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헬기 사냥>
“시작한다.”
“옛설!”
올리버의 말에 경호원 호세가 크게 대답했다.
타타탕! 타타탕! 타타타타탕!
투투투퉁! 투투투퉁! 투투투퉁!
두 개의 각기 다른 총소리가 헬기 안을 크게 울렸다.
대한과 조동혁은 귀에 헤드셋을 착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데 총성의 결과는 더욱 인상을 쓰게 만들었다.
헬리콥터 소리에 놀란 멧돼지들이 무리를 지어 도망쳤다.
하지만 올리버와 호세가 쏘아대는 소총에 맞자 하나둘씩 쓰러졌다.
머리통에 구멍이 뚫려 그대로 주저앉은 멧돼지가 보였다.
온몸에 피를 흘리다 쓰러진 놈도 있었다.
머릿속으로는 참 잔인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자신도 소총으로 멧돼지를 사냥하고 싶었다.
대한은 흥분으로 점차 심장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힐끗 채팅 창을 살펴봤다.
반응이 아주 폭발적이었다.
[까를로스: 우와! 끝내준다.]
[승리자: 장난 아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헐! 지린다.]
[주의선물: 너무 잔인해요.]
[정치개혁자: 정말 시원하게 총을 쏴버리네.]
[알렉산더아들: 진짜 재미있겠다.]
[귀족적인남자: 뭔 놈의 멧돼지가 물소만 하냐.]
[모모이뻐: 이거 동물 학대 아닌가요?]
[블랙핑크마니아: 브라질은 사냥을 이렇게 하는구나.]
[준법정신: 브라질 사냥 클래스 보소! 불법은 아니겠지.]
멧돼지들이 아무리 빨리 도망쳐도 하늘을 나는 헬기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아무리 큰 멧돼지도 공중에서 쏟아지는 공격에는 무력했다.
쏘면 쏘는 대로 다 맞았다.
먹이사슬 최상층에 있는 인간의 힘!
야생동물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더 나쁜 삶을 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는 잔인하다고 고개를 돌렸다.
일부는 저렇게 사냥하면 참 재미있겠다고 흥분했다.
어떤 사람은 동물 학대가 아니냐고 따졌다.
그러나 대한은 그 어떤 질문에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이건 딱히 뭐가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고 했다.
브라질에서 개인소유의 농장에 침입한 야생동물을 처리하는 것이 불법은 아니라고 했다.
물론 올리버에게 들은 소리다.
또한, 그는 이미 사냥허가증까지 받았다는 얘기도 했다.
대한은 에바에게 이런 자세한 것들까지 공지에다 정확히 올리라고 당부했다.
그래야 나중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빠져나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대한은 직접 사냥을 하지 않았다.
아니 카메라가 돌아갈 때는 아예 총도 잡지 않았다.
조동혁만 입을 다물면 누구도 알 수 없는 현장의 일이었다.
“이제 네 차례야.”
에바가 광고를 내보내는 사이!
올리버가 대한에게 소총을 넘겼다.
“조동혁 매니저도 같이해요!”
대한의 말에 호세도 조동혁에게 자신의 소총을 넘겼다.
총을 건넨 그들은 서로 자리까지 바꿔 앉았다.
푸타타타타!
자리를 바꾸자 바람이 더욱 세차게 느껴졌다.
헬기의 문이 활짝 열린 상태라 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강풍과 긴장감 쏟아져 들어왔다.
“안전띠부터 착용해!”
“알았어.”
올리버의 조언에 대한과 조동혁은 급히 안전띠를 맸다.
그런 다음 잠시 숨을 고르며 대기했다.
헬리콥터가 크게 원을 그리며 돌았다.
농장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는 또 다른 멧돼지 무리를 금세 찾아냈다.
대한은 몸을 기울이며 총구를 아래로 향했다.
헬리콥터 소리에 놀란 멧돼지들이 울창한 수풀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제일 뒤로 쳐진 멧돼지들을 향해 소총을 쏘기 시작했다.
타타탕! 타타탕! 타타타타탕!
대한은 이름 모를 소총의 격발반동을 온전히 자신의 어깨로 느꼈다.
눈앞에서 멧돼지들이 연이어 쓰러졌다.
선홍색 피를 튀어 오르는 것이 눈에 보였다.
자신도 모르게 흥분한 몸에 서서히 아드레날린이 돌기 시작했다.
그는 총구를 살짝 들어 올려 이번에는 도망치는 멧돼지 무리의 선두를 공격했다.
쏘는 족족 멧돼지들이 픽픽 쓰러졌다.
투투퉁! 투투퉁! 투투투투퉁!
대한의 옆에서 조동혁도 소총을 쏘기 시작했다.
처음이라서 그런지 잘 맞추지 못했다. 그러나 소총을 난사하기 시작하자 곧 하나둘씩 멧돼지가 쓰러졌다.
