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환골탈태>
스카우터들 말고도 아주 바쁜 존재가 하나 있었다. 바로 에바였다.
그녀는 곧바로 아르헨티나의 파블로 감독과 에이마르 코치를 저격하는 동영상을 편집해서 뿌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방송국에 익명으로 뿌렸다. 다음은 중남미와 미국, 나중에는 전 세계의 방송국에 차례로 보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전 세계의 매스컴은 아르헨티나의 U-17 축구 대표팀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맛있는 먹이가 있는데 그냥 가만히 있을 언론사들이 절대 아니었다. 그들은 찢고 씹고 발기고 짓이기며 아르헨티나의 U-17 축구 대표팀이 가루가 될 때까지 두고두고 빻아댔다.
당연히 이번 일의 핵심인 파블로 감독과 에이마르 코치는 개박살이 났다.
후안과 데안 선수도 이번 일에 당사자로 세상의 온갖 욕은 다 들어먹어야 했다.
문제는 이게 하루 이틀 확 달아올랐다가 끝나고 말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쿠울, 쿨, 쿠울, 쿨!
네 명의 인생을 아주 완벽히 결딴내버린 대한!
호텔 방으로 돌아온 그는 불룩한 배를 쓰다듬으며 침대에서 아주 맛있는 단잠을 잤다.
* * *
“모두 수고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연습을 끝내고 시로스 호텔에 도착했다.
“내일 결승전이니까 오늘은 딴짓하지 말고 그냥 호텔 방에서 푹 쉬어라!”
“네, 감독님.”
감독과 코치들은 선수들에게 신신당부했다.
선수들은 알았다며 각자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대한도 꾸벅 인사를 하고 몸을 돌렸다.
3성급 호텔답게 뭔가 살짝 2% 부족한 듯한 분위기였다.
결승전이 열리는 경기장과 가깝다는 장점이 없었다면 아마 절대로 투숙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한아!”
“네?”
그때 김수정 감독이 대한을 붙잡았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했다.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예, 그런데 먼저 좀 씻고 오면 안 될까요?”
“아! 당연하지. 나도 올라가서 씻고 와야겠다.”
“그럼 30분 뒤에 로비에서 뵙죠.”
“그러자.”
김수정 감독과 대한은 그렇게 헤어졌다.
승강기를 타는데 김대양 코치가 다가왔다.
“나도 할 얘기가 좀 있는데…….”
“그러세요?”
“감독님과 얘기 끝나고 나 좀 보자.”
“알겠어요. 이따 방으로 오세요.”
승강기에서 내리자 이번에는 공우공 코치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한아!”
“저하고 할 얘기가 있으신가요?”
“어? 응.”
“김수정 감독님과 김대양 코치님이 먼저 보자고 하셨어요. 끝나고 방으로 찾아갈게요.”
“그래. 방에서 기다릴게.”
“네.”
대한은 공우공 코치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내일 결승전을 치르는 선수라 호텔에서도 제일 좋은 방으로 내줬다.
뭐, 그래 봐야 스위트룸을 흉내 낸 것에 불과한 좀 큰 방이었다.
제일 좋은 것은 방을 혼자 쓴다는 것이다.
대한은 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에바! 다들 왜 저래?’
―K리그 구단에서 부탁을 받은 모양입니다.
‘아!’
대한은 에바의 한마디에 벌써 상황을 짐작했다.
그는 샤워를 마치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후 방을 나섰다. 로비로 내려가자 벌써 김수정 감독이 내려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커피 한잔할래?”
“좋지요.”
대한은 김수정 감독의 제의에 반색했다.
안 그래도 달콤한 커피 한잔을 마시고 싶었다.
둘은 호텔 커피숍으로 들어가 창가에 앉아 커피 두 잔을 시켰다.
김수정 감독은 잠시 그의 눈치를 살피다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대한아!”
“네.”
“며칠 전부터 K리그 구단들로부터 여러 가지 부탁을 받았다.”
“아! 그러세요.”
대한은 조금 놀랐다. K리그 구단들로부터 부탁을 받았다는 소리 때문에 놀란 것이 아니다. 김수정 감독이 이렇게 솔직하게 나오는데 놀란 것이다.
“현재 K리그1과 K리그2를 합쳐 K리그의 22개의 구단이 모두 너를 원하고 있다.”
“그들이 절 원한다는 말이 구체적으로 어떤 뜻이죠?”
“준프로 계약을 맺고 싶어 한다는 말이야.”
“졸업하기 전에 제 발목에 족쇄를 채우고 싶은 거네요.”
대한의 노골적인 비아냥에 김수정 감독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 만약 네가 K리그에 뜻이 있다면 FC 서울과 전북을 생각해 주기 바란다. 그쪽이 아무래도 네가 움직이기 좋을 거야.”
“감독님과 무슨 연관이 있는 모양이군요.”
“부인하지 않겠다. 하지만 난 네가 굳이 K리그에서 시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할 수만 있다면 유럽으로 가라. 넌 충분히 유럽의 4대 리그에서도 먹힐 거야.”
