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밝혀진 비밀>
지금까지 자신들이 주로 상대했던 것은 밀렵꾼이다.
하지만 이자는 그들과는 상대도 안 되는 프로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리안은 갑자기 우회해서 접근하고 있는 형제들이 걱정됐다.
―이건 우리가 해체할 수 있습니다.
‘아니야. 내가 이것까지 해체하면 의심할 거야.’
에바의 조언에도 대한은 그저 가만히 있었다.
다행히 아리안은 쉽게 함정을 해체했다.
그때부터 더욱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앞에서 불빛이 보였다가 안 보이기를 반복했다.
나름 불빛을 감추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하지만 완벽하게 불빛을 가리는 데는 실패했다.
거리가 100m쯤 남았을 때!
대한은 아리안에게 신호를 보냈다.
손으로 자신을 가리키고 저격총과 나무 위를 차례로 가리켰다.
그러자 무슨 뜻인지 알아먹었는지 아리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알란 마을 청년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한을 선택했다.
청년은 그대로 나무 아래에 숨어있기로 했다.
아리안은 대한이 자신을 지켜주겠다고 가슴을 살짝 치자 주먹을 꼭 쥐며 몸을 돌렸다.
대한은 아리안의 앞에 특별한 위험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보다는 그가 나무 위로 올라가는 게 문제였다.
보통 나무 같지 않게 상당히 미끄러웠다.
하지만 그는 단검까지 써서 간신히 나무 위로 올라가 시야를 확보했다.
‘보인다!’
―납치범들이 맞습니다. 아까 알란 마을 촌장이 보여준 아이의 사진과 일치하는 어린아이가 누워있습니다.
대한은 에바의 설명을 들으면서 야간투시경으로 납치범들을 살폈다.
‘셋 모두 권총과 소총으로 무장했어.’
―마스터가 선택한 곳은 저격하기에 상당히 좋은 위치입니다.
‘그래도 한방에 셋을 동시에 처리할 수는 없어.’
―그럼 조금만 기다려보십시오. 우회한 추적자들이 주의를 끌어줄 것입니다.
에바의 말이 맞았다.
대한은 나무 위에서 우거진 수풀을 해치며 총구를 내밀었다.
소음기까지 달린 저격총이라 그나마 소음이 크진 않을 것이다.
납치범들은 삼각형 모양으로 앉아서 불을 쬐고 있었다.
커다란 바위 사이에 모닥불을 피워놓아서 잘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야간투시경의 진가를 드러내게 했다.
‘어둠을 꿰뚫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마력을 쓰면 가능할 것입니다.
‘한번 해보자.’
대한은 푸르나를 운용하면서 마력을 양쪽 눈으로 밀어 넣었다.
동시에 눈에 힘을 주고 정면을 쳐다봤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곧 두 눈이 새파랗게 빛나면서 주변이 환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비록 마력이 쭉쭉 빨려갔지만 그래도 효과는 탁월했다.
‘보인다. 보여.’
―이제 야간투시경은 필요 없겠네요.
‘항상 혼자 있으라는 법은 없잖아. 그러니 이것도 필요할 거야.’
그때 숲을 뒤흔드는 총소리가 들렸다.
탕!
대한은 즉시 야간투시경을 통해 납치범들을 살폈다.
한 놈이 가슴을 잡고 쓰러져 있었다.
그는 즉시 옆에 바짝 엎드려 있는 놈을 노렸다.
퉁!
대한이 부드럽게 방아쇠를 당겼다.
어두운 숲을 번개처럼 가로지른 총알!
정확히 납치범의 발목을 날려버렸다.
“크악!”
놈은 고통에 못 이겨 크게 비명을 질렀다.
다른 한 놈이 놀란 표정을 짓더니 권총을 꺼내 들었다.
탕! 탕!
그런데 놀랍게도 이놈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동료들의 머리통에 권총을 쐈다.
납치범 둘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그러자 마지막 납치범이 바닥에 누워있는 어린아이를 쳐다봤다.
대한은 순간 소름이 쫙 끼쳤다.
그는 급히 납치범을 조준해 저격총을 발사했다.
퉁!
납치범이 권총을 놓치고 피가 튀는 손목을 붙잡는 모습이 보였다.
놈은 저격총의 존재를 깨달았는지…….
즉시 몸을 숙이더니 어두운 숲속으로 뛰어들었다.
이미 납치범 둘이 죽은 상황이다.
나머지 한 놈을 붙잡지 못한다면, 아마 누구의 사주를 받고 이런 납치극을 벌였는지 전혀 알 수 없게 될 것이다.
대한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추적하자.’
―네, 마스터.
에바는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한은 나무 위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휘익! 쿵!
도도도도도!
그리곤 빠르게 달려 도망친 납치범을 뒤쫓았다.
에바가 대한의 눈앞에 납치범의 이동 경로를 표시해줬다.
