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선제 타격>
―맞습니다. 고인분은 낮에는 노동규의 비서입니다. 하지만 밤에는 유흥가의 보이지 않는 큰손입니다. 킬러를 고용해 직접 해치거나 교통사고 같은 사고로 위장한 테러로 마스터를 죽일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무슨 짓을 했기에 나를 죽이려고 하는 거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절대 이런 보복이나 응징을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그들은 확실히 위험합니다. 자기보호를 위한 선제타격으로 위험인자를 미리 제거해버릴 것을 조언합니다.
에바는 강력하게 선제타격을 주장했다.
대한은 그녀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했다.
자신이라면 에바의 도움으로 이런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부모님은 얘기가 달랐다.
대한민국에서 무소불위의 힘과 금력을 가진 게 재벌이다.
이놈들이 독하게 마음을 먹는다면 일반인에 불과한 부모님은 언제든지 위험에 처할 수가 있다.
―마스터! 긴급보고입니다.
‘이번엔 또 뭔데?’
긴급보고라는 말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정반석 변호사가 이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정반석 변호사가?’
―네, 어머니께서 보이스피싱을 당해 천만 원을 갈취당하셨다고 합니다.
‘보이스피싱?’
정말 가지가지였다.
노동규와 그의 비서 고인분의 처리도 골치 아팠다.
그런데 이제는 어머니가 보이스피싱에 당하셨다.
대한은 이렇게 머뭇거리고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중심을 바로 잡고 서 있어야 한다. 이렇게 망설이거나 머뭇거리는 시간에 나와 부모님은 언제든지 세상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어.’
독하지 않으면 장부가 아니라고 했다.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제는 주도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이끌어가고 부모님도 잘 보호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에바!’
―네, 마스터!
‘함무라비 법전 알지?’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이에는 이, 피에는 피다.’
―무슨 뜻으로 한 말씀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십시오.
에바는 단박에 알아듣지를 못했다.
할 수 없이 대한이 친히 설명을 해야했다.
‘로티 그룹 부회장 노동규와 그의 비서 고인분이 내 목숨을 빼앗으려고 했으니까 나도 그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빼앗고 말겠다는 말이다.’
―그들이 마스터를 대적한 만큼 마스터도 그들을 응징하겠다는 말씀이시군요.
‘맞아. 같은 맥락에서 어머니가 보이스피싱을 당해서 돈을 갈취당했으니 에바가 놈들을 추적해서 그들의 돈을 전부 갈취해버려!’
―알겠습니다.
에바는 대한이 결국 마음을 굳혔다는 것을 알고 반색했다.
그는 더 이상 질질 끌려다니지 않기로 했다.
명백한 적의를 드러낸 적대세력은 바로바로 처리해버리기로 한 것이다.
―프로젝트 노동, 프로젝트 고인물, 프로젝트 피싱을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활동 범위와 허용범위를 정해주세요.
‘프로젝트 이름이 독특하군.’
―감사합니다.
쿨럭!
칭찬이 아니었는데 칭찬이 되어버렸다.
‘그 어떤 방법을 사용해도 좋으니 노동규가 가진 힘의 원천인 돈과 재산을 날려버려! 단 목숨만은 살려주도록 해!’
―알겠습니다.
‘노동규의 비서인 고인분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밤거리를 지배하는 놈이니 분명 놈이 이끄는 조직이 따로 있을 거야. 물론 경쟁상대나 적도 많겠지.’
―경쟁조직이나 적들에게 고인분과 조직의 약점과 비밀을 넘겨주라는 말씀이시죠?
‘정확해!’
대한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는 연이어 보이스피싱에 대해서도 말을 이었다.
‘모르긴 해도 중국의 폭력조직이나 조선족 폭력조직과 연관이 있을 거야. 같은 방식으로 서로 싸움을 붙이고 이간질을 해! 당연히 놈들의 돈과 재산도 싹 털어버려!’
―네, 마스터! 즉시 명령을 이행하겠습니다.
에바는 부동자세에서 한 손을 들어 그에게 경례를 올렸다.
이때부터 에바는 3개의 프로젝트를 착실히 돌렸다.
먼저 프로젝트 노동!
로티 부회장 집에 도둑이 들고 불이 났다.
노동규는 이 말도 안 되는 사태에 뒷골을 잡고 쓰러졌다.로티 부회장실에도 해커가 침입해 컴퓨터를 먹통으로 만들었다.
개인계좌의 돈은 물론이고 스위스 은행과 조세회피처(Tax heaven) 등에 잘 숨겨놓았던 거액의 비자금이 어디론가 이체되어 사라졌다.
거기에다 로티 그룹의 주식이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팔려나갔다.
지병인 고혈압이 도진 것이다.
