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거침없이 하이킥>
―마스터! 저 납치범을 왜 그냥 보내주시는 겁니까?
‘얻을 것을 다 얻었으니까.’
―그래도 잡아서 올리버에게 넘겨주면 좋아하지 않을까요?
‘올리버는 디에고를 반드시 죽일 거야.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그가 배신한 걸 알면 사미라인지 뭔지 하는 여자와 마이라 그룹에서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그리고 그에게는 아내와 딸이 있어. 두 사람을 대피시킬 시간 정도는 줘야지.’
―그러니까 굳이 마스터의 손을 더럽힐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어차피 사미라나 마이라 그룹에서 디에고를 처리할 테니 말입니다.
‘맞아.’
대한은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디에고의 동영상 파일은 잘 돌아갔다.
그는 잠시 그대로 서서 시간을 보내다가 몸을 돌렸다.
그때 인기척이 나더니 추적자 트리오가 나타났다.
“어떻게 됐습니까? 납치된 아이는 무사합니까?”
“무사합니다. 다치지는 않으셨습니까?”
“네, 전 괜찮습니다.”
트리오는 대한을 살펴보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납치범은 결국 놓쳤군요.”
“제 능력으로는 이 이상 추격이 불가능해서 이렇게 여러분을 기다렸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숲은 아주 위험한 곳입니다.”
트리오는 잠시 주변을 살펴보더니 숲의 한쪽을 쳐다봤다.
“확실히 이곳에 있었군요.”
“왜 지금이라도 추적을 하지 않습니까?”
“이미 늦었습니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강이 있습니다. 거기엔 분명히 납치범들이 준비해둔 보트가 있을 겁니다.”
“아!”
“인제 그만 돌아가시죠.”
“네, 그렇게 하죠.”
트리오는 대한이 올리버의 손님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는 짓을 봐서는 친구보다 더한 것 같아 극도로 조심하고 있었다.
대한은 느긋하게 트리오의 뒤를 따라 숲을 가로질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올리버를 만날 수 있었다.
녀석은 죽은 친할아버지가 살아 돌아온 것처럼 기뻐했다.
“대한! 걱정했잖아.”
“미안해. 너무 빨라서 잡을 수가 없었어.”
“괜찮아. 이미 네가 총을 쏴서 놈을 쫓아냈다는 소식을 들었어. 도와줘서 고맙다.”
올리버는 대한의 손을 꼭 잡더니 진심으로 기뻐했다.
“아이는?”
“알란 마을의 청년들과 함께 이미 마을로 돌려보냈어.”
그러고 보니 숲에 남아있는 사람은 대한과 올리버, 호세와 트리오가 전부였다.
그들은 트리오의 길 안내로 무사히 숲을 빠져나와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그때까지도 조동혁은 방을 나오지 않았다.
기왕 이렇게 된 것 아주 뽕을 뽑아먹을 모양이었다.
“굉장히 생기발랄한 조수로군.”
“칭찬으로 들을게.”
올리버가 짓궂게 조동혁을 언급하면서 대한을 돌려 깠다.
그러나 그는 이 정도로는 끄떡없었다.
“오늘 수고 많았다. 가서 좀 씻고 쉬어라!”
“아니야. 너한테 해야 할 중요한 얘기가 있어.”
“그럼 내 방으로 가자.”
“그래.”
올리버는 대한을 데리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경호원 호세는 방안까지는 따라오지 않았다.
그는 문을 꼭 닫은 다음에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냈다.
“놀라지 말고 잘 봐!”
“알았어.”
올리버는 뭔가 하고 호기심에 가득한 눈빛을 했다.
대한은 스마트폰 안의 동영상 하나를 재생했다.
검은 전투복을 입은 다부진 인상의 사내가 말을 했다.
올리버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깜짝 놀라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거 어디서 났어?”
“이놈이 살아서 도망친 바로 그 납치범이야.”
“그런데 왜 이런 동영상을 네게 남긴 거지?”
“그거야 당연히 배신하기 위해서 그런 거잖아.”
“아무튼, 이게 사실이라면 지금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당장 상파울루로, 아니 집으로 돌아가야겠어.”
올리버는 크게 흥분해있었다.
대한은 굳이 그를 말릴 생각이 없었다.
“그러시던가!”
“같이 갈 거지?”
“헬리콥터 태워주면 나야 고맙지.”
“좋아. 그럼 일단 씻고 옷 갈아입어. 헬리콥터를 준비시킬게.”
“알았어.”
대한은 올리버의 방에서 빠져나와 욕실로 갔다.
샤워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후 자신의 짐을 챙겼다.
조동혁 방으로 가서 아직도 끙끙대는 두 사람을 본의 아니게 떨어뜨려 놓았다.
“조동혁 매니저! 지금 헬리콥터를 타고 상파울루로 갑니다. 준비하세요.”
“네, 사장님.”
그제야 정신을 차린 조동혁이 급히 샤워를 하러 욕실로 들어갔다.
