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계약>
“독점은 안 됩니다.”
“그럼 저희도 어쩔 수 없습니다.”
“서로 원하는 게 다르니 이쯤에서 협상은 관두죠.”
대한의 말에 UFC 계약팀장 딜런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젠장! 이곳으로 오지 말고 밖에서 만났어야 했는데.’
딜런은 운동장만 한 넓은 거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누워서 자도 될 것 같은 커다란 소파에 느긋하게 앉은 대한!
그의 옆에서 쥬스를 마시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올리버!
아무리 봐도 이들은 아쉬운 게 없어 보였다.
거기에다 지금 자신의 앞에는 대한을 도와주는 변호사가 둘이나 포진해있었다.
“바쁘신데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대한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딜런에게 말했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올리버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협상 결렬이지?”
“응. 이제 다른 팀을 만나보자.”
“그래.”
대한이 천천히 일어나자 딜런이 다급하게 말했다.
“아니 이거 왜 이러십니까? 진정하시고 잠시만 앉아주세요.”
“왜요? 우리에게 더할 얘기가 남았나요?”
“원래 협상이라는 게 서로 밀고 당기고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 잠시만 앉아주세요.”
“그건 딜런의 협상 방식이고요. 계속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을 거라면 그만 돌아가 주세요.”
올리버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아주 싸늘하게 축객령을 내렸다.
카리스마가 폭발하는 올리버의 기세에 딜런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그때, 호세가 옆으로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벨라코어 FC의 계약팀이 도착했습니다. 어디로 모실까요?”
“벨라코어F C? 아니 이러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호세의 말이 끝나자마자 딜런은 대경실색한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다.
“남의 집에서 좀 조용히 하시죠.”
“거참 매너가 없으시네. 협상 끝났으면 이만 돌아가시라니까요.”
대한과 올리버는 연이어 딜런을 타박했다.
그러나 딜런은 지금 자존심이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이들과의 계약이 중요했다.
만약 이대로 저택에서 쫓겨나기라도 한다면!
아마 자신의 커리어에 오점이 생길 게 분명했다.
특히 UFC에서 주목하는 유망주가 UFC가 아닌 벨라코어 FC에 나온다면 그 뒤에 일어날 일은 안 봐도 뻔했다.
“아닙니다. 협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모두 수용하겠습니다. 원하는 것 전부 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조금 전에는 안된다고 해놓고 갑자기 이렇게 나오면 우리가 어떻게 당신을 믿습니까?”
“죄송합니다. 조금 전은 제가 실수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딜런은 고개를 팍 숙이면서까지 저자세로 나왔다.
벨라코어 FC에서 계약팀이 왔다는 말에 바로 꼬랑지를 내린 것이다.
UFC가 종합격투기 업계를 싹쓸이 하다시피한 것은 맞다.
하지만 자체 방송국까지 가지고 있는 벨라코어 FC가 경쟁자로 나선 이상!
어설프게 상대할 수는 없었다.
“일단 계약에 관해서는 우리 변호사들과 좀 더 얘기해보세요. 저희는 손님을 맞으러 잠깐 자리를 비우겠습니다.”
“아!”
딜런은 조금 전 배짱을 튕겼던 것을 크게 후회했다.
대한과 올리버 모두 스타 기근으로 애먹고 있는 UFC에서 주목하는 유망주였다.
이미 UFC 브라질 대회에서, 각각 KO로 시원하게 승리를 거둔 상태라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었다.
거기에다 대한은 대한TV라는 채널을 통해 구독자와 팔로워를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 명이나 가지고 있는 인터넷 스타였다.
UFC 브라질 경기와 벨라토어 FC 브라질 경기에서 이미 대한의 지명도와 티켓파워는 증명된 셈이었다.
UFC 최상층부에서 크나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이 황금 거위를 딜런이 날려 보내기라도 한다면 아마 자신을 말려 죽이려고 할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대한과 올리버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거기에는 벨라코어 FC에서 특명을 받고 온 인상 좋은 후덕한 아저씨와 젊은 정장 사내 둘이 서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이대한 선수! 올리버 르만 선수!”
“어서 오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벨라코어 FC에서 나온 계약팀장 어네스트입니다.”
“이름이 참 좋네요.”
“감사합니다.”
대한과 올리버는 차례로 어네스트와 악수를 했다.
그들은 창가에 붙은 거실로 가서 소파에 앉았다.
어네스트가 데려온 직원 둘은 멀찍이 떨어진 한적한 소파에 앉았다.
“이렇게 불러주셔서 고맙습니다.”
“천만에요.”
“좋은 방향으로 계약이 진행됐으면 좋겠습니다.”
