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가공할 엉덩이>
“골!”
와아아아!
경기장은 흥분의 도가니로 변해버렸다.
중앙선 안쪽에서 시작한 드리블이었다. 그걸 상대방의 코너까지 몰고 가더니 다시 방향을 바꿔 골대로 밀고 갔다.
아슬아슬하게 선상을 타고 곡예를 하는 모습에 코너킥을 노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한은 그 비좁은 틈을 비집고 기어코 슛을 때려 골을 넣었다. 그것도 수비수와 골키퍼의 두 다리 사이로 말이다.
이 장면은 ‘가랑이 사이의 굴욕’이라는 제목으로 나중에 특종이 된다. 특히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이 사진을 무척 싫어했다. 그래서 보는 사람마다 신문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고 한다.
“골입니다.”
“정말 어마어마한 골이 들어갔습니다.”
“이건 챔피언스리그에서나 볼 수 있는 멋진 골입니다.”
“이대한 선수! 그동안 넣은 골 중 단연 최고의 골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하하하! 인생의 걸작이 하나 나왔습니다.”
“역시 이대한 선수는 정말 대단합니다.”
“이래서 이대한 선수가 나와야 하는 겁니다. 보세요. 아주 시원하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속이 다 후련해집니다.”
“동점입니다. 이제 역전 가야죠!”
“네, 그렇습니다. 역전을 위해 이대한 선수가 한 골 더 넣어줄 것을 기대해봅니다.”
정광용 축구캐스터와 박승재 아나운서는 싱글벙글 웃으며 중계방송을 했다.
시원한 동점 골을 터트린 대한!
그는 관중을 바라보며 말없이 그냥 달리기만 했다.
이 멋진 골 세레모니에 하이스와 치어리더팀은 좋다고 방방 뛰어댔다. 이제는 그들을 보러온 관중과 취재하러 온 기자들도 꽤 됐다. 점점 전국적인 인지도를 가지게 된 그녀들이다.
“아싸! 골이다.”
“멋진 골이다!”
“동점 골이 들어갔어.”
“대한이 넣었어.”
“미친 드리블이었어.”
“캬아! 속이 다 시원하다.”
대한민국 벤치도 흥분으로 달아올라 팝콘이 튀겨질 지경이었다.
경기를 지켜보는 시청자들도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성을 질렀다.
당연히 채팅 창도 화끈하게 타올랐다.
[코란도일: 우리 대한이 동점 골을 넣었다!]
[화가난다: 개 사이다.]
[비도깨: 미쳤다.]
[대폭주: 이게 무슨 대 폭주냐!]
[만수르SUH: 야호! 대한 만세!]
[닥공: 그래 바로 그거야. 닥치고 골을 넣는 거야.]
[우리두리: 우와! 또 골이다.]
[어벤저스: 봤냐? 봤어! 이 미친 치달을!]
[톰과제리: 그렇게 빠른 것 같지도 않은데 아무도 막질 못하네.]
[자주국방: 원래 순항미사일은 막기가 힘들어!]
[카리스마: 뭔 비유가 순항미사일이냐?]
[No재팬: 닥치고! 그냥 지렸다.]
[핵인싸: 이제 역전 가즈아!]
대한민국 시청자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화끈하고 시원하다는 게 대세였다.
아직도 국내에는 대한을 중상모략하는 기레기들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대한축구협회와 기레기들이 여론전을 펼쳐도 소용이 없었다.
이렇게 미친 듯이 골을 넣어버리면 어지간한 잘못은 그냥 다 묻혀버린다. 더구나 대한은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고 이미 언론에도 다 알려져 있었다.
팩트와 증거가 뻔히 있는데 개소리를 지껄여봤자 결국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아니, 정반석 변호사의 고소장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삐익!
주심이 경기를 속개했다.
살짝 아르헨티나에 편파적인 주심이라 좀 많이 서두르는 모습이었다.
스코어는 2대2.
동점이 되자 아르헨티나도 이제 다급해졌다.
그들은 대한에게 극도의 경계심을 품었다. 어이없이 골키퍼의 실수로 한 골 먹은 거야 그냥 웃으며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 골은 절대 아무나 넣을 수 있는 수준의 골이 아니었다.
안 그래도 세계 최고의 유망주로 구성됐다는 아르헨티나였다.
만약 대한민국에 패하기라도 한다면 아르헨티나 유망주들은 국내용에 불과했다는 오명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럼 이들의 미래가 암울해질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막아!”
“옆으로 돌려!”
“라인을 맞춰!”
경기장은 대한민국과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흘려대는 열정에 뜨겁게 달아올랐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두 팀의 정면 대결은 말 그대로 흥미진진했다. 그러나 관중의 시선은 대부분 한 선수에게 쏠려있었다.
후반전에 들어와 10분 만에 두 골을 넣은 선수!
