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금광 지분>
페드루 코치가 링 안으로 들어와 그에게 티셔츠 한 장을 내밀었다.
대한은 광고가 들어간 티셔츠를 빠르게 입었다.
이걸 잠깐 입는 것만으로 만 달러를 번다고 들었다.
음료수도 잠깐 들고 카메라에다 비춰달라고 광고 의뢰가 들어왔었다.
하지만 몸에 별로 좋은 음료도 아니라서 냉정히 거절해버렸다.
그때 아나운서가 대한에게 다가와 마이크를 들이댔다.
“이대한 선수! 승리를 축하합니다.”
“고맙습니다.”
“오늘 화려한 발차기를 보여주셨는데, 필라 데이비스 선수를 위해 미리 준비한 기술입니까?”
“그렇습니다. 태권도의 기술을 빠르고 묵직하게 펼친 것으로 속도만 따라와 준다면 얼마든지 발차기만으로 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린 겁니다.”
대한은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뻥을 쳤다.
그러나 결과가 좋으니 다 좋았다.
“정말 가공할 발차기였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프론트킥을 찼는데 혹시 함정을 파놓은 것이었습니까?”
“네. 필라 데이비스 선수가 자꾸 도망 다녀서 쫓아다니기가 힘들고 짜증이 났습니다. 그래서 거꾸로 들어오라고 대놓고 함정을 판 겁니다.”
“그렇군요. 오늘 멋진 경기 보여줘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경기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한은 카메라를 보며 두 손을 모아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페드루 코치가 다가와 그를 감싸 안고 링 밖으로 나갔다.
그가 통로를 걸어가자 다시 한번 관중의 뜨거운 함성이 쏟아졌다.
와아아아!
대한은 한 손을 흔들어 자신을 응원해준 팬들에게 인사했다.
선수대기실로 들어가자 올리버와 하이스가 보였다.
올리버가 대한에게 다가가려고 하자 하이스가 냉큼 그의 품에 안겼다.
대한은 부드럽고 물컹한 그녀의 감촉을 느끼며 두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녀의 뒤에서 올리버가 주먹을 부딪쳤다.
페드루 코치가 다가와 글러브를 풀어주었다.
“대한! 잘했어요. 오늘 승리 축하해요.”
“페드루 코치도 수고했어요. 우리 코치진도 전부 고생했어요.”
대한의 인사를 뒤로하고 코치진은 바로 선수대기실에서 퇴장했다.
밖에서 호세가 조용히 문을 닫았다.
대한은 올리버의 눈치를 받고는 잠시 하이스를 밖으로 내보냈다.
그녀는 싫은 기색을 팍팍 냈다.
하지만 뭔가 심각한 표정을 짓는 대한을 이길 수는 없었다.
“일단 축하한다.”
“고맙다.”
올리버는 대한과 악수를 하면서 다시 한번 승리를 축하했다.
“할 말이 있어서 찾아왔지?”
“응.”
“뭔데 말해봐!”
“네가 보여준 동영상 내게 넘겨라!”
올리버는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대한은 너무도 쉽게 승낙했다.
“그럴게.”
“엥! 오늘 엘란마을 북쪽의 지하동굴로 어머니가 조사단을 급파했어.”
“…….”
“그런데 금맥이 확실하다고 정밀조사를 하시겠다고 하더라.”
“잘됐네.”
이번에도 뭔가 반응을 기대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대한은 올리버가 원하는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다.
“네가 아니었다면 아마 납치됐던 아이를 구하지 못했을 거야.”
“그럴 수도 있겠지.”
“금광이라는 행운도 얻을 수 없었을 거야.”
“그래서?”
“금광이 개발되면 너한테 지분이 떨어질 거야.”
지분 얘기를 하면서 유난히 올리버의 눈빛이 빛났다.
“네 생각이야? 아니면 어머니의 뜻이야?”
“둘 다야. 5% 선에서 맞춰주시기로 약속하셨어.”