“고맙습니다.”
대한은 김수정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환하게 웃었다.
김수정 감독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대한에게 이런 제의를 해야 하는 나름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마지막에 드러난 본심은 대한의 장래에 대한 조언이었다.
“아직 아무것도 결정한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K리그에서 뛴다면 꼭 FC 서울과 전북에 들어가는 것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거면 됐다. 고맙다.”
김수정은 앓던 이를 뽑은 것처럼 시원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U-17 브라질 월드컵이 끝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아끼는 선수에게 이런 얘기를 해야 한다는 게 영 불편했다.
“저도 할 말이 있습니다.”
“뭔데 말해 봐!”
“결승전이 끝나면 전 귀국하지 않고 브라질에 조금 더 남아있겠습니다.”
“왜? 뭐 할 일 있어?”
“그건 아닙니다. 다만 어렵게 외국에 왔는데 관광도 못 해보고 가는 게 억울해서요. 대신 제 보호자로 있는 조동혁 매니저님께서 항상 같이 있을 겁니다.”
“부모님과 의논한 거지?”
“네, 부모님은 허락해 주셨습니다. 못 믿겠으면 저희 집으로 한번 전화를 걸어보세요.”
“그럴 필요까지는 없고 조동혁 씨만 만나서 확인하면 허락하마.”
“고맙습니다.”
하나를 들어줬으니 대한도 하나를 받아냈다.
대한은 김수정과 좀 더 얘기를 나누다가 커피숍을 나섰다.
방으로 올라가 보니 고새를 못 참고 김대양이 방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대한이 인사를 하자 김대양 코치의 얼굴이 환해졌다.
“일단 안으로 들어오세요.”
“고맙다.”
김대양은 뭐가 그리 급한지 앉자마자 바로 본론을 꺼냈다.
“대한아! 혹시 너 준프로 계약 했니?”
“아뇨.”
“그럼 K리그의 울산이나 포항은 어때?”
“거기서 부탁받으셨어요?”
“응, 사실은 그쪽 감독님들과 내가 안면이 좀 있거든.”
김대양 코치는 아예 대놓고 회유했다.
대한은 그의 말을 다 듣고 나서 한마디만 했다.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습니다. 하지만 K리그로 올라간다면 울산과 포항을 한번 생각해 볼게요.”
“그래. 고맙다.”
김대양은 대한의 말에 만족한 듯 순순히 물러났다.
그는 김대양이 나가자 바로 공우공 코치의 방으로 갔다.
똑똑!
노크가 끝나기가 무섭게 공우공 코치가 문을 열었다.
“들어와라!”
“네.”
대한이 소파에 앉자 공우공 코치는 시원한 음료수를 건넸다.
“코치님은 어느 구단에서 부탁받았어요?”
“이거 부끄럽구나. 난 J리그에서 부탁을 받았어.”
“J리그요?”
K리그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공우공은 J리그와 연관이 있었다.
“오사카에 연고를 둔 J리그의 감바 구단에서 너를 영입하고 싶어해. 그것도 아주 파격적인 조건이야.”
“일단 한번 들어보죠.”
공우공은 대한의 말에 성의껏 얘기를 전했다.
하지만 조건을 다 듣고 나자 흥미가 뚝 떨어졌다.
준프로 계약이 연 1,200만 원인데 오사카에서는 3,600만 원의 유스 계약을 제시했다.
얼핏 보면 3배라서 엄청 많아 보이지만 결국 한 달에 300만 원에 대한을 거저 데려가겠다는 심보였다.
“K리그는 좁아. J리그로 가면 넌 금방 J리그를 휩쓸게 될 거야. 그런 다음에 유럽으로 넘어가는 거야.”
공우공의 말은 결국 J리그를 밟고 유럽으로 넘어가라는 말이었다. 나름 대한을 위한다고 한 생각이었지만 그에게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였다.
“알겠어요. 한번 생각해 볼게요.”
“긍정적으로 검토해 줬으면 좋겠다.”
“네.”
대한은 공우공 코치와 척을 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공우공을 적당히 상대해 주고 방을 나왔다.
‘어휴! 벌써 이렇게 스카우트가 들어오니 좀 힘드네.’
―그게 전부 마스터가 잘나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세요.
‘하하하! 내가 잘난 게 아니라 에바가 내게 행운을 가져다 준거겠지.’
―아잉, 왜 또 날 이렇게 감동 먹게 하세용.
에바는 부끄럽다는 뜻을 온몸을 비비 꼬면서 표현했다.
좋아죽겠다는 그녀의 얼굴을 보다가 한마디 하려고 하려는 찰나!
우웅!
익숙한 공명음이 뇌리를 스쳤다.
‘에바!’
―축하합니다. ‘전술 이해도(S)’를 획득하셨습니다.
‘내일이 U-17 브라질 월드컵의 결승전인데 딱 하루 전날에 재능을 획득했구나.’