바로 대한의 움직임을 집중해서 보고 있는 것이다.
“달려!”
대한의 말에 최민석이 신나게 달려갔다.
뻥! 촤아아악!
곧바로 잔디 위를 가르는 킬패스가 들어왔다. 중간에서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다리를 쭉 뻗어서 막아봤다.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볼이 발에 닿지 않았다.
“땡큐!”
최민석은 발 앞까지 정확히 배달되어 온 축구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고개를 위로 치켜들어 골문을 쳐다봤다. 거리는 좀 있었지만, 골키퍼를 빼고는 뻥 뚫려있었다. 이런 것은 예의상 맞고 죽으라고 차 줘야 한다.
최민석은 과감하게 중거리 슛을 찼다.
뻥!
강력한 중거리 슛이 골대의 우측으로 날아갔다. 아르헨티나 골키퍼 로코가 힘껏 몸을 날렸다.
“아오!”
최민석의 회심의 중거리 슛은 안타깝게도 골키퍼의 선방에 가로막혔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튀어나온 볼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급히 다가온 수비수들에게 가로막혔다.
스위퍼가 볼을 바깥으로 차려는 순간, 볼이 눈앞에서 꺼지듯 사라졌다.
어느새 대한이 나타나 볼을 가로채 간 것이다.
그때부터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선수들의 숨바꼭질이 시작됐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볼을 굴리는 대한!
그를 막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수비들!
마치 무슨 한 편의 콩트를 보는 듯했다.
반칙이라도 했다간 페널티킥을 주게 되니 절로 소극적인 수비밖에는 할 수 없는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입장이었다.
대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어서 교묘히 반칙을 유도했다. 그런데 아르헨티나 수비진은 그의 계략에 쉽게 말려들지 않았다.
이에 최민석도 합류했다. 둘은 인의 장막 속에서 어떻게든 활로를 찾으려고 애썼다.
그러다 최민석이 덜컥 넘어졌다.
명백한 반칙인데도 주심은 휘슬을 불지 않았다.
공이 옆으로 흐르자 대한은 즉시 볼키핑에 들어갔다.
‘이 새끼, 왜 휘슬을 안 불어?’
―돈이라도 받아 처먹었는지 한번 확인해볼까요?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넵, 슛할 루트를 찾아보겠습니다.
대한의 눈에 골대를 향한 여러 개의 점선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아무리 인의 장막에 갇혀있다고 해도 공간의 사이는 엄연히 존재했다.
그는 골대를 쳐다보지도 않고 어느 순간 그냥 맞고 뒈지라고 슛을 차버렸다.
뻥!
축구공은 쏜살같이 골대를 향해 날아갔다. 그런데 재수 없게도 골대 안에 서 있던 아르헨티나 수비수의 엉덩이에 맞아버렸다.
수비수는 온갖 인상을 쓰며 자신의 엉덩이를 잡고 쓰러졌다.
힘없이 흘러나온 볼을 누군가 툭 밀었다.
역시 힘없는 축구공이 데굴데굴 골대 안으로 굴러 들어갔다.
“골!”
경기장이 일순 천둥이 치는 듯한 함성으로 뒤흔들렸다.
하이스와 치어리더팀도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댔다.
대한은 두 손을 번쩍 들어 만세를 불렀다.
그의 앞에는 최민석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운 좋게도 눈앞으로 튀어나온 볼을 최민석이 엉덩이로 툭 밀어 넣은 것이다.
나중에 ‘골을 막은 엉덩이와 골은 넣은 엉덩이’란 제목으로 타블로이드의 지면을 뜨겁게 달구게 될 자극적인 기사의 소스가 바로 여기서 나오게 됐다.
“잘했다.”
“봤어?”
“엉덩이로 밀어 넣은 거?”
“크하하하! 난 엉덩이로도 볼을 찰 수 있어.”
“에라, 이런 미친놈!”
대한과 최민석은 서로 끌어안고 농담을 했다. 곧이어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들이 우르르 몰려와 축하를 해줬다.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허망한 표정으로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이 기막힌 골을 본 경기장의 관중들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물론 아르헨티나 응원단은 빼고서 하는 말이다.
대한민국은 금세 흥분의 도가니로 변해 버렸다.
남미의 전통적인 강호 아르헨티나를 지금 3대2로 이기고 있었다. 거기에다 엉덩이로 볼을 밀어 넣은 기막힌 역전 골은 절로 웃음이 나오게 만들고 있었다.
정광용 축구캐스터와 박승재 아나운서가 이런 자리에 결코 빠질 수 없었다.
“역전 골이 터졌습니다.”
“가공할 엉덩이 슛이었습니다.”
“네에? 그런 슛이 다 있습니까?”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대한민국 선수들은 가능합니다.”
“금시초문입니다.”