결국, 노동규는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갔다.
프로젝트 고인물!
갑작스러운 악재로 쓰러진 노동규를 바라보는 고인분!
그의 얼굴도 절대 편치 않았다.
세 집 살림하던 그의 아내와 애인들이 서로의 존재를 알아버렸다.
매일 바가지를 긁어대는 바람에 이제는 잠도 편히 잘 수 없었다.
노동규와 마찬가지로 개인계좌와 조직의 자금을 넣어둔 저축은행의 돈을 누군가가 털어갔다.
비자금을 숨겨놓는 장소로 활용했던 주택도 불이 나서 전부 타버렸다.
어떻게 된 게 멀쩡하던 금고까지 열려서 안에 차곡히 쌓아놓았던 돈다발과 달러 및 엔화 그리고 거액의 무기명채권까지 단숨에 재로 변했다.
거기에다 이 사실이 조직원들과 경쟁조직에 알려져 매일 밤 시비가 벌어지고 있었다.
고인분은 조만간 남은 재산을 정리해서 일본으로 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며칠만 지나면 아마 자신의 배때기에 칼이 꽂히게 될지도 모른다.
프로젝트 피싱!
대한의 어머니 김혜영을 속여 천만 원을 갈취한 보이스피싱!
이들의 조직을 추적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보이스피싱을 한 놈의 목소리를 김혜영이 녹음해놓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에바에게 있어서 쉽다는 말이다.
에바는 범인의 목소리를 복사한 후!
전 세계의 통화를 감청하는 에셜론(ECHELON) 서버에 넣고 돌렸다.
에셜론은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뉴질랜드 5개국이 운영하는 전 세계의 통신을 감청해 신호정보 수집 및 분석을 하는 네트워크다.
당연히 막대한 양의 음성데이터베이스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미국의 NSA 서버, 중국의 국가안전부 서버와 공안부의 서버까지 훑었다.
그러자 일치하는 음성데이터가 나타났다.
에바는 중국 허베이성 무안에 있는 국가안전부 서버를 타고 들어갔다.
보이스피싱 조직들은 물론이고 이들과 연계된 중국 공안들의 신상을 몽땅 털었다.
또한, 국내에 연계된 조폭들까지 깡그리 색출했다.
생각보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방대했다.
그리고 이런 조직들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대부분 중국 본토에 베이스를 둔 놈들이었다.
이들은 조선족은 물론 한국 여행자까지 납치·감금해서 범죄에 이용하고 있었다.
에바는 모든 보이스피싱 조직을 색출해 일망타진하라는 명령은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의 레이더에 걸린 보이스피싱 조직을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진 않았다.
보이스피싱 조직들이 가지고 있던 막대한 자금!
하나씩 소리 없이 증발하기 시작했다.
현금을 둔 곳은 불이 나서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은행이나 주식에 투자한 것들은 누군가 몰래 털어가 버렸다.
개인계좌의 돈까지 자신들도 모르게 이체되기 시작했다.
그제야 대형사고가 터진 것을 깨달은 보이스피싱 조직들이 사태 해결에 나섰다.
하지만 곧이어 들이닥친 공안의 습격에 모조리 잡혀 들어갔다.
에바가 정보를 공안부에 살짝 풀어버린 것이다.
보이스피싱이 국내에만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었다.
중국 본토에서도 보이스피싱은 아주 극심했다.
그러니 결정적인 정보를 접한 공안부는 좋다고 보이스피싱 조직을 때려잡았다.
물론 에바가 가장 철저히 두들긴 것은 김혜영의 돈을 갈취해간 보이스피싱 조직이었다.
이 조직은 두목에서부터 모든 조직원이 크고 작은 사고를 통해 다치고 재산을 날렸다.
마지막으로 공안의 습격에 붙들려 잡혀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관광객 열 명이 구조됐고 여죄가 무수하게 드러나게 됐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브라질과는 멀리 떨어진 동북아시아에서 일어난 사건들이었다.
한편, 대한은 불룩한 배를 만지며 비몽사몽에 빠져 있었다.
“대한!”
“응?”
“들어가서 한숨 자! 이따 야간사냥을 하려면 좀 쉬는 게 좋아.”
“알았어.”
올리버의 말에 대한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1층의 방을 하나 잡고는 침대 위에 발라당 드러누웠다.
식곤증이 몰려와서 그는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자꾸 어디선가 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결국, 대한은 다시 잠이 깼다.
‘에바!’
―네, 마스터.
‘이게 무슨 소리지?’
―어떤 소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누군가 신음을 내고 있어.’
―귀를 잘 기울여보십시오. 마스터에게는 푸르나(SS)와 마력 스탯도 있지 않습니까?