그걸 보고 그는 거의 직선으로 숲을 가로질러 달려갔다.
어두운 숲속에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졌다.
“허억, 허억, 허억!”
납치범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달빛에 의지해 도망을 치느라 얼굴과 팔다리에 하나둘씩 상처가 생겼다.
날카로운 가시와 나뭇잎에 스치고 베고 찔렸다.
하지만 납치범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오직 현장을 벗어나 도망치는 데 급급했다.
추적자들이 얼마나 빠르고 무서운지 잘 알고 있었다.
조금만 시간을 주면 금방 쫓아와 칼로 목을 찌를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납치범은 더욱 속력을 냈다.
대한은 결사적으로 도망치는 납치범을 빠르게 따라잡았다.
달빛이 숲을 비추고 있다지만 여전히 숲속은 어두웠다.
그러나 새파랗게 빛나는 그의 눈은 숲속을 대낮처럼 꿰뚫어 보고 있었다.
‘이거 완전히 야간투시경 저리 가라는데.’
―마력으로 강화된 밤눈을 고작 야간투시경 따위의 저급한 물건에 비교하시는 겁니까?
‘그건 아니지. 확실히 밤눈은 야간투시경보다 훨씬 뛰어나. 이렇게 사물을 훤히 볼 수 있잖아.’
대한은 새롭게 발견한 자신의 능력에 크게 고무됐다.
―이제 범인이 시야에 잡혔습니다.
‘그렇군. 어떻게든 사로잡아야 해.’
―맞습니다. 다른 두 놈은 이놈에게 총을 맡아 즉사했습니다.
‘아주 독한 놈이네.’
―분명히 누군가에게 사주를 받고 벌이는 일이 틀림없습니다. 놈이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에 접속하겠습니다.
에바는 그와 얘기를 하면서 납치범의 스마트폰에 접속했다.
놈의 연락처를 비롯해 통화명세와 이메일, 사진 및 동영상을 빠르게 훑었다.
그런 후 스마트폰에 설치된 은행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거래은행에 들어가 신상을 털었다.
―찾았습니다. 이름은 디에고 길마르, 나이는 34세,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신의 퇴역군인으로 브라질 특수부대에 5년간 복무했습니다.
‘역시 평범한 놈은 아니었군.’
―현재 부인 카트리나 사이에 7살짜리 딸 알라네가 있습니다. 최근 지병으로 죽은 부하의 이름으로 외국계 은행에 계좌를 만들어서 10만 달러를 입금받았습니다. 같은 은행에 부인 카트리나의 이름으로 새롭게 예금계좌가 개설된 후 바로 5만 달러가 입금됐습니다.
‘이거면 설득할 수 있겠군.’
―아내와 딸의 이름으로 협박한다면 아마 가능할 것입니다. 그동안 전 자금의 출처를 추적하겠습니다.
대한은 설득이라고 했고 에바는 협박이라고 했다.
지금이 상황에서 어떤 단어가 맞는지는 모른다.
단 비겁하게 협박을 해야 한다는 게 그는 썩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납치의 배후는 꼭 밝혀져야 한다.
대한은 달려가면서 크게 소리쳤다.
“디에고 길마르! 멈춰라!”
납치범, 아니 디에고 길마르는 깜짝 놀라서 그만 헛발을 내디디고 말았다.
땅바닥에 데굴데굴 굴러가다 나무에 쿵 하고 부딪쳤다.
하지만 오만상을 쓰면서도 금세 일어나 다시 달려갔다.
“좋은 말로 할 때 멈춰라! 이미 넌 끝났어. 계속 도망치면 카트리나를 찾아가서 알라네를 보면 되겠군.”
“안 돼!”
디에고는 즉시 그 자리에 멈춰서더니 자지러지듯 소리를 질렀다.
“제발! 아내와 딸은 건들지 마!”
“흥, 제 마누라와 자식이 귀한 줄은 아는 놈이로군.”
대한은 빠르게 다가가 디에고 앞에 섰다.
“넌 누구냐?”
“내가 누구인지가 중요한가? 네가 내게 줄 정보가 중요하지.”
대한은 차가운 목소리로 디에고를 쳐다봤다.
한눈에도 디에고의 멘탈은 지금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자신의 신분이 드러났다.
아니 아내와 딸의 이름까지 알고 있었다.
디에고는 정신없이 머리를 굴리다 돌연 눈에 살기를 띄었다.
휘익!
디에고는 번개같이 손을 앞으로 쭉 내뻗었다.
어둠 속에서도 서늘하게 빛나는 것을 보자 대한은 머릿속에 대검을 떠올렸다.
그는 재빨리 뒤로 물러서며 정확히 디에고의 손목을 쳤다.
탁!
바닥으로 소리 없이 대검이 떨어져 흙 속에 박혔다.
휘익! 휘익!
기습적으로 디에고의 주먹이 들어왔다.