“하지만 지금 눈으로 보시지 않았습니까? 엉덩이로 막고 엉덩이로 슛을 하는 모습을 말입니다.”
“이거 눈으로 본 사실이니 빼도 박도 못하겠군요.”
심각한 척 말하는 두 사람의 얼굴은 환하게 피어올랐다.
시청자들도 둘이 농담하는 것을 알고 배꼽을 잡고 웃었다.
채팅 창도 웃음꽃이 활짝 피어났다.
[속일파척결: 크크! 엉덩이 슛 지린다.]
[말벌봉준: 아오! 더럽게(?) 잘 찼다.]
[검찰개혁: 최민석의 엉덩이 슛! ㅋㅋ]
[우주가도와줘: 문전 안에서 그렇게 열심히 싸워대더니 결국 엉덩이로 ㅜㅜ]
[손톱이빨개: 막은 엉덩이 VS 넣은 엉덩이! 개웃김]
[여친찾음: 졸라 찝찝한 슛이다!]
[작업멘트0: 개웃김]
[대한만세: 역전했다. 우승 가즈아!]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대한민국 벤치에도 이어졌다.
“감독님의 선택이 옳았습니다.”
“힘내세요. 저희도 도와드릴게요.”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김대양 코치의 말에 공우공 코치가 맞장구를 쳤다.
김수정 감독은 감동하였는지 살짝 울컥하는 모습이었다.
비록 미래는 좀 암울해졌지만 그래도 이 순간만큼은 최선을 다했다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세 남자는 서로를 힘껏 끌어안고 웃었다.
옆에서 선수들이 수군거렸지만, 그들은 전혀 이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반대로 아르헨티나 벤치는 초상집 분위기로 전락했다.
전반전에 두 골을 넣고 다 이겼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후반전 시작하자마자 한 골을 먹더니 어느새 역전이 되어버렸다.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대한민국의 이대한 선수가 게임 브레이커라는 소리를 듣긴 했다. 직접 활약상을 살펴보고 놀라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비를 충분히 해놓았다.
아르헨티나의 파블로 감독은 이럴 줄 알고 미리 대한에게 전담 마크까지 붙였다. 그런데 전혀 먹히지 않았다.
대한은 절대 한곳에 가만히 서서 쉬고 있는 법이 없었다.
전담 마크를 하는 선수를 달고 다니면서 그라운드를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그러자 오히려 따라다니는 선수가 먼저 지쳐서 헉헉댔다.
“저 새끼 막아라! 안되면 다리라도 부러뜨려!”
“네, 감독님.”
화가 난 파블로 감독이 도저히 해서는 안 되는 말을 내뱉었다.
에이마르 코치가 그냥 듣고 흘렸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화가 나 있던 에이마르 코치는 감독의 말을 명령이라고 자의적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정말 미드필더 둘을 불러서 대한의 다리를 부러뜨리라고 명령했다.
미드필더 후안과 데안은 처음에 농담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인상을 쓰고 있는 에이마르 코치의 얼굴을 보고는 이게 진심이라는 것을 깨닫고 매우 놀랐다.
여기서 거절했다면 두 선수는 그냥 작은 불이익만 받고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도 속으로는 대한의 활약에 화가 났다. 골을 넣은 것은 최민석인데 화풀이는 대한에게 하려는 것이다.
―마스터! 긴급 보고할 사안이 생겼습니다.
‘뭔데?’
대한은 중앙선을 넘으며 에바에게 물었다.
에바는 친절하게 아르헨티나 감독과 코치, 미드필더 후안과 데안에게 코치가 명령을 내리는 장면을 보여줬다.
‘에이, 그냥 농담이겠지.’
―그런 것치고는 분위기가 살벌하지 않습니까?
대한은 에바의 말을 듣고 후안과 데안의 얼굴을 살펴봤다.
정말 무슨 사고를 치기 위해서 작정을 한 놈들 같았다.
‘헐! 이제 어떻게 하지?’
―마스터의 다리와 발목을 노릴 테니 안 부러지게 강화해야지요.
‘지금 여기서 강화를 한다고?’
대한은 강화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마스터께서 생각하시는 그런 강화까지는 아닙니다. 뼈 안에 보관해둔 물질들을 이용해 마스터의 다리와 발목의 강도를 조금 바꿔놓는 정도입니다.
‘그게 가능해?’
―그럼요. 제가 누구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아! 알았어. 그냥 빨리해봐!’
―5초간 움직이지 마세요. 그리고 약간의 통증을 느낄 수 있습니다.
대한은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자 곧 두 다리와 발목이 뻐근해지는 느낌이 왔다.
통증까지는 아니었지만 신음이 나올 정도의 불편함이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5초가 지나자 그런 느낌이 싹 사라졌다. 대신 다리와 발목이 묵직해진 기분이 들었다.