일리 제너도 만만치 않습니다. 자신의 뷰티 라인을 런칭하여 연거푸 매진을 기록해서 전 세계 뷰티업계의 큰 손으로 부상했습니다. 또한, 1억 5천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려 소셜 미디어의 여왕이라고 불립니다.
‘1억5천만 명!’
다른 것은 몰라도 팔로워가 1억 5천만 명이라는 것에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2,500만 명의 유티버 구독자를 거느린 자신과도 비교할 수 없는 넘사벽이었다.
이러니 걸어 다니는 아이콘이요, 워너비 스타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자매가 창업한 패션 브랜드 ‘켄달·카일리’도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그들이 같이 디자인한 옷과 수영복, 선글라스 등은 물건이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가 높습니다.
‘그런데 에바가 왜 이렇게 이들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을 하는 거지?’
대한의 날카로운 질문에 에바는 하이스의 머리 위에 화살표를 띄웠다.
―이번에 하이스 올리베이라가 카일리 제인과 친구가 됐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자주 부딪칠 것 같아. 미리 정보를 드린 것뿐입니다.
‘그렇구나.’
고개는 끄덕였지만, 여전히 의문은 가시지 않았다.
하이스라면 모르지만, 자신과 슈퍼모델은 접점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찌 됐든 올리버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런웨이에 집중해서 주변이 좀 조용해졌다.
덕분에 대한은 느긋하게 패션쇼를 즐길 수 있게 됐다.
가만히 살펴보니 이제 자신도 패션에 좀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았다.
지금 그가 입고 있는 옷은 전부 올리버의 옷장에 있던 것이다.
뉴욕패션쇼에 간다고 하자 집사가 베벌리힐스의 코디네이터를 불러서 올리버와 대한을 직접 코디하게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자신이 입고 있는 지금의 이 파격적인 캐주얼 정장은 절대로 입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대한은 듣지 못했다.
뉴욕패션쇼에 참석한 패션관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패션쇼에 참가한 남자 셀럽 중 대한의 옷맵시가 가장 좋다고 했다는 것을 말이다.
짝짝짝짝!
런웨이가 끝나자 참석했던 모든 모델이 몰려나왔다.
중앙에서 이상한 옷을 입고 있는 디자이너가 인사를 했다.
그러자 모두 다시 한번 힘껏 손뼉을 쳤다.
파파팟! 파파파파팟!
디자이너와 모델들을 향해 일제히 플래시가 터졌다.
대한과 올리버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둘은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는 부지런히 손뼉을 쳤다.
하이스가 대한을 보더니 활짝 웃음을 지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카메라 플래시가 미친 듯이 터졌다.
확실히 하이스에 대한 반응이 굉장히 좋은 것 같았다.
당장 주변의 패션관계자들과 셀럽들의 반응만 봐도 금세 알 수 있었다.
대한은 괜히 자신이 다 뿌듯해지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패션쇼가 끝나자 모델들이 일제히 무대 뒤로 물러갔다.
디자이너는 진즉에 들어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남아 있던 셀럽들이 서로 아는 척을 하면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대한과 올리버는 동혁이 카메라와 삼각대를 정리하기만 기다렸다.
그때 세계적인 싱어송라이터 가수인 테일러 스위트가 올리버를 향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