그는 손등으로 디에고의 팔목을 바깥쪽으로 밀어내며 옆걸음을 밟았다.
이번에는 연이어 날카로운 발차기가 훅 들어왔다.
하지만 이미 그는 한걸음 뒤로 물러난 상태였다.
“진정해!”
“에잇!”
디에고는 도저히 진정할 수 없었다.
온 힘을 기울여서 대한을 공격했다.
팍팍팍! 파팟! 퍽! 퍼벅!
어둠 속에서 디에고의 펀치와 킥이 날카롭게 날아들었다.
그러나 대한은 침착하게 놈의 공격을 피하거나 막았다.
긴장감으로 인해 그의 집중력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빛이 났다.
디에고는 결국 한 대도 정타를 내지 못했다.
“헉! 헉! 헉! 헉!”
그러자 오히려 기운이 쭉 빠져버렸다.
명확한 실력 차 앞에서 의욕이 눈 녹듯이 녹아버렸다.
“더 할래?”
대한은 혹시나 해서 물어봤다.
하지만 디에고는 더 이상 싸울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특수부대에서 5년 동안 복무하면서 익혔던 특공무술이다.
그런데 이게 전혀 통하지 않는 상대와 무슨 재주로 더 싸우겠는가!
그래도 상대가 허리에 찬 총을 꺼내지 않는 것을 보고 일말의 희망을 품었다.
디에고는 대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당연한 질문을 하는군. 배후가 누구야? 누가 널 시켜서 이런 짓을 하게 했지? 그들이 원하는 게 뭐야?”
“그걸 알려주면 날 풀어줄 수 있어?”
“네 생각은 어때?”
그는 역으로 질문을 해왔다.
디에고는 잠시 생각을 해보더니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나와 내 가족 따위의 목숨에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큰 정보지.”
“그래?”
대한은 디에고가 자신 있게 말하자 묘한 시선을 보냈다.
‘에바!’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뭔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비밀을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협상을 해도 좋겠군.’
―올리버가 디에고를 풀어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거야 이해하게 만들면 되지.’
그는 에바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디에고의 눈을 노려봤다.
“만약 네 말이 사실인 것으로 드러나면 풀어주겠다. 또한, 네 아내와 네 딸의 정보까지 함구하겠어.”
“정말이냐?”
“그렇다. 단 영원히 올리버 올리베이라와 관계된 일을 하면 안 되고, 브라질도 떠나는 게 좋겠어. 어디 멀리 가서 조용히 사는 것도 괜찮겠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브라질을 떠날 생각이다.”
디에고는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한은 스마트폰을 꺼냈다.
“시간이 없으니까 빨리 말해! 이미 너에게 돈을 준 놈에 대한 자금추적에 들어갔어. 내가 알아내는 것보다 늦으면 네가 주는 정보에 가치는 쓰레기가 된다. 그리고 동영상 녹화를 해도 되겠지?”
“물론이다. 내 말을 듣고 나면 너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거야 들어보고 나서 결정하지.”
그는 즉시 스마트폰으로 동영상 촬영을 시작했다.
“내가 누군지는 말하지 않겠다. 나를 시켜서 올리버 농장 일대에 납치극을 벌이라고 한 사람은 사미라(Samiara)다. 마이라(Mayra) 그룹이 올리버 농장을 어떻게든 사려고 노력하는 이유를 알면 모든 게 이해가 될 것이다. 알란 마을 북쪽에 있는 지하동굴에 거대한 금맥이 숨겨져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쯤 되면 대가리에 총을 맞지 않은 이상! 모든 일의 전모를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디에고는 그 말을 끝으로 더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오직 대한의 눈만 쳐다봤다.
‘에바!’
―디에고의 말은 진실입니다.
에바는 그가 무슨 질문을 할지 알고 있었다.
‘역시 엄청난 비밀이 숨어있었군.’
―사미라는 마이라 그룹의 정식 후계자입니다. 현재 사미라를 비롯한 마이라 가문과 은행 및 기업들을 훑어보고 있습니다.
‘디에고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 어떻게든 올리버 농장을 인수하려고 하겠군.’
―마이라 그룹의 서버에 알란 동굴을 비밀리에 탐사 및 조사한 비밀보고서가 일급비밀 등급으로 숨겨져 있습니다.
‘지하동굴에 정말 금광이 숨겨져 있는 거야?’
―네, 그렇습니다. 보고서에 의하면 꽤 커다란 금맥이 있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에바의 말에 대한은 절로 침을 꿀꺽 삼켰다.
“가라!”
“정말 보내주는 거냐?”
“그렇다. 너에게 24시간을 주겠다. 그 이상은 필요 없겠지?”
“물론이다.”
“이게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명심해라!”
“고맙다.”
디에고는 대한을 향해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리곤 어둠에 휩싸인 수풀을 향해 급히 뛰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