“그건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양측은 기대와 미소로 대화를 시작했다.
“미리 전화로 대충 얘기가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예, 저희도 적극적으로 계약을 성사시키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원하시는 대로 모두 맞춰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럼 페이퍼뷰(PPV) 수익에서 3분의 1을 주시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또한, 이대한 선수 경기에 한해서 직접 카메라로 찍은 동영상을 대한TV 채널에 올리는 것도 수용하기로 했습니다.”
이상하게 UFC 계약팀장 딜런과는 달리 벨라코어 FC 팀장 어네스트는 얘기가 수월했다.
“이제 대전료와 승리 수당, 스폰서 후원금과 베스트 매치 상금을 조정하면 되겠군요.”
“그건 15만 달러로 합의 본 것으로 아는데요.”
어네스트의 말에 대한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거야 대전료만 그렇죠. 승리 수당, 스폰서 후원금, 베스트 매치 상금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 말도 못 들었습니다. 그걸 지급할 생각이 없다면 대전료는 최소 30만 달러부터 시작한다고 말씀드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승리 수당을 대전료에 매치시켜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스폰서 후원금은 최대가 10만 달러입니다. 그리고 베스트 매치 상금도 5만 달러 이상은 곤란합니다.”
“그럼 대전료를 20만 달러로 하고 승리 수당도 20만 달러, 스폰서 후원금 10만 달러에 베스트 매치 상금 5만 달러로 하시죠.”
“음, 좋습니다.”
생각보다 쉽게 어네스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누구와 어디서 시합을 가질지 결정됐습니까?”
“한 달 뒤, 스웨덴의 라이트헤비급 선수인 카알 알브렉슨과 매치를 잡아놓았습니다.”
“그럼 장소만 남았군요.”
“로스앤젤레스 잉글우드 더 포럼(The Forum)입니다. 수용 인원이 17,505명입니다.”
“좋습니다. 특별한 요구사항이 없다면 변호사를 불러서 계약서를 작성하시지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한과 올리버는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어네스트도 악수를 하면서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위층에 UFC 계약팀장이 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 것치고는 계약이 물 흐르듯 진행됐다.
모르긴 해도 그쪽이 돈은 더 많이 내줄 것이다.
올리버는 변호사를 불러서 계약서를 작성했다.
그 사이!
대한과 올리버는 다시 위층으로 올라갔다.
남아있던 나머지 한 명의 변호사가 그에게 그때까지 협상한 것을 보여줬다.
“UFC는 2주 뒤 라스베이거스 T-모바일 아레나에서 열리는 대회의 기본수당으로 25만 달러에 승리 수당 25만 달러를 제시했습니다. 스폰서 후원금 10만 달러, 오늘의 KO 보너스 10만 달러, 최고의 퍼포먼스 보너스를 10만 달러로 책정됐습니다.”
“페이퍼뷰는요?”
“수익의 3분의 1을 주기로 했습니다.”
“생각보다 좀 실망스러운 액수네요.”
대한의 말에 딜런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얼마를 원하십니까? 맞춰드리겠습니다.”
“기본수당이 100만 달러는 돼야지요.”
“100만 달러요? 그, 그건 곤란합니다.”
무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딜런이 아까 자신들에게 저지른 짓이 있으니 이렇게 한번 질러본 것이다.
“그럼 얼마로 맞춰주겠다는 말입니까?”
“30만, 아니 35만으로 맞춰주겠습니다.”
“찔끔찔끔 올리지 말고 확실하게 최대치를 말하세요.”
“40만이 최대입니다. 정말입니다.”
대한은 가만히 딜런을 바라봤다.
‘에바!’
―진실입니다.
‘에이! 좀 더 뜯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에바의 말에 대한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좋습니다. 앞으로 UFC와 좋은 인연이 되길 바랍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독점은 역시 힘들겠죠?”
어떻게든 독점을 하려는 의도가 강했다.
하지만 대한은 챔피언전도 아닌데 굳이 UFC 한곳에 목을 매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벨라코어 FC도 있고 돈 잘 주는 일본의 라이징1 대회도 있었다.
앞으로 종합격투기를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중소단체도 무수히 많았다.
물론 다 나갈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소한 UFC나 벨라코어 FC 급으로 대전료와 승리 수당 및 페이퍼뷰를 주는 대회는 참가할 생각이 있었다.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UFC 기본수당 40만 달러, 승리 수당 40만 달러, 스폰서 후원금 20만 달러, 오늘의 KO 보너스 10만 달러, 최고의 퍼포먼스 보너스 10만 달러 그리고 페이퍼뷰 수익금 3분의 1 지급입니다.”