결승전을 꼭 승리로 이끌어 우승 트로피를 가져가고 싶었다. 마침 이렇게 재능까지 얻게 해주니 행운의 여신이 자신에게 미소를 짓는 기분이었다.
대한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창가 소파에 앉았다.
―상태 창을 열어드릴까요.
‘응, 부탁해!’
그는 에바가 열어준 상태 창을 확인했다.
이름: 이대한
등급: 워리어(B)
칭호: 워크라이(스탯 증폭↑10%), 투지의 신병(재능 부스터↑10%)
나이: 만 17세
직업: 학생(숭신고등학교 2학년)
재능 ▶ 알파로메오(S급), 노래(S), 끈기(S), 인내(S), 미모(S)
언어 ▶ 포르투갈어(A), 이탈리아어(S), 영어(S)
축구 ▶ 전술 이해도(S), 몸싸움(S), 순간 돌파(A), 양발잡이(S), 넓은 시야(S), 축구 지능(S), 축구 재능(S), 프리킥(S), 축구 기본기(A), 드리블(A), 개인기(A), 패스(A), 골 결정력(A), 주력(B), 스프린트(B), 지구력(B), 수비(B)
격투 ▶ 주짓수(S), 태권도(S), 격술(S)
스탯: 근력 97, 민첩 81, 체력 86, 지력 84, 마력 24
신장 185cm, 몸무게 83kg
축구 재능에 ‘전술 이해도(S)’가 들어왔다.
근력 스탯은 하나가 올랐다.
민첩, 체력, 지력 스탯은 두 개씩 올랐다.
마력도 7개나 올라서 24가 됐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제 마력을 제외한 모든 스탯이 80을 넘겼다는 점이다.
‘에바! 근력, 민첩, 체력, 지력 스탯이 모두 80을 넘겼어.’
―이미 알고 계셨군요. 이제 등급을 ‘워리어(B)’에서 ‘에스콰이어(A)’로 올려야 할 시점입니다.
‘기본 강화 같은 거지?’
―비슷합니다.
‘그럼 욕실로 가서 강화를 준비해야겠군.’
―커다란 수건 몇 개 버릴 생각 하시고 욕실 바닥에 깔아놓으세요.
‘알겠어.’
대한은 에바의 말이 끝나자 욕실로 갔다.
옷을 모두 벗은 뒤, 바닥에 커다란 목욕수건을 겹겹이 깔았다.
팬을 돌려서 환기를 시키고 혹시 몰라 욕실 문을 잘 잠갔다.
대한이 목욕수건 위에 바로 눕자 에바가 속삭이듯 말했다.
―마스터! 1부터 초읽기를 시작하세요.
‘알았어. 잘 부탁해. 1, 2, 3!’
그는 셋을 세자마자 의식을 잃었다. 에바가 깊은 잠에 빠뜨린 것이다.
준비가 끝나자 에바는 본격적으로 대한의 몸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웅, 웅, 웅, 웅, 웅!
대한의 몸에서 미세한 떨림이 시작됐다.
몸이 붉게 달아오르고 피부에서 진땀이 흘렀다.
우득! 우득! 우드득! 우드득!
뼈가 부러지고 뒤틀리는 소리가 나고 온몸의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새로운 뼈가 나오고 부러진 뼈가 맞춰졌다.
근육이 찢어졌다 이어지기를 반복하며 서서히 압축되기 시작했다.
이빨이 몽창 빠져 바깥으로 밀려나왔다.
눈알이 바깥으로 밀려나오고 안에는 새로운 눈알이 자리를 잡았다.
머리카락을 시작으로 온몸의 털이 전부 빠지더니 새로 나왔다.
손톱과 발톱도 밀려나고 새 손톱과 새 발톱이 그 자리를 채웠다.
환골탈태! 바디체인지!
무협지나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기사(奇事)가 지금 대한의 몸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전신에 대변혁이 일어났다가 천천히 잠잠해졌다. 하지만 대한의 몸 안에서는 바깥보다 더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심장, 폐, 간, 위장 등 오장육부가 차례로 사그라졌다가 새롭게 만들어졌다. 신경망이 다시 재구성되고 혈관이 수축되었다가 확장됐다. 이 과정에서 노폐물과 잔여물이 모조리 밖으로 배출됐다.
혈액이 파괴되고 새로 만들어진 혈액이 그 자리를 채웠다.
피부가 일곱 겹이 벗겨지고 새 피부가 위로 올라왔다.
이 모든 과정이 세 시간이 넘도록 진행되었다.
―신체 밸런스 확보! 전신 강화 성공! 등급 강화 성공! 등급 에스콰이어(A) 완성! 마스터의 의식을 깨웁니다.
에바는 누가 듣는 것도 아닌데 대한의 귀에 계속 속삭여댔다.
“으음!”
잠시 후, 대한이 서서히 의식을 찾았다.
‘에바!’
―마스터! 수고하셨습니다. 전신 강화가 모두 끝났습니다.
‘에바도 수고했어.’
정신을 차린 대한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