에바의 말에 대한은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깊게 심호흡을 하면서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신음이 점점 크게 들렸다.
푸르나를 돌렸다.
정수리에서 꼬리뼈까지 이어지는 푸르나의 진자운동이 더욱 활발해졌다.
거기에다 귀에다 마력까지 살짝 밀어 넣었다.
그러자 오두막의 상황이 한눈에 보이는 듯했다.
“젠장!”
대한은 급히 푸르나를 중단하고 귀에 밀어 넣었던 마력도 회수했다.
―잘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의 뜨거운 애정행각을 엿듣는 것은 변태나 하는 짓입니다.
‘그런 거 아니거든.’
그는 에바의 중상모략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아니면 말고요.
‘에바!’
―죄송합니다.
결국, 대한이 속으로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에바가 사과했다.
그는 기분이 심히 언짢았다.
안 그래도 뜨거운 혈기가 넘치는 나이다.
그런데 자신의 방을 제외한 각방에서 거친 신음과 교성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올리버와 호세는 물론이고 조동혁까지 그 대열에 참여하고 있었다.
대한은 본의 아니게 뭔가 왕따가 된 기분이었다.
‘40일 남았다. 그때 보자.’
해가 지나 자신의 생일이 돌아오기를 이 순간 그는 손꼽아 기다렸다.
대한의 생일은 다행히 1월 2일이다.
그날이 오면 역사적인 대한의 화려한 인생의 제2막이 펼쳐지게 될 것이다.
‘잠은 다 잤네.’
―피로를 푸시려면 차라리 푸르나를 연공 하십시오.
‘푸르나를 연공하면 더 크게 소리가 들릴 텐데.’
―외부와 소리를 차단하는 방법도 있지 않습니까!
‘아! 그렇지.’
알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깜빡할 때가 있었다.
대한은 침대 위에 편하게 누워 눈을 감았다.
마력을 귀로 밀어 넣어 아까와는 반대로 운용했다.
외부와 공간이 분리된 듯!
청각이 차단되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외부의 방해를 받지 않고 푸르나 연공을 집중해서 할 수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대한은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푸르나는 더 활성화되었고 마력은 더욱 강대해졌다.
그렇게 오두막 안에서 기묘한 동거가 시작됐다.
* * *
퉁! 퉁! 퉁! 퉁!
소음기를 단 저격총이 불을 뿜었다.
그때마다 농장으로 들어온 사슴과 멧돼지가 피를 뿌렸다.
“더 없어?”
“응, 다 도망갔어.”
올리버와 호세는 대한의 말에 벌떡 일어났다.
둘은 그가 사냥한 사냥감을 확인하러 이동했다.
대한도 지지 않고 이들의 뒤를 빠르게 따라붙었다.
농장 청년 몇이 배낭을 들고 조용히 세 명의 뒤를 따랐다.
“기가 막히네. 또 머리에 명중시켰어. 정말 운이 대박이다.”
올리버는 대한을 쳐다보며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호세도 말없이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운이라니. 너 왜 자꾸 내 실력을 깎아내리는 거야.”
“아무리 야간조준경이 좋다고 해도 이 거리에서 어떻게 머리통을 정확히 명중시켜?”
“그건 네가 사격 실력이 떨어져서 그런 거고. 난 가능해!”
“호세!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올리버가 열이 받아서 호세에게 물었다.
호세는 아무 말 없이 자리를 피해 주변을 살펴봤다.
굳이 둘의 유치한 대화에 끼어들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주인님, 어떻게 할까요?”
농장의 청년 하나가 조심스럽게 사슴을 가리켰다.
“사슴 한 마리만 들고 가고 나머지는 마크만 해놔! 내일 수습하게.”
“네, 주인님.”
올리버는 대한에게 말할 때와는 달리 근엄한 표정으로 지시했다.
농장의 청년들이 정글도를 들고 사슴 한 마리에게 달라붙었다.
사슴은 금세 뼈와 가죽만 남기고 살코기를 털렸다.
지이이잉!
그때 호세의 스마트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응? 그래? 알았어. 지금 갈게!”
전화를 받는 호세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대한과 올리버가 동시에 그를 쳐다봤다.
“도련님, 알란 마을에서 촌장의 아들이 납치를 당했답니다.”
“뭐야! 당장 가자.”
올리버는 즉시 타고 온 대형 SUV로 걸어갔다.
호세가 농장 청년들에게 뭐라고 빠르게 지시를 하더니 급히 올리버를 뒤를 따라갔다.
대한은 영문을 몰라서 말없이 그들을 바짝 쫓아갔다.
부우우웅!
차는 곧바로 출발했다.
운전하는 호세가 무섭게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뒤에 앉은 대한이 슬그머니 안전띠를 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