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올리버 농장>
대한은 얼굴에 거의 표정이 없는 막퉁과 인사를 나눴다.
“반갑습니다. 대한이라고 합니다.”
“막퉁입니다. 제가 말을 잘 못 해요. 이해해주세요.”
둘은 인사를 하며 서로 악수를 했다.
올리버가 막퉁에게 빨리 무에타이를 가르쳐달라고 보챘다.
막퉁은 급히 그에게 다가가 무에타이의 기초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 사이 대한도 운동복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에바!’
―재능 흡수 대상자 막퉁의 DNA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최대 재능이 무에타이 맞아?’
―네, 맞습니다. 재능 무에타이(SS)를 흡수하시겠습니까?
‘당연하지.’
대한의 말에 에바는 즉시 재능 무에타이(SS)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는 막퉁이 올리버에게 무에타이를 가르치는 것을 구경하며 느긋하게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에바에게 신호가 왔다.
―마스터! 재능 무에타이(SS)를 흡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수고했어.’
대한은 즉시 막퉁에게 다가가 꼽사리를 꼈다.
공짜로 가르쳐주는 무에타이 선생이 눈앞에 있다. 그런데 체면 때문에 점잔만 빼고 가만히 앉아 있을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올리버는 대놓고 투덜거렸다. 그렇다고 감히 그의 참가를 반대하거나 막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런 경우가 어디 있어?”
“어디 있긴 여기 있지.”
“너무한 거 아냐?”
“그래서 내가 옆에서 배우는 게 싫어? 싫으면 싫다고 말해!”
“아, 아니 그건 아니야. 대신 이거 끝나고 나면 나하고 사냥하러 가자.”
“사냥?”
“응, 헬기 타고 다니면서 우리 농장을 망치고 있는 멧돼지를 잡을 거야.”
“좋아.”
대한은 올리버의 말에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올리버는 그가 같이 가겠다고 하자 당장 기분이 좋아졌다.
종합 격투기로 싸운다면 아마 박살이 날 것이다. 하지만 사냥이라면 얼마든지 대한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했다.
* * *
이렇게 대한이 무에타이를 배우는데 열을 올리고 있을 때!
대한민국에서는 영국과 스페인에서 날아온 따끈따끈한 뉴스로 들끓고 있었다.
[맨유 감독, 이대한은 맨유에서 위대한 선수가 될 수 있다.]
[맨시티, 이대한은 반드시 우리에게 올 것이다.]
[리버풀에서 이대한에게 거액의 베팅을 한다.]
[첼시는 이대한이 꼭 필요하다.]
[얼마가 들어가든 아스널은 이대한을 반드시 품을 것이다.]
[토트넘, 케인과 투톱을 뛸 수 있는 선수로 이대한을 지목.]
[바르셀로나, 이대한에게 거액의 이적료를 제시!]
[레알 마드리드, 이대한과 이적 협상 중!]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소식이었다.
대한민국의 축구 팬들은 후끈 달아올랐다.
대한이 UFC 브라질 대회에서 데뷔전을 치른 다음 날.
이런 오피셜이 터져 더욱 의의가 깊었다.
그동안 ‘대한이 귀화했다!’, ‘축구를 버리고 UFC 선수가 됐다.’라는 기사를 썼던 기자들은 곧바로 태세전환을 했다.
이때부터 그들은 다시 대한을 신나게 빨아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한은 일체 언론에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특히 대한민국의 언론과 기자들과는 전화통화 한번 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실체는 없고 죄다 소문만 무성했다.
거기에다 뇌피셜을 써대는 기레기들 때문에 더욱 혼란스러웠다.
그즈음 대한이 숭신고 축구부를 탈퇴했다는 기사가 떴다.
거기에다 자퇴서까지 제출해 수리됐다는 보도까지 나갔다.
그제야 대한민국 축구 팬들은 대한이 K리그에 전혀 마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K리그 구단들도 이번 사태가 심상치 않은 것을 알게 됐다.
스카우터들이 브라질에 급파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하지만 가장 크게 난리가 난 곳은 엉뚱하게도 로티 그룹 부회장실이었다.
와장창!
“이 병신새끼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노동규는 화가 나서 책상 위에 놓인 꽃병을 집어 던졌다.
“죄송합니다. 사태가 이렇게 될지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노재정은 얼굴이 하얗게 변한 채 이마에서 삐질삐질 땀을 흘려댔다.
“죄송하다면 다야? 이미 돈이 억 단위로 들어갔어. 전부 네가 한 말을 믿고 진행한 거잖아!”
“비용은 제가 어떻게 하든 갚겠습니다.”
“머저리 같은 놈아! 지금 돈이 문제가 아니야. 벌써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미리 부탁해놓았단 말이야. 이제 창피해서 내가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어?”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나가! 아니 꺼져!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만! 이 머저리 새끼야.”