물라토 여인은 살짝 인상을 썼지만 원하는 것을 다 얻었다는 표정이었다.
대한을 보고 배시시 웃는 게 왠지 소름이 끼쳤다.
대한과 올리버, 호세와 조동혁은 대형 SUV를 타고 헬리포트로 달려갔다.
이미 헬리포트에는 헬리콥터가 대기 중이었다.
그들은 헬리콥터를 타고 올리버의 농장을 출발했다.
타타타타타!
밤하늘을 날아가는 것은 긴장감이 있었다.
하늘을 봐도 땅을 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뿐이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상파울루의 야경이 눈에 들어오면서 안도감이 들었다.
대한은 자정이 다 되어서야 이지에노폴리스의 펜트하우스로 돌아왔다.
* * *
티볼리 상파울루 호텔 메인 볼륨.
“블루코너! U-17 브라질 월드컵 우승의 주역인 대한민국 U-17 축구 대표팀 선수! 오늘 벨라코어 FC 브라질 대회에 참가해 라이트헤비급 데뷔전을 뛸 이대한 선수를 소개합니다.”
와아아아!
경기장은 수천 명이 내지르는 함성으로 진동했다.
이에 대한은 두 주먹을 높이 들어 올리며 제자리를 한 바퀴 돌았다.
그러자 아나운서가 이번에는 레드코너를 소개했다.
“레드코너! 미국에서 온 극강의 레슬러! 25전 20승 5패에 빛나는 Mr. Wondeful 필라 데이비스입니다.”
와아아아!
검은 피부에 짧은 곱슬머리, 188cm의 큰 키에 몸무게 93kg!
필라는 201cm나 되는 자신의 긴 리치를 위로 번쩍 치켜들었다.
대한은 그 모습에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에바! 이놈도 나 같은 햇병아리가 상대할 선수는 아니잖아.’
―이미 나이가 35살이나 된 노장입니다. 전적은 크게 상관없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대충 뭔가 좀 비슷한 선수끼리 싸워야 하는 게 아닐까?
그는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며 열심히 팔다리를 움직였다.
후회해봐야 소용없다.
이미 원형의 링 위에 싸우러 올라와 있었다.
대전상대인 필라 데이비스는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여기서 그냥 포기할 것이 아니라면…….
이제는 싸워서 확실하게 승리하는 길뿐이다.
―칭호를 사용하시겠습니까? 마스터의 안전을 위해서 꼭 쓰는 것을 추천합니다.
‘아니. 그냥 싸워볼게.’
―하긴 다 늙은 선수와 싸우는데 칭호를 남발해서는 안 되지요.
에바는 칭호를 꼭 써야 할 것처럼 말했다.
그런데 대한이 거절하자 금세 태세전환을 해버렸다.
심판이 두 선수를 중앙으로 불러 주의사항을 말해주었다.
대한과 필라는 심판의 말을 다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페어플레이를 하자는 의미로 서로의 글러브를 터치했다.
대한은 자신의 코너로 돌아와 슬쩍 링 아래를 내려다봤다.
올리버와 호세가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옆으로 하이스와 그녀의 친구들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 조동혁이 카메라로 열심히 대한을 찍고 있었다.
벨라코어 FC와 급하게 협상을 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UFC처럼 직접 찍은 대한의 경기장면은 대한 TV에 송출할 수 있게 계약했다.
덕분에 지금 대한 TV는 구독자와 팔로워들이 엄청나게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시청자 수는 실시간으로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그런 상황을 UFC나 벨라코어 FC가 동시에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마스터! 파이팅!
‘그래. 파이팅이다.’
대한은 필라 데이비스를 노려봤다.
원래 라이트헤비급이라 최대체중인 93kg으로 몸을 잘 만들어왔다.
하지만 대한은 미들급 체중인 83kg에서 0.9kg만 올려 라이트헤비급으로 간신히 맞췄다.
기본적으로 둘은 9kg이나 체중에서 차이가 났다.
게다가 리치가 긴 필라를 상대하는 것이다.
확실히 불리한 점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대한은 조금도 필라가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땡!
심판의 신호로 5분 3라운드의 경기가 시작됐다.
대한이 튕기듯 필라를 향해 달려갔다.
필라는 이미 대한의 UFC 데뷔전을 분석했다.
그래서 얼른 사이드스텝을 밟으며 옆으로 돌았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오히려 대한이 바라던 바였다.
그는 빠르게 방향을 틀며 달려가는 속도를 이용해 미들킥을 날렸다.
휘익! 퍽!
발이 채찍처럼 날렵하게 휘어 들어갔다.
필라는 팔로 대한의 미들킥을 막았다.
그런데 충격이 팔을 통해 뼈를 쩌릿하게 흔들고 몸통까지 밀려왔다.
대한의 킥이 보통 무거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깨달은 필라!
그는 극도의 경계심을 가지게 됐다.
하지만 필라에게는 이미 선택권이 없었다.
