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전설의 선수>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수십만 달러를 벌어들였으니 좋을 만도 했다.
이런 맛에 먹방을 하는가보다.
아랫배가 묵직한 것이 화장실 한번 다녀와야 할 것 같았다.
“먹방은 여기까지 하고 올리버 집에 가서 다시 뵙겠습니다. 광고 보고 계시면 금방 돌아올게요.”
그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남자들은 다 같이 손 이모티콘을 올렸다.
여자들은 다들 하트 이모티콘으로 도배했다.
점점 대한의 멋짐에 빠지는 여성 팬들이 증가하는 추세였다.
‘에바’
―넵, 마스터! 광고를 내보내고 있습니다.
대한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토하는 거 아니야?”
“하하하! 이 정도로 내가 토하겠냐?”
올리버의 걱정에 그는 한마디로 일축했다.
화장실로 가보니 무슨 서재처럼 만들어놓았다.
널찍하고 깨끗한 곳에서 시원하게 일을 처리한 그는 깨끗이 손을 씻고 나왔다.
테이블로 돌아오자 올리버와 호세만 남아있었다.
나머지는 다들 차에서 대기 중이었다.
“얼굴을 보니 토한 것은 아니군.”
“뭔 개소리야? 네가 토하고 싶은 것은 아니고?”
“그 정도는 아냐! 어쨌든 이제 집으로 가자.”
“네 집이 어디라고 했지?”
“베벌리힐스!”
“올! 좋은 곳이군.”
대한은 올리버를 향해 엄지 척을 선사했다.
베벌리힐스는 너무나도 유명한 미국의 부촌이다.
영화나 TV 드라마에서만 봐왔던 곳으로 간다니 기대가 됐다.
바아아앙! 부우웅! 부우웅!
올리버의 페라리가 움직이자 두 대의 대형 SUV 차량도 동시에 움직였다.
샌타모니카에서 베벌리힐스는 차로 1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조수석에 탄 대한은 느긋하게 몸을 뒤로 기대고 창밖을 쳐다봤다.
바둑판처럼 나눈 구획과 쭉 뻗은 넓은 도로가 시원하게 펼쳐졌다.
샌타모니카 대로를 질주한 페라리!
어느새 베벌리힐스로 들어왔다.
확실히 동네가 달라서 그런지 분위기가 일변했다.
“여기가 그 유명한 로데오 드라이브야!”
올리버는 좌회전하면서 대한에게 넌지시 말했다.
일명 로데오 거리라는 이름으로 꽤 알려진 곳이었다.
그래서 그도 길 이름 정도는 들어본 적이 있었다.
“대저택과 함께 고급 부티크가 늘어선 곳으로 유명하고, 관광 명소이기도 하잖아.”
“어! 알고 있었네.”
올리버는 대한을 보며 대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주먹을 부르는 깐족거림이었다.
그때 대한의 눈에 어디선가 많이 본 한국 사람이 보였다.
“잠깐만 서봐!”
“왜?”
“좀 서라면서라!”
“알았어.”
대한은 창문을 내리고 도로를 홀로 걷고 있는 키 작은 사내를 쳐다봤다.
‘에바!’
―네, 마스터!
‘이 사람 누구지?’
―지금 보고 계신 남자는 레슬링 경량급의 전설적인 선수로 48kg, 54kg 그레코 로만형에서 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심권오 선수입니다.
‘맞다. 심권오 선수다. 어쩐지 낯이 익다고 생각했어.’
―국제레슬링연맹에서 발표하는 레슬링 명예의 전당에 한국인 최초로 입회하는 영광을 안은 선수이기도 합니다.
‘재능 레슬링을 얻으려면 이보다 더 좋은 사람은 없겠지?’
―네, 그렇습니다.
대한은 에바와 짧은 대화를 마치고 곧바로 차에서 내렸다.
“올리버! 잠깐만 기다려!”
“어딜가는 거야?”
“잠깐이면 돼!”
그는 곧바로 뛰어가 심권오를 붙잡았다.
157cm의 작은 키에 아직도 싱글 라이프로 솔로들의 심금을 울린 사내!
심권오는 대한이 길을 막자 흠칫 놀라며 그를 올려다봤다.
“뭡니까?”
“심권오 선수죠? 저 팬입니다.”
“아! 그러세요.”
처음에는 불퉁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팬이라는 말에 방긋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반갑습니다. 저는 이대한이라고 합니다.”
“심권오입니다. 그런데 낯이 많이 익네요.”
심권오는 대한이 내민 손을 잡고 악수를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하하! 제가 U-17 브라질 월드컵에 득점왕을 한 축구선수라서 그럴 겁니다.”
“맞다. 이대한 선수!”
대한의 자기소개에 심권오는 그제야 기억을 떠올렸다.