“스폰서 후원금은 10만 달러로 한다고.”
“쓰읍!”
대한은 은근슬쩍 스폰서 후원금을 10만 달러 올려서 20만 달러로 만들었다.
딜런은 그걸 지적하려다가 그의 차가운 눈빛을 보더니 곧바로 태세전환을 했다.
“아, 아닙니다. 기꺼이 20만 달러로 맞춰드리겠습니다.”
“그럼 이대로 계약서를 작성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십시오.”
옆에서 변호사가 열심히 계약서를 작성했다.
대한은 딜런을 바로 보며 물었다.
“2주밖에 남지 않은 상황인데 광고는 잘되고 있습니까?”
“그거야 이대한 선수가 많이 도와주셔야지요.”
“어떻게요?”
“대한TV가 있지 않습니까?”
“설마 공짜로 하겠다는 못된 심보는 아니시겠죠?”
“크흠, 광고팀과 한번 의논해보겠습니다.”
“꼭 그러셔야 할 겁니다.”
그는 딜런의 하는 짓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계약팀장이라는 자가 이 정도면 UFC의 장래도 그리 밝지만은 않아 보였다.
“제 대전상대는 누구입니까?”
“에드먼 샤바잔입니다.”
“지난번에는 안토니 까를로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안토니 까를로스 선수에게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서 급하게 대전상대가 바뀌었습니다.”
대한과 올리버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스터! 거짓말입니다. UFC에서 에드먼 샤바잔 선수를 확실히 키워주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전적이 10전 전승입니다. KO가 8번에 1번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입식 타격에 아주 강점을 지닌 선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나는 뭐야? 버리는 패야?’
―에드먼 샤바잔 선수를 이기면 오히려 UFC에서 확실하게 밀어줄 가능성이 크겠죠.
‘흥! 어느 쪽이든 UFC에서 손해날 일은 없겠군.’
그는 에바의 말을 듣고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어차피 블라인드 파이트가 된 상황이다.
자신과 싸울 선수 또한 아직 누구와 싸우게 될지 모르니 공평하다면 공평할 수도 있었다.
“준비됐습니다.”
“그럼 서로 계약서에 서명하죠.”
대한과 UFC의 계약팀장 딜런은 변호사가 만든 계약서에 각각 서명했다.
그다음엔 벨라코어 FC 계약팀장 어네스트와 함께 계약을 맺었다.
확실히 UFC가 벨라코어 FC보다는 돈을 많이 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곳으로 몰빵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
종합격투기 판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한 UFC를 더 키워주는 것은 영 마뜩잖았다.
뭐든지 경쟁이 있는 것이 좋다.
독점은 반드시 폐해를 낳게 된다.
“수고했다.”
“내가 뭐 한 게 있나? 변호사들이 다 한 거지.”
“변호사 비용은 내가 낼게.”
“아니야. 어차피 우리 회사 로펌에서 일하는 변호사라서 따로 돈 안 줘도 돼.”
“그래도 수고를 했는데 그냥 넘어가면 안 되는 거 아냐?”
“내가 따로 수당 주라고 얘기해놓을게. 자꾸 돈 따로 주면 버릇 나빠져.”
올리버가 하도 강력하게 말해서 대한도 더는 주장할 수 없었다.
덕분에 돈이 굳었으니 아주 좋은 일이다.
“내가 네 경호원 구해놨는데 한번 볼래?”
“벌써?”
“응, 우리 경호팀에 들어오려고 했던 친구들인데 너무 늦게 연락이 닿아서 자리가 없었어. 그래서 너만 좋다면 만나보고 결정해!”
대한은 경호원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앞으로 돈을 벌면 벌수록 경호원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될 것이다.
“내가 경호팀을 꾸린다면 경호원이 몇 명이나 필요할까?”
“당장은 2명씩 4명이면 충분하지 않겠어? 둘씩 돌아가면서 경호하면 될 거야. 더 필요하면 나중에 인원을 보강하면 되겠지.”
경호원 4명 정도면 대한에게도 큰 부담이 될 수준은 아니었다.
“월급은 얼마나 줘야 하지?”
“능력에 따라 천차만별이야. CIA, FBI, NSA 출신 경호원이 연봉 8만에서 10만 달러 정도로 가장 많이 받고, 델타포스나 네이비씰 등 특수부대 출신 경호원이 6만에서 8만 달러 선으로 다음이야. 물론 이건 전적으로 고용주의 마음이긴 해.”
“어느 쪽이 경호원으로 좋아?”
“그거야 전적으로 고용주 취향이지. 난 CIA, FBI, NSA 현장 요원 출신 경호원을 선호하는 편이야.”
“알겠어. 참고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