처음이 어렵지 몇 번 쏴보면 금세 요령을 터득할 수 있었다.
대한과 동혁은 올리버 덕분에 정말 신나게 소총을 쏴대며 멧돼지 사냥을 했다.
하지만 멧돼지 무리는 잡아도 잡아도 끝이 나지 않았다.
‘도대체 멧돼지 무리가 얼마나 있길래 이렇게 끝이 없는 거야?’
―그건 알 수 없습니다. 요새 브라질에서 하도 삼림을 태우고 벌목해서 멧돼지들이 살 터전을 잃고 민가로 내려오거나 이처럼 농장에 침입한다고 합니다.
사실 이런 현상은 브라질만의 일이 아니었다.
미국의 농장에선 벌써 오래전부터 헬기를 타고 멧돼지나 야생동물을 사냥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어떻게 보면 올리버는 이들이 하는 행동을 브라질에서 모방하는 것에 불과했다.
“이제 돌아가서 저녁을 먹고 사슴사냥을 하자.”
“저녁 먹고 나면 저격총을 쏠 거야?”
“응.”
대한은 올리버의 말에 소총을 건네고 자리를 바꿨다.
에바가 광고를 끄자 대한이 카메라를 보고 말했다.
“생각보다 멧돼지 무리가 참 많습니다. 올리버와 호세가 잡고 또 잡아도 끝이 나질 않습니다. 이제는 헬리콥터를 돌려서 농장 인근에 나타나는 사슴을 잡겠다고 합니다.”
그는 앞으로 하게 될 일을 친절하게 설명했다.
올리버가 조종사에게 헬리콥터를 돌리라고 말했다.
그러자 헬리콥터는 바로 크게 회전을 하더니 빠르게 농장으로 돌아갔다.
그사이 호세는 헬리콥터의 양쪽 문을 모두 닫았다.
조동혁은 소총을 분해해 가방에 잘 챙겨 넣는 올리버를 카메라로 잡았다.
슬쩍 조동혁을 쳐다본 올리버는 다시 한번 그 느끼한 미소를 지어댔다.
대한에게는 안구 테러에 해당하는 만행을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는 게 참 신기했다.
타타타타타!
헬리콥터가 농장의 헬리포트에 내렸다.
그들은 다시 대형 SUV를 타고 농장을 가로질렀다.
뒤에서 4X4 트럭이 쫓아오고 있었다.
조동혁이 열심히 카메라를 움직여 올리버를 찍었다.
올리버는 연신 미소를 지으며 좋아했다.
‘이런 맛에 사냥하는 모양이네.’
―어떤 맛인데요?
‘내 몸 안에 야생이 살아 숨 쉬는 듯한 원초적인 본능이 느껴졌어.’
―기사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감각입니다. 오늘의 그 느낌 잊지 마십시오.
에바는 참 묘한 말을 했다.
대한은 잠시 그녀의 말을 상기해보았다.
어쩌면 현대사회의 남성은 본의 아니게 야성을 거세당한 상태인지도 몰랐다.
책상 앞에만 앉아 있다 보니 거친 야성의 본성을 잃어버리고 여성화가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걱정됐다.
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에바의 말을 곱씹었다.
‘그동안 나에게는 야성이란 게 존재하지 않았어. 늘 눌리고 위축되고 무기력하고 포기하고 의지도 박약했어. 하지만 이제 더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 내 안에 잠재된 야성을 어떤 방식이든지 표출하고 싶어.’
그 방식이 뭔지는 잘 몰랐다.
하지만 최소한 하나는 찾은 것 같았다.
바로 사냥이었다.
브라질에서는 사냥허가증만 받으면 얼마든지 사냥을 할 수 있었다.
특히 요새 농장을 빈번하게 침입하는 멧돼지와 사슴 같은 야생동물들의 개체 수를 줄이기 위해 적극적인 사냥을 권유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끼익! 끼익!
두 대의 차량이 거대한 평원 한가운데에 세워진 오두막 앞에 정차했다.
차에서 내리자 시야가 탁 트인 넓은 평원이 보였다.
온갖 곡식들이 무르익어가고 있는 식량 창고였다.
대한민국에 이런 평야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동혁도 절로 입을 딱 벌리며 놀랐다.
아마도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때 올리버가 재미있는 제안을 했다.
“오늘은 이 오두막에서 지내자.”
“집에 안 돌아가겠다는 거야?”
“응, 사냥해서 잡은 사슴과 멧돼지를 구워 먹어야지. 밤이 되면 야간사냥도 하고.”
저녁 사냥이 금세 야간 사냥으로 바뀌었다.
“음, 그것도 나쁘지 않겠군.”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었지만 이내 흔쾌히 허락했다.