“브라질에 있다고 하는 것 같던데 여기는 어쩐 일입니까?”
“볼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그러는 심권오 선수는 여기서 혼자 뭐 하고 있습니까?”
“그게 방송 찍으러 왔다가 누구 선물을 좀 사느라고…….”
심권오는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대한은 대충 상황이 짐작갔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대신 사인을 해주시고 같이 사진도 좀 찍어주세요.”
“무, 물론이죠.”
그의 제안에 심권오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에바!’
―재능흡수 대상자 심권오의 DNA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거 말고 지금 심권오 선수의 고민이 뭔지 알아봐!’
―최대 재능은 역시 레슬링(SSS)으로… 네?
에바는 대답을 하다말고 말을 멈췄다.
‘재능 레슬링(SSS)은 당연히 흡수하는 것이고, 당장 심권오 선수가 누구에게 선물을 주려고 하는 건지 좀 알아봐달라고.’
―네, 마스터. 즉시 알아보겠습니다. 그리고 재능 레슬링(SSS)을 흡수합니다.
에바는 대답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심권오의 스마트폰을 통해 신상을 털기 시작했다.
아니 현재 심권오가 만나고 있는 여자에 대해 알아봤다.
그사이!
대한은 올리버를 손짓해서 불렀다.
“제 친구인데 아주 부자입니다. 그래서 명품에 대해서는 빠삭합니다.”
“아, 안녕하세요. 심권오입니다.”
“올리버입니다.”
올리버는 느닷없이 대한이 키 작은 중년 사내를 소개하는데도 놀라지 않았다.
그저 예의 그 느끼한 웃음을 지으며 악수를 했다.
대한은 빠르게 심권오에 대해 설명했다.
동시에 올리버의 스마트폰을 뺏어 심권오 선수에 대해 검색해줬다.
올리버는 인터넷을 통해 심권오가 누군지 알게 되자 함박웃음을 지었다.
“오! 전설적인 레슬링 선수셨구나. 이거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에?”
과장된 몸짓으로 올리버가 다시 심권오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심권오는 영어로 하는 올리버의 말을 못 알아듣고 대한을 쳐다보며 눈을 크게 떴다.
“이 친구가 전설적인 레슬링 선수를 만나게 돼서 영광이랍니다.”
“아아! 네.”
그제야 심권오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우리 같이 커피라도 한잔 하죠. 제가 사겠습니다.”
“전 괜찮은데요.”
“아닙니다. 제게 심권오 선수를 대접할 수 있는 영광을 주십시오.”
“아! 이것 참!”
대한의 아부성 짙은 말에 심권오도 못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올리버도 그의 제안에 좋다고 따라왔다.
셋은 바로 앞에 있는 커피숍에 들어갔다.
심권오는 아메리카노와 달달한 케익 하나를 시켜줬다.
올리버는 배가 불러서 천연탄산수를 마셨다.
대한도 천연탄산수에다 얼음을 동동 띄워서 마셨다.
“자! 건배합시다.”
“건배!”
“치어스!”
대한의 막무가내식 제안에 셋은 음료수로 건배를 했다.
하지만 재미있다고 다들 낄낄댔다.
잠시 얘기를 나누고 있자 에바가 술술 정보를 풀었다.
―심권오를 비롯한 연예인들이 현재 예능을 찍으러 베벌리힐스에 와있습니다.
‘심권오 선수가 누군가 마음에 들어하는 여자가 있나보군.’
―장화사라는 한물 간 여배우입니다.
대한은 에바의 말에서 뭔가 부정적인 뉘앙스를 읽었다.
‘혹시 뭔가 문제가 있나?’
―장화사라는 여자는 현재 거액의 빚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사귀고 있던 남자친구와 사업을 벌였다가 쫄딱 망했습니다. 심권오에게 접근하는 이유도 거액의 빚을 해결하려는 목적입니다.
‘이런 젠장! 이 나이가 되도록 솔로로 살다가 이제 겨우 마음에 든 여자를 만났는데 꽃뱀이었네.’
―어떻게 할까요?
‘예능 PD와 같이 온 연예인들 신상을 파악해서 장화사에 대한 정보를 뿌려줘! 물론 남자친구에 대한 자세한 정보도 같이 부탁해!’
―알겠습니다.
대한은 심권오 선수를 보자 참 마음이 아팠다.
안되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했다.
정말 심권오 선수가 딱 그짝이었다.
“같이 사진 한 장 찍을까요?”
“좋습니다.”
심권오는 친근하게 다가오는 대한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사인도 해주고 다정한 포즈로 같이 사진도 찍었다.
“사시려고 하는 선물의 종류가 뭡니까?”
“아니 됐습니다. 그건 그냥 제가 알아서 할게요.”