“금광의 지분이라. 꼭 그런 걸 바라고 한 일은 아닌데.”
“알고 있어. 하지만 결과적으로 네 덕에 이번 일에 대한 전모가 밝혀졌어.”
대한은 지분보다 자신이 위험에 빠지지 않는 것에 신경을 썼다.
“그래도 내 이름은 빼줘라! 괜히 사미라(Samiara)나 마이라(Mayra) 그룹의 타깃이 되고 싶지는 않아.”
“벌써 농장에 함구령을 내렸어. 아마 네 얘기는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을 거야.”
“너도 네 어머니를 설득시키느라 애썼다.”
대한의 말에 올리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크크크! 알고 있었냐?”
“당연하지. 원래 부자일수록 보상이 짠 거 모르냐?”
“그런가?”
올리버는 차라리 잘 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가 좀 짜게 나오시더라고. 내가 설득하느라 고생깨나 했다.”
“네가 그렇게 하지 않아도 다 받아내는 수가 있었는데.”
“정말?”
“응.”
“어떻게?”
“안알랴줌!”
“뭐야 그게. 푸하하하!”
올리버는 박장대소를 했다.
대한은 자신의 말 어디에 웃음 코드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올리버가 시원하게 웃으니 그냥 같이 웃어줬다.
“찰스 아저씨가 너보고 미국으로 들어오래.”
“미국?”
“응.”
미국이란 말에 대한은 뭔가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었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한국보다는 미국이 훨씬 가깝잖아. 기왕 브라질까지 온 것 초강대국 미국에도 한번 가보자.’
대한은 바로 마음을 굳혔다.
“좋아. 미국으로 놀러 가야겠다.”
“놀러 오라는 게 아니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시합하라는 거야.”
“라스베이거스!”
“그래. 이제 너도 나처럼 본격적으로 큰물에서 놀아야지.”
어째 말의 뉘앙스가 이상했다.
“혹시 너도 가냐?”
“당연하지. 나 벌써 UFC에서 주목하는 초특급 유망주야!”
“지랄!”
“그리고 하이스도 아마 조만간 미국 갈 거야. 서부가 아니라 동부로 가긴 하겠지만.”
“동부라면 뉴욕?”
“그렇다고 하더군.”
올리버는 하이스가 미국에 가는 게 못마땅하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대한은 잘됐다고 생각했다.
동부와 서부가 멀리 떨어져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만나려고 마음을 먹으면 못 만날 일도 없으리라 생각했다.
우웅!
그때 익숙한 공명음이 들려왔다.
―마스터! 축하합니다. 재능 무에타이(S)를 획득하셨습니다.
‘고마워!’
시합 전에 떴으면 좋았을 것을.
이미 다 끝난 뒤에 재능을 획득했다.
대한은 에바가 열어준 상태 창을 확인했다.
이름: 이대한
등급: 에스콰이어(A)
칭호: 가호(보호막·방어력↑100%), 워크라이(스탯 증폭↑20%), 투지의 신병(재능 부스터↑20%)
나이: 만 17세
직업: 종합 격투기 선수(UFC/벨라코어 FC)
재능 ▶ 탄탈러스(SS), 크루세이더(SS), 푸르나(SS), 노래(S), 끈기(S), 인내(S), 미모(S), 지구력(S)
언어 ▶ 포르투갈어(S), 이탈리아어(S), 영어(S)
축구 ▶ 전술 이해도(S), 몸싸움(S), 순간 돌파(S), 양발잡이(S), 넓은 시야(S), 축구 지능(SS), 축구 재능(SS), 프리킥(SS), 축구 기본기(S), 드리블(S), 개인기(S), 패스(S), 골 결정력(S), 주력(S), 스프린트(S), 수비(S)
격투 ▶ 무에타이(S), 복싱(S), 주짓수(SS), 태권도(SS), 격술(SS), 검술(S), 종합 격투기(S)
스탯: 근력 105, 민첩 88, 체력 93, 지력 91, 마력 52
신장 185cm, 몸무게 83kg
근력, 민첩, 체력, 지력이 모두 하나씩 상승했다.