노동규가 축객령을 내리자 노재정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쌩하니 부회장실을 빠져나갔다.
후다닥!
그런 노재정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노동규는 고개를 흔들며 혀를 찼다.
고 비서가 다가와 그에게 물잔을 건넸다.
노동규는 단숨에 시원하게 물을 들이켜고는 이를 갈았다.
“이거 도저히 열 받아서 안 되겠다. 절대 그냥은 못 넘어가겠어.”
“어떻게 할까요?”
“그 싹수없는 어린놈의 새끼한테 쓴맛을 보여줘야지.”
“세상의 눈이 이대한 선수에게 죄다 쏠려있습니다. 지금은 때가 아닙니다.”
“알고 있어. 당장은 아니지만 좀 기다리면 기회가 오겠지.”
“무슨 뜻인지 잘 알았습니다. 미리 응징할 방법을 준비해놓겠습니다.”
“그렇게 해!”
고 비서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의 모습을 지켜보는 노동규의 눈이 뱀의 눈처럼 서늘해졌다.
동시에 노동규와 고 비서의 스마트폰이 완벽하게 복제되기 시작했다.
* * *
날렵한 헬리콥터가 서서히 허공을 떠올랐다.
조종사는 부드럽게 헬기의 동체를 서쪽으로 회전시켰다.
가속을 시작한 헬리콥터는 마침내 창공을 힘차게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니 상파울루의 중심가가 한눈에 들어왔다.
타타타타타!
헤드셋을 했는데도 로터 돌아가는 소리가 굉음처럼 들렸다.
사실 이보다 더 시끄러운 것은…….
쉬지 않고 떠들어대고 있는 올리버의 수다였다.
“이건 미국 시코르스키사(社)에서 제조한 S-76, 중형 상용 유틸리티 헬리콥터야! 터보메카 에리얼 트윈 터보 샤프트 엔진에 4개의 날을 가진 메인 로터 및 테일 로터와 개폐식 착륙기어를 달았지.”
“그렇구나.”
대한은 영혼 없는 대답을 하며 몸을 편하게 의자에 뉘었다.
“길이 16m, 넓이 3.05m, 높이 4.42m, 날개폭 13m에 공허 중량 3,177kg, 최대중량 5,306kg이나 돼. 비행 거리는 761km 정도고 최대속도와 순항 속도는 287km/h나 되지.”
“생각보다 무척 빠르네.”
“당연하지. 1,300만 달러나 주고 산 건데, 그 정도 값어치는 해야지.”
“1,300만 달러?”
헬리콥터의 가격이 절대 만만치 않았다.
달러당 1,200원으로 환산하면 무려 156억 원이다.
무슨 저택을 사는 것도 아니고 헬리콥터 한 대에 들어가는 돈치고는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 그것 가지고 놀래? 원래는 조종사 2명에 승객을 13명 나를 수 있었는데 우리 어머니가 VIP 헬리콥터로 싹 개조해서 안이 이렇게 고급스러워진 거야.”
올리버의 말이 아니더라도 헬리콥터 내부가 럭셔리한 것은 진즉에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누가 보면 너 이 헬리콥터 회사의 판매원인 줄 알겠다.”
“뭔 농담을 그렇게 재미있게 해!‘
대한이 뭐라고 구박을 해도 올리버에게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올리버는 마냥 신이 난 상태로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사실 공항에 가면 우리 집에서 쓰는 비즈니스 제트기도 한 대 있어.”
“비즈니스 제트기?”
비즈니스 제트기란 소리에 대한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 빛났다.
올리버는 마치 이게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본격적으로 썰을 풀기 시작했다.
“우리 브라질에 비행기를 잘 만드는 회사가 하나 있는데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름이 엠브라에르야. 거기서 나온 쌈박한 비즈니스제트기를 하나 샀어. Praetor 600 이라고…….”
대한은 조잘대는 올리버의 입을 주먹으로 한 대 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올리버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VIP 전용 헬리콥터를 타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거기에다 농장에 가서 사냥까지 시켜준다니 그냥 항공료를 낸 셈 치기로 했다.
그에 반해 조동혁은 오히려 올리버보다 더 신이 나 있는 것 같았다.
헬리콥터에는 두 명의 조종사를 제외하면 대한과 올리버, 조동혁과 올리버의 경호원인 호세 이렇게 네 명이 타고 있었다.
“올리버! 지금 우리 어디 가냐?”
“뭐라고?”
갑자기 훅 대한의 질문이 들어오자 올리버는 다시 물었다.
“우리 지금 어딜 가냐고.”
“아하! 아까 내가 얘기 안 했나?”
“안 했어.”
“이비우나에 있는 우리 농장에 가는 길이야. 거기 사격장에 가서 총 쏘는 법을 배우고 다시 헬리콥터를 타고 멧돼지 사냥 나갈 거야. 요새 정신 나간 멧돼지 놈들이 겁도 없이 농장으로 들어와 설쳐대고 있거든.”