퍽! 퍼벅! 퍼버벅! 퍼버벅!
대한은 양쪽 발을 이용해 로우킥, 미들킥, 하이킥 등
다양한 발차기 공격을 감행하고 있었다.
필라는 급히 두 팔로 그의 발차기를 막으며 물러났다.
한방 한방이 너무나 무거워서 막아도 막은 것 같지 않았다.
데미지가 팔과 뼈와 몸통으로 차례로 파고들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필라의 뇌리를 강타했다.
필라는 급히 대한에게 접근했다.
거리를 좁혀 발차기 공격을 근본적으로 봉쇄하려는 의도였다.
퍽!
그러나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앞차기가 나왔다.
배를 가격당한 필라는 급히 뒤로 물러났다.
배가 끊어질 듯 아파졌다.
조금만 위에 맞았다면 아마 숨도 내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대한의 앞차기는 빠르고 묵직했다.
결국, 필라가 할 방법은 뒤로 물러나는 것이었다.
와아아아!
대한의 화려한 발차기가 연속으로 터지자 관중들은 크게 흥분했다.
아무리 종합 격투기가 여러 가지 무술과 격투기의 종합이라고 해도…….
역시 화려한 발치기와 타격만큼 관중을 흥분시키는 것은 없다.
퍽! 퍼벅! 퍼버벅! 퍽퍽!
대한은 뒤로 도망치는 필라를 쫓아가며 기습적으로 발차기를 날렸다.
필라는 연신 뒷걸음질을 치며 그의 발차기를 피했다.
벌써 팔이 뻐근해지고 감각이 무뎌졌다.
로우킥을 맞은 다리는 이미 퉁퉁 붓고 있었다.
하이킥을 막다가 한 바퀴 뒹굴뻔한 필라는 이를 악물었다.
이렇게 대한의 발차기를 더 허용했다간 이대로 경기를 포기할 것만 같았다.
‘무슨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다 있지. 이게 말이 되냐고. 어떻게 발차기가 이렇게 빠르고 강할 수가 있어.’
열심히 준비해온 타격기는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
긴 리치도 더 긴 다리에 비하면 상대도 안 된다.
필라는 속으로 욕을 하면서도 어떻게든 대한에게 바짝 붙으려고 노력했다.
테이크다운 한 번이면 전세를 역전시킬 수도 있으리라!
아니, 그렇게 꼭 믿고 싶었다.
‘틈이다.’
그때 필라의 눈에 비틀거리는 대한의 모습이 보였다.
살짝 중심을 잃은 것을 봐버린 것이다.
필라는 몸을 던지듯이 날리며 테이크다운을 시도했다.
그런데 이건 대한이 파놓은 함정이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낮추고 들어오는 필라에게 회심의 앞차기를 날렸다.
퍽!
단 한 방!
필라는 그대로 링 바닥에 무너졌다.
기절했는지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심판이 대한의 접근을 막으며 단호히 경기를 중단시켰다.
와아아아!
관중들은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단 한 번의 펀치도 없이 오직 화려한 발차기로 필라를 두들겨 팼다.
그리고 피날레도 앞차기로 필라의 턱을 정확히 가격해 무너뜨렸다.
이러니 대한을 향해 환호성을 지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01:55.
전광판에 떠오른 숫자였다.
심판이 대한의 팔을 잡고 서자 아나운서가 올라와 판정을 내렸다.
“벨라코어 FC 브라질 대회! 이대한 선수와 필라 데이비스 선수의 라이트헤비급 경기는 1라운드 1분 55초 만에 프론트킥을 성공시켜 KO를 얻어낸 이대한 선수의 승리입니다.”
심판이 대한의 손을 잡고 힘차게 들어 올렸다.
그러자 수천의 관중이 경기장에 지진이 일어날 정도로 커다란 함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
대한은 짜릿한 성취감에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비록 UFC와는 다른 벨라코어 FC의 경기였지만 KO로 연승을 한 것은 분명히 기분 좋은 일이었다.
VIP 좌석의 올리버와 하이스가 경쟁적으로 환호성을 보냈다.
조동혁 매니저도 흥분해서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당연히 채팅 창도 무섭게 끓어올랐다.
[코리안좀비: 아오! 지렸다.]
[김동현최고: 정말 무지막지한 발차기다.]
[오마이갓: 이대한 선수! 축구 선수 아니었어?]
[한류만세: 미친 발차기다.]
[테니스공: 이제는 공을 차는 게 아니라 사람을 차는구나.]
[자일리톨: 축구 선수가 아니라 종합 격투기 선수로도 성공하겠다.]
[서초동아줌마: 꺄악! 대한이 너무 멋져!]
[동그라미: 장래희망 대한이.]
[내성적소녀: ㅁㅊ 발차기! 카리스마 ㅈㄹㄷ]
[대동아공영: 이대한 선수를 일본으로 귀화시켜야 하무니다.]
[대한빠: Auto K! 너무 멋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