마력만 7이 올라 52가 됐다.
재능 무에타이(S)를 획득한 것도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이제 원하는 재능을 하나 골라서 배울 수 있게 된 것이 더 좋았다.
“뭐 좋은 일 있어?”
“응.”
“뭔데 나도 좀 알자.”
“넌 몰라도 돼. 그나저나 언제 미국 갈 거야?”
“언제든지 가고 싶을 때 나한테 말하면 돼. 퍼스트클래스로 뽑아 줄 테니까.”
“이야아! 이럴 땐 부자인 너와 같이 가는 게 좋긴 하네.”
“아무려면 내가 돈도 못 버는 하이스 같겠냐!”
올리버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은근히 하이스를 돌려 깠다.
대한은 올리버를 쳐다보다가 마음을 정했다.
브라질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이미 다 얻었다.
이제는 슬슬 브라질 생활을 정리해야 할 때이다.
“기왕 얘기가 나온 것 최대한 빨리 미국으로 넘어가자!”
“화끈해서 좋았어. 내가 다 알아서 준비할 테니까 넌 아무 걱정도 하지 마.”
“응, 고마워!”
대한은 올리버의 호의를 부담 없이 받았다.
올리버도 마치 새로운 장난감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마냥 기뻐했다.
* * *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
퍼스트 클래스 전용 출입구를 나와 입국 심사를 거쳤다.
짐을 찾아 출구로 나오자 호세를 비롯한 경호팀이 대기하고 있었다.
“보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호세의 말에 올리버가 으쓱 어깨를 치켜들었다.
대한은 호세의 말에 자신이 지금까지 새까맣게 잊고 있는 것을 기억해냈다.
“아 참! 조동혁 매니저!”
“사장님! 기다려주세요.”
마침 조동혁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무슨 이민이라도 왔는지 커다란 가방들을 낑낑대며 끌고 오는 것이 보였다.
“그게 다 뭡니까?”
“카메라와 촬영 장비들입니다. 물론 제 짐도 좀 있습니다.”
“브라질에서 물건을 많이 샀나 봅니다. 이렇게 짐이 많아진 것을 보니.”
“뭐 이것저것 선물도 좀 받았습니다.”
대한은 어색한 미소를 짓는 동혁의 얼굴을 보고서야 무슨 말인지 깨달았다.
그새 둘이 이렇게 친해졌었나 보다.
그는 동혁에게 더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올리버가 호세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호세는 다시 옆에 서 있는 커다란 덩치들에 지시를 내렸다.
참 무안하게도 조동혁이 낑낑대며 끌고 온 것을 너무도 가볍게 번쩍 들었다.
“차는?”
“준비됐습니다. 보스와 이대한 선수는 저걸 타시면 됩니다.”
대한이 호세의 말에 고개를 돌리다 눈이 동그래졌다.
호세가 가리킨 도로 위에는 노란색으로 반짝이는 페라리 한 대가 놓여있었다.
“페라리?”
“맞아.”
올리버는 호세에게 자동차 열쇠를 받고는 페라리로 다가갔다.
그 사이, 조동혁은 급히 액션 카메라를 꺼내 대한의 모습을 찍었다.
“여러분! 드디어 제가 미국에 도착했습니다. 친구 덕에 퍼스트 클래스도 타보고 아주 많이 호강하며 왔습니다. 이제 친구 차를 타고 이동하겠습니다.”
대한이 인사를 하고 나자 동혁은 자연스럽게 페라리로 다가가 차의 외관을 찍었다.
올리버가 선글라스를 쓴 채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사이 호세는 페라리의 앞뒤에 정차 중인 두 대의 검은색 대형 SUV로 짐을 옮겼다.