그는 살짝 짜증이 났다.
한마디를 물어보면 족히 열 마디 대답은 하는 것 같았다.
‘이 새끼 혹시 원래 여자였던 것은 아닐까?’
대한은 의심의 눈빛으로 올리버를 쳐다봤다.
우락부락한 근육과 온몸에 난 복슬복슬한 털!
그는 바로 자신이 했던 생각을 접었다.
만약 이놈이 여자로 태어났다면 정말 불행했을 것이다.
남자로 태어났으니 그나마 호남아라고 행세깨나 하고 다니는 것이다.
푸타타타타타!
얼마 지나지 않아 헬리콥터는 서서히 하강을 시작했다.
헬리콥터 창문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보니 커다란 농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게 너희 농장이냐?”
“응, 여기서부터 저기까지가 전부 우리 농장이야.”
대한은 순간 어이가 없어서 말을 잃었다.
그가 가리킨 곳은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지역이었다.
브라질 땅이 넓다고 하더니 확실히 농장의 규모가 다르긴 했다.
덜컹!
헬리콥터의 옆문이 열렸다.
눈앞에는 어느새 대형 SUV와 4X4 트럭이 다가와 있었다.
농장에서 일하는 십여 명의 청년들이 올리버를 보더니 일제히 인사를 했다.
“도련님, 어서 오십시오.”
올리버의 경호원인 호세가 제일 먼저 내리고 주변을 살펴봤다.
그런 다음 대한과 올리버가 내렸다.
마지막으로 조동혁이 내려서 급하게 카메라를 설치하고 동영상을 찍었다.
“드디어 헬기에서 내렸습니다. 이곳은 올리버의 집에서 운영하는 농장입니다.”
대한이 말을 끊고 올리버를 쳐다봤다.
올리버가 눈치 하나는 정말 쌈박했다.
카메라를 보더니 점잖게 웃으면서 손가락으로 승리의 V자를 그렸다.
채팅 창에는 개뿔도 모르는 여자들이 올리버가 멋있다고 설레발을 쳐대고 있었다.
대한의 표정이 살짝 변하자 그걸 또 금세 눈치챈 올리버가 물어왔다.
“왜? 시청자들이 나보고 뭐라고 해?”
“네가 멋있단다.”
“그으래!”
올리버는 당장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그러곤 더욱 멋있는 척을 온갖 쇼를 해댔다.
꼴값을 떨고 있는 올리버를 더 쳐다보고 있다간 주먹이 나갈 것 같았다.
대한은 얼른 카메라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사격장은 차를 타고 가야 한다고 합니다. 그럼 사격장에서 뵐게요.”
그는 카메라를 향해 싱긋 미소를 짓고는 대형 SUV에 서둘러 올라탔다.
그런데 올리버도 잽싸게 따라와 냉큼 대한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더니 또다시 온갖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그냥 내버려 뒀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생각났다.
정말 인세에 다시 없는 명언이었다.
지금이야말로 바로 그 말대로 실천해야 할 것 같았다.
부우웅!
조동혁이 뒤차에 타자 두 대의 차량이 동시에 출발했다.
그렇다고 아주 먼 거리를 가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야트막한 언덕 아래 계곡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채 10분도 걸리지 않아 목적지에 도착했다.
끼익! 끼익!
대형 SUV와 4X4 트럭이 멈춰 섰다.
대한과 올리버는 차례로 하차해 계곡 쪽으로 걸어갔다.
나름 근사하게 만들어놓은 사격장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 정말 사격장 맞아?”
“응, 내가 만든 사격장이야.”
그제야 이 사격장이 공용사격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건 올리버가 만든 개인 사격장이다.
왼쪽에는 TV에서 봤던 야외사격장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오른쪽에는 올리버의 취향에 맞게 각종 야생동물의 철제모형이 세워져 있었다.
한쪽에는 통나무로 만든 긴 탁자가 있었다.
대형 SUV와 4X4 트럭이 차를 돌려 뒤쪽으로 후진하며 천천히 다가왔다.
탁자 근처에 멈춰선 트럭의 뒷문이 열렸다.
그러자 안에서 농장에서 일하던 청년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들은 대형 SUV의 트렁크와 4X4 트럭의 문을 열고는 각종 사냥총과 탄약을 꺼내 하나씩 진열하듯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조동혁은 벌써 자리를 잡고 삼각대 위에 카메라를 설치해놓았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청년들은 일제히 뒤로 물러났다.
대한은 카메라를 보며 다시 방송을 시작했다.
“여기는 사격장입니다. 보시다시피 계곡 안에 만들어져 있습니다. 표적과 과녁도 있고 야생동물의 모형도 있네요.”
대한은 카메라를 보면서 뒤쪽의 사격장을 하나씩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