“좋아하는 여자라도 생긴 표정이네요.”
“네에? 아, 그건 아닙니다.”
아니라고 하면서 얼굴은 벌겋게 붉어졌다.
대한은 짖궂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련히 알아서 잘 하시겠지만 그래도 한번 더 살펴보세요. 그런 다음에 마음이 선물을 하시는 게 좋겠어요. 명품을 주면 싫어할 여자는 없겠지만 자신을 진짜 좋아하는지는 알 수 없잖아요.”
“네에.”
심권오는 의외로 대한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아무래도 모태솔라라는 소문이 맞는 것 같았다.
―마스터! 말씀하신대로 조치를 취했습니다. PD를 비롯해서 같이 온 연예인들에게 모두 문자와 사진 그리고 동영상을 보냈습니다.
‘수고했어.’
대한은 에바의 일처리에 만족했다.
그는 심권오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뇌리를 울리는 공명음이 들리자 의자에서 일어났다.
재능 레슬링(SSS)을 흡수했다는 에바의 말에 대한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심권오 선수! 오늘 정말 고마웠습니다.”
“천만에요. 이렇게 절 알아봐주시니 제가 더 기쁘고 고맙죠.”
“나중에 한국에서 꼭 한번 뵈어요.”
“네, 연락주세요.”
대한은 심권오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올리버도 심권오와 악수를 나누고 손을 흔들었다.
왠지 돌아가는 심권오의 발걸음에 힘이 넘치는 것 같았다.
물론 가보면 아마 어깨가 축 쳐지는 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한국에는 정말 인재가 많구나.”
“워낙 뛰어난 민족이라서 그래.”
“널 보니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군.”
“그만 가자.”
올리버와 대한은 다시 차를 탔다.
페라리는 로데오 거리를 따라 올라가다가 옆길로 빠지더니 쭉 올라갔다.
주변 풍경이 확 바뀌면서 으리으리한 저택들이 스치듯 지나갔다.
전면에 울창한 수풀로 가려진 거대한 저택의 문이 보였다.
페라리가 다가가자 문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자동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와우!”
대한은 절로 감탄사를 발했다.
말로만 듣던 부촌, 베벌리힐스의 저택의 위용이 한눈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정말 이거 너희 거야?”
“응, 정확히 말하면 할아버지 소유의 저택이지.”
올리버의 어머니 ‘아만다 르만’도 아니고 할아버지인 ‘가브리엘 르만’의 저택이라고 하자 왠지 금세 납득이 갔다.
물론 가브리엘 르만이 사는 집은 아니었다.
가브리엘 르만이 미국에 사 놓은 여러 저택 중 하나로 그냥 별장에 불과했다.
잘 가꾼 정원을 보면서 위로 올라가자 저택이 아니라 무슨 성 같았다.
대충 가격을 물어보니 수천만 달러나 한다고 했다.
대한은 자신도 이제 부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저택을 보고 나자 정말 그런 것인지 의문이 생겼다.
가지고 있는 돈을 전부 탈탈 털어도 이 저택을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본채는 너무 커서 불편해! 우리는 별채로 간다.”
“그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별채라고 해놓고 막상 들어가 보니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지상 3층에 지하 2층의 별채는 방만 열다섯 개였다.
올리버는 아무 방이나 골라 쓰라고 했다.
하지만 눈치를 보아하니 2층 창가가 가장 좋은 방인 것 같았다.
그래서 냉큼 2층의 큼지막한 방을 차지했다.
조동혁도 1층 입구에 있는 방을 배정받고 무지하게 좋아했다.
“방에 딸린 화장실이 내가 사는 집보다 훨씬 더 커요.”
“우리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어요.”
대한과 동혁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동혁은 즉시 카메라 세팅을 했다.
머리에 액션 캠이 달린 헬멧을 쓰고 손에는 카메라를 들었다.
동혁이 카메라를 켜고 에바가 신호를 주자 대한은 즉시 방송을 시작했다.
“여러분! 저는 지금 베벌리힐스에 있는 저택에 들어왔습니다. 여기가 올리버가 사는 저택입니다.”
카메라를 천천히 돌리며 보여주는 그의 말에…….
대한TV의 시청자는 다들 입을 쫙 벌렸다.
“규모가 엄청납니다. 앞뒤로 야외수영장이 있고 실내에도 수영장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우리가 있는 이곳이 본채가 아닌 별채라는 사실입니다.”
대한은 올리버의 안내로 별채 투어를 했다.
하도 커서 일일이 한번 돌아보는데도 한 시간이 더 걸렸다.
그는 마지막으로 3층 발코니로 올라가서 멀리 보이는 할리우드 사인을 클로즈업하면서 방송을 끝냈다.
대한의 미국 도착 첫날은 이렇게 흥분과 기대로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