공항 도착 장면을 다 찍자 동혁이 대한을 쳐다보며 물었다.
“저는 어떤 차를 타고 가죠?”
“동혁, 이리 오세요.”
조동혁의 어리바리한 말에 호세가 그를 데려갔다.
“집에 가서 좀 쉴래?”
“아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퍼스트 클래스를 타고 왔더니 하나도 안 피곤해!”
“하하하! 하긴 그런 맛에 퍼스트 클래스를 타는 거지.”
올리버의 파안대소에 대한은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표정이었다.
솔직히 자기 돈 내고 타라고 했으면 아마 많이 망설였을 것이다.
퍼스트 클래스는 정말 더럽게 비쌌다.
대한은 그 사실에 자기는 비즈니스 클래스로도 충분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돈이 넘쳐나는 브라질 재벌 3세 올리버가 쏜다고 하니 좋다고 퍼스트 클래스를 탔다.
그러고 보니 상파울루 국제공항에서 눈물을 흘리며 헤어진 하이스 올리베이라가 생각났다.
그녀는 대한과는 달리 미국 동부에 있는 뉴욕이 목적지였다.
같은 미국으로 가는데 굳이 다른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게 무척이나 아쉬웠다.
하지만 한편으론 올리버와 같이 퍼스트 클래스를 타고 오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여기서 10마일만 가면 샌타모니카 해변이야. 거기 부두에 가면 킹크랩 파는 레스토랑이 있는데 한번 가볼래?”
“킹크랩! 좋지.”
TV에서나 봤던 킹크랩을 먹을 기회가 왔다.
오늘 방송의 콘셉트는 정해졌다.
바로 먹방이었다.
어차피 로스앤젤레스에서 있는 동안!
그는 올리버에게 신세를 지기로 했다.
그러니 굳이 싫어하는 게 아니라면 그냥 올리버가 하자는 대로 하기로 했다.
바아아앙!
올리버가 액셀러레이터를 밟자 거친 엔진음이 울렸다.
그 소리만으로도 야성의 힘이 물씬 풍기는 놈이었다.
“그럼 달려볼까!”
“좋아! 달려라!”
대한은 괜히 기분이 좋아져서 오버를 했다.
하지만 올리버는 재미있다고 오히려 좋아했다.
끼이익! 부아아앙!
페라리는 거칠 게 출발했다.
뒤늦게 출발한 두 대의 대형 SUV는 그보다 더 거칠게 따라왔다.
순식간에 페라리의 앞뒤로 자리를 잡는 것을 보니 보통 운전 솜씨가 아니었다.
“다들 운전 잘하는데.”
“너도 운전면허를 따서 직접 몰아봐!”
“그럴까?”
대한은 이미 한국에서 운전면허증을 따서 가지고 있었다.
필기시험만 다시 보면 캘리포니아 운전면허증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올리버의 집에 도착하면 바로 캘리포니아 운전면허증을 따기로 마음먹었다.
‘사우스 세펄브다 대로’에서 ‘I-405 노스’로 진입했다.
‘I-405 노스’를 타고 올라가다가 ‘I-10 웨스트’로 갈아탔다.
올리버의 말대로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서 샌타모니카 부두까지는 1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창가를 보니 푸른 하늘에 뭉게구름이 둥실 떠 있었다.
거대한 태평양이 하얀 물거품이 이는 파도와 함께 한눈에 들어왔다.
가슴이 다 시원해지는 광대한 수평선!
그걸 보는 대한의 마음은 모처럼 뻥 뚫려버린 기분이었다.
레스토랑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조동혁이 잽싸게 나와 대한과 올리버를 찍었다.
대한은 자동으로 미소를 지으며 카메라를 바라봤다.
“여기는 태평양이 한눈에 보이는 샌타모니카 해변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가슴이 후련해지지 않으십니까? 앞으로 저와 같이 여행하며 광대한 미국을 느껴보세요.”
대한의 발언에 채팅 창은 불이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