생각해보니 자신은 한 번도 야영지나 캠프장을 가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외딴 오두막에서 하룻밤 지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짐은 놔두고 일단 들어와!”
올리버는 대한을 끌고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겉은 허접했는데 안은 아니었다.
이 층으로 이뤄진 오두막은 방이 네 개에다 화장실이 두 개나 있었다.
중앙에는 넓은 거실과 부엌이 있었고, 베란다에는 바비큐를 해먹을 수 있는 시설이 완비되어있었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호텔보다 낫다.
“일단 좀 씻자.”
“그래.”
“넌 1층 욕실을 써!”
“난 2층 욕실을 쓸게.”
올리버는 땀에 젖은 몸이 찝찝했는지 미처 대답도 듣지 않고 2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대한도 씻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는 1층에 있는 욕실로 들어가 옷을 벗고 샤워기로 갔다.
물을 틀자 시원한 물이 쏟아졌다.
쏴아아아!
그는 소나기처럼 퍼붓는 물줄기에 기분 좋게 몸을 씻었다.
개운한 기분으로 몸의 물기를 닦으려고 하는데 인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내밀고 보자 욕실 입구에 누군가 서 있었다.
자세히 보니 피부가 까무잡잡한 여자가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유럽계 백인과 흑인 사이의 혼혈인, 귀여운 인상의 물라토 여자였다.
“뭡니까?”
“주인님이 손님에게 옷을 가져다주라고 해서 왔어요.”
“거기다 놓고 가요.”
“아니에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여자는 막무가내로 다가와 수건으로 그의 몸의 물기를 닦았다.
대한은 기겁하고 놀랐다.
하지만 이미 볼 것은 다 보이고 만 후였다.
허탈해진 대한은 그냥 깔끔하게 포기해버렸다.
그녀의 손은 전신의 물기를 닦았다.
그런데 시선은 그의 사타구니 사이에 고정되어 있었다.
여자는 고개를 치켜들어 대한의 얼굴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대한은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어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자 여인은 대한의 손을 잡아 자신의 가슴에 가져가려고 했다.
대한은 급히 손을 빼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리 여자에게 굶주렸다고 해도 자신의 동정을 이름도 모르는, 아무 여자에게나 주고 싶진 않았다.
더군다나 손을 내밀면 당장이라도 달려와 안길 하이스가 지척에 있었다.
여자는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배시시 웃었다.
대한도 할 수 없이 같이 미소를 지었다.
욕실 밖으로 여자가 나가자 대한은 급히 준비된 옷을 입었다.
이럴 줄 알고 미리 준비라도 했는지 속옷과 티셔츠 그리고 반바지가 하나같이 몸에 딱 맞았다.
거실로 나오자 올리버가 요상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뭐냐? 그 더러운 웃음은?”
“아무것도 아니야. 저 옷 입어. 널 위해 준비한 사냥복이야.”
“알았어.”
대한은 고맙다고 하려다가 그냥 뻔뻔하게 나갔다.
아무래도 물라토 여자의 행동이 올리버 때문인 것 같았다.
생판 모르는 남자를 유혹하는 여자는 없다.
분명히 올리버가 사주했거나 최소한 부추겼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대한은 고맙다는 생각보다는 괘씸하다는 마음이 컸다.
대한과 올리버가 욕실에서 나오자 이번에는 동혁과 호세가 들어갔다.
그 사이 4X4 트럭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대신 농장의 청년들이 올리버와 대한 일행의 짐을 오두막 안으로 옮기고 있었다.
베란다에서는 여자들이 요리하는 소리가 났다.
그런데 가끔 깔깔대며 웃는 목소리를 들어보면 어린 처녀들인 게 분명했다.
대한은 올리버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주변은 야생동물의 침입을 막기 위해 목책이 세워져 있었다.
바깥쪽으론 해자가 파여있었는데 안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새들이 그 안을 돌아다니면서 뭔가를 열심히 잡아먹고 있었다.
“시원한 음료수라도 마시자.”
“좋아.”
올리버는 대한을 데리고 베란다로 갔다.
예상대로 어린 처녀들이 올리버를 보자 일제히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주인님!”
“우리 시원한 음료수 좀 가져다줄래?”
“네, 주인님.”
그녀들은 올리버를 깍듯이 주인님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묘하게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부르는 자와 불리는 자가 서로의 관계를 지극히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증거였다.
현대사회에 아직도 이런 주종관계가 존재하는지 대한은 처음 알았다.
아니면 그냥 호칭만 이렇게 부르고 있는 것을 그가 오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요리를 준비하는 여자는 총 다섯 명이었다.
메스티소가 2명, 물라토가 3명이었다.
전체적으로 20대 안팎으로 보였는데 하나같이 대한과 올리버를 은근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올리버에게 시원한 맥주를, 대한에겐 콜라를 가져다준 여자